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137)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137화 영구박제(137/355)
< 영구박제 >
오랜 세월 정치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유명한 속담인 기호지세.
호랑이 등에 탔으면 끝까지 내달리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리는 영역은 없다.
계획이 틀어지든 방향이 바뀌었든 일단 하기로 정했으면 뻔뻔할 정도로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언제나 플랜 b, c를 염두에 두고 있는 조심성 있는 성격이 이번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크리스티앙, 진짜 괜찮겠어?”
물론 기호지세 같은 단어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소심의 끝판왕 오귀스트는 정확히 13번째 같은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형님, 아무리 형님이라고 해도 같은 질문을 15번 하면 정말로 화낼 겁니다.”
“그러면 아직 한 번 정도 더 기회가 남은 거 아닌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무 걱정도 할 필요 없습니다. 아니, 지금 상황만 보면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어요. 형님에게 필요한 건 뻔뻔함입니다. 앞으로는 조금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하게 나가 보세요. 형님 성격상 그 정도가 딱 좋습니다.”
“너가 가끔식 말하던 그 뭐더라···정신승리? 그런 걸 해보면 되는 건가.”
일국의 왕이 될 사람이니 차라리 그게 더 낫다.
내가 전력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오귀스트의 긴장으로 굳어져 있던 얼굴이 조금이나마 펴졌다.
“거울의 방에는 이미 귀족들이 다 모여있을 겁니다. 가시죠.”
“그래. 폐하도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
크게 심호흡을 한 오귀스트가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거울의 방 앞까지 오자 점점 더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직 회의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열기가 아주 뜨겁다.
노예무역 폐지와 단계적인 노예제 폐지라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리라.
원래 나라의 법률과 제도를 결정하는 건 국왕의 의지가 크게 작용하지만, 이번은 워낙 큰 사안이었기에 이렇게 회의까지 열린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귀족들과 성직자들이 열심히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며 갑론을박을 벌이는 중이다.
무려 영국의 총리가 직접 방문해 협조를 요청한 사안인만큼 민간에도 이미 소문이 다 퍼졌다.
신문에서도 이 화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었고, 지식인들도 당연히 한 마디씩 의견을 내놓았다.
물론 논쟁이 치열한 1, 2계급과는 달리 3계급에서는 압도적으로 찬성 여론이 높았다.
자신에게 걸린 이권이 별로 없는데 굳이 노예제를 옹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중에는 껌둥이들을 노예로 부리는 게 뭐가 잘못이냐는 생각을 가진 이도 꽤 있었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생각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건 평민들만이 아니라 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예제 찬성론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해 다른 이유를 가져다 붙였다.
“현재 노예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습니다. 폐지를 하게 되면 경제적인 혼란이 예상되니 절대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바로 이렇게.
물론 이번 회의는 사실 노예제 폐지로 결론이 정해져 있는 답정너였으니 헛된 발악이지만.
“노예 무역은 수요가 많이 떨어졌네. 이미 신대륙으로 건너가 있는 노예들의 수가 엄청나게 불어났으니까.”
내 한 마디에 노예제 존속을 외치는 귀족 진영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실 내가 노예제 폐지에 가까운 입장이라는 건 다른 귀족들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피트와 따로 만남을 가졌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고, 사전에 의미심장한 말을 많이 하기도 했으니.
그래서인지 최근들어 상당히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는 귀족들은 전부 노예제 존속을 외치고 있었다.
벨릴 후작이나 로네이 후작 같은 인간들이 대표적이다.
아마 이번 일을 나름 합법적으로 나에게 태클을 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거겠지.
여기까지는 샤르트르 공작이 아주 일을 잘해주고 있다.
하지만.
“······.”
슬쩍 돌아보니 샤르트르 공작은 무심한 얼굴로 다른 곳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이번 회의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다.
겉으로 보기엔 아주 순종적이지만 뒷구멍으로는 개혁파 지식인들과 접촉중이라 이거지.
무슨 꿍꿍이속인지 얼추 보이긴 하지만 일단 당분간은 마음대로 설치게 내버려 두자.
지금은 손봐줘야 할 인간들이 워낙 명백하니까.
“왕자 전하께서는 노예제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 보군요.”
불쌍한 벨릴 후작은 자신이 지금 사자에게 잡아먹히기 일보 직전인 노루 새끼라는 사실조차 자각못한 듯 열심히 입을 놀려댔다.
“하지만 누벨 프랑스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면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할 터. 노예제를 폐지했다가 괜히 쓰지 않아도 될 비용을 더 쓰게 되는 게 아닐지 우려스럽습니다.”
“벨릴 후작 오히려 반대일세. 누벨 프랑스는 대규모의 노예를 사용하는 산업을 키우기엔 적합하지 않으니까. 설마 자네는 내가 책임지고 있는 지역조차 제대로 파악 못하는 머저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생도맹그 지역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쪽은 노예들을 사용하는 설탕생산이 주를 이루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수입 또한 엄청나고요.”
“생도맹그야 노예제를 폐지하면 수입이 조금 줄긴 하겠지. 하지만 거기서 줄어드는 수입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커다란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 걱정말게. 참고로 누벨 프랑스쪽은 처음부터 노예를 쓰지 않았다네. 폐하께서도 윤허하신 일이고. 자네는 조금 불만이 있는 모양이지만.”
신대륙 방면의 전권은 처음부터 내가 지니고 있었고, 이건 국왕이 허락한 사안이다.
꼬우면 네가 프랑스의 국왕 하든가.
상당히 유치한 압박이었지만 절대왕정에서 이보다 효과적인 공격은 또 없다.
자칫 잘못하면 왕권에 도전하는 신하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벨릴 후작 역시 바로 꼬리를 내리고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우려를 표한 것뿐이었습니다.”
