I became a father with a genius face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99)
게임 속 얼굴천재 아빠가 되었다-99화(99/109)
술이 원수다 (3)
인피니움이 좋으냐 로카리움이 좋으냐.
그 희대의 난제 앞에 루시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꿀꺽.
인피니움은 침을 삼키며 제 손녀의 조막만 한 입술을 바라봤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오물거리던 통통한 볼. 하지만 다음 순간, 루시스의 눈동자에 예리한 빛이 스쳤다.
“오.”
아무래도 이 문답의 함정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래. 사실 네가 해야 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어.’
루시스는 지체 없이 그 하나뿐인 답을 입에 담았다.
“로카리움이 더 좋아.”
쿵, 바위라도 심장에 떨어진 듯 충격받은 표정이 된 인피니움은 흐물흐물거리더니 테이블 위로 그대로 엎어졌다.
“……그래. 두 번밖에 얼굴 못 본 할아비보다야 몇 주나 같이 있던 동생이 좋겠지…….”
애써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눈에 띄게 울적해진 얼굴이었다.
“흥.”
하지만 루시스는 어림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사실 루시스가 로카리움을 인피니움보다 더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친할아버지가 아닌가.
‘하지만…….’
인피니움이 더 좋다고 말하면 분명 저 주책바가지 드래곤은 루시스를 끌어안을 것이다. 그러면 루시스는 또다시 수염 공격에 당하겠지.
결국 루시스가 해야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에휴…….”
그래도 축 늘어진 제 할아버지가 신경 쓰였는지 루시스는 작게 중얼거렸다.
“수염 시러.”
그 말을 들은 인피니움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응? 뭐라고 했느냐? 수염이 싫다고?”
그 말이 마치 수염‘만’ 싫다는 말로 들렸는지 인피니움의 눈이 희망과 결의로 가득 차올랐다.
“알겠다! 하나뿐인 손녀를 위해서라면 이깟 수염 따위, 당장 태워 버리마!”
아무래도 인피니움은 면도만 하면 루시스가 자신을 선택해 줄 거라고 의심치 않…….
‘잠깐. 뭐? 깎는 게 아니라 태운다고?’
불길한 예감에 인피니움을 돌아봤지만.
화르륵!
이미 인피니움은 손에서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지하실에서.
그것도 목재 건물에서.
심지어 화기 엄금인 바에서.
“야, 이 미친 노인네야!”
내 가슴속에서 인피니움을 향한 마지막 경외심마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 *
한 시간 뒤.
드워프 장인 길드의 간부인 그라스와 드워프 공방의 치프 엔지니어인 랄프가 ‘테이블 게이머즈’를 찾았다.
“이번에도 성황이군요, 백작님!”
그라스는 눈을 반짝이며 내 손을 쥐고 흔들었다.
“역시나 백작님의 아이디어는 언제 봐도 훌륭합니다!”
핑퐁 게임기는 대당 가격이 꽤나 고가였기에 드워프들에게 떨어지는 몫도 꽤나 컸다.
그 부분이 그라스를 이리도 열성적으로 만든 모양이었다.
그 옆에서 랄프도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재밌긴 했지. 공방 드워프들도 그거 하느라 일을 안 할 지경이란 말이지. 한 대뿐이라 다행이지 여러 대였으면 공방 업무 자체가 마비될 뻔했어.”
드워프 공방에는 제작 참고용 시제품 하나가 있었다.
평소와 달리 그 말에 호응해 줄 힘도 없던 나는 둘을 지하실의 조용한 룸으로 이끌었다.
“괜찮으십니까? 표정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만.”
눈치 빠른 그라스가 내 안색을 살피더니 물었다.
“아니. 안 괜찮아.”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 룸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PTSD가 도질 것 같았다.
“나 정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급하게 일어난 불을 끄고, 손님들이 놀라지 않게 연기를 중력 마법으로 압축시켜 간신히 건물 밖으로 내보냈다.
만취해서 자기 정체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 두 드래곤을 사람들 눈에 안 띄게 마차에 집어넣고, 날개를 펼쳐 날아가려는 둘을 달래며 타운하우스까지 가느라 등골이 다 빠지는 줄 알았다.
그러고 이 둘과의 약속을 위해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나, 드래곤이 싫어질 것 같아. ”
“……드디어 진리를 깨우치셨군요.”
“마우솔레움 조약은 아름다운 조약이야.”
“백번 맞는 말씀이십니다.”
