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235
243화. 천재 기타리스트의 탄생을 축하하며 (2)
꿈뻑. 꿈뻑.
꿈뻑꿈뻑.
“… 아싸.”
암흑이 내린 무대의 뒤편.
매우 많이 떨리는, 소이의 목소리.
그리고 곧장 이어지는,
호다다다닥-!
매우 빠른 걸음 소리.
“….”
아니 보통 말이랑 말 사이에는 딜레이라는 게 있지 않나?
특히, 권유를 받았을 때는 딜레이가 커지는 게 보통이잖아.
사람이 슈퍼컴퓨터도 아니고. 처리가 바로바로 될 수가 없으니까.
“빠르구만.”
하지만 소이의 대답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고백이란 게 다 빌드업 된 상태에서 쐐기만 박는 거라고는 하는데, 0.1초의 딜레이도 없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
“….”
궁금증이 무럭무럭 머릿속에 피어오르긴 했지만, 지금 당장 쫓아가서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
당장의 궁금증은 궁금증으로만 남겨두기로 했다.
나는 곧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수재입니다.]”
“[마이클입니다.]”
“[샤벨입니다.]”
“[저는 ….]”
혼신의 힘을 다해 결선을 도와주던 프로 세션분들.
나는 그들의 손을 한 사람 한 사람 맞잡았다.
그들의 손은 내 손보다 훨씬 거칠었고, 또 딱딱했다.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악기를 잡았는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이걸로 마지막이군요. 본선이랑은 달리 준비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은 연주를 들려주십시오.]”
“[물론이죠.]”
무대 세팅은 나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모두의 손과 발이 바빴다.
나 또한 곧바로 장비를 모조리 풀고 세팅에 들어갔다.
느긋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을 들여서.
다만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본선보다 할 게 없었으니까.
앰프는 두 개.
기타도 두 개.
중요한 점은 한 번에 기타가 ‘두 개’ 직결된다는 점이다.
베이스냐, 미들이냐, 트레블이냐.
어디를 중심으로 설정해 톤 세팅을 하느냐.
그런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는 원체 하고 있지 않았다.
기타 두 개를 ‘동시에’ 사용하는 데 붙는 부과 효과라고나 할까.
여튼 그랬다.
“….”
“허….”
“와우.”
강렬한 시선이 느껴진다.
조명이 꺼져 있으니 당연히 관객석으로부터 나온 시선은 아니고, 세션 아재들한테서 받는 시선이다.
“[그게 바로 전설의 ….]”
“[전면쌍기타…!]”
영상 올린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생각보다 정보가 엄청 빨리 퍼지네.
“[어떠십니까?]”
“[생각보다 많이 … 정말 많이 조잡하군요!]”
“[영상이 정말 잘 나온 거였네요!]”
“크윽 ….”
“[하지만 뭐랄까 … 조잡함 속에서 힘이 느껴집니다.]”
일순간 이 멋짐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아 슬퍼졌었는데.
아니었다.
그들은 호쾌하게 웃으면서도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었다.
“[설명하기가 어렵긴 한데, 집 배관을 덕테이프로 붙여 놓으면 그저 더러워 보이지만, 우주선에 덕테이프가 붙어 있으면 뭔가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까.]”
“오 ….”
그렇다.
그런 것이다.
테이프가 필연적으로 가져다주는 조잡함.
하지만 그 조잡함으로 인해 더욱 힘을 발하는, 멋짐.
역시 배운 사람들은 다르구나.
나와 같은 눈을 가지고 있구나!
나는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동질감에,
한 번,
쥬와아아아아아아앙-!
개방현을 긁어버렸다.
물론, 한 대만 긁은 게 아니라,
‘두 대’다.
동시에,
“…!”
“[이건 …!]”
모두의 시선이, 다시금 뒤바뀌었다.
“[아니 빨기좌… 영상이랑 다르잖아요!]”
“[제가 지금 뭘 들은 거죠 …?]”
예상이 갔던 반응.
하지만 실제로 들으니 더더욱 기분이 좋은 반응.
“[기타를 그냥 두 개 묶어버리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잖습니까.]”
“[의미 … 가 있어 보였습니다만 …. 허어 … 그렇게 나오시면 할 말이 없어지는군요.]”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이걸 잡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동감입니다….]”
“[괜찮아요. 익숙하니까.]”
익숙하다.
이 조합은 나도 태어나서 처음 도전해 보는 거지만, 하나씩만 따져 본다면 익숙하다.
기타 갖다가 뻘짓을 얼마나 해왔는 줄 아는가?
‘에이, 시간만 날렸네.’라는 상황을 몇 번이나 겪은 줄 아는가?
다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해왔던 짓들은 결코 뻘짓이 아니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먼 미래에는 한 번쯤은 도움이 될 만한.
그런 행위였다.
“[못 참겠습니다. 바로 시작 사인 보낼까요?]”
“[아, 잠깐만요.]”
톤세팅은 끝났다.
다만 준비된 게 아직…
아, 이제 왔네.
“[빨기좌!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화이팅!]”
스톤 스토어의 런던 지점장, 잭 아재였다.
그는 가져온 물건을 재빨리 내려놓고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
“[….]”
그리고 모든 것을 지켜본 세션들은, 나에게 한 가지 의문을 던졌다.
아니,
아마도.
