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77
뭔가 대단한 생일파티 (1)
“어우! 다닦았다!”
수상하기 그지없는 슈퍼마켓의 구석에서,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가 감탄 섞인 괴성을 내지른다.
뿌듯함, 상쾌함.
오만가지 감정이 떠올라 있는 얼굴.
고된 노동에 몸은 피로해졌지만, 피로가 불쾌감을 불러오지는 않았다.
스윽, 신발로 바닥을 훑으며 젖은 키친타올을 한곳에 몰아넣는다.
습기제거기에 기타 세 대를 때려 박는다.
그럼에도 책상 위는, 기타에서 떼어낸 부품들로 어지러웠다.
“미들픽업은 죽었네.”
펜더의 노이즈리스 픽업인데.
손가락만한 막대기 한 짝이 적어도 5만 원은 하는 놈인데.
픽업의 전선에 측정기를 물려봤지만, 증폭 값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박현석은 잡동사니가 놓여 있던 박스를 뒤적이며 기타의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안녕하세요 기타는요? 기타는 어떻게 됐어요?
역시 자나 깨나 기타밖에 없는 놈이다.
“몰라. 근데 미들픽업은 하나 죽었네. 어떡할래?”
-··· 남는 거 있어요?
“던컨 있네.”
-우선 그거라도 박아주세요.
우선이라니.
시모어 던컨 픽업이 ‘그거라도’라는 소리를 들을 부품은 아닐 텐데?
“던컨 싫어해?”
– 펜더 픽업은 없어요?
“커스텀 샵 빈티지 픽업은 있는데 이거 박으면 되지?”
– 던컨 박아주세요. 제발요.
처음부터 그렇게 나올 것이지.
“알았다~”
– 진짜 감사합니다···! 갑자기 부탁드린 건데도··· 아, 혹시 윤대혁 선배 거는 어떻게 됐어요?
“Esp 진짜 튼튼하더라. 비 맞아도 멀쩡해 아주.”
– 아쉽네요.
“왜, 망가지길 바랬어?”
– 펜더의 세계로 끌어들여야죠.
박현석은 푸흡, 하며 실소를 터트렸다.
“그래, 다 마르면 연락할게.”
– 감사합니다! 혹시··· 내일 모레까지 될까요?
“내일 저녁에는 다 될 거 같은데. 가지러 와.”
-넵!”
실실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핸드폰을 탁자 위에 올려둔다.
기타리스트는 각자의 성향이 있다.
빈티지를 좋아하느냐, 모던 성향이냐,
프렛을 몇 프렛까지 쓰느냐, 아밍을 자주 하느냐.
녹음 환경을 최우선 목적으로 두느냐, 자기만족을 최우선으로 두느냐.
너무 조건이 많아서 기타리스트들을 상대하고 있자면 항상 머리가 아파온다.
하지만, 그렇기에.
생각할 게 많기에, 일렉기타는 너무나 재미있는 악기였다.
“음 ···”
소년의 성향은 과연 어느 쪽일까?
빈티지도 좋아하고, 속주도 좋아하고, 모던스타일 곡도 좋아하고, 아밍도 좋아하고.
그냥 다 좋아하는 것 같다.
취향이 딱히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보면 아주 확고했다.
박현석은 만지작거리던 올드 픽업을 내려놓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15만 원 짜리 스콰이어 기타를 사가며 그리 행복해 하더만.
이제는 무대 한 번에 400만 원을 태우는 배짱을 부리고 있다.
참, 정말.
대단한 놈이다.
기타에 대한 열정, 애정, 실력.
어느 하나 빠지지가 않는다.
‘그’야말로 기타를 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실력이 좋지만, 목석처럼 치지는 않는다.
목석처럼 치지 않는 주제에 실수도 내지 않는다.
무대에 융화되며, 환호에 감싸진다.
박현석은 한적한 일요일 밤을 감상하러 밖으로 나섰다.
곡 작업이 끝나서 한동안 좀 쉬겠거니 했더니.
온종일 기타 물 빼느라 진땀에 진땀을 흘렸다.
-까톡!
핸드폰이 울린다.
지인이 보낸 카톡에, 유튜브 링크가 걸려 있었다.
이건 ···
“큽.”
박현석은 다시 한 번 실없이 웃으며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치익-!
피어오르는 회색의 매캐한 구름.
비가 한동안 쏟아진 후, 시원한 공기가 감도는 북정마을.
쩌억 입을 벌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여름의 대삼각형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 * *
5월 30일 월요일.
“하아아아아악!”
입이 찢어질 듯 하품을 하며 등굣길을 걷는다.
역시 적응이 잘 안 된단 말이야.
신나게 무대서다가 학교 나가는 거.
뭐, 딱히 싫지는 않다.
살다 보면 학교보다 좆같은 게 셀 수 없이 많으니까.
티링- !
도현이가 웬일로 아침에 카톡을 보냈다.