“루시스 빼고 다 꺼졌으면.”
“…….”
아직 혼이 덜 났다는 듯 고개를 모로 젓는 랄프였다.
“어휴.”
나는 한숨을 쉬어 끔찍한 기억을 털어 낸 뒤 둘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확인해 봐. 구상 중인 다음 아티팩트니까.”
“오오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라스는 재빨리 그것을 받아 랄프와 머리를 맞대고 들여다봤다.
“흐으음?”
역시나 이번에도 표정이 묘해지는 랄프.
하지만 앞서 두 번이나 있었던 경험 탓에 이번에는 경솔히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건 그러니까…….”
대신 그라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초소형 배터리인 거군요?”
이 세계에도 배터리라 불리는 기술, 내지는 아티팩트는 존재했다.
물론 그 안에는 전기 대신 마력이 들어 있었다.
‘효용성이 나빠서 잘 쓰이지는 않는 기술이지.’
대부분의 아티팩트는 마력으로 작동하기에 마석을 건전지처럼 끼워서 작동시킨다.
마력이 저장된 돌이 있는데 굳이 그것을 배터리에 옮겨서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마력을 압축시킬 기술이 없으니 배터리의 크기는 마석과 비슷하니까.’
외양을 통일해야 하는 기사들 혹은 조금이나마 그것들을 ‘패션’으로 승화시키고 싶은 귀족들이 아니라면 굳이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내 설계도의 배터리는 그 부분을 개선해 냈다.
“이 배터리는 마우솔레움에서 개발한 축성 회로가 새겨진 배터리야. 그래서 손톱만 한 크기지만 기존 배터리에 비해 다섯 배 이상의 효율을 낼 수 있지.”
“그렇군요.”
그라스는 다시 한참이나 설계도를 보다가 랄프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서로에게 눈빛을 떠넘기기를 몇 차례, 결국 이번에도 랄프가 입을 열었다.
“출력이 형편없을 것 같은데……. 물론 이번에도 기발한 무언가가 있겠죠?”
“물론이야. 이건 체내에 심는 배터리니까.”
잠시 자신이 잘못 들었다 생각했는지 귀를 후비는 랄프.
대공방의 때가 묻은 검은 귀지를 후 불어 날린 후 다시 묻는다.
“뭐라고요? 어디에 심어요?”
“인체에.”
“…….”
이 인간이 미쳤나,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랄프였다.
“걱정 마. 생각보다 몸에는 빈 공간이 많으니까.”
대표적으로 엄지와 검지 사이의 합곡혈이 그랬고, 귀 아래의 빈 공간이 그랬다.
그 외에도 우리 몸에는 이런 손톱만 한 배터리가 들어갈 공간이 충분했다.
‘충전 역시 간단해.’
마력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과 같이 마석을 배터리를 박아 놓은 곳에 가져다 대면 그만이었다.
“혁신이로군요.”
랄프와 달리 내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은 그라스가 멍하니 설계도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있으면, 이걸 심으면 마력이 없는 사람도 마력 회로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닙니까.”
“바로 그거야.”
그제야 내가 그리는 그림을 눈치챈 랄프는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야. 훗날 배터리 기술이 더욱 발전되면 어떻게 될까. 이 손톱만 한 배터리에 주먹만 한 마석의 마력이 모두 들어간다면?”
“……모두가 마법사가 되겠군요.”
“인류가, 아니 모든 종족이 한 단계 진화하는 거지.”
현대 지구로 치자면 인간의 몸에 전류 배터리를 심는 것이다.
수많은 사이버웨어를 부착할 수 있는 사이버펑크 시대가 열리겠지.
이건 그 정도의 물건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열 발판이 될 물건.
소름이 돋았다는 듯 온몸을 부르르 떤 그라스가 외쳤다.
“이건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발명품입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제 입을 틀어막았다가 내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이 길을 함께 갈 수 있어 영광입니다, 백작님!”
랄프는 내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무아지경에라도 빠진 듯 용광로와 같이 뜨거운 눈으로 설계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설계도를 통째로 외워 버리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것은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 수 있음을 확신한 장인의 눈동자였다.
* * *
시모어는 매일 아침 육체 훈련을 진행했다.
그 루틴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최근 들어 소소한 변화가 있었다.
“검을 조금 가까이 쥐시는 게 좋습니다.”
“음. 이렇게 말인가?”
“아뇨, 그보다는…….”