던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대체 … 왜 그러는 겁니까?]”
“[그곳에 간지가 있으니까.]”
아주 간결한 즉답이었다.
***
다운 엔터테인먼트 회의실에는 정말 요상하게도 불이 켜져 있었다.
회의실에 불 켜지는 게 뭐가 이상하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잖은가.
오후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은 좀 심하지 않은가.
그렇다.
이상했다.
그 공간은 지금, 아주 이상했다.
회의실에 모인 고위 실무자, 임원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스캔들이 터져서?
물론 초대형 스캔들 같은 경우에는 11시에 회의가 열리는 것도, 표정이 굳는 것도 납득이 가겠지만, 정작 분위기는 그리 무겁지 않았다.
그래,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마치 로또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돈 찾으러 은행에 갈 때와 비슷하다고 할까.
분명 좋은 일이 앞으로 펼쳐질 것임에도, 혹시 모를 사태가 걱정되는, 그런 느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걱정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느낌.
낮게 깔린 분위기 속. 가장 상석, 사장의 입이 열렸다.
“늦게 불러내어 미안합니다.”
그리고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바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사, 사장님!”
갑작스런 상황에 허둥거리는 사람도,
“….”
별 반응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차이라고 한다며 임원과 실무자의 차이.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의외로, 실무자였다.
“오늘, 우리 회사의 명운이 결정됩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임원들의 행동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 이 부장.”
사장의 부름에 부스스한 머리의 중년 사내가 보고서를 들고 일어났다.
“이미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 회사에 소속된 아티스트 중에 빨기ㅈ… 김수재 씨만큼 이렇게 빨리 성과를 내신 분은 없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대단한 아티스트입니다.”
소속된 뮤지션이 잘 된다.
잘 되면 회사 수익이 잘 난다.
주가도 오른다.
엔터 회사에게 있어서, 그것보다 중요하고 또 좋은 일은 없었다.
다만,
“저희가 수재씨를 안 데려왔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입니다.”
그냥 잘 되는 게 아니라면?
“… 빨기좌 영입은 분명히 올해 최고의 성적이지요.”
“예. 맞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문제라뇨?”
“빨기좌와의 계약 기간은 짧습니다.”
“….”
“짧아요.”
잘 된다는 수준을 넘어, 히트한다는 수준을 넘어, 무언가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면.
‘패러다임’ 자체를 뒤흔드는 인물이 태어나 버린다면.
그때는 대체 회사 차원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상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마, 보통은 계획조차도 없을 것이다.
“빨기좌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냥 유명 기타리스트 선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시장 자체를 바꿀 겁니다. 전에도 같은 말씀을 여러 번 올렸습니다만 … 이젠 예상이 아니라 확정입니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음악 시장에 격동이 일어날 것이기에.
그리고 그 변동이, 어떤 규모일지 미리 파악하고, 손을 써두기 위해.
“곧 빨기좌의 순번입니다.”
……침묵은 이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빔프로젝터가 비추는 화면에 내리꽂혔다.
동시에,
“아 ….”
자그마한 탄성이,
‘실망’이라는 감정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탄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허….”
그것은 가장 상석이라 할지 어도, 가장 엉덩이가 무거운 직책의 사내라 할지 어도 예외가 없었다.
“[… 그냥 돈을 많이 주면 어떨까요? 수익 비율도 저희가 아슬아슬하게 손해 보기 직전까지 맞추고 ….]”
연주가 미처 끝나기도 전, 이곳에 모인 이들 중에 가장 말단 직원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
다만,
그 누구도,
마땅히 반박을, 대안을 내놓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말.
“[… 그럽시다.]”
사장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아니, 이걸 허락이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직관적으로 ‘애걸’이라는 단어가 더욱 어울리지 않을까.
화사에 남아달라고.
떠나가지 말라고.
다만 입에 담는 자는 없었다.
그저, 가만히 스크린을 보며,
키이잉-!
들려오는, 말도 안 되는 기타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반드시 다가올 커다란 흐름에 대비해 몸을 움츠릴 뿐이었다.
***
W-legc는, 그야말로 ‘락’이라는 장르가 조금이라도 침투한 모든 나라에게 주목을 받았다.
‘일렉기타리스트’만을 위한 세계 첫 대회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솔직히 그건 지금에 와서는 그냥 그렇고.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주 간결한 이유가.
“… [졸라 재밌군.]”
대회든 공연이든 뭐든 간에.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재미 아니던가?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에 땀이 흐르고, 그러니 자연스레 열광하게 되고.
뭐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서로 날카로운 실력을 뽐내는 대회도 나름 즐기는 맛이 있겠지만, 역시 주목을 끌기에는 이런 원초적인 재미가 최고다.
그러므로,
일본의 최대 방송국이 움직이는 것도, 그 방송국의 음악 프로 14년 차 짬밥의 PD가 방문하는 것도,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와아아아아-!
페데리카 모레티의 연주가 끝났다.
아주 좋은 연주였다.
누가 들어도 만족스러울 만한 연주였다.
하지만 지금 나카모토 타로가 들떠 있는 이유는, 페데리카 모레티 탓이 아니었다.
이 대회의 결선에 오른 유일한 일본인, 안도 사토시 때문.