– 야 빨리 와. 학교 난리 났다 지금.
– 뭔 난리?
– 존나 난리남 ㄹㅇ ;;
– 화장실에 휴지 없냐?
– ㅇㅇ
나는 핸드폰을 끈 다음, 걷는 속도를 확 늦췄다.
불타올랐던 그저께,
달아올랐던 무대.
되게 좋았다.
시상식에 올라 ‘2등’ 트로피를 받던 라비다 멤버들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연지선 누나 울더라.
달래는데 정말 한참 걸렸었다.
그 이후에는 급히 박 작곡가 ’님’께 기타 호송도 하고.
라비다 멤버들이랑 친구들이랑 같이 저녁 먹으면서 회포도 풀고.
윤대혁 선배의 기타가 멀쩡한 건 참 아쉬웠다.
이참에 펜더 사라고 꼬드기려고 했건만.
개발살이 난건 내 기타뿐이었다.
“후욱, 후욱.”
언제나처럼 4층까지 이어지는 힘겹게 계단을 오른다.
뭔가··· 계단 하나하나를 내디딜 때마다 시선이 엄청 느껴진다.
학교에서 얼굴이 팔릴 대로 팔린지라 이젠 익숙하다.
그건 그렇고 기껏 펜더 샀는데 공연 한방에 아작을 내버리다니.
성공했으니까 됐지 뭐.
회귀전, 라비다는 아슬아슬하게 인기투표에서 3등을 했다.
3등의 혜택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양지에 들어서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번 생에는 좀 달랐다.
3등이 아닌 ‘2등을’ 했다.
나로 인하여, 순서가 뒤바뀌었다.
라비다는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까?
아니, 더 성장할 데가 있긴 할까?
괜스레 궁금해진다.
“수재안녕~”
“하이.”
김태현이 실실 웃으며 인사를 한다.
얜 또 왜 저렇게 웃는 거야?
“왜 웃냐?”
“들어가면 알게 될걸?”
얘가 이런 소리를 하니까 좀 찜찜하네.
드르륵-
교실문을 힘차게 연다.
그와 동시에,
“··· 빨기좌 왔다아아아!”
고막을 찢을 듯한, 반 애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우 씹 ···”
나는 멍멍한 귀를 부여잡으며 머리를 퉁퉁 두들겼다.
난리가 났긴 났구나.
도현이도 의자에 앉아 손을 흔든다.
닦았겠…지?
무섭네.
“야! 너 이거 봤지? 진짜 쩔어···.”
평소엔 말 한마디 걸지 않던, 바이올린 전공 여자애가 나에게 핸드폰을 내민다.
“뭔데?”
“어? 너 안 봤어?”
“본인이 안 보면 어떡해?”
“실화냐?”
“···.”
윤수빈이랑 소이도 다가온다.
뭔데 그러지?
···.
나는 내밀어진 화면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Veze의 오피셜 채널이었다.
“아 ···.”
이게 올라왔구나.
그저께 공연했는데 벌써 올라왔구나.
조회수가 무슨 하룻밤 만에 88만이 나오냐.
레일라 영상은 110만 찍을 때까지 몇 주가 걸렸는데.
“김수재 88만 조회수 실화냐?”
“쟨 올리는 것마다 대박 터트리네?”
“Veze에 음원 올라가? 진짜야?”
“거짓말이지?”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veze.
토종 기업이지만, 해외에서 매출이 더 높게 나오는 기업이다.
지금은 국내 3위 정도인데, 5년 뒤에는 2위까지 오른다.
“음원 안 올라갈걸? 근데 와 개 잘생겼네.”
썸네일이 내 얼굴이다.
“··· 으으···”
여자애들이 역겨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슬슬 뒷걸음질쳤다.
“··· 맞아, 되게 잘 나왔다···”
“고마워···!”
고마워 ···!!
역시 소이밖에 없어.
나는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뭔가 되게 영상이 박진감 넘친다.
에이트라 영상도 화질이 엄청 좋던데, 바주카같은 카메라로 찍으니까 차원이 아예 다르구나.
나의 무대.
나의 rain 커버.
에이트라의 영상은 그래도 유튜브 감성이 섞여서 거부감은 들지 않았었는데···
“이거 나중에 TV에 나오는 거 아니냐면서 소문 돌던데.”
“Tv?”
“몰라. 뉴스에 나간다던데?”
오피셜 채널에 올라간 영상은, 진짜 딱 공중파 감성이었다.
진짜 나가는 거아니야?
애초에 서울시랑 베즈에서 돈을 대준 행사니까 ···
···.
나는 다시 한 번 더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방금 계단을 올라오며 받았던 시선들의 정체를 이젠 잘 알겠다.
저건, ‘부러움’ 이다.
같은 음악인으로서의 부러움.
장학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때와는 부러움의 양상이 다를 것이다. 그건 학생으로서의 부러움일 테니까.
