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11)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11화 동상이몽(11/355)
동상이몽
젊은 라부아지에는 일만 잘 풀리면 앞으로도 계속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무엇을 기대하고 그러는지는 너무 뻔해서 굳이 추론해볼 필요조차 없었다.
그쪽은 장래에 자신의 뒤를 봐줄 수 있는 배경을 원하고, 난 그쪽의 지능을 원한다.
이상적인 기브 앤 테이크 관계였다.
여기에 기요탱 박사와 에드워드 제너까지 합류할 예정이니 모든 준비는 끝났다.
앞으로의 일생을 결정짓게 될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지만 불안감은 없었다.
이제는 그저 앞만 보고 달려 나갈 뿐.
“저기, 도련님.”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해보려던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멜리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왜? 아직 도착하려면 좀 남지 않았나?”
“그게···. 저는 언제쯤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것인가 해서요. 아직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지라.”
“일을 그만둘 생각인가? 어째서?”
“예? 어째서냐뇨. 그거야 당연히······.”
멜리사는 차마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내가 모든 사실을 다 알고 라부아지에와 담판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모양이다.
“도련님도 제 얼굴을 계속 보기는 불편하실 테니 새로운 사람에게 인수인계하겠습니다.”
“딱히 상관없어. 그냥 계속해. 어차피 여기서 나가도 일할 곳이 필요할 텐데 굳이 그만둘 필요는 없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멜리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본래 서양의 시종이나 시녀는 동양권의 하인이나 하녀와는 개념 자체가 달랐다.
시종이나 시녀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대상보다 조금 더 낮은 신분일 뿐 그 차이가 엄청난 수준은 아니었다.
단순한 허드렛일을 하는 게 아니라 보좌관이나 수행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일례로 왕족을 모시는 시녀라면 백작가의 자제 정도는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부르주아 계급이 부상하며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새롭게 귀족으로 편입된 이들은 대귀족들처럼 시종들을 부리는 삶을 원했으나, 당연히 그들은 신분이 높은 귀족들을 부릴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그저 그런 평민 신분의 사람들을 데려와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처음엔 나도 내 신세를 정확히 몰라서 착각했지만, 멜리사도 사실 이런 유형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제가 정말 계속 일해도 되나요?”
그렇게 묻는 그녀의 눈에 일말의 기대감이 떠올랐다.
여기서 잘리면 일을 새로 구해야 할 테니 어떤 심정일지는 이해가 갔다.
“어차피 넌 고용주가 하라는 대로 한 거잖아. 그걸로 내가 뭐라고 하는 것도 우습지. 그리고 너도 그때 어느 정도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잖아? 표정에서 다 티가 났어.”
“하지만 저는 그래도 어르신의 말에 따랐는걸요.”
“그 어르신이 이제부터는 나를 하늘처럼 받들라고 말했을 텐데? 그러니까 상관없어.”
어차피 멜리사가 그만둬도 새롭게 들어올 시종은 내가 아니라 라부아지에의 사람이다.
그 인물이 지금보다 내게 호의적일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었다.
어설프게 주사위를 굴려보느니 그냥 멜리사를 계속 데리고 있는 게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최소한 그녀는 나에게 최소한의 정은 있고, 상당한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기억이 완전하지 않은 상황이라 옆에서 확인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오히려 그녀가 일을 그만두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입장인 셈이다.
물론 그런 사정 따위 알 리가 없는 멜리사는 감동으로 눈물까지 글썽이며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오직 도련님만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그녀는 예상보다 더 감격했는지 이후로 한참을 충성서약에 가까운 감사를 쏟아냈다.
귀가 따가울 지경이라 적당히 흘려듣고 있자니 어느새 마차가 라부아지에의 저택 앞까지 도착했다.
“못 보던 마차가 있네. 라부아지에가 그새 새로 뽑았을 리는 없고 손님인가?”
한눈에 봐도 돈을 처바른 티가 줄줄 나는 고급스러운 마차였다.
“귀한 분께서 오셨나 보네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마차에요.”
“그래? 법원 쪽의 귀족인가······.”
고등법원의 윗대가리가 직접 행차한 거라면 나와 관계된 일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멜리사, 내가 법원의 귀족들과 직접 만난 적이 있었나?”
