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138)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138화 파리 논쟁(138/355)
< 파리 논쟁 >
영국의 총리 윌리엄 피트는 천천히 항구에 정박하는 배 위에서 연설문을 점검하고 있었다.
“드디어 이 때가 왔군.”
“그러게. 설마하니 이 정도로 판을 크게 키울 줄은 몰랐는데.”
잔뜩 들떠있는 윌버포스와 달리 피트는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했다.
“이 회의가 끝난 뒤로 이제 누구도 노예제를 대놓고 옹호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리겠지···진즉 이랬어야 하는데.”
“자네가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지. 다만 이렇게 되면 프랑스쪽이 오히려 더 주목을 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겠어.”
이 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한 윌버포스야 묻힐 걱정은 없겠지만, 프랑스가 발을 걸치는 수준을 넘어서 주역 중 한 명이 되는 건 그리 반갑지 않다.
그냥저냥 이쪽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정도면 됐는데 설마하니 이렇게 나올 줄이야.
“이번 파리 논쟁은 분명 먼 미래에 바야돌리드 논쟁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게 될 걸세. 나는 그렇게 확신하는 중이야.”
그래. 그래서 바로 문제라는 거다, 친구야.
“분명 이전에 방문했을 때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는데 교황은 또 언제 섭외한 건지.”
감탄이 나올 정도의 저돌성과 행동력이다.
게다가 이렇게 크게 판을 벌여서 모든 관심을 흡수하는 쇼맨쉽까지.
피트는 저번의 만남과 파리 논쟁의 기획을 보고 아직 자신은 크리스티앙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그게 패배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갖춘 존재가 있으니 보고 배우면 되는 게 아니던가.
과거 로마를 공포에 질리게 했던 한니발을 쓰러트린 건 그의 전술과 전략을 흡수한 로마인 스키피오였다.
보고 배울 대상이 있다는 건 아직 성장 중인 젊은이에게는 축복이나 다름없다.
‘어디 마음껏 수완을 펼쳐 봐라. 철저히 분석하고 내 양식으로 삼아줄 테니.’
피트가 상념에 잠긴 사이 어느새 배가 항구에 완전히 정박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총리님, 의원님. 하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근처에 있던 해군 장교가 절제된 움직임으로 다가와 경례를 올렸다.
“그래. 수고하게.”
피트는 윌버포스와 함께 육지에 발을 디뎠다.
뒤를 슬쩍 돌아본 피트가 호위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 중인 장교를 바라보며 작게 혀를 찼다.
“내가 듣기론 해군 장교 중에도 노예제를 옹호하는 이들이 꽤 있다던데 자네도 알고 있겠지?”
“문제될 게 있겠나? 오히려 이 논쟁을 지켜보면서 생각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거야말로 좋은 일일 텐데.”
“그래. 딱히 문제는 생기지 않겠지. 가세.”
어차피 현 유럽 최강국들의 이해가 일치한 이상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
중요한 건 이후의 판을 짜는 능력이다.
그 점에서 피트는 자신이 있었다.
물론 상대방을 얕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가 믿는 건 자국 영국의 저력이었다.
설령 자신이 아직까지는 크리스티앙보다 한 수 아래라고 하더라도, 대영제국은 프랑스에게 지지 않는다.
그 믿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
파리 논쟁.
흑인들에게 인권이 있는가를 결정하는 이 회의에는 어마어마한 석학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노예제를 옹호하는 쪽보다는 반대하는 쪽에 무게가 더 실렸다.
그도 그럴 게 지금은 한창 인권을 중시하고, 사람의 자유를 강조하는 사상이 싹트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바야돌리드 논쟁 때 인디오들을 사람으로 인정받게 한 도미니코회 수사와 수녀들은 각오가 남달라보였다.
“왕자 전하. 참으로 고마운 자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신께서도 전하의 신실함에 크게 기꺼워하실 겁니다.”
“그저 당연히 해야만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게까지 칭찬받을 일은 아닙니다.”
“그 당연한 일이 지금까지 온갖 궤변과 욕망에 가로막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큰일을 해주신 겁니다.”