3번 순서였던 그는, 현재 일본 내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일본의 천재 기타리스트, w-legc 결선의 유일한 일본 진출자, 기타로 마법을 부리는 자 등등.
대중음악 관련 잡지나 관련 매체에서는 앞다투어 그의 별명을 붙이기 바빴고,
지금 오늘.
또 하나의 별명이 탄생할 예정인 듯했다.
“[… 정말 대단했어.]”
안도 사토시의 실력은, 본선과는 정말 딴판일 정도로 비약적으로 상승해 있었다.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라는 의심이 드는 건 당연지사.
라이브임에도 마치 ‘녹음본’을 틀어놓은 것처럼 깔끔하고, 자연스러웠다.
평소 대형 무대에서 라이브 세션을 맡는 인재이기는 했지만, 지금의 연주는 라이브 세션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건 그야말로 일본의 신세대 기타리스트의 탄생을 알리는 무대 그 자체였다.
“[… 1등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니야.]”
빨기좌에게 밀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들어서는, 모르겠다.
정보통에 따르면 빨기좌는 오늘 딱히 대단한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모양이니까.
정신이 나갈 것 같은 100기타 따위는 없으니까.
상식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100기타가 결선에 오는 게 맞지 않나 싶었지만, 뭐 어찌 됐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 대회에서 일본인이 어떻게 활약하느냐였다.
그러므로 나카모토는 지켜볼 준비만 했다.
다 끝나고, 일본의 신세대 기타리스트의 탄생을 축하하고, 그 어떤 방송국보다 빨리 안도와 접촉할 준비를 했다.
… 그럴 예정이었다.
무대의 불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새하얀 이를 드러낸 그가, 괴상하게 만들어진 쌍기타를 들고,
열두 개의 줄을, 튕기기 전까지는.
“…어?”
의문
태어나서 느껴본 적 없는, 의문의 연쇄 폭발.
대체 … 대체 저것을 보고서 어떤 반응을 내보여야 할까.
아직 사용할 어휘는 많이 남았다만… 분명히 남았다만!
훅-.
의지가 사라진 것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체념’ 비스무리한 감정이 올라온 것도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카모토는 더는 혼잣말을 중얼거리지 않았다.
쓰나미가 들려온다.
모든 것을 쓸어버릴,
아주 강렬한 파도가, 어느새인가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의자의 팔걸이를 붙잡고,
손아귀에 힘을 강하게 주어 보아도.
화아아아악-!
열기에,
냉기에,
카리스마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그 누구라도,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게 뭔 …]”
눈을 감았다 뜨니,
그곳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244화. 천재 기타리스트의 탄생을 축하하며 (3) – 완
마지막 순서가 의미하는 바는 아주 크다.
처음이나 중간쯤이면 조금 말아먹어도 다음 순서, 다다음 순서가 있으니 어떻게든 만회할 수 있는데, 마지막에 말아먹으면 정말 답도 없다.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내가 마지막 순번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맡겨진 거란 소리다.
끼릭- 끼릭-.
암전 속에서, 삐걱임이 들려왔다.
스르르륵-.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마치 휠체어를 끄는 듯한 소리.
그리고 또, 쉰 목소리.
“[결국, 내가 만든 곡은 단 한 번도 쓰지 않더군.]”
“….”
“[그럴 줄 알았네.]”
광원 하나 없이 눈앞은 깜깜했다.
다만, 내가 지닌 직감이란 놈이 꽤나 날카로운 탓인지, 만난 적도 없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대충 예상이 갔다.
“[고맙습니다. 이런 대회를 열어 줘서.]”
나는 그리 말했다.
이 사람이 나한테 했던 짓은 잠시 제쳐 두고서, 진심을 담아.
“[… 자넬 맨 마지막에 넣었는데, 부담되지는 않는가?]”
뭐, 나라고 해서 항상 평온하기만 한 건 아니다.
망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가끔은 들기도 한다.
다만, 오늘은.
그런 조금의, 일말의 걱정조차 없었다.
고양감.
성취감.
그리고 또,
이게 끝이 아니라는, 앞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
수만 가지의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 그럴 것 같았네.]”
기타를 잡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아앗-!
조명이 켜졌다.
“….”
“….”
“….”
무수히 내리꽂히는 시선.
본선 때 보다 더욱 비대해진 기대감이 담긴, 엄청난 시선.
잠시 숨이 막혔지만, 그건 정말 ‘아주 잠시’뿐이고.
곧바로 의도하지도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정말.
정말정말, 기분이 좋다.
왜냐고?
“Hi! Everyone!”
– Yhea!!!!!!!!!!!!!!!!!!!!!!!!!!!
나는 원래 관종이었으니까.
관심을 받는 것이 너무나도 좋으니까!
– [네! 드디어 고대하고 또 고대하던, 마지막 무대입니다! 지금 이곳을 찾은 분들 중에,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회자의 외침에 흥분감이 다시금 천장을 뚫을 듯이 올라갔고,
– [마지막 순서! 빨기좌입니다아아악!]
#%#$$%-!
관객들이 제각기 다른 언어로 내뱉는 함성과 웅성거림이, 공기를 강하게 진동시켰다.
“이거지.”
나는 덩그러니 놓여 있는 소통용 무선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오늘도.
아주 다짜고짜.
“[기타 멋있죠?]”
기타 자랑을 갈겨버렸다.
