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lashing Genius At The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271)
마법학교 앞점멸 천재가 되었다 271
51. 기억(5)
붉은색의 타원형 결계가 아이작 모 르프의 육신을 중심으로 저 하늘 끝 까지 닿을 만큼 드넓게 펼쳐졌다. 홍비연은 화령진을 구축하면서, 동 시에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기억의 나침반을 발동하였다.
마나는 새어 나가지 않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듀얼 캐스팅’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의 마법을 시전하는 것은 4클래스의 마법사에 게 아직 벅찰 수도 있으나, 그녀의 집중력은 남다르다.
6클래스 이상의 수준 높은 마법사 가 아니고서야 사용 불가능한 ‘초현 상공명’을 3클래스 시절의 에이젤이 사용했던 것을 생각하면, 홍비연이 듀얼 캐스팅을 벌써 사용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이상하지는 않다.
그녀들의 재능과 노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끝없이 뻗어 나가고 있었 으니까.
우우우웅!!
시간의 방향을 가리키는 기억의 나 침반이 회전한다.
1년 4개월 전, 9년 7개월 전, 71년 전, 34년 전, 3년 6개월 전.
가리키는 시간이 뒤죽박죽이다.
그녀가 나침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탓.
아마도 저 시간들은 모두 이 장소 의 기억에 새겨질 정도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들이 확실할 터.
‘정확한 시간을 찾아야 해.’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냉정하다.
고작 4클래스의 마법사가 쉽사리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이 나침반은 쉬운 아티팩트가 아니다.
자칫 너무나도 머나먼 과거의 기억 을 훑었다가는 다시 되돌아올 수 없 을 수도 있다.
‘괜찮아. 내 계산은 정확해.’
이때를 대비해서 철저하게 준비해 왔다. 그녀는 지팡이에서 살짝 손을 떼어, 화령진을 자유롭게 풀어헤쳤 다.
구축이 완벽히 끝나 더 이상 그녀 가 간섭하지 않아도 정화의식이 끝 날 때까지 화령진은 홍비연의 마나 로 스스로 유지될 터.
이제부터 그녀는, 과거의 시간을 돌아볼 것이다.
흐읍!’
차르르륵!!
마나를 힘껏 불어넣자 나침반의 회 전이 점점 더 거칠어スラ, 마침내 그 속도가 임계점을 넘어갔을 때.
……번쩍!
순간, 눈앞에 새하얀 빛이 번쩍였
고,
-아.
다시 눈을 뜨니.
바람이 불어왔다.
싸늘하고 건조한, 가을바람.
그러나 현재의 바람과는 다르다.
홍비연은 천천히 고개를 내려, 바 닥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있었던 대제단은 어디로 가고 사라졌는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제대로 왔어.’
지체할 시간은 없다. 과거의 기억 을 훑어볼 수 있는 시간은 굉장히
짧았으니까.
화령진의 구축과 금제의 회피를 위 해 상당한 마나와 심력을 소모한 지 금으로서는 고작해야 1시간 정도 머 무는 것이 한계일 것이다.
‘서둘러야 해.’
기억을 훑는 과정에서는 발을 움직 이는 것으로 이동할 수 없다. 어쨌 든 과거의 ‘기억,을 훑는 과정이었 으니, 다른 장소를 살펴보기 위해서 는 좌표의 조정이 필요했다.
퉁!
인접한 장소로 약간의 마나를 소모 하여 이동하니, 전진 기지로 추정되
는 막사가 나타났다.
-여긴…… 모르프 마법부대의 지 휘 막사?
고개를 돌려 조금 떨어진 장소를 살피니, 과연 아돌레비트의 거점과 마탑과 마법학회의 텐트 역시도 한 눈에 들어왔다.
‘그런가.’
당시의 마법회는 흑마인 아이작 모 르프의 퇴치를 위해 연합을 했다고 하던가.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전하. 부디 염려치 마시고 휴식하 시지요.”
