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10)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10화 기요틴은 원래 기요틴이 아니었다(10/355)
기요틴은 원래 기요틴이 아니었다
이튿날, 나는 해가 떠오르자마자 라부아지에가 소유하고 있는 연구실로 향했다.
“집에도 제대로 안 들어오고 논문만 쓰고 있는 사람이라······.”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는 뼛속까지 법학자인 그의 아버지와는 달랐다.
초창기에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그의 관심이 향한 곳은 자연과학 쪽이었다고 한다.
콜레주를 졸업할 때쯤에는 과학 아카데미로부터 메달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성취를 보이기도 했다.
한 번 무언가에 꽂혀서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 며칠간은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 전형적인 연구 귀신.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는 보기도 전부터 대강 예상이 간다.
사실 나로서는 오히려 이런 쪽의 타입이 더 익숙했다.
극단적으로 편중됐던 내 인간관계에서는 저런 연구자 타입의 사람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논문만 주야장천 쓰던 기억이 떠올라 PTSD가 도질 것이란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었지만.
“당신이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 도련님입니까?”
방 안에 들어서자 수북하게 쌓인 서류 더미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까치발을 서서 바라보니 고개를 처박고 펜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의 뒤통수가 보였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아 보이는 청년은 이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형식적인 인사 후에는 그저 사각사각 펜을 움직이는 소리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반갑다,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 나는······.”
“알고 있습니다. 루이 크리스티앙. 그리고 뒤에 따라붙는 숨겨진 성까지 전부.”
젊은 라부아지에가 살짝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 보았다.
그 와중에도 펜을 움직이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다 들었다고?”
“어젯밤에 아버지가 직접 오시더군요. 도련님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무얼 하려고 하는지 전부 다 알려주셨습니다.”
“그래? 설명할 시간이 줄어서 다행이네. 바로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분명 아버지께서는 도련님과 함께 일을 추진해 보라고는 하셨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이쪽을 응시하는 전도유망한 젊은 천재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허무맹랑한 소리 때문에 괜히 자신의 연구 시간을 뺏긴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한참 어린 어린아이가 잘난 척하는 게 가당치도 않다고 여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둘 다일 수도 있고.
“아직 믿을 수 없는 것도 당연해. 하지만 사람들이 다 모이면 자료를 보여 줄 테니 그때 판단해봐. 분명 내 생각에 동의하게 될걸.”
“자료라···. 말이 나와서 묻겠는데 도련님은 과학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긴 하십니까? 저로서는 이게 시간 낭비가 될 것 같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망상만 늘어놓는 게 아니냐 이 말인가?”
과격하게 해석하긴 했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젊은 라부아지에는 딱히 반박하지 않고 책상 위에 한 무더기로 쌓여 있는 종이들을 가리켰다.
“피차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겠죠. 이건 제가 이번에 화학 아카데미의 정회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쓴 논문의 바탕이 된 자료들입니다. 한 번 보시고 나름의 분석을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협력을 받고 싶으면 과학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보여보라는 뜻인가.
웃긴 노릇이긴 해도 장래 천재 화학자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울려주지 못할 건 없다.
가장 위에 있는 자료들을 쭉 살펴보니 온갖 로우 데이터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 완벽히 이해했다.
하얀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로구나.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태생이 문돌이인 내가 이런 자료들만 보고 연구의 주제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내가 아무리 이 시기 역사를 통달해 있다고 해도 라부아지에가 쓴 모든 논문을 다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방금 전 라부아지에가 스스로 답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화학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 완성한 논문.
다른 건 몰라도 저 하나에 한정한다면 분명 예전에 조사한 기억이 있었다.
게다가 자료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여러 지방의 토양 상태나 지역 생수들의 특징 같은 단어가 딱 좋은 힌트가 됐다.
종이를 훑어보는 척하면서 기억을 열심히 더듬어 본 나는 마침내 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군. 워낙 쓸데없는 자료들도 덕지덕지 있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네가 뭘 쓰려는지는 대강 알겠어.”
“그것만 보고 바로 아셨다고요? 그럴 리가······.”
어랍쇼?