– [멋있어요!!!!]
– [최고예요!!!!!!!!!!!!!!!]
그럼그럼.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역시 관객분들의 안목은 안태식이나 아이작이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나구나.
나는 주저 없이 피크로 줄을 긁었다.
‘두 대’를 동시에.
좌아아아아아앙-!
오오오오-!
역시나 반응은 아주 거셌고,
“…!”
“…!”
‘심사위원’들은 열광하기보다는 분석적인 표정을 떠올렸다.
물론 이것 또한 예상했던 바다.
“[네. 저도 압니다. 보시다시피 멋있고 대단한 기타입니다. 그러니까 이 기타에 어울리는, 대단한 곡을 칠 수밖에 없겠죠!]”
– 예에에에에에에에에엑-!
듣자마자 어? 하며 일반인이 알아볼 만한 곡은 아니다.
딱 잘라 말해 유명하지 않은 곡이다.
다만 지금 나한테 그걸 설명할 의무는 없다.
남은 것은 아주 일방적인,
“[곡이 끝나면, 여러분은 저에게 매달리실 겁니다. 반드시 ‘앵콜’이라 외치실 겁니다.]”
‘선포’뿐.
“[…!]”
“[Down by the Seaside. 시작합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
“….”
오늘 나와 같이 호흡을 맞춰 줄 세션들께 시선을 보낸 뒤,
연주를, 시작했다.
고대하고 또 고대해 왔던,
영국에서의 마지막 연주이자,
앞으로 ‘김수재’라는 인간을 전 세계에 알릴만한 연주를.
챠아앙~!
소리는 강하지 않았다.
곡 또한, 신나는 곡이 아니었다.
그저 감미로울 뿐.
처음 줄을 튕긴 것은 상단의 체리 버스트 레스폴.
009게이지라는, 레스폴치고는 얇은 줄이 걸린 레스폴.
손에 익은 코드 첫 마디를 긁어나간 순간, 조금의 지체도 없이,
시야가, 어슴푸레 푸르게 물들어갔다.
풍경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
솔직히 나는 이 곡이 좋다.
좋아 죽겠다.
근데 또 마냥 편안하지는 않다.
축약하자면 애증인 거겠지.
사랑스럽고,
증오스럽기도 한.
편안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들으면 좋지만,
듣는 순간, ‘이걸 내가 과연 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힘이 빠져 버리던 …
그런 곡.
그러니까.
‘피날레용’으로 이거보다 어울리는 게 있을 수 있을까?
티이앙-!
기타 소리가, 왕왕 울려 퍼진다.
동시에, 관객들의 눈동자 또한 왕눈이처럼 커졌다.
“하하.”
나는 그 모습들이 아주 살짝 웃겼다.
지금부터 내 얘기를 좀 해야겠다.
말로 하면 듣기 귀찮을 테니까, 그저 기타로만.
화아아아악-!
새벽이었다.
해가 올라오기 전 초여름의 새벽.
얼핏 감성적인 풍경이지만, 느껴지는 감각은 전혀 감성적이지 않다.
아침 일찍 깨어나 시원한 바람을 맞는 기분이 아니라 …
밤을 지새우고, 단 한숨도 못 잔 거지 같은 상태라고나 할까.
몸은 찌부러질 것 같은데, 정신은 또 엄청나게 말짱하고, 새벽 공기가 코에 들어가 상쾌하긴 한데, 피로감까지는 씻기지 않는 기분.
딱히 ‘시작’ 같지가 않은 하루의 시작.
한 남자가,
아니,
‘내가’
짙은 남색으로 내려앉은 광활한 자연조명 아래,
텅 비어버린 도로를,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시야는 너무나도 뚜렷해서, 코앞으로 손을 뻗으면 당장에라도 전봇대에 붙은 찌라시가 닿을 것만 같다.
‘… 진짜 오랜만이구만.’
새벽의 풍경이란 것은 생각보다 많이 묘하다.
특히 집에 처박혀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보내다가 나왔을 때는 더더욱.
밤새 뜬 눈으로 보낸 나에게는, 모든 것이 위화감 덩어리였다.
위화감,
다름.
그리고, 절망.
… 원래 삶이란 게 크든 작든 절망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지 않는가?
나중에 돌아보면 별일 아닌 경우도 있지 않는가?
다만 당시의 나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조금 큰 놈.
아니 존나 많이 큰 절망.
그것이 덮쳤을 때였다.
정말로, 진심으로 감당하기 힘든 절망이 덮쳤을 때 사람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는가?
정신이 멍해지고, 시간 감각이 없어진다.
눈물이 나오는 것도 잠시뿐이고, 누군가 머릿속을 젓가락으로 휘젓고 튄 것처럼 강한 비현실감이 생긴다.
그걸 언제 느꼈느냐,
당연하게도 오른손이 다쳤을 때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오른손 치료를 다 받고, 퇴원했을 때였다.
당시의 나는 의사의 말대로 차차 괜찮아질 거라고, 금방 적응할 거라고 믿었다.
물론 기대는 배신당했다.
격렬했던 통증은 강한 전기 흐르는 느낌으로.
또다시 미약한 전기 흐르는 느낌으로 나아졌지만,
그것뿐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더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결국엔…
미쳐버렸다.
퇴원하고 한 달 넘게 병신처럼 살았다.