각국에서 온 주교들과 지식인들은 연신 내게 감사와 상찬의 말을 건넸다.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압제자들에 맞서 정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굳이 입으로 듣지 않아도 그들의 눈은 그런 사명감으로 불타오르는 중이었다.
“의욕이 아주 넘치는군요.”
가장 늦게 이쪽과 합류한 피트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지식인들을 바라보며 감상을 툭 던졌다.
“좋지 않습니까. 그만큼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는 뜻이니까요.”
“찬성측을 보니 프랑스쪽에서도 꽤 이름난 후작이 나오더군요. 이쪽도 마찬가지로 그쪽도 아직 무역에 한발 걸치고 있는 귀족들이 많은가 봅니다.”
“뭐···대강 그렇죠.”
사실 이번에 희생양으로 무대 위에 오르는 벨릴 후작은 노예무역과는 크게 연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정치적 공작의 일환으로 딸려온 사람이라는 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런데 역시 영국쪽은 조금 더 체계가 잡힌 모습이로군요. 다른 국가들과는 다르다고 해야하나······.”
“기술적으로 사상적으로도 거듭 발전 중에 있기 때문이겠죠. 앞으로도 더 그럴 겁니다.”
피트는 굳이 자신들의 내실을 감추지 않고 버젓이 드러냈다.
이번에 호위를 위해 대동한 해군들도 과시하려는 목적이 있는 듯 정예로만 편성한 게 딱 보였다.
그리고 다시금 확신했다.
이대로 무난하게 가면 프랑스는 결국 영국에 밀린다.
원역사에서 영국과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다가 결국 밀린 러시아처럼.
“저번에 듣자하니 영국의 세번 강에 철교가 완공됐다는데 그 모습이 꽤나 장관이라지요?”
“아시는군요. 아마 세계 최초의 철교일 겁니다.”
느그 나라에는 이런 거 없지? 하는 속내가 팍팍 느껴지는 자랑에도 나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그래야 효과적으로 체질 개선에도 성공할 수 있는 법이니까.
지금의 프랑스는 언뜻 보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최강대국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니, 지금 당장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성공적으로 산업 기술을 크게 발전시키고 있는 영국의 부상은 막기 힘들었다.
당장 원 역사에서도 러시아 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전 유럽을 상대해도 될만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까보니 이는 속빈 강정에 가까웠고, 대영제국과의 경쟁에서 패배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러시아 제국의 시스템이 대영제국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농노제를 계속 유지하고 귀족들의 권력이 강한 구시대적인 절대왕정.
이런 꼴로 나라가 계속 돌아가고 있으니 덩치만 크고 내실은 딸리는 국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프랑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한 번 커다란 변혁을 맞이하지 않으면 프랑스가 원 역사의 러시아 제국처럼 되겠지.
다행히 아직은 피트도 여기까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능력적인 부분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이건 이미 결과가 나온 역사적 사실을 깊게 고찰하지 못하면 도달할 수 없는 결론이었던 까닭이다.
“총리님. 이왕 파리에 오셨으니 오늘 저녁은 저와 함께하시죠. 제가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예. 윌버포스도 함께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아직 저희 프랑스에 철교는 없어도 기가 막힐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은 넘쳐나니 마음껏 만끽해 주십시오.”
“영국도 로스트 비프라는 걸출한 요리가······.”
응, 아니야. 스테이크가 훨씬 맛있어.
피트의 말을 적당히 한 귀로 흘리며 마차에 오르려던 찰나.
저 뒤에서 각잡고 서있는 장교의 얼굴을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는 거 같은데 대체 왜 낯이 익은 거지.
“총리님. 저기 호위를 맡은 병사들도 함께 궁으로 불러주십시오. 멀리서 온 귀빈들이니 따로 식사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병사들가지 따로 챙겨주신다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저기 장교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파리에 머무는 동안 종종 볼 수도 있으니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좋아. 아주 자연스러웠어.
피트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가 지목한 장교를 데려왔다.