“예? 라부아지에 어르신을 제외하면 한 번도 없지 않았나요?”
“아아, 맞아. 그냥 혹시 내가 별 신경 쓰지 않고 만났던 사람 중에 법원 쪽 귀족이 있었나 해서.”
과거에 한 번 만났었는데 초면처럼 굴면 상대방은 자신을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몸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다 보니 이런 부분에서는 3자의 확인을 거쳐주는 게 안전했다.
“도련님과 면식이 있는 법원 쪽 사람들은 어르신을 제외하면 조사관들 정도밖에 없지 않았나요? 귀족분들이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그래. 바로 이런 정보를 토해내라고 그녀를 내치지 않은 것이다.
내가 파리에 왔을 때부터 계속 지켜본 그녀의 말이니 신빙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 마차에서 내려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도련님, 도련님! 드디어 오셨군요. 지금 바로 응접실로 와주십시오!”
한달음에 달려온 관리인은 긴장으로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밖에 마차는 봤어. 손님이 온 모양이지? 근데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야? 누가 보면 재판장이라도 왔나 생각하겠네.”
“그냥 재판장이 아닙니다. 고등법원의 대법관이신 블랑메닐 님이 오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뭐라고?”
생각조차 못 했던 거물의 등장에 자연히 내 발걸음도 빨라졌다.
대법관 블랑메닐이라면 분명 기욤 드 라무아뇽 드 블랑메닐을 말하는 것일 터.
사법부의 총책임자이자 고등법원의 정점에 선 권력자중 한 명이 나를 보기 위해 직접 행차했다고?
저택 사람들이 허둥지둥하는 게 바로 이해가 됐다.
어쩐지 담당부처 차관이 왔을 때 어버버 거리던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도 같았다.
라부아지에나 루소를 만날 때와는 전혀 다른 긴장감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이윽고 응접실 앞에 도착한 나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신 뒤 방문을 열었다.
“오, 이제 오셨나 보군.”
정오의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응접실.
소파 위에 앉은 희끗한 머리의 노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누구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았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려 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노인이 입을 열었다.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게 좀 비켜주겠나?”
집주인에게 나가 있으라는 패기에도 라부아지에는 찍소리조차 못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저는 물러가 보겠습니다. 용건이 다 끝나면 불러 주십시오.”
노인은 공손하게 허리까지 숙이고 나가는 라부아지에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내가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온전히 이쪽만을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군요. 안녕하십니까. 왕자, 아니 왕손님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려나요.”
노인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진짜로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딱 보니까 그거다. 아무리 찌끄레기라도 대우하기로 해줬으니 일단은 말이라도 높여주겠다.
나름 익숙한 대우였다.
성질 같아서는 나도 똑같이 해주고 싶었지만, 라부아지에를 대하는 것처럼 막 나갈 수는 없었다.
저쪽은 진짜로 격이 다른 상류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아주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루이 크리스티앙입니다.”
다만 아무리 대법관의 앞이라고 해도 라부아지에처럼 설설 기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지금은 서로가 서로의 등에 총구를 겨눈 상황.
이쪽이 바짝 엎드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예의 바르긴 해도 비굴하지는 않은 태도를 본 블랑메닐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최근에 보고를 받았을 때는 뭔가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직접 보니 알겠습니다. 라부아지에의 말이 맞는 것 같군요. 아주 흥미롭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당황스럽군요. 설마하니 대법관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법복귀족 중 누군가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처음부터 대가리가 오는 게 말이 되냐고.
원래 이런 건 최약체부터 한 명씩 등장해주는 게 클리셰 아니었나.
필사적으로 표정 관리 중인 내 얼굴을 힐끗 본 블랑메닐이 피식 웃으며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말과는 달리 얼굴은 별로 놀라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제가 원래 감정을 숨기는 걸 잘합니다.”
“아, 하긴. 법원의 조사관들과 라부아지에가 왕자님의 본모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하니 수긍이 가는군요.”
“그래서, 대법관님께서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거야 당연히 우호를 다지기 위해서지요. 사소한 오해로 이전에 문제가 좀 있지 않았습니까? 뒤끝이 남지 않게 그 부분도 깔끔하게 봉합할 필요가 있을 테고요.”
