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lashing Genius At The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4)
마법학교 앞점멸 천재가 되었다 214
46. 옛날이야기(10)
오늘은 에이젤에게 참으로 이상한 날이었다.
평소대로 점심 식사를 끝마친 뒤 페실라 시녀 몰래 케이크를 먹으려 고 했는데 하필 대청소를 하는 바람 에 시녀들에게 들키지를 않나.
비밀장소에서 몰래 만화책을 읽는
데 고양이가 들이닥쳐서 비명을 지 르는 바람에 들키지를 않나.
거기에 더해 오늘따라 왠지 공놀이 가 하고 싶어서 혼자 공을 가지고 노는데, 담장 너머로 날아가는 바람 에 주으려고 나왔더니 웬걸.
특별한 마법 결계에 얽혀 버려 돌 아가는 길을 까먹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숲을 헤매는 와중 만나버린, 무시무시한 늑대 괴수.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공포와 절망이라는 감정을 고작해야 일곱 살의 어린아 이가 느낄 일이 얼마나 더 있을까.
입술은 푸르게 물들고, 온몸은 덜 덜 떨려왔으며 심장은 미친듯이 쿵 쾅거리며 여전히 그 공포감이 가시 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래도 마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가면 쓴 낯선 청년.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이 사람과 같이 있으면 안심이 되었 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똑바로 가는 거 맞아?”
뒤따라오던 백유설이 묻자 앞장서 서 당당히 집을 안내하던 에이젤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쪽이 맞을 거예요.”
“아까 네가 말한 ‘이쪽’은 북동쪽 이었는데 지금 네가 말하는 ‘이쪽’ 은 북서쪽이야. 방향이 다르다고.”
“그, 그럴 리가요!”
에이젤은 혼란이 온듯 눈을 빙그르 르 돌렸다. 분명히 이쪽으로 온 것 은 틀림없는데, 왜 방향이 다를까.
“에휴…….”
미래의 에이젤은 똘똘하고 뭐든 다 잘하는데, 어린 시절에 바보 같았던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하기야 일곱 살에 지나치게 똘똘하 면 그건 그거대로 조금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이 상황을 어찌하면 좋을까 백유설 이 고민하는 와중 직박구리 안경에 서 메시지가 송출되었다.
[현상분석 완료]
[해당 숲에는 생물체의 방향감각을 저하하는 ‘방랑자의 규율’ 마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뭐?”
그는 황당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안경의 지식이 있다 지만 스스로도 마법을 어느 정도 공 부하고 있었기에, 저 말이 의미하는 바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 수 있던 것이다.
“이 정도로 광범위한 숲에 전부 마 법이 걸려 있다는 거야……?”
너무 미친 거 아닌가.
그러다가 퍼뜩 든 생각.
‘가만…… 방향감각 저하 마법?’
마법이 라.
‘그럼 분석도 가능하지?’
[감각 능력치가 해당 결계를 월등 히 상회하여, 가능합니다.] [검색 완료.]잠시 기다리자 마치 숲이 갈라지며 길이 확 트이는 듯한 연출이 나타나 더니 눈앞에 길이 떠올랐다.
“오…… 뭔가……
[경로 안내를 시작합니다.] [7.3km 앞까지 직진.] [이후 우회전입니다.]“……내비게이션이냐.”
뭔가 분위기 확 깨는 느낌.
아무튼, 이제 길을 찾는 건 별문제 가 되지 않았다.
“야, 됐고. 나 따라와.”
“어어…?”
방금까지만 해도 뒤따르던 백유설 이 대뜸 앞서나가자 에이젤은 어버 버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따라 붙었 다.
“자, 잠깐만! 아빠가 그랬어. 이 숲
은 외지인이 들어서면 길을 잃게 된 다고.”
“너도 잃었잖아. 존댓말.”
“그, 그건…… 아빠가 알려준 방법 을 까먹어서…….”
하기야 저 나이대면 아빠의 말 따 위, 귓등으로 들을 때다. 제대로 집 중하지를 않았으니 그 방법도 까먹 었겠지.
“그게, 진짜 위험한데…….”
에이젤이 안절부절 못하는 것과는 별개로 백유설은 성큼성큼 걸어서 걸어 나갔다.
간혹 출몰하는 위험한 짐승이나 괴
수는 단칼에 처리했는데, 그때마다 에이젤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와아……
뭔가 사촌동생한테 게임 아이디 자 랑하는 사촌형이 된 느낌이라 뿌듯 한 느낌이 있었으나, 이 힘이 자신 의 것이 아닌 가짜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서는 뭔가 자괴감이 들었다.
’……현대로 돌아가면 밥도 안 먹 고 수련만 해야겠어.’