집에서 나오지 않았고, 기타도 잡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왜 밖으로 나가게 되었느냐.
쌀이 다 떨어졌고, 집에는 수돗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좀 없어 보이긴 해도, 배가 고파서였단 말이다.
조금 떨어진 편의점으로 가는 길.
나는 그 광경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트럭을 몰고 배달을 하는 사람,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 페인트 묻은 옷을 만지작거리며 담배와 커피를 들고 있는 사람.
공기는 참으로 얌전한데, 사람들은 어찌나 부지런한지.
다들 내일을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라고 느꼈다.
그 모습은 당시의 내겐 너무나 눈부셔 보였고.
다시 한번 절망했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티디디디딩-!
연속되는 트레몰로.
얇고 감미로운 트레몰로.
이게 진짜 ‘레스폴’에서 나왔는지 의심이 들 만한, 그런 소리.
실수로 나온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의도한 것이다.
잘 생각해보자.
지미 페이지가 쌍넥 SG를 쓰는 건, 그냥 간지 때문이 아니라 ‘12현’ 넥에 의미가 있어서이다.
12현도 쓰고 싶고 6현도 쓰고 싶어서 쌍넥기타를 쓰는 거다.
근데 이건?
기능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기타 종류가 다른 것도 아니고 비스무리한 6현 레스폴 2개를 붙여 놓은 것뿐이니까.
그러므로,
의미 있게 만들어야 했다.
상단의 기타는 009게이지를 걸고 하프 업 튜닝.
하단의 기타는 012 게이지를 걸고 다운 튜닝.
한쪽은 깔끔하고 더욱 높으며 청량한 소리가,
한쪽은 묵직하고 걸걸하면서도 더욱 중후한 소리가 나도록.
나는 ‘음역대’ 자체를 조작했다.
‘만들었다.’
그렇다.
만든 것이다.
이것은 스톤 스토어의 힘을 빌려서, 스스로 고안해 만든 기타.
나 의외의 인간이, 감히 손대지도 못할 기타.
그래, 이름을 붙여보자면
‘하이레인지 트윈 넥 레스폴’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 [와아아아아! 전묜썅기타!!!!]
근데 지금에 와서 이름 붙여봤자 의미가 없겠네.
젠장할.
나는 눈물을 머금고 눈을 감았다.
다시금 풍경 속에 집중했다.
절망이 내리깔린 곳으로.
터벅- 터벅-
정처없이 걷는다.
삼각김밥을 입에 밀어 넣으며, 추위 탓에 흘러나온 콧물 삼키며 걷는다.
눈물도 아니고 콧물 젖은 밥이라니. 다시 생각해보니 좀 역겹긴 한데.
어차피 짭짤한 건 매한가지기도 하지.
여튼, 자살 결심이라는 게 내 예상이랑은 좀 다르더라.
평소에도 ‘자살하고 싶다’라는 말을 장난삼아 입에 담기는 했었는데, 정작 진심으로 뒤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정신이 팍 깨어나더라.
구체적인 계획 같은 게 수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더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는 거였다.
그래서 호기롭게 어플로 차를 빌렸다.
어떻게 되어 먹었는지 모를 실행력이 나온 이유는 뭐랄까, 논리적으로 나 자신이 납득해 버렸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를 머릿속에서 저울질했고,
후자 쪽이 더 무거웠던 것 같다.
나는 내비를 서해안 쪽으로 찍었다.
사람도 건물도 없는 곳.
이름 없는 작은 해안가를 향해 달렸다.
어플로 빌린 차라 그런지 전 사람이 과자를 몇 개 까먹고 버려놨던데, 그냥 주워 먹었다.
눅눅하고, 달달하고, 짭짤했던 맛.
짭짤한 게 과자의 맛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도.
운전대를 잡은 오른손은 여전히 저릿거렸다.
액셀을 밟아 차에 진동이 더해지면, 더욱 저릿거렸다.
진짜 끝났다고 생각했다.
인생이,
기타가.
차 머리를 돌리는 일은 없었다.
혼자 처량하게 울고 후련해진다든가,
뭔가 엄청 타이밍 좋게 친구 혹은 가족한테 연락이 온다든가.
가던 중에 기연을 맞닥뜨린다든가.
그런 드라마 같은 일도 없었다.
목적지에는 무사히 도착했고,
정말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황량한 땅이 나를 맞아주었다.
죽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다만,
정말 한순간.
한순간의 실수로,
나는, 바다에 뛰어들지 않을 수 있었다.
‘손이 떨려서… 키를 다 돌리지 못했지.’
키를 돌렸는데, 반만 돌려버린 것이다.
또 뭔가 애매한 위치에 붙어있는 라디오 버튼을 눌러버린 것이다.
… 노래가 나오더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레드 제플린의 노래가.
지금 연주하고 이 노래가.
어이가 없었다.
당장 죽으려는 사람을, 운명이란 놈이 작정하고 놀리려는구나 확신이 들 정도로.
다만,
어차피 마지막인데. 노래 한 곡 정도는 괜찮지 싶기도 해서 나는 가만히 그것을 들었다.
구우우웅-!
분위기가 조금 어두워진다.
기타 솔로였다.
나는 있는 힘껏 그때 보았던 그 풍경을 그려내었다.
내가 아는 레드 제플린.