이야, 사람 죽이라고 암살자를 고용한 게 사소하다니 역시 높으신 분들의 사고방식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
저 인간에게는 살인미수 정도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목숨이 끊어지는 끔찍한 경험을 두 번이나 겪었다.
회귀할 때의 그 끔찍한 고통을 떠올리면 아직도 소름이 돋아 식은땀이 날 정도다.
하지만 본심을 입 밖은커녕 얼굴에 드러낼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다.
10년이 넘게 교수 옆에서 비위를 맞춰온 내 감정조절 능력은 거의 메소드 연기의 경지에 달해있으니.
“저희 사이에 풀 응어리가 아직도 남아있었나요? 전 진즉에 이미 다 끝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요.”
내 넉살 좋은 반응에 블랑메닐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그럼요, 그럼요. 이미 같은 배를 탄 사이이니 앙금이 있을 리가 없지요.”
내가 이 늙은 여우의 본심이 무얼까 한참 고민하던 와중, 커피잔을 비운 블랑메닐이 은근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왕손께서 부디 제 의문을 풀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의문이라니요?”
“라부아지에의 보고를 받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왕손께서 어떻게 법원 귀족들이 저지른 비리를 알고 있는 것인지. 결국 결론은 하나밖에 없더군요. 법원의 누군가가 정보를 흘린 거겠지요. 그것도 기밀에 접근이 가능할 정도의 고위직이.”
역시 이런 거물이 우애나 다지자고 여기까지 왔을 리가 없지.
드디어 이 교활한 늙은 뱀의 속내가 보이는 듯했다.
이 인간은 법원에 나와 내통하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상태일 것이다.
상식적으로 콜레주에 막 입학할 나이인 내가 주도적으로 그런 정보들을 모았다고는 믿기 힘들 테니까.
물론 거하게 헛발질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글쎄요···. 저는 대법관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허허, 앞으로 함께 걸어 나갈 동료 사이에는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한 법입니다. 총명하신 분이니 제 말의 의미를 알 거라고 믿겠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대법관님의 말씀대로 신뢰는 서로가 쌓아야 하는 법이지요. 그러니 저도 제 생존의 핵심 비결을 알려드릴 수는 없지만 중대한 정보를 하나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블랑메닐의 노안에 진 주름이 꿈틀 움직였다.
내 절충안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중대한 정보라는 게 설마 이전처럼 법원 내부의 비리는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요. 질질 끄는 건 성미가 아니니 바로 말씀드리죠. 현 총리, 그러니까 수석국무장관인 슈아죌 공작께서 몇 년이나 더 집권하리라고 보십니까?”
내 물음에 블랑메닐은 슬며시 턱을 괴고 고민에 잠겼다.
프랑스의 수석국무장관은 다른 나라로 치면 재상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비공식적인 칭호라 권력의 정도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왕권이 안정되어 있을 때는 사실상 나라의 2인자라 할 수 있었다.
현 수석국무장관인 슈아죌 공작은 외무, 육군대신일 때와는 달리 내정에서는 별다른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하는 처지였다.
고등법원이 대놓고 슈아죌의 명령을 몇 번이나 무시했음에도 그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슈아죌 공작은 정치가보다는 군인에 가까운 인재지요. 우리로서는 그가 계속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지금 추세로 봐서는 5년을 넘기긴 힘들어 보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그 후임에 누가 앉느냐가 중요할 텐데···. 제가 조사하기로는 요새 모푸 경께서 왕실 인사들과 회동을 하는 횟수가 늘었다고 합니다.”
“모푸? 르네니콜라 드 모푸 대법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자라면 법원에서 몇 안 되는 친국왕파이긴 한데······.”
“후보가 아니라 이미 왕실에서는 슈아죌 공작이 물러난다면 모푸 대법관을 후임으로 내정할 생각입니다. 아시다시피 모푸 대법관은 고등법원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죠. 미리 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내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다.
지금부터 정확히 3년 뒤면 모푸는 수석국무장관이 되어 고등법원을 무력으로 찍어누를 것이다.
블랑메닐은 내 말을 전부 믿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흘리지도 않았다.
“돌아가는 대로 조사를 할 필요는 있겠군요. 만일 왕손께서 주신 정보가 정말로 사실이라면 무엇보다 확실한 신뢰의 증표가 될 겁니다.”