젊은 장교는 조금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나와 피트를 향해 경례를 올렸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해군 대위, 호레이쇼 넬슨입니다.”
“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어쩐지 어딘가에서 봤다 했더니···초상화에서 본 사람이었던건가.
잠깐 굳어 있던 나는 뻗뻗하게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앞으로 종종 볼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잘 부탁하네 넬슨 대위.”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어쩌면 피트 이상으로 프랑스의 앞을 가로막는 숙적이 될 수도 있는 인물의 손을 잡고 크게 흔들었다.
피트는 옆에서 조금 떨어진 채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
“감사합니다! 전하! 정말로 감사합니다!”
“워워, 됐으니 그냥 가보게. 나도 원래부터 자네들을 그렇게 심하게 다룰 마음은 없었으니.”
넙죽 무릎이라도 꿇으려 하는 귀족들을 만류하며 나는 한창 회의가 진행 중인 궁전 내부로 들어갔다.
처음에 노예제 폐지 반대 명단에 올라있다가 이름이 지워진 귀족들은 세상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내 뒤를 쫄랑쫄랑 따라왔다.
“저희는 앞으로 절대 왕자 전하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벨릴 후작이 마음대로 나선 거지 저희는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 없었습니다. 물론 전하께서는 이런 저희의 형편을 다 꿰뚫어 보시고 선처를 해주셨겠지만······.”
“그래. 앞으로는 언행에 한층 더 주의를 기울이게. 자네들은 이 나라의 귀족이니까.”
저 헤벌쭉 벌어지는 입을 보라.
하긴 역사책에 영구박제 당하는 일을 모면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이번 일의 주동자격인 베릴 후작 정도를 제외하고 대다수는 이번 회의에서 발을 빼는데 성공했다.
처음부터 이들을 싸그리 다 박제할 마음은 없었기에 통크게 용서해주는 척 하는 연기를 한 것이다.
예상대로 효과는 아주 좋았다.
이번에 명단에서 제외된 귀족들은 이제 대놓고 내 편에 서겠다며 충성맹세를 해댔다.
개중에는 벨릴 후작이 저지른 소소한 비리를 고발하는 자도 있었다.
물론 나는 지금 돌아선 귀족들을 완전히 믿을 정도로 순진하진 않았다.
이들 중 최소 절반은 기회가 왔다 싶으면 내 뒤통수를 치기를 주저하지 않을 이들이다.
그럼에도 지금 수치를 피하게 해준 건 명분을 쌓기 위해서다.
고작 역사에 박제해서 두고두고 수치를 당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혈풍이 몰아칠 때를 위한 사전준비.
“개인의 이익을 도외시하라는 말도 안 되는 주문을 할 마음은 없네. 하지만 적어도 많은 특혜를 누리고 있는 신분이라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옳은 길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도록. 이건 우리가 지고 가야 할 당연한 의무이니.”
“명심하겠습니다.”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정말로 알아들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로써 최악의 결말을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나를 탓하지는 못할 거다.
실제로 용서를 해주기도 했고, 최소한의 경고는 해두었으니까.
“자, 그러면 자네들 중 아무나 이 편지를 붙여줄 수 있겠나? 누벨 프랑스 쪽으로 가는 건데······.”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래. 그러면 자네에게···아니, 잠깐. 역시 한 줄 정도는 더 써둬야겠군.”
나는 봉투 안에 종이 한 장을 더 끼워넣고 적극적으로 앞에 나선 귀족에게 건네주었다.
급하게 휘갈겨 쓴 서신의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았다.
-앞에 적어둔 큰 틀만 지킨다면 현장의 재량을 최대한 발휘해도 상관없네. 그리고 이 연락이 도달하는 순간부터 자네는 더 이상 대위가 아닌 소령일세. 앞으로도 자네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겠네.
역시 넬슨이 대위인데 나폴레옹을 계속 같은 대위로 둘 수는 없지.
지금 한창 논쟁 중인 사안의 결론이 대서양을 타고 건너면 한동안 저쪽은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이제 느긋하게 불구경을 즐길 시간이다.
< 파리 논쟁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