그리고, 내가 아는 지미 페이지의 소리를,
진심을 담아 짚어 내려갔다.
키아아아앙-!
***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근엄했다.
본선에서 기대 이상의 무대를 여러 번 맞닥뜨렸고, 그때마다 턱에 훅이 꽂힌 듯 강렬한 충격을 받았으니, 정신 무장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오늘도 어김없이.
빨기좌가 무대에 오르자, 그들의 주변에 흐르는 공기가 바뀌어 갔다.
불과 수십 초 전의 일이었다.
“[참… 나.]”
넋 나간 목소리.
힘 빠진 중얼거림.
어이없음이 만들어낸 탄성.
굳이 누가 그랬느냐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모두였다.
모두가, 똑같은 반응이었다.
이미 놀랄 대로 놀라서 더 이상 놀랄 것이 없을 터임에도, 또 이렇게 되는구나.
인체란 신비로운 것이구나.
상념에 가까운 생각이었지만, 그럴 수밖에.
“[튜닝이 … 하나도 안 맞네요.]”
“[예.]”
“[…아니, 저게… 되는 겁니까?]”
“[저는 못 하겠는데요.]”
“[저돕니다.]”
“[기타라는 게 … 이런 표현까지 가능한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보컬 곡을 기타로 커버하는 행위는, 결국엔 손이 고생할 수밖에 없다.
보컬 영역의 메인 멜로디만을 후린다면 별 어려움이 없겠지만, 결선에 올라온 이들 중에 그런 단순한 방식을 취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보컬 멜로디를 치다가, 바로 리프를 치고, 또 보컬 멜로디를 치고.
가능하다면 하이브리드 피킹으로 다중음을 내는 건 당연지사.
물론 그럼에도 동시연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는,
티리리링-!
그 한계라는 것을, 용서할 생각이 원체 없는 모양이었다.
보컬 멜로디 라인과 기타 리프가,
동시에
치잉-!
팅-!
연주되고 있었다.
헤머링과 풀링, 태핑으로,
평범과는 정 반대편에 서버린 쌍기타를 통해.
“아아….”
말이 되는가?
상식이란 게 있는데.
아니, 저건 ‘상식’이라는 틀을 깨부숴도 도저히 불가능한 짓인데.
되네.
된다.
되고 있다.
“[빨기좌의 앞에, 정녕 불가능이란 없단 말인가….]”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광경에, 나이 든 사내 여럿은 미처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젠장, 우리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인생이 곧 전설인 기타리스트 또한 마찬가지.
“[… 스티브, 보이나?]”
“[그래, 조.]”
“[머나먼 선배가, 마치 저 소년의 몸에 들어가 있는 것 같군.]”
“[… 카피곡을 연주하랬더니, 아니야. 저건 이미 카피곡이라고 할 수가 없어. 저건 …정말 ‘진짜’ 같아.]”
“[….]”
“[….]”
“[우리가 과연 그를 평가해도 될까?]”
“[… 대답하기 어려워. 정말… 어려워.]”
기타 솔로가 들어왔다.
동시에 소년을 평가하려던 남정네들 모두가, 속으로 결정짓고야 말았다.
지금 귀에 들리는 소리는.
지금 저 모습은.
자신들조차 평가를 내리기에는, 너무나 크고, 거대하다는 것을.
“하….”
김수재.
빨기좌.
지금 이 순간,
그의 이름 앞에,
모두가 평등해졌다.
***
차 안에 스며드는 냉기.
눈가에 차오르는 습기.
곱씹을 수밖에 없는, 가사.
어찌 이렇게 트레몰로가 감미로울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연주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당시 나는 의문이 들었다.
아주 거대한 의문이.
‘이 세상은 … 왜 이렇게 불공평할까. 신이란 놈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의문뿐이랴, 화까지 났다.
탈력감도 몰려왔다.
죽기 직전에 제발 좀 알고 싶었는데.
물론 그래 봤자 해소시킬 재간 따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들었지.’
더 듣기로 했다.
핸드폰 스피커로 듣기에는 맛이 안 살아서, 차량 블루투스에 연결까지 했다.
죽으려 했지만,
죽기 전에 한 번만 더.
다시, 한 번만 더.
반복했었다.
근데,
진짜 웃긴 게.
반복하다 보니, 동이 트더라.
등 뒤에서 해가 올라와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칙칙했던 바다가 제 색을 찾더라.
들려오는 노래는, 마치 눈에 비치는 광경을 묘사하는 것만 같았다.
‘참 대단한 우연이었어.’
그리고 그때.
아주 일 순간이었지만.
나는 다시는 맡을 수 없는 냄새를 맡았다.
바닷바람.
소금 냄새.
눈물이나 콧물처럼 짜디짜지만,
너무나도 비슷한 냄새지만,
그것은 분명 죽음이 아닌, 생명의 냄새였다.
그리고, 삶의 냄새였다.
치잉~
멜로디와 트레몰로가 반복된다.
레드 제플린과 지미 페이지의 곡이, 끝나간다.
다만 나는, 여기서 곡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레드 제플린의 곡을 커버하되, 그것을 변형하지 말란 법은 없잖아?
그래서 나는.
이 곡에, 솔로 하나를 더 넣기로 했다.
마무리 솔로를,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 [… 뭐, 뭐야 저건!]