“제 말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대가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앞으로 절 확실히 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등법원의 대법관은 합법적으로 언론을 제어할 권한이 있었다.
앞으로 있을 장대한 여론전을 위해서 지금은 일단 이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고 봐야 했다.
이후로도 나는 블랑메닐의 자질구레한 질문들에 답을 해주며 그와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몇 번이고 내 가치를 떠보는 듯한 질문을 해서 적당히 넘어가주느라 진땀을 뺐다.
예나 지금이나 노회한 능구렁이들과 줄다리기를 하는 건 체력이 쭉쭉 빨리는 고역이다.
일단 지금은 날 충분히 휘두를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데 주력하도록 하자.
넝마가 될 때까지 쥐어 짠 다음 다 쓴 걸레짝처럼 버려버릴 테니까.
※※※
“수고하셨습니다.”
라부아지에의 저택에서 나온 블랑메닐은 대기시켜둔 자신의 마차에 올랐다.
그의 아들이자 파리의 조세법원 원장, 출판총감을 역임하고 있는 말제르브가 마부에게 출발 신호를 보냈다.
“루이 크리스티앙, 어떻던가요?”
“···라부아지에의 말 그대로더구나. 과연 태양왕의 핏줄이라고 해야할까···. 현 국왕이나 왕세자와는 그릇이 달랐어.”
“써먹을 가치는 충분히 있다는 거로군요.”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더없이 날카로운 칼이 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잘못 휘두르면 이쪽이 베일지도 모르지. 다루는데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겠어.”
산전수전 다 겪은 블랑메닐이 보기에 루이 크리스티앙은 틀림없이 앞으로 프랑스를 이끌어나갈 거목으로 자라날 인재였다.
왕족이라는 배경이 없어도 반드시 포섭하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났다.
“하지만 아버지. 루이 크리스티앙이 정말로 그 정도의 인재라면 주의를 해둘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아이가 십 년 정도만 더 일찍 태어났어도 그랬겠지. 하지만 그 애는 이제 콜레주에 입학할 나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재라고 해도 아이는 아이일 뿐. 지금부터 차분하게 공을 들여서 세뇌해 나간다면 우리의 체스 말로 쓸 수 있을 게다.”
블랑메닐은 크리스티앙의 총명함에 놀라긴 했으나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은커녕 아들인 말제르브만 해도 크리스티앙과의 나이 차이가 서른이 넘었다.
아들이 아닌 자신과의 나이 차이는 무려 오십에 달한다.
이제 은퇴를 앞둔 블랑메닐은 물론이고 아들조차 크리스티앙의 전성기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설령 크리스티앙이 두각을 나타낸다고 해도 그건 앞으로 20년은 더 미래의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착실하게 법원의 힘을 키우고 크리스티앙을 자신들의 앞잡이로 키우면 된다.
체스로 치자면 크리스티앙은 어디까지나 퀸으로 승격할 잠재력을 가진 폰일 뿐이다.
훗날엔 그 재능이 만개해 체스판 전체를 헤집고 다닐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은 한 칸씩밖에 움직일 수 없는 폰에 불과하다.
왕족이라고는 해도 아직 한참 어린 그는 당분간은 아무런 위협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법원의 비리를 알고 있다고 해봐야 그걸 터트리면 크리스티앙 자신도 죽는다.
그 사실을 본인도 잘 알고 있을 테니 경거망동은 하지 못하리라.
언젠가 자신이 은퇴하고, 아들까지 정계를 등질 때쯤이면 크리스티앙은 손자들과 함께 사법부의 시대를 열고 있겠지.
‘갑자기 왕실에 인정을 받아 왕족으로 복귀하게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잠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떠올린 블랑메닐은 쓴웃음을 지으며 곧바로 그 생각을 부정했다.
부르봉 왕가 역사상 사생아가 왕족으로 편입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걸 가능케 하려면 어마어마한 사전작업과 치밀한 계획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단기간에는 불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 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위인은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니 위인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데 심력을 소비하느니 왕실과 붙어먹고 있는 모푸를 견제할 방도를 짜내는 게 건설적이다.
블랑메닐은 잡념을 털어내고 돌아가자마자 해야 할 일들을 아들에게 일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