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12)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12화 정어리 대 바게뜨(12/355)
정어리 대 바게뜨
11.
사시사철 사람들로 붐비는 베르사유 궁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낮에는 수많은 방문객으로 붐비는 이곳도 밤이 되면 비교적 여유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부르봉 왕조의 왕권을 상징하는 이 거대한 궁은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2km 정도 떨어져 있다.
궁전의 면적보다도 더욱 넓은 정원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으며, 왕실의 인물들은 파리 대귀족들의 입김이 닿지 않는 이곳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했다.
궁정의 2층 중앙 본관을 차지하고 있는 거울의 방.
그 한가운데에 있는 왕의 서재에 국왕 루이 15세는 어두운 얼굴로 한 장의 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님.”
국왕의 손자이자 다음 대의 왕위를 이을 왕태자, 오귀스트가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손자를 향해 시선을 돌린 국왕의 눈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완연했다.
“오귀스트, 너도 소식은 들었겠지? 오늘 오스트리아에서 굉장히 불미스러운 소식이 도착했다.”
“예. 약혼이 취소될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나폴리의 왕세자와 결혼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마리아 요제파가 천연두에 걸려 사경을 헤메고 있다고 하는구나. 회복이 어려워 보인다고 하니 이쪽도 준비를 해둬야 할 것 같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다고 해도 그 아름답다는 외모를 잃어버리는 건 확정된 사실이나 마찬가지. 당연히 혼담도 깨지겠지.”
“오스트리아의 수도에 천연두가 돈 건가요?”
천연두는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고 알려진 역병이다.
오귀스트는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천연두로 인한 사망은 부르봉 왕가에도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귀스트는 자신의 고모 중 무려 3명이나 천연두로 요절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딸들을 떠나보낸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린 루이 15세의 표정이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래.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5녀 엘리자베트, 그리고 9녀 요제파가 천연두에 감염되었다. 테레지아와 엘리자베트는 어떻게든 회복했다고 하지만 요제파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요제파 대신 그녀의 동생인 카롤리나가 나폴리 왕국으로 갈 가능성이 높을 게다.”
“그래서 제 약혼이 취소될 거라고 한 거로군요.”
본래 마리아 테레지아의 열 번째 딸 카롤리나는 프랑스의 왕비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언니 요제파가 천연두로 죽어서 예정되어 있던 순번이 앞으로 하나씩 당겨진 것이다.
루이 15세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카롤리나는 그녀의 어머니를 닮아 강인하면서도 능력이 출중한 공주였기 때문이다.
반면 다음 왕이 될 손자 루이 오귀스트는 좋은 사람이긴 해도 카리스마나 리더십의 부재가 심각했다.
오죽하면 가정교사들이 매일같이 찾아와 왕태자를 다잡아달라는 간청을 올릴 정도겠는가.
여기에 대인기피증과 근시까지 겹쳐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도 잘 하지 않았다.
루이 15세 역시 결단력이 없고 우유부단하다는 평을 평생 동안 들어왔기 때문에 남 말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가 손자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여인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루이 15세는 거리낌 없이 여자들을 취했으며 총애는 할지언정 일방적으로 휘둘리진 않았다.
하지만 왕태자 루이 오귀스트는 여자를 취하기는커녕 아직까지 동침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만약 오스트리아의 기 센 공주와 결혼한다면 평생을 잡혀 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카롤리나가 프랑스가 아닌 나폴리로 가게 된 건 어찌 보면 다행일지도 몰랐다.
“약혼이 취소되긴 했지만 결혼 자체가 취소된 건 아니다. 테레지아에게는 막내딸이 한 명 있으니까. 상황이 안정되면 그 아이와 너의 혼담이 오가지 않을까 싶구나.”
“···그렇습니까······.”
잠깐 생기가 돌았던 오귀스트의 얼굴이 순식간에 다시 죽상이 됐다.
누가 봐도 결혼이 취소되기를 바라는 사람의 반응이다.
손자의 패기 없는 모습에 결국 국왕의 입을 뚫고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오귀스트, 넌 여자를 안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냐? 네 나이가 내년이면 열넷이다. 여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좀이 쑤시고 성욕이 폭발하기 시작할 무렵이란 말이다. 그런데 어찌 된 게 너는 전혀 여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더구나.”
“···송구합니다.”
“혹시, 정말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그···남자가 좋은 건 아니겠지?”
거의 속삭이는듯한 물음에 오귀스트가 펄쩍 뛰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그러니까···저는 아직 여인과 동침하는 건 조금···더 나이가 든 뒤에······.”
“나이는 이미 충분하다. 내가 네 나이 때 어땠는지 아느냐? 7살 연상의 왕비와 첫날밤을 가졌을 때도 나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그래, 하루종일 할 수도 있었지.”