그렇게 얼마나 숲을 헤맸을까.
앞장서던 백유설이 걸음을 멈추자 에이젤이 의문을 표했다.
“무슨 문제 있어? 요?”
“네 친구들 왔나 본데.”
“에?”
이윽고, 풀숲이 갈라지며 푸른 제 복을 입은 마법 기사단이 모습을 드 러 냈다.
‘모르프 대공가의 문양.’
단번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본 백유 설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네 정체를 밝혀라.”
기사단 중에서도 가장 상관으로 보 이는 사내가 다가오더니 지팡이를 겨누며 말했다.
백유설은 지팡이를 내리고서 에이
젤을 엄지로 가리켰다.
“얘가 길을 잃었다길래, 집에 바래 다주는 길이었는데요.”
그 말이 정말이냐는 듯 기사가 에 이젤을 바라보자, 그녀는 황급히 고 개를 끄덕였다.
“저, 정말이야. 괴수도 몽땅 해치워 줬어!”
“……그렇군요. 아가씨, 이리로 오 십 시오.”
기사의 말에 에이젤은 도도도 달려 갔다. 그러나, 그녀가 증언해 주었다 고 해서 심문이 끝난 건 아니다.
“그럼, 다시 묻지. 정체를 밝혀라.”
“백설기.”
“……떡 이름이군.”
“제가 그래서 떡을 싫어합니다.”
기사는 표정을 찌푸리며 무어라 더 추궁하려고 했지만, 에이젤이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렸다.
“그러지 마! 진짜 나 도와준 사람 이야!”
“하지만, 아가씨. 여기는…… 모르 프 대공가의 혈족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 ‘모르프란 숲’입니다. 외지 인은 평범한 방법으로 결코 들어올
수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그 경위를 캐내 야…….”
“아빠한테 이를 거야!”
“으 ”
가불기 나왔다.
대공가 장녀의 ‘아빠한테 이를 거 야’는 최소한 SSS등급의 기술이었기 에 일개 기사 따위가 감히 당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나저나, 여기가 그런 곳이었나.’
일전에 에이젤이 ‘집 앞마당’이라 고 말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외부인 출입 금지 구역이라.
아무래도 한 끼 식사 얻어먹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그래도 뭐, 과거의 시간대에서 어 린 에이젤이 비명횡사하는 것도 막 았으니 여기서 할 일은 다 하지 않 았나 싶다.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나가는 길 을 알려주시면 빠르게 사라지겠습니 다.”
에이젤과는 더 이상 엮여봐야 좋을 게 없다는 생각도 있고 기사들 입장 에서도 자신이 사라져주는 게 낫다 는 생각이 들어서 백유설은 그리 말
했으나…….
“잠깐, 기다리게.”
중후한 목소리가 숲을 울리며.
척! 척!
마법 기사단 전원이 곧바로 뒤돌아 누군가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미친.’
백유설은 식은땀을 흘리며 이 숲까 지 찾아온 사내를 바라보았다.
에이젤과 똑닮은 푸른색의 눈동자, 전혀 닮지 않은 갈색 머리카락.
하나의 세계를 지탱하는 여주인공 이 기억 속에서 언제나 믿고 의지하
던 바로 그 존재.
‘아이작 모르프.’
바로 그 전설적인 등장인물이 지금 이 순간 눈앞에 나타났다.
“내 딸을 숲에서 구해줬다고?”
그의 말투는 가벼웠으나, 듣는 이 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목소 리에조차 마나가 서려 나오는 압도 적인 경지.
비록 역사에는 8클래스에 불과하다 고 기록되어 있었으나, 아주 만약…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9클래 스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 로 막강한 마나 압력이었다.
‘무시무시한 아저씨인데……
워낙에 마나가 흩뿌리는 무게가 남 달라서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 면 다가오기 훨씬 전부터도 느껴지 고 있어서 이 마나가 아이작 모르프 이 것인 줄도 몰랐다는 표현이 정확 하리라.
‘저 아저씨랑 싸우면 큰일나겠어.’
아이작은 백유설을 힐끗 바라보더 니,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딸을 향해 팔을 벌렸다.
“우리 딸, 숲에서 길을 잃었다고?”
“아빠아아!”
그에게 와락 달려드는 에이젤.
이쯤 되니 슬슬 불안하다. 한시라 도 빨리 이 장소를 벗어나는 게 좋 을 것이라고, 육감이 스스로에게 경 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부녀의 재회를 보니 보람이 있군 요.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음? 하하, 아닐세. 나의 딸을 구 해준 은인인데, 이렇게 돌려보내서 쓰겠나. 마침 저녁 때가 되었으니, 식사라도 대접하겠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서요.”