나는, 진짜 스테이지에 섰었다.
스테이지.
모든 음악인들이 바라마지 않는 곳 말이다.
“나도 이런 공연 하고 싶다···”
“드럼으로?”
“응 ···”
윤수빈이 쓰읍, 입맛을 다셨다.
“연습만이 살길이다···!”
“그건 그런데 화나네?”
“쩔긴 쩔었어.”
“으으으으··· 부러워어어!”
4000명도 이정도인데, 20000명, 50000명 수용 무대는 과연 어떤 기분일까.
예를 들어 8월의 우드스탁 ··· 그런 데에 설 수만 있다면.
상상 하는 것만으로 짜릿해진다.
“더 봐봐.”
나는 핸드폰을 받아들고 스으윽- 스크롤을 내렸다.
– 원래 일렉기타가 젖어도 괜찮은 악기임?
– ㅇㅇ 원래 수영하면서도 칠 수 있는 악기임.
ㄴ 지랄 ㄴ
– Rain을 rain 맞으면서 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와 표정 진짜 기타 소울 ㅇㅈ한다.
ㄴ 감전당한거 아니냐?
ㄴ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이돌영상 보러 왔다가 빨기좌에 반하고 갑니다.
– 빨기좌 사랑해요 결혼해주세요 제발 몸만 와
ㄴ 덜렁
ㄴㄴ 덜렁아님 ㅗ
ㄴㄴㄴ ㅗ
개 난장판이네 진짜.
게다가 뭔가, 외국인들의 댓글이 잔뜩 달려 있었다.
– Curiosity brings destruction +621
– stop. Think again. + 366
호기심이 파멸을 부른다, ··· 다시 한 번 생각해라.
“이거 뭐냐?”
“너 따라하다가 기타 부숴 먹은 사람들이 댓글 단 거 같은데?”
“··· 올.”
이렇게나 많다고?
연관 동영상에 ‘쌍기타 돌리기’ 챌린지가 몇 개 올라와 있었다.
“기타 수리업이 대세가 되기를.”
“끔찍한 소리 하지 마.”
··· 올라온 지 14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괜히 미래가 두려워졌다.
이전에 상상했던 것이 진짜로 이루어지는 건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은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는 법이다.
나의 쌍기타 돌리기로 인해,
기타의 모가지가 부러지고, 몸이 파이는,
기타 디스토피아 시대가 다가올 것만 같았다.
에이설마.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
도현이와 혁오는 토요일에 있었던 일을 엄청나게 과장해댔다.
“진짜?”
“진짜 기타에 불붙었어?”
“거기서 불꽃이 화아아악! 솟는데··· 이거 영상에서는 다 짤려가지고···”
진짜 믿잖아 병신들아.
나는 말릴 생각도 없이 옆에서 신나게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보니 ···
“··· 할 말 있어?”
내 시선을 느낀 소이가 싱긋 웃는다.
내일이, 소이의 생일이다.
근데 ··· 생일 선물을 안 샀다.
“선물.”
“으··· 응?”
나는 소이에게 대뜸 물었다.
“생일 선물 ···?”
“응. 뭐 줄까?”
“그냥 ··· 와주기만 해도 기쁜데···”
···.
너무 착하잖아···.
더더욱 빈손으로 갈 순 없지.
“그래도 갖고 싶은 거 있을 거 아니야.”
소이가 용돈이 부족할 일은 없겠지만···
“갖고··· 싶은 거?”
“뭐든 들어줄게.”
“··· 뭐든···?”
“응.”
1억원을 구해다 줄 수는 없겠지만 뭐, 내가 가진 자본 한계 내에서라면 들어줄 의향이 있다.
“··· 사실은···”
소이는 내 귀에 입을 붙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아이가 바라는 것은, 화장품도, 기타도 아니었다.
괜찮다면,
내 생일때
축하연주 해줘.
“··· 그걸로 돼?”
“응. 아 그리고··· 사실은 호텔에서···”
나는 소이의 말을 듣고, 부잣집 생일파티는 진짜 다르구나 싶었다.
괜찮 ··· 겠지?
괜찮겠…지?
“안 괜찮네.”
“여기 뭐임.”
“우와아아아아···!”
다음날 저녁.
나는, 호텔에 왔다.
걱정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녀들의 시선이, 그들의 자식처럼 보이는 애들의 시선이, 우리한테 꽂혔다.
··· 생일파티라며?
명절아니야?
“21세기 대가족 개꿀.”
“···.”
소이네 친척 진짜 존나 많다.
아니, 친척뿐만 아니라 ···
“저쪽은 아예 다른 그룹 같은데?”
“생일파티를 두 사람이 한 장소에서 해?”
“같은 장소는 아니지. 구역이 나눠져 있는데.”
“저 사람 ··· 본선에서 봤던 피아니스트 아니야?”
“피아니스트가 왜 와?”
“축하공연!”
···.
뭔가, 뭔가 ···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