– 와, 와아아아아아아악-!
당황 가득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아주아주 당연지사.
앰프 뒤.
관객석에서는 절대로 보이지 않을 위치에 놓아둔 물건.
그것은 바로 …!
– [전면 쌍기타가 … 두 대였어!]
‘스트라토캐스터 전면쌍기타.’
나는 그것을 어깨에 더했다.
– [이럴 … 수가.]
– [말도 안 돼….]
말이 왜 안 돼.
돼!!!!!!!!!!!
이게 바로 …
내 궁극의 비기.
‘쌍쌍기타’다아아아아악!
카아아아앙-!
날카롭기 그지없는 고음이,
레스폴에 없던 암이 가져다주는 찌릿한 고음이, 저 멀리까지 울려 퍼진다.
동시에 머릿속의 풍경도, 색채를 더해간다.
뭐, 결국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깔끔하게 죽어버리러 간 바다.
뜬금없게도, 나는 기타가 치고 싶어졌다.
가능하다면 지미 페이지처럼, 기타가 치고 싶었다.
… 존나 욕심쟁이 맞다.
물론 그곳에는 기타가 없었고, 결국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그저 그것뿐인 이야기.
다시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나열하자니 쪽팔리기 그지없는 이야기.
나는 그때부터 진심으로 지미 페이지를 동경했고,
또 사랑했으며,
결국 그와 같이 될 수 없어서 미워하기까지 했다.
물론 지금은 미운 감정 따위는 남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아마 나는, 평생 지미 페이지처럼 될 수 없을 것이다.
‘뭐, 포기는 죽어도 안 했지만.’
…내가 누군가?
포기를 모르는 남자.
집념의 화신이다.
지미 페이지가 될 수는 없더라도 그와 닮는 법을, 그에게 닿는 법을.
나는 이곳에서, 런던에서 기어코 배우고야 말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매끄러운 프렛과 줄을 거침없이 손가락으로 짚어나가는 이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오늘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힐끗,
무대와 멀지 않은 자리.
오늘도 후드를 눌러쓴 그와, 눈을 맞춰본다.
그리고 입만을 뻥긋거려 조용히 말해본다.
‘당신에게 닿았습니다.’
… 흐뭇한 미소가, 아주 잠시, 시야를 스쳤다.
치잉-!
문이 활짝 열린 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레드 제플린 노래가, 반짝이는 해변가에 왕왕 울려 퍼진다.
민폐짓이었지만 주변에는 나무랄 사람이 없었고, 차 안에도 사람이 없었다.
물론 다행히 바닷속에도 없었다.
남자는 허리를 푹 숙인 채, 근처 쓰레기 더미를 서성였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 마침내 고개를 들더니, 어디서 찾아냈는지 모를 장초를 입에 곧장 꼬나문다.
담배에 불이 붙는다.
매캐한 연기.
빠져나가는, 매캐한 잡념.
만족스러운가?
만족스럽지 않다.
그는 인생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남은 인생도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기타를 치기로 했다.
그는 기타를, 자신의 인생보다 사랑했으니까.
나는, 그 진심으로.
기타를 사랑했으니까.
지잉-!
솔로의 끝에는, 곡의 끝이 있었다.
나의 무대가 끝났다.
앉아있는 심사위원은 이미 없었다.
그리고,
무수한 광원이,
– 어… 어…!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음량의 함성이,
나에게 흩뿌려진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귀가 …!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 [1등은 … 당신입니다. 당신 외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회자의 마이크를 뺏어버린 심사위원이 그리 말하자, 이 넓디넓은 공간이 순식간에 혼돈의 도가니로 변모했다.
차분한 자리에서 평가… 는
“뭐야 이게.”
안 될 거 같네.
이미 결전 진출자들이 다 튀어나와 있는데?
관객들이 … 밀려 들어오는데?!
– [진정… 진정하십시오!]
인파에 휩쓸린다.
내가 사람들을 휩쓸었던 것처럼, 사람들도 나를 휩쓴다.
그리고 그사이,
아주 잠시의 텀에,
잊고 있던 것을 한 가지 더 떠올려본다.
‘아 맞다. 상태창.’
내가 처음 회귀했을 때, 분명 그 단어를 입에 담았던 것 같다.
혼란스럽고, 정신이 날아갈 것 같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서.
뭐, 딱히 내가 아니더라도 다들 똑같이 행동했을 거 같긴 한데…
거의 밈화 되어버린 수순이잖아?
여튼, 딱히 기대는 안 했었는데 놀랍게도 뭔가가 뜨더라.
스테이터스가 … 나오더라.
나는 그걸 보자마자 자조 섞인 웃음이 터뜨렸었다.
나의 능력을 신인지 뭔지가 딱 정리해서 딱 눈앞에 들이밀었으니, 웃을 수밖에.
기타연주력 : B
그것이 20년 가까이 노력해온 결과였다.
대충 ‘만약 상태창이 생기면 B급이라고 뜨겠지’라고 생각하고 있긴 있었는데,
그럼에도 아쉬운 감정은 의지와 상관없이 들더라.
다만,
‘… 희망이기도 했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왔다.
B급이라는 명확한 수치와, 덩달아 돌아온 오른손의 상태는, 내 머리 위를 덮고 있던 ‘천장’을 깨부숴주었다.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졌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노력할 수 있었다
힘내서 적응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기타를 쳤다.