“되었다. 마지막 정비를 내 두 눈 으로 봐야겠군. 내일 당장 전투가 치러질 텐데, 마음을 놓고 있을 수 는 없지.”
-어……?
분명 이 장소에 모인 병력은 아이 작 모르프의 퇴치를 위한 것이었을 텐데, 어째서인지 정작 그 퇴치 대 상이 당당히 연합군의 사이를 거닐 고 있었다.
-도대체…….
“전하.”
“……왜 그러나.”
“수심이 가득해 보이십니다.”
“그래. 백요호 화령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것도 걱정이고, 굳이 아돌레비 트의 공주가 저 마수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여전히 의문이다.”
“허허. 제 생각에는…….”
아이작은 부관과 대화를 나누며 저 멀리 지휘 막사로 모습을 감추었고, 홍비연은 그 자리에 남아 그들의 대 화를 곱씹었다.
‘백요호 화령……?’
그래, 그러고 보니 백요호 화령을
깨워서 사냥하는 것이 홍시화의 진짜 목적이라고 했던가.
‘그 여자는, 어디에 있지?’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몇십 분.
홍비연은 재빠르게 막사와 막사 사 이를 좌표이동으로 돌아다녔고, 금 세 원하던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증오스러운 둘째 언니.
홍시화 공주의 막사.
“다 되었습니다.”
상의를 반쯤 탈의한 홍시화는 붉은 색의 불길한 액체를 주사 맞고 있었 는데, 마력안을 개방하여 성분 분석
은 할 수 없었으나 척 봐도 심상치 않은 용액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래.”
온몸에 식은땀이 흠뻑 젖어 있는 홍시화는 누가 보아도 쇄약해 보였 다.
언제나 항상 재수 없는 웃음을 흘 리던 그녀의 약한 모습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홍비연으로서도 상 당히 낯설고, 또 당황스러웠다.
“아직은 고통이 아물지 않을 것입 니다.”
“……아픈 건 상관없어. 죽지만 않 으면 그만이야.”
그러더니, 그런 말을 내뱉는다.
“나는, 언니처럼 되고 싶지 않아.”
순식간에 홍비연의 표정이 굳었다. 저 역겨운 얼굴로 첫째 언니 홍에린 을 언급하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역린이나 다름없었기에.
하지만 지금의 홍비연은 어린아이 가 아니다. 언제까지고 홍시화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다짜고짜 열을 을 리는 시기는 지났다.
-언니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첫째 언니 흥에린은 불꽃의 축복을 너무나도 강하게 타고나는 바람에, 오히려 저주가 되어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산화되어 그 가엾은 목숨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홍시화와 흥비연 또한 머지않아 그 렇게 될 운명일 터.
“홍시화 공주님. 정말로 백요호 화 령에게서 ‘아돌레비트 낙인의 저주 를 해소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이라 생각하십니까.”
이윽고 들려오는 의사의 말에, 홍 비연은 그제야 그녀가 이런 무모한 짓을 저지른 이유를 깨달았다.
-저주를 해제할 가능성을 찾기 위해 백요호 화령을 쓰러뜨리겠다?
그래. 거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했어.
일전에 홍시화의 일기를 몰래 훔 쳐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홍시화는 실패했고, 아이작 모르 프는 타락하게 될 것이라고.
문득 그녀는 아까 전 아이작의 수 심에 가득 찬 얼굴을 떠올라 즉시 좌표를 옮겼다.
도착한 곳은 아이작의 개인 막사.
“나는 모르겠군……. 지금 당장 가 문의 안위를 위해 백요호 화령의 봉 인을 푸는 것이 정말로 맞는지.”
“전하. 백요호의 토벌을 완벽히 해
낼 수 있으니, 염려치 마십시오. 홍 시화 공주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오 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ス]. 어린 나이에 대공가를 협 박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 온 배 짱만 보더라도, 확실히 뒤가 구린 아이야. 여기서 5년, 아니, 10년만 지나도…… 더 무서운 마법사가 되 어 있겠지.”