“그런가? 그럼 식사 자리에 참여만 이라도 해줄 수 있겠나. 자네를 이
대로 돌려보내면 내가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그렇다네.”
이건, 틀림없다.
그냥 돌려보낼 생각이 없는 거다.
여기서 거절한다면…… 아마 강제 로라도 끌고 가겠지. 아직 그가 선 의를 보이고 있을 때 차라리 말을 듣는 편이 더 낫다.
“알겠습니다. 그럼 자리에 참석만 하도록 하죠.”
“좋ス】! 오늘은 특별히 공주님이 좋 아하는 하브리뮤 감자 샐러드를 준 비하라고 해야겠어!”
“와아아~!”
어린 에이젤의 어리광, 도저히 모 르프 대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평범해 보이는 아이작.
이 모든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 지는 이유는 대체 뭘까.
그리고 또 하나.
시간을 역행하며 왜 하필이면 10 년 전으로 되돌아왔으며 왜 하필이 면 이들과 마주하게 되었는가.
’10년 전의 모르프 대공……:
스토리에 관심이 없는 백유설조차 도 잘 아는 대사건 중 하나.
모르프 대공의 흑마화.
그리고, 배신.
아무래도…… 그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대에 휘말려 버린 듯싶다.
* * *
식사 자리는 대공이라는 위엄과 맞 지 않게도 꽤 조촐했다. 사실, 조촐 하다기에는 분명 여타의 귀족들보다 대단한 건 틀림없었으나 일전에 보 았던 아돌레비트 왕가의 식사보다는 훨씬 그 규모가 작았으니까.
하기야 아버지와 딸, 단둘이 하는
식사가 매일 대단할 필요도 없겠지.
평상시에는 식사를 개인 집무실에 서 간단하게 떼운다고 하니 오히려 오늘이 특별히 만찬일 수도 있겠다.
“냠.”
“우리 공주님, 또 입가에 잔뜩 묻 히고 먹는구나.”
“공주님이라고 하지 마아!”
에이젤은 공주님이라는 단어가 창 피했는지 그런 호칭을 들을 때마다 내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예 전엔 좋아했는데…….”
아이작은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가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에이젤의 뺨에 묻은 하브리뮤 소스를 닦아주 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게 지구의 트러플 버섯과 비슷한 하브리뮤 버 섯으로 만든 소스라고 했던가.
그 향이 아주 강렬하여, 먹는 모습 을 구경만 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미 쳐 버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만찬에 혹해서 가면을 벗어 서는 안 된다.
“자네는 정말 먹지 않는가?”
“예. 사정이 있어서요.”
“흐음, 무슨 사정이길래 음식을 먹 지 않는가? 혹여, 가면을 벗으면 안
되는 사정이라도 있는가?”
“예. 맞습니다.”
눈치가 있으면 어린애라도 알아차 릴 정도로 뻔한 상황. 굳이 거짓말 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좋다. 가면을 억지로 벗 기지는 않겠네. 딸의 은인에게 위협 을 할 생각은 없거든. 다만…… 그 래도 자네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만, 혹시 가능한 부 분 내에서 이야기해 줄 수 있겠나?”
모르프란 숲은 아무나 들어설 수 없도록 특별한 마법 방벽으로 철저 하게 틀어막혀 있다고 한다.
그 안에 어떤 대단한 보물이 숨겨 져 있는 건 아니고, 흉악한 마수가 잠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지금은 봉인된 지 100년도 더 지 나서 잠잠했고, 그 탓에 경계가 느 슨해져서 에이젤이 숲으로 진입하는 와중에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 한다.
외부에서의 침입이 아닌 저택 내부 에서의 침입이었으니 더욱 그럴 만 했다. 물론 경비를 서던 이들은 에 이젤의 사고로 인해 지금쯤 직장을 잃었겠지만.
“음…… 제 이야기 말입니까.”
“그래.”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까.
미래에서 왔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하면 안 되고, 그렇다고 아직 학생 이라고 말하자니 뭔가 꺼림칙하다.
“그냥…… 정처없이 떠도는 모험가 입니다.”
가장 흔하고, 가장 위장하기 쉽고, 가장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직업.
모험가.
다른 말로 거지.
또는 백수. 또는 홈리스.
“모험가라. 낭만 넘치는 직업이군.”
“감사합니다.”
“딸아이에게 듣자하니, 샤프 「 를 단칼에 베어버렸다고 했던가.
,,예.,,
“검이라…… 검을 쓰는 용병들은 많이 봤지만, 그런 묘기는 샤프 울 프를 단칼에 사냥하는 이는 내 일평 생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네.”