실제로 루이 15세의 성욕은 왕비 혼자서는 감당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애첩인 퐁파두르 부인도 있었지만, 그녀조차 왕의 성욕을 다 감당하기는 힘들다는 푸념을 종종 하곤 했다.
그는 심지어 나이가 이제 60을 바라보는 와중에도 퐁파두르 부인이 세상을 뜨자 새로운 애첩을 들여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지금 한창인 10대에 미적지근한 손자를 보고 있으려니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내 노파심에 말한다만 네가 왕이 되었을 때도 그런 모습을 보이면 귀족들이 얕잡아 볼 수밖에 없단다. 세상 어느 귀족이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 하는 왕을 두려워하겠느냐.”
“노력해보겠습니다.”
“후··· 이런 일이 노력을 해야 하는 문제라는 게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구나.”
“···송구합니다.”
이런 얘기가 오고 간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그때마다 손자놈은 앵무새마냥 똑같은 대답만 하고 있으니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혹시 손자의 남성으로서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후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니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루이 15세는 갑작스레 꼬인 정략결혼보다 이쪽 문제가 훨씬 더 골치 아팠다.
“그래. 아직 정식으로 약혼을 하려면 몇 년 정도는 더 걸릴 테니 그 노력이란 걸 해보아라. 듣자 하니 테레지아의 막내딸은 활달한 성격이기는 해도 온화하고 다른 사람에게 잘 맞춰준다고 하더구나.”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쯧쯧, 바로 그렇게 안심했다는 반응을 보이니 네가 나약하다는 말을 듣는 게다. 그럴 땐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대범함을 보여야···. 아니, 됐다. 어쨌든 노력을 한다고 했으니 믿고 지켜보마.”
“할아버님, 그런데 그 막내 공주의 이름은 어떻게 되나요?”
“이름?”
루이 15세가 책상 위에 놓인 종이 뭉치를 집어 들었다.
“얼마 전에 듣긴 했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계속 깜빡깜빡하는구나. 어디 보자··· 여기쯤에 뒀던 것 같은데.”
그리고는 안경을 쓰고 서류들을 불빛 가까이에 대고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찾았다. 나이는 너보다 한 살 아래구나. 이름은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한나. 피부가 아주 뽀얗고 깨끗하다고 하니 이대로 크면 상당한 미녀가 될 게다.”
18세기의 유럽은 천연두로 인한 곰보가 워낙 많기도 했고, 피부에 좋지 않은 화장품을 덕지덕지 발라 피부 트러블이 만연한 시대였다.
그러다 보니 흠 없는 피부는 그것만으로도 미녀로서 떠받들어지는 경향이 강했다.
오귀스트도 고자는 아니었기에 아내가 될 사람은 당연히 미녀인 쪽을 바랐다.
“마리아 안토니아···. 기억해 둬야겠군요.”
“그건 어디까지나 오스트리아식으로 읽었을 때 이름이니 그 아이가 프랑스로 오게 되면 또 다를 게다. 이쪽으로 건너올 때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포기하고 모든 걸 프랑스식으로 바꾸게 되니까.”
“아, 그랬지요. 그럼 제가 그녀를 직접 보게 될 무렵이면 마리아 안토니아라는 이름은 쓰지 않을 테니 프랑스식 이름으로 기억해 두는 게 낫겠군요.”
“그래. 우리식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면 이렇게 발음할 수 있겠구나.”
루이 15세가 미래에 프랑스로 오게 될 오스트리아 막내 공주의 이름을 손수 적으며 발음해 보았다.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
오귀스트는 종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그 이름을 연신 중얼거렸다.
국가 전체를 들썩이게 할 만큼 커다란 변수만 없다면 그녀는 분명 자신의 약혼녀가 될 것이기에.
※※※
인류 역사상 첫 백신 개발을 위한 준비는 막힘없이 진행 중이었다.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자료들은 이미 준비되었고 이제 모두에게 선보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영국에서 막 도착한 에드워드 제너를 포함해 이 프로젝트의 주역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 왔다.
나를 제외한 다른 세 명은 이미 회의실에 모여 서로 안면을 트는 중일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앙숙이라고는 해도 셋 모두 지식인이니 이성적인 태도로 대화를······.
“나참, 아무리 의도가 좋은 일이라고 해도 영국인이랑 같이 일해야 한다니 이런 변이 있나!”
“누군 좋아서 교수님과 함께 일하는 줄 아십니까? 그리고 싫으면 그냥 빠지시죠. 아무도 안 말립니다.”
할 리가 있나. 프랑스와 영국이 만났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서로 삿대질하면서 싸워대고 있는 기요탱과 제너, 그리고 멀찍이 떨어져서 팝콘이나 뜯고 있는 앙투안 로랑이었다.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두 사람은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언성을 높여댔다.