시모어의 곁에서 함께 검을 휘두르던 이리나가 시모어의 파지법을 고쳐 줬다.
“과연. 이렇게인가.”
“보폭도 조금 더 넓히시는 게 좋습니다. 아, 허리도 조금…….”
끊임없이 시모어의 곁에 붙어서 자세를 바로잡아 주는 이리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둘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헬라가 있었다.
한참 동안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헬라는 배가 부른 얼굴로 콧노래와 함께 발을 돌렸다.
다른 기사들도 작게 웃으며 둘의 모습을 힐끔거렸다.
두 사람을 제외한 모두가 그 묘한 기류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여기에 그렇지 못한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비행 마법이 걸려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상화, 그 너머에서 모든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마탑주 쿠린 아니마였다.
“저, 저 곰인 척하는 여우가……!”
잘근잘근-.
쿠린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손톱을 씹으며 수정구 너머 두 사람의 모습을 뚫어져라 지켜봤다.
그 모습에 쿠린의 보좌관은 한숨만 내쉬었다.
매일 아침 수정구를 보면서 하도 스트레스를 받으시기에 보지 말랬더니 혼자 망상을 이어 가며 더 스트레스를 받더라.
봐도 스트레스, 안 봐도 스트레스면 그냥 보시라고 진즉에 포기한 보좌관이었다.
결국 분홍빛 아침 수행을 끝까지 지켜본 쿠린이 핏발 선 눈으로 보좌관에게 외쳤다.
“이대로는 안 돼요!”
예. 정말 안 되십니다. 보좌관은 속으로 말을 삼켰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 자리를 빼앗길 거예요!”
그 자리는 한 번도 마탑주님의 것이었던 적이 없습니다만. 보좌관은 그 말도 속으로 삼켰다.
“하지만 뭘 해야 제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죠? 어떻게 해야 백작의 마음을 제게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요?”
마탑주는 한참 동안 머리를 끌어안고 끙끙거리더니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래요! 인간은 위기의 순간 자신을 구해 주는 이에게 약하죠! 유디시움! 그때 활약을 해야 해요!”
쿠린은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활약을 할 수 있을까.
이리나가 못 하지만 시모어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이 뭐가 있을까?
한 가지 퍼뜩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보좌관, 현재 파악된 유디시움의 배심원단 구성은 어떻습니까?”
“황실, 교회, 흑룡회와 백룡회에서 각 한 명씩 선출한다고 합니다.”
언제나 시모어에 대한 정보를 궁금해하는 쿠린이었기에 보좌관은 늘 시모어에 관한 정보는 최신의 것으로 파악해 두고 있었다.
“배심원단에 이름을 올리시려는 겁니까?”
“그래요. 마탑주의 위치를 이용해……. 아니, 그건 무리겠군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마탑주가 물었다.
“보좌관. 광룡이 인간만 죽였나요?”
“아하. 그쪽을 노리시는 거군요.”
보좌관은 오늘도 제 주인의 비상한 머리에 감탄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수십만을 학살했다고 하니 그중에 다른 종족도 분명 섞여 있었겠지요.”
“잘됐군요. 그러면 이종족 대표의 자리를 요구합시다!”
황실은 인간의 대표로 투표권을 받았고 교회는 신들의 대리자로 투표권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종족도 충분히 투표권을 주장할 수 있었다.
“드워프들은 드래곤이 두려워 나서지 않을 테니 그 자리는 자연히 마탑주님의 자리가 되겠군요.”
보좌관은 또 한 번 감탄했다.
“후후후……!”
“한데, 이미 반쯤 결정된 배심원단에 새로운 자리를 넣으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물음에는 쿠린이 작게 코웃음을 쳤다.
“설마 미래의 남편에게 쓰는 돈이 아까울까요?”
수많은 마법 특허로 대귀족에게 버금가는 어마어마한 부가 쌓여 있다고 알려진 마탑주의 금고.
“이걸로 아내 점수를 또 후하게 벌 수 있겠군요!”
그것이 ‘럭스 슈트 독점 사태’ 이후 두 번째로 열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 *
유디시움을 앞두고 오늘은 좀 평화롭게 지나가나 했는데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에라드 황자님.”
황자가 호위 기사를 거느리고 마우솔레움 타운하우스를 찾은 것이다.
“여기, 아바마마의 서신입니다.”
황자는 내게 한 장의 서신을 건넸다.
유디시움을 코앞에 둔 순간의 편지. 다분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