당연한 이야기다.
상식이기도 하고.
검으로는 마나를 두른 괴수의 피부 를 제대로 베어낼 수 없다. 나도 마 력누설지체 덕분에 가능할 뿐.
“좋은 마법검을 쓴다고 해도 기껏 해야 2리스크에서 협동한다면 3리 스크…… 통상적으로 길거리 용병들 이 사냥할 수 있는 수준이지.”
“그렇죠.”
“하지만 자네가 사냥한 괴수는 5리 스크의 위협적인 괴수였어. 베테랑 마법 전사들도 신중에 신중을 더해 서 사냥해야만 하지.”
아, 질문의 의도를 알겠다.
“거기에 더해서…… 자네는 뭔가 이상해. 통상적인 마법사들은 체내 의 마나를 아주 조금씩이나마 홀려 보내게 마련. 나는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지.”
그런 것도 있었나. 아이작 모르프 에 대한 기록은 직박구리 안경에도 거의 없어서 몰랐다.
“하지만, 자네에게는 마나가 전혀 느 껴지지 않아. 마치… 세상과 동떨어진 존재 같아. 심지어 자네를 둘러싸고 있는 그 신비로운 기운, 그건 대체 뭔 지 정체를 알 수도 없군.”
어느덧 아이작 모르프는 포크와 나이 프를 내려놓고서 깍지 낀 손에 턱을 괸 채 나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자네, 대체 정체가 뭔가?”
여기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똑같이 답하는 수밖에.
“…말씀드렸다시피, 모험가입니다.”
“그렇군. 그리 알겠네.”
그는 스스로 생각을 정리한 둣 고 개를 끄덕이더니, 에이젤을 향해 부 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주님, 식사 끝났니?”
“웅. 방에 갈래.”
“페실라 시녀를 부르도록.”
에이젤은 내 눈치를 힐끗 보더니 페실라 시녀와 함께 식당을 빠져나 갔다. 돌아가는 와중에도 나를 자꾸 만 쳐다보는 게 뭔가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자, 그럼 딸아이가 돌아갔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부탁 하나만 하도록 하지.”
아이작 모르프의 부탁이라. 나 또 한 분위기의 무게를 감지하고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이 말을 해야겠군.”
짧은 정적 후, 들려오는 말.
“나는 오래 살지 못할 걸세.”
“……예?”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대사가 튀어 나와 버려서, 순간 말문을 잃었다.
“아니, 그게 무슨……
“이유는 말할 수 없다는 점, 양해 해주게. 하지만, 이 부탁은 진심일 세. 나는 내 딸아이를 오래 지키지 못해. 오히려 내 곁에 두면, 그 아 이를 해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때 가 되면…….”
아이작 모르프 대공은 내 눈을 똑 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 딸을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지켜줄 수 있겠나? 스스로 자립할 때까지… 아니, 아니야. 목숨만 붙어 있어도 좋으니까……
그의 부탁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
고 황당했으며 뜬금없었지만, 나는 별다른 대꾸도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잠자코 그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정체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 는 생판 외지인인 자네에게 왜 이런 부탁을 하는지 아는가?”
잠시 생각했으나, 모르겠다.
“…내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거지.”
아무래도 아이작 모르프는 자신이 처하게 될 운명을 미리부터 알고 있 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렇게 대비를 하려는 것이겠지. 그 슬픈 눈동자를 감히 바라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
였다.
“나는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는 것 으로 그 심성을 파악할 수 있어. 자 네는 엉뚱하고 제멋대로지만, 나쁜 심성은 아니야. 오히려…… 정의롭 다고 볼 수 있겠지.”
아이작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오래전 하늘로 돌아간 아 내와 자신의 하나뿐인 딸과 함께 찍 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그래서, 부탁하는 걸세. 거절한다 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하겠습니다.”
최대한 미래의 인연과는 엮이지 않 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일부러 이런 대사건이 벌어 지는 시간대에 떨어져서 하필이면 에이젤과 아이작 모르프를 만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나는 우연과 운명 둘 다 믿지 않 는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마저 거 절할 용기가 있다면 그건 피도 눈물 도 없는 사람일 것이다.
“……고맙네. 정말로.”
아이작은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액자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러면 서 주문을 외우듯 작은 목소리로 무 어라 중얼거린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어쩔 수 없 어. 하지만…… 대의를 위한다 해도, 내 딸을 희생시킬 수는 없지……
그건 내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내가 아닌, 아이작 모르프.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그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 다. 무엇이 그리 두려웠으면 아이작
모르프씩이나 되는 사람이 저렇게 덜덜 떨며 자기세뇌를 하는 것일까.
차라리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면 모 를까,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 었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