벨릴 후작이 찍소리도 못하고 물러나자 이번에는 로네이 후작의 차례였다.
그는 경제 대신 다른 쪽을 들어서 자신의 논리를 강화했다.
“제가 알기로 노예제는 현재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기 아프리카의 검둥이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이 아니니 노예로 다루든 말든 상관이 없지 않을까요? 가축을 우리에 가둬놓고 사료만 먹인다고 그걸 해방하라 주장한다면 누가 찬성하겠습니까.”
“로네이 후작. 자네가 생각하는 인간의 정의라는 걸 좀 말해주겠나? 유럽의 사람들은 당연히 인간이고, 저기 신대륙의 사람들도 인간으로 인정을 받았지. 그럼 흑인들은 어째서 인간이 아닐까?”
“그거야······.”
로네이 후작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애초에 흑인이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한 건 다분히 경제적 논리 때문이었다.
신대륙에서 설탕, 담배는 생산해야 하는데 인디언들은 노예로 못 다루니 누군가는 대신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낙점된 이들이 흑인이었으니 논리가 조악한 게 당연했다.
그때서야 어떻게든 끼워맞췄어도 지금 보면 결국 아무튼 흑인은 인간이 아님. 아무튼 그럼. 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일단 검둥이들은 자신들의 문명이랄 게 없습니다. 그럴만한 지능이 안 되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신대륙 원주민들도 남쪽의 잉카나 중부의 아즈텍, 마야 같은 곳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나라를 이루지 못했네. 자네 논리대로면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인간이 아닌 건데 현실은 그렇지 않지.”
“그들은 그래도 최소한의 잠재력은 있었습니다. 인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최저한의 선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렇게 치면 자네가 검둥이라고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 이들도 먼 옛날에는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적도 있네. 그러면 이집트는 인간도 아닌 자들이 파라오 행세를 한 적이 있다는 말이로군. 이런 변이 있나······.”
로네이 후작이 어떻게든 흑인은 노예가 제맛이라는 논거를 펼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사이, 나는 미리 교황청에서 받아둔 서신을 꺼내 앞으로 펼쳐보였다.
“참고로 교황 성하께서도 이번 결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고 하셨네. 이제라도 과거의 잘못된 과오를 뉘우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게 우리 기독교인들의 의무라고 하시는군.”
교황의 공식적인 의견이 튀어나오자 노예제 찬성쪽에 있던 주교들이 슬그머니 이쪽으로 넘어왔다.
영국과 프랑스가 의견을 같이하고 여기에 교황이 명분까지 얹어준다면 감히 누가 반대를 더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실권이 많이 떨어진 교황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인권 문제에서는 아직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내가 적어도 명분 쪽에서는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사전에 교황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흑인들이 인간이냐 아니냐 하는 건 이제 정식으로 논의해 봐야 할 사항이겠지. 로네이 후작 같은 사람들의 의견을 무작정 깔아뭉갤 마음은 없네. 그러니 이 자리를 빌려 정식으로 선포하지. 200년 전에 있었던 바야돌리드 논쟁처럼 이곳 파리에서도 똑같은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으니 로네이 후작과 벨릴 후작은 꼭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게.”
나는 영국의 왕 조지 3세와 프랑스의 국왕 루이 15세, 그리고 교황 클레멘스 14세의 서명이 나란히 찍혀 있는 공문서를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눈치빠른 노예제 찬성 귀족들은 자신들이 뭔가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은 듯 했다.
그리고 슬슬 눈치를 보며 이쪽으로 붙으려고 했으나, 벨릴 후작이나 로네이 후작은 꺼낸 말이 있어서 그럴 수도 없었다.
“영국에서도 저명한 학자들과 귀족이 올 테고,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쪽에도 정식 참가를 요청할 생각일세. 우리 쪽도 이렇게 의견이 갈린다는 걸 직접 확인했으니 유익한 토론이 될 수 있겠군.”
“아니, 전하 그······.”
“일단 여기 있는 귀족들은 전부 참석명단에 올려두겠네.”
귀족들의 얼굴이 화장실의 휴지조각만도 못하게 구겨졌다.
지금 열심히 반대의견을 펼치는 이들중 진짜로 노예제를 수호하려는 이들은 절반도 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겠는가.
저들은 이번 일도 당연히 나와 왕태자가 차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로 여기고 거기에 태클을 걸려던 거다.
설마 이렇게 엄청난 무대에 자신들이 강제로 끌려서 나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
이들의 운명은 역사에 노예제를 끝까지 옹호한 파렴치한 귀족으로 영구박제 당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인간말종으로 찍히게 되면 적당히 이유를 붙여다가 쓸어버리는 것도 한결 편해진다.
확실하게 여론만 조성할 수 있으면 누구도 문제를 삼지 않으니 말이다.
털어서 먼지가 나올 때까지 털다가, 정말로 안 나오면 바닥에 던져서 먼지를 묻힌 다음에 처벌한다.
그게 바로 이 시대의 적법한 사법 집행이자 정의구현이었다.
물론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니 대표로 몇 명만 쳐내고 나머지는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지.
정적들마저 품는 모습을 보여주며 진정한 귀족의 품격을 드러낼 기회이기도 했으니.
그러나 지금은 일단 바짝 겁을 집어먹게 만들 차례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저는 왕자전하의 말씀이 맞······.”
“자, 그럼 확실히 반대하는 사람들의 명단이 어디 보자···벨릴 후작, 로네이 후작···그리고······”
“저, 전하!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국왕 루이 15세의 한 마디가 장내를 울렸다.
“그럼 이렇게 오늘은 마치기로 하지. 이만 일어나 보겠네.”
“예! 오랜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이 15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인사를 올리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귀족들을 지나쳐 거울의 방을 나왔다.
< 영구박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