설마하니 나를 시험하려던 게 아니라 그냥 거절할 구실을 찾고 있었던 것인가.
하긴 관심법이라도 쓰는 게 아닌 이상 이런 무수히 많은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장래 황금알을 낳게 될 거위를 이런 곳에서 놓칠 수야 없는 노릇.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면 미래에 기록된 사실들을 읊으면 그만이지.
“광천에서 솟아나는 물은 옛날부터 특별한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어. 물맛이 독특하기도 하고 어떤 물은 치료 효과가 있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 네가 조사한 자료들을 보니 여러 지방의 토양이나 동식물들의 생태계를 폭넓게 분석해놓았더군.”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여기에서 질병의 발생률이나 동물들의 배설물, 지역 특산물 같은 것들은 별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 같으니 전부 걸러도 되겠지. 이런저런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보면 넌 광천수의 성분이 토양의 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거 아닌가? 아님 말고.”
가볍게 추론한 듯 툭 던진 말이었지만 저쪽이 받은 충격은 그렇지 않았다.
“내년에 리세 루이르그랑에 입학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혹시···자연과학 지망이십니까?”
“아니. 나중에 뭘 할지는 아직 딱히 안 정했는데? 그리고 내 신분 뭔지 안다며. 내가 전공을 정해서 뭐 하나만 파고들긴 어렵지 않을까?”
“아···. 그랬죠······.”
한참이나 말이 없던 젊은 라부아지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어쨌든 제가 보인 결례는 사죄하겠습니다. 부끄럽게도 도련님의 나이가 어리니 통찰력 역시 그리 깊지 않을 거라고 속단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도련님의 배경이 배경인지라······.”
그가 어떠한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 저 위에 있는 높으신 분들은 과학에 대한 이해도가 처참합니다. 그들이 관심 있는 건 그저 대포의 사거리를 늘리고 총알의 위력을 올리는 것뿐이지요. 혹시 도련님께서도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그런 눈에 보이는 실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나 했는데 자연과학은 이쪽에서도 홀대를 받고 있나 보네. 질문에 답을 하자면 당연히 아니야. 자연과학 같은 기초학문을 소홀히 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발전이 정체될 수밖에 없어. 결국에는 다른 곳에서 발전시킨 기술을 뒤늦게 가져와 항상 뒤처지는 신세가 되겠지.”
가끔 그쪽 계통을 전공하는 교수나 대학원생들과 밥을 먹으면 단골처럼 나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 나라는 기초과학을 너무 무시해!>
진짜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대우를 못 받는다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불평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단시간 내에 빠른 성장을 해야 했던 현대의 한국은 응용과학보다 기초과학에 투자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긴 했다.
이런 현실은 18세기의 서구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니 왠지 모르게 웃기면서도 슬픈 심정이었다.
“그렇습니다! 그 말 그대로입니다. 물리학, 화학, 지질학, 이런 기본적인 학문이 바탕이 되어야 결국 군사기술도 발전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왕실과 대귀족들은 당장 성과를 내기만을 바라며 무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만 지원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저 같은 학자들은 스스로 연구비를 충당하는 수밖에 없죠.”
“이번에 나와 함께 성과를 낸다면 프랑스, 아니 전 세계의 이목이 한 번에 집중될 거야. 그러면 네 연구에 후원해주겠다는 사람으로 다리를 만들어서 센 강을 건널 수도 있을걸.”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째서 라부아지에가 세금 징수 조합에 가입해 징세청부업자로 활동했는지 이해가 갔다.
징세청부업자는 능력에 따라 어마어마한 수입을 올릴 수 있지만, 그에 비례해 대중에게 혐오를 받는 직업이다.
그 역사는 무려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에서 사람들에게 욕받이 신세가 되는 세리가 바로 이 징세청부업자였다.
라부아지에는 능력 있는 징세청부업자라 연수입으로는 여느 대귀족 못지않은 부유한 수입을 올렸으나, 대중에게 미운털이 박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딱히 욕망에 미쳐서 탐욕스럽게 돈을 긁어모은 건 아니었다.