협박.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홍시화 본인도 일기 장에 ‘모르프 대공을 협박’했다고 하였던가.
-이 뒤로…… 어떻게 되는 거지?
백요호 화령의 봉인해제는 난생 처 음 듣는 이야기. 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에 대해, 아는 바가 전 혀 없다.
-이럴 시간이 없어.
여기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대 부분 알아냈다.
흥비연은 서둘러 기억의 나침반을 조작하여 엿볼 수 있는 역사를 12 시간 뒤로 조정하였고.
……투쿵!
-윽?!
직후, 전신을 강타하는 진동에 홍 비연은 하마터면 중심을 잃을 뻔했 다. 과거를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 기에 육신이 존재하지도 않았거늘 넘어질 뻔했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동.
….
고개를 들어 올린 홍비연은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온통 새하얗게 물들어 있는 세상.
무너져내린 전사들.
무릎 꿇은 왕가와 대공가의 군대.
-오만하구나, 아돌레비트의 후손이
여…….
그것은 산보다도 높았고, 절벽보다 도 가파랐으며, 하늘보다도 푸르렀 고, 구름보다도 가벼웠다.
문득 홍비연은 ‘그 존재’를 보고서 경외감을 느끼고 말았다.
불꽃의 극의를 깨우친 スト.
화염의 끝을 바라본 スト.
그것의 가슴은 태양보다도 뜨겁게 타올랐고, 세상의 모든 것을 지워버 리겠다는 듯 무엇보다도 순수한 하 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홍비 연은 그것을 존경하고 말았다.
저렇게 타오르고 싶다.
저런 새하얀 불꽃을 몸에 휘감고 싶다.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릴지라 도, 불꽃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면
-……윽!
퍼뜩, 멀미를 느낀 홍비연은 재빠 르게 고개를 휘저어 정신을 차렸다.
-이럴 수가…….
뒤늦게 상황을 깨닫는다.
8클래스의 마법사들마저 모두 쓰러 졌고, 기사단은 전멸.
남은 병력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그마저도 전투불능.
절망적이다.
-내가 다시 눈을 떴으니, ‘약속’에 따라 세상을 모두 나의 불꽃으로 뒤 덮을 것이다. 그곳에 앉아서 깨닫거 라, 아돌레비트여.
백요호 화령은 의문 모를 말을 내 뱉고서 우아한 발걸음을 옮겼다.
저 한 걸음, 한 걸음이 온 세상은 새하얀 불길에 휩싸여 백지로 되돌 아가겠지.
기억을 엿보고 있을 뿐인 홍비연조 차 그 위압에 압도되어 꼼짝도 못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것의 앞 을 가로막았다.
아이작 모르프.
“너는,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
전신의 절반이 불꽃에 녹아내렸음 에도 불구하고, 그는 쓰러지지 않았 다. 하지만 저런 신체로 도대체 무 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모르프의 후손이 아니다.”
아이작 모르프는 정체불명의 흑수 정을 꺼내 들고서, 그리 선언했다.
“오늘부로…… 흑마인이 되겠다.”
참으로 치열한 싸움이었다.
아니, 그걸 싸움이라고 부르는 게
옳은 말일까. 재앙과 재앙이 맞부딪 치는 광경은 과연 인간의 언어로 어 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얼음과 불꽃이 세상을 뒤덮었으며, 이 땅의 모든 생명이 바스라져 사라 지고 말았다.
그 전투의 끝에.
결국, 서 있는 자는 아이작 모르프 였다.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에게는 약간의 이성이 남아 있는 듯, 눈빛이 슬프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이대로 가만히 둔다 면, 곧이어 이성을 잃어버린 뒤 틀
림없이 숲을 빠져나가 도시를 쑥대 밭으로 만들어버릴 터.
– 그런 기록은…… 역사에 없어.
하지만 마법사 부대는 전멸.
아이작 모르프가 스스로를 멈춘다 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모를 까, 더 이상 그를 막아낼 자는 아 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아니. 아니야. 한 명 있었어.’