“아니, 생각을 해보니 천연두를 퇴치하는데 영국인이 기웃거리는 것부터가 웃기지 않나? 저번 전쟁에서 불쌍한 인디언들에게 천연두 세례를 퍼부은 게 어느 나라였더라?”
“아이고~ 누가 보면 프랑스는 식민지 원주민들을 관대하게 대한 줄 알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영국에 비할 수는 없지. 솔직히 말해서 착취, 수탈, 학살 그 어느 분야를 가지고 와도 세계 최고 존엄은 영국 아니겠는가.”
이거 계속 두고 보면 드잡이질이 아니라 살인사건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겠다.
영국과 프랑스의 국민감정이 서로 안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가관이다.
현대의 한중이나 한일 관계는 그냥 애교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지금의 영프는 서로 몇 년이나 피 흘리며 싸워댔으니 사실 이러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영국과의 전쟁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시민들은 파리에 차고 넘쳤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고깝게 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쪽이 도리어 이상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계획만 잘 풀리면 역으로 내 주가가 더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예상보다 더욱 험악한 양국의 국민 정서.
이건 내게 악재가 아닌 호재였다.
그래. 오히려 좋아.
“자, 너무 과열된 것 같은데 다들 머리 좀 식히고 이야기를 나눠보죠.”
뒤늦게 내 등장을 알아차린 기요탱이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도로 의자에 앉았다.
“허허, 이거 오신 줄도 모르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요.”
기요탱은 나를 어느 고위 귀족의 자식이라고 소개받았고 철석같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긴 하니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닐 것이다.
“두 분의 심정이 어떤지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일은 수천, 아니 수억의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감정적인 반응은 잠시 접어두고 대의를 생각하도록 하죠. 이 자리에 있는 동안은 서로에게 예의를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당연히 저도 로랑 라부아지에나 도련님 앞에서는 철저하게 예의를 지킬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어리로 파이를 만들어 먹는 인간들은······.”
“누가 정어리로 파이를 만들어 먹는다는 말입니까!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누구긴 누구야! 자네들 영국인들이지!”
“근거 없는 모함입니다!”
이를 악물고 부정하는 제너의 반박에도 기요탱은 코웃음을 치며 계속 쏘아붙였다.
“근거가 없긴 왜 없나. 영국 서남쪽을 방문했다가 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는데. 음식으로 장난치는 건 선 넘은 거지!”
“뭘 몰라서 그러시는데 영국에도 맛있는 요리들은 있습니다. 로스트 비프 같은 요리는 프랑스에서도 가져가서 변형시키지 않았습니까.”
“내 그리 말할 줄 알았지. 그저~요리 이야기만 나오면 로스트 비프 이야기. 영국인들은 어째서 요리 이야기만 나오면 앵무새처럼 로스트 비프 타령만 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것밖에 자랑할 게 없나? 인도 점령에 사활을 거는 것도 그래서인가 보군. 자기네 음식이 더럽게 맛이 없으니 인도를 먹어서 요리라도 흡수해보려고.”
“그러는 프랑스인들은 내세울 게 요리밖에 없나 봅니다? 왜, 뭘 해도 우리 영국에 밀리니까?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저번에 체스도 우리가 이겼었죠? 전쟁도 지고, 식민지 경영 실적도 밀리고, 하다못해 체스까지 지는데 요리라도 이겨서 다행이네요.”
이번엔 기요탱이 발작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눈을 부라렸다.
“뭐라고!”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이 사람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이 맞긴 한 걸까.
어떻게 이렇게 유치할 수가.
유학 시절에 우리네 맥주가 최고네 어쩌네 하면서 싸워대던 유럽 친구들을 보던 느낌이었다.
이 정신연령 낮은 아저씨들을 앞으로 어떻게 중재해 나가야 하나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다.
게다가 말싸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이후로도 거의 30분간을 되도 않는 주제로 싸워대더니 멱살까지 잡아댔다.
“이 정어리 파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말 다했소? 바게뜨 대가리를 확 깨버릴까 보다!”
오 기요탱이 멱살을 잡았다. 저게 그 유명한 길로틴초크인가.
이게 남의 일이라면 팝콘을 뜯으며 즐겼을 테지.
그런데 문제는 이게 앞으로 나와 함께 일해야 할 사람들의 현실이란 거다.
게다가 다 큰 어른들의 한심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내가 다 부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좀 해보라는 내 시선을 눈치챈 젊은 라부아지에가 슬쩍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진짜 영국인들은 정어리로 파이를 만들어 먹습니까?”
“······.”
아무래도 이 인간은 처음부터 그게 제일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래, 뭔가를 기대했던 내가 모질이 병신이지 얘넬 탓해서 어쩌겠는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 앞으로의 일정을 머릿속으로 조정해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