번 돈의 대부분을 아낌없이 연구에 퍼부었다는 기록만 봐도 그가 돈을 모은 목적의 상당수는 연구비 충당에 있었을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탄소의 결정체임을 증명하겠답시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태워버린 사건은 그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였다.
무릇 학자란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 외에는 젬병인 순수한 학문 바보와 다방면으로 유능한 만능 초인.
라부아지에나 날 들들 볶던 이용욱은 명백하게 후자 쪽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런 팔방미인들의 성향도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이용욱 같은 교수는 자신의 능력으로 벌어들인 돈이나 영향력을 아낌없이 휘두르며 살아간다.
반면, 라부아지에 같은 사람은 그렇게 얻은 결실을 오롯이 자신의 연구에만 쏟아부었다.
수입을 극대화하고 사회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해 애를 쓰긴 하지만, 그 모든 건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
바로 그런 성향 때문에 라부아지에는 내 제안에 넘어올 수밖에 없다.
천연두를 잡을 수만 있다면 과학자로서 얼마나 운신의 폭이 넓어질지 모를 그가 아닌 까닭이다.
예상대로 젊은 라부아지에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듯 강렬한 시선으로 내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이 조사한 자료가 납득할만하다면 끝까지 함께해보겠습니다.”
“좋아. 후회는 없을 거라고 약속하지.”
“부디 말뿐이 아니길 빌겠습니다. 도련님이 그토록 자신 있어 하는 자료는 그 영국인 의사가 도착하면 받아볼 수 있는 겁니까?”
“그래. 그리고 한 명 더 추가로 섭외한 사람이 있어. 조만간 그쪽까지 껴서 자리를 한 번 만들어 볼게.”
아무리 라부아지에가 젊은 과학자로 명성이 있다고 해도 아직 외부평가는 좋은 유망주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견습의 과정을 밟고 있는 에드워드 제너나 콜레주에 입학할 나이인 나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구성으로는 아무리 그럴듯한 자료를 제출한다고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소위 말하는 입구컷을 당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인지도는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
라부아지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그 점을 이해하고 고개를 세로로 까딱였다.
“명망 있는 학자가 한 분 더 참여하는 건 저도 찬성입니다. 그런데 용케도 외부인을 섭외하셨군요. 보통은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치부하고 거절했을 텐데.”
“그거야 뭐 네 이름으로 편지를 보냈으니까. 한창 떠오르는 젊은 천재 과학자의 주장이라고 하면 한번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오는 게 당연하잖아.”
상식적으로 이름도 못 들어본 꼬마애가 오라고 한다면 누가 관심이나 가지겠는가.
당연히 이럴 땐 남의 이름을 팔아야지.
물론 졸지에 명의도용을 당한 라부아지에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그랬다가 계획이 실패하면 어쩌려고······.”
“자자, 걱정하지 마. 그럴 땐 내가 네 이름 팔아서 그런 거라고 적당히 수습하면 되니까.”
“후···.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저희와 함께하겠다는 그 학자의 이름은 뭡니까? 그것도 나중에 알려줄 거라고 하시진 않겠죠?”
“설마. 당연히 이 자리에서 말해줄 수 있지. 보르도 대학의 교수이면서 현재 파리 의과 대학에서 박사 과정까지 밟고 있는 사람이야. 들어본 적 있어? 조제프이냐스 기요탱이라고.”
“···문학 교수면서 의학박사까지 따려고 한다는 그분 말입니까? 교회에서 꽤 유명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은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기요탱 박사의 학자로서의 업적은 라부아지에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내가 기요탱 박사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천연두 백신을 프랑스에 도입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에서 볼 때 기요탱 박사는 어떤 점에서는 라부아지에보다도 훨씬 더 강렬하게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기요탱이 후대에 이름을 남긴 건 의사로서의 활동도, 문학 교수로서의 업적도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생명을 구하는 의사였던 그는 자신의 이름을 긍정적인 의미로는 남기지 못했다.
그와 정반대로 후대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기요탱의 이름은 사람의 목숨을 잔혹하게 앗아가는 사형기구였다.
개발은 물론 제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임에도, 모두가 그 사형기구의 이름을 이렇게 불렀다.
사람의 목을 자르는 단두대.
기요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