홍시화의 일기를 필사적으로 떠 올렸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백요호 화령
과 폭주한 아이작 모르프 대공 모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가 서 있었다.] [특이하고, 신비로운 사내였다.] [그자는 가면을 썼고, 은색빛의 지 팡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그것을 떠올린 순간, 갑작스레 허 공에서 찬란한 황금색 빛이 뿜어 져 나오며 거대한 수레바퀴가 나 타나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 뭐야, 저게……?
난생 처음 보는 소환물에 홍비연은 눈을 크게 뜨고서 그것을 바라보다 가, 뒤늦게 발견하고야 말았다.
수레바퀴와 함께 나타난 검은 복장 의 사내를.
– 어라?
그런데 복장이, 이상하다.
그는 새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는 데, 옷차림이 이상하리만치 스텔라 의 교복을 닮아 있었다.
그 특유의 문양과 무늬가 없더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단순히 닮았다기에는, 디자인이 너
무나도 똑같았으니까.
그것보다도 더 이상한 점.
분명 저 사내를 오늘 처음 보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인상이 익숙하다.
-잠깐, 정체불명의 사내가 설마…!
휘이이이!!!
마력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아이작은 천천히 고개를 꺾어, 뒤 돌아 사내에게 입을 열었다.
“너는, 백설기로군. 나를…… 막으 러 왔나?”
,,예.,,
깨달았다.
저 익숙한 목소리.
저 익숙한 신체의 윤곽.
저 익숙한 마나의 체향.
-백유설……?
상상 속에서도 단 한시도 잃어버린 적이 없던 백유설만의 특징.
그만이 가지고 있는 그 특징들을 홍비연이 헷갈릴 리는 없었다.
“지금의 나는, 아주 위험한 상태라 네…… 그래도 괜찮겠나?”
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백유설은 아이작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에이젤을 지키기로.”
“……그렇군. 그렇단 말이지.”
도대체 무슨 일일까.
백유설이 왜 10년 전의 과거에 있 는 것이며, 에이젤을 지키겠다는 말 은 또 대체 무슨 소리인가.
-단순한 회귀자가 아니란 거야…?
아이작은 슬픈 눈으로 백유설과 눈 을 마주하여 말했다.
“그렇다면, 부디 나를 막아주게.”
그것을 시작으로 아이작과 백유설
이 충돌하였다.
그건…… 지금까지 홍비연이 알던 백유설이 아니었다.
최소 8클래스, 혹은 그 이상의 압 도적인 능력.
그는 저 재앙과도 같았던 아이작과 동등하게 겨루었고, 마침내는 영원 불멸할 것만 같았던 아이작의 동토 (凍土)를 녹여 버리고 말았다.
신비로운 일이었다.
얼음은 백유설을 해치지 못했다.
마치, 얼음의 가호를 받는 것처럼.
백유설이 심장에 검을 겨누자, 아
이작은 눈을 감았다.
이대로 심장에 검을 꽂아 넣기만 하면 모든 것은 끝난다.
홍비연은 탄식하고 말았다.
에이젤이 무너져내린 파멸의 원인 이, 다름 아닌 백유설의 손에서 직 접 벌어진 일이었다니.
푸욱!
아이작의 힘없는 저항을 무시한 채 백유설은 무심하게도 그의 심장을 거침없이 꿰뚫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도저히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리려는데, 갑작스레 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않은 채 백유
설이 검을 뽑아버렸다.
一어?
어째서 마무리를 짓지 않는가.
두두두두두!!!
사방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흑마력 파장을 감지한 마법사 부대 가 이곳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것.
“0으…”
——I •
그리고 저 멀리서 깨어나는 홍시화 의 모습이 홍비연의 눈동자에 비쳐 보였다.
-어떻게 하려고…….
백유설은 아이작을 향해 말했다.
“역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 말에, 홍비연은 직감했다.