하루라도 후회 없이 살자 다짐했고, 그렇게 살았다.
신기한 게, 어느 순간인가 까먹어버리더라.
아예 생각조차 안 하게 되더라.
상태창이 생겼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안 보고 싶을 수가 없을 텐데?
“… 아니.”
아니지.
아니다.
나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머릿속에 해답을 정립시켜나갔다.
‘떠올리려고 하지 않았던 게 아니야.’
그저, 필요가 없었을 뿐.
혼란스러웠던 정신이 진정되고, 목표가 바로 잡히고,
스승을 만났고, 은인을 만났다.
“… 그래.”
그런 것이다.
단순히, 그런 것이다.
회귀 전의 나는, 관심을 받고 싶었다. 사랑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회귀 후, 관심과 사랑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 나는 그 기회만으로 충분했을 뿐이다.
상태창까지는,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타앙-!
총이라도 쏜 것 같은 엄청난 굉음이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자, 용광로 같던 분위기가 잠시 식었다.
인파의 물결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심사위원도 같이.
심사가 시작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 이름이, 다시금 불렸다.
1등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밀려오는 함성과, 쏟아지는 애정 어린 눈빛들.
그 모든 것이 나를 감싸 안는다.
아주 따뜻하게, 포근하게.
– 빨기좌! 빨기좌!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앞으로 다시는 내뱉지 않을 단어를, 열광 속에 묻혀 그 누구도 듣지 못하도록,
굳이 입에 담아보았다.
“기타창.”
…….
눈앞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조명과 관객들만이, 시야에 비쳤다.
“그렇구만.”
만약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는 나를, 아니.
‘기타’를.
어지간히도 사랑하는 존재가 아닐까.
“수재야.”
“응.”
“나 처음이기는 한데 ….”
“응?”
“뽀뽀해도 돼?”
“응 …?”
입술에, 압력이 느껴졌다.
아니,
쯔으으으으으읍-!
그것은 이미, 중압감이라 표현해도 좋을 정도였다.
아니,
흡성대법에 가까웠다!
“파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카메라가 저렇게 많은데 뽀뽀를 한다고?
다 찍혔을 텐데 …?
아니 애초에 뽀뽀조차 아니잖아.
이게 소이의 첫 키스라고!?
와아아아아아아-!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정신이 나갈 것 같은데, 뭔가 기분이 좋기도 하다.
“크흠 ….”
“역시 나중에 할 걸 그랬…나?”
“에이 뭘. 이미 해버렸는데. 좋게 생각하자고.”
“그치?”
… 수만 명의 관객이 바라보는 무대 위에서 솔로를 연주하는 광경을 몇 번이나 꿈꿨는가.
이루지 못한, 이룰 수 없는 한 많은 인생일 터였다.
‘근데 이제는 아니야.’
나는 지금 이곳에 서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러한 곳에 오를 것이다.
당연하게도 여정은 오늘로 끝이 아니니까.
g3라는 거대한 이벤트도 남아있으니, 바쁜 나날은 이미 예정된 셈이다.
물론 그 전에 우선,
“Rock and roll!”
기타를 머리 위로 들고, 그리 외쳐본다.
얼굴을 한껏 찡그리고, 그리 외쳐본다!
모두와 함께,
열정을 담아.
의미?
그런 건 없다.
그저, 간지만이 이곳에 있다!
-앵콜! -앵콜!
나의 전설은, 역사는.
이제 막 프롤로그가 끝났을 뿐이다.
“가즈아아아아아아!”
나는 기타를 잡았다.
—잡지 구독자님들에게 드리는 사죄의 말씀과 안내.
롤링 스톤지는 급격히 변화하는 기류에 발을 맞추어, 기존에 발표했던 널리 알려졌으면서도 가장 완성된 지표에 변화를 가하기로 하였습니다.
그저 새로운 지표를 신설하는 것만으로는 한 인물을 모두 담아내기에 역부족이라는 의견을 여러 독자님들로부터 받았고, 저희의 생각 또한 독자님들과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롤링 스톤지는 기존의 그릇은 조금 더 키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혼란을 더해드려 송구스럽습니다.
이 메시지가 공표된 순간부터,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는 폐기됩니다.
대체되는 지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 롤링 스톤 선정 위대한 기타리스트 TOP 101 –
1. 지미 헨드릭스
2. 에릭 클랩튼
3. 지미 페이지
4. 키스 리저즈
5. 제프 벡
6. 비비 킹
7. 척 베리
8. 에디 벤 헤일런
………………101. 김수재
이상, 21세기 가장 위대한 천재 기타리스트의 탄생을 축하하며.
-<천재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완결-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터븀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완결입니다!
언제 닿을지 짐작조차 못 했던 완결입니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합니다. 현실감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거의 보여드린 것 같아 요상한 만족감이 들기도 합니다.
천재 기타리스트가 되었다를 연재하던 기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와 정말 불행했던 시기가 공존했습니다.
정말 불행했던 시기에는 독자님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할 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쓰고 보니까 별로 없습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에필로그를 쓸 수 있으면 쓰겠습니다.
다음 작도 빨리 쓰겠습니다.
이곳까지 따라와 주셔서,
천재 기타리스트의 여정을 지켜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