지금 자신이 보고있는 백유설은 역 시나 평범한 방법으로 이곳에 서 있 는 게 아닌, 무언가 특별한 방법으 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기억할 것입니 다. 아이작 모르프가 흑마인이 되어 폭주하였다, 그러나 홍시화 아돌레 비트가 저지하였다.”
“スト네, 대체 무슨 짓…을…….”
백유설은 아이작을 향해 손을 뻗자
황금색의 수레바퀴가 거칠게 회전하 였다.
“그러나 사실…… 당신은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이건, 저와 당신밖에 모르는 사실이겠죠.”
신비로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작의 몸에서 때타지 않은 순수 한 영혼이 빠져나오더니, 그대로 수 레바퀴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던가.
즉, 아이작의 영혼은 아직 죽지 않 은 채 이 세상 어딘가를 여전히 떠 돌고 있다.
일을 마무리지은 백유설은 문득 고
개를 돌렸다. 하필이면, 그곳에 홍비 연이 서 있을 건 또 뭐란 말인가.
우연일까. 아니면 정말로 기억을 엿보고 있을 뿐인 자신의 존재를 감 지하고 있는 것일까.
홍비연은 백유설과 똑바로 눈을 마 주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잔영을 남기고서 모습을 감추었 고, 뒤늦게 마법사 부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이작 모르프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하여.
’10년 전 홍시화 공주 신화’는 완
성된 것이다.
정작 재앙을 일으킨 장본인은 홍시 화였는데. 그것을 물리친 영웅은 아 이작이었는데. 그 영웅의 폭주를 잠 재운 이는 백유설이었는데.
모든 공적을 홍시화가 가로챘다.
-남은 시간은…….
기억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 이제 는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아직 마지막 의문을 밝혀내지 못했 으니까
그녀는 시간을 하루씩, 하루씩 앞
당겼다.
‘아이작 모르프 대공은 죽었소.’
‘그런데 어찌하여 시체에서 저토록 이나 시린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이오? 아직 살아 있는 게 틀림없 소!’
‘멍청한!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죽 었단 말이오! 저 마력은 연구가치가 있소!’
하루가 지나고, 마법사들이 저들끼 리 언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시체의 처분이 불가능하오.’
‘아돌레비트의 불꽃이라면 쉽게 태 워 버릴 수 있을 터!’
‘여왕 폐하께서 오신다면……!,
하루가 지나, 여왕 홍세류가 찾아 와 태우기 전까지 아이작의 시신이 임시방편으로 봉인되었다.
‘백요호는 죽음을 맞이하였고, 아 이작 대공은 봉인되었소.’
‘그런데도 하얀 불꽃과 푸른 얼음
이 아직까지도 남아서 숲을 어지럽 히고 있으니……
‘숲의 마력을 복원해야만 하오.’
또다시 하루가 지나, 숲이 정리되 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의 기억을 빠르 게 넘기고 넘기니 마침내 원하는 장 면을 볼 수 있었다.
“하늘 아래 가장 밝은 불꽃을 뵙습 니다!”
“여왕 폐하!”
붉은 제목을 입은 마법 기사단이
일제이 무릎을 꿇고서, 아돌레비트 의 위대한 여왕을 맞이하였다.
백색의 말을 타고서 등장한 홍세류 여왕은 난장판이 된 모르프란 숲을 느긋한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러고선 말에서 우아하게 걸어 내 리더니.
짜악-!!
다짜고짜, 홍시화의 뺨을 후렸다.
공주의 뺨이 크게 돌아가며 몸이 휘청였으나 그녀는 넘어지지 않고서 다시 고개를 들어 여왕을 마주하였 다.
“오셨습니까, 폐하.”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 고 있느냐.”
,,예.,,
“이야기가 빠르구나. 홍시화 공주 를 당장 포박하여 마력을 봉쇄한 뒤 지하 감옥에 처넣도록. 당장 너를 죽이지 않는 것은, 왕으로서 마지막 자비를 베푸는 것임을 잘 알도록 해 라.”
홍세류는 과연 흥세류답게, 즉결 처분에 대해 망설임 없이 과감했다.
여기서 둘째 공주 홍시화를 끌어내 렸다가는 자신이 증오하는 홍비연에
게 왕위가 돌아간다는 것은 잘 알지 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아 마땅하 다. 이로 인해 홍비연이 여왕이 된 다면 그 또한 그녀의 운명.
“그렇다면, 돌아가기 전에 한 말씀 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자신의 처분이 결정되었음에도 홍 시화는 감정이 죽어버린 눈으로 여 왕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였다.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가 보군. 그 래. 말하거라.”
“제 마력을 봉쇄하여도 좋습니다. 제 목을 이 자리에서 끊어도 좋습니
다. 하지만, 한 가지 제 부탁을 꼭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건방지군.”
“아이작 모르프… 그의 시신을 태 우지 말고, 온전히 보전하여 주십시 오.”
“뭐라?”
홍세류의 눈썹이 꿈틀, 떨スト.
우지끈! 화르륵!
갑작스레 대지가 쩌적 갈라지며, 인근의 나무가 모조리 불타버리기 시작했다.
그저 홍세류의 눈짓 한 번에 마나
가 발산되며 벌어진 일.
홍시화의 옷자락 역시 불길에 활활 타오르며 벗겨지기 시작했으나 그녀 는 고통에도 아랑곳 않고 말했다.
“그는 모르프의 핏줄을 가장 진하 게 타고났습니다.”
“그게 어쨌다는 말이냐.”
“그 역시도 아돌레비트와 마찬가지 로, ‘얼음의 저주’를 타고난 모르프 가문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저희와 는 달리 아주 오래 전, 그 저주를 극복하였지요.”
저주. 축복.
민감한 단어가 나오자 홍세류의 마 력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는 죽어서도 온전히 죽지 못한 채, 시신에서 끊임없이 무한한 냉기가 퍼져 나오고 있습니 다.”
“본론을 말하라.”
“그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지금 시신을 처분했다가는, 틀림없이 후 회할 것입니다.”
“허, 혹여 흑마인으로 부활하면 어 쩌려고?”
“화령진으로 봉인하십시오. 그리하 면 아이작의 시신은 보존되어 저희
는 영구한기(永久寒氣)를 손에 넣을 수 있고, 그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손에 넣게 됩니다.”
화령진은 꽤 옳은 판단인 것으로 보였다. 혹여나 아이작 모르프가 흑 마인으로서 부활하더라도, 즉각 대 응이 가능한 유일한 마법이었으니.
여왕 홍세류는 한참을 고민하였고, 결론을 내렸다.
“네 그릇된 판단을 또다시 내가 믿 으라는 것이냐? 당장 끌고 나가라.”
철거덕!
기사들이 홍세류의 목과 양팔, 양
발목에 육중한 마력 수갑을 채운 뒤 끌고 나갔으나 그녀는 끝까지 여왕 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였다.
“신뢰도가 없는 제 말을 믿지 않으 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제 평생의 염원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우리는, 우리의 후손은… 영 원토록 그 끔찍한 저주를 끊임없이 물려받으며 불길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폐하. 당신은 정녕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조용히 하지 못하겠습니까!”
참다 못한 기사 중 한 명이 홍시 화의 목에 채워진 수갑을 거칠게 끌 어당겨서 말을 끊으려 했으나, 그녀 는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부탁을 꼭 홍 세류가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아돌레비트의 후손으로 태어난다 는 이유만으로 저주를 타고나, 불에 타오르는 고통 속에서 단명할 수밖 에 없는 이 지긋지긋한 운명을 내 손을 더럽히는 것으로 끊어낼 수만 있다면…… 나는 지옥에 떨어져도 좋고, 악마가 되어도 좋습니다.”
퍽!
홍시화는 결국 마지막 말을 남긴 채 기사의 손에 기절하여 실려 갔고.
그 자리에 흘로 남게 된 홍세류는 말없이 머나먼 곳을 응시하였다.
“날씨가 참 더럽구나…….”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