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16)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16화 역습의 할아버지 (2)(16/355)
역습의 할아버지 (2)
이 황당하면서도 뜬금없고 어이 털리는 사태는 대체 무엇인가.
눈을 이리저리 굴려봐도 홀 안의 모두가 나를 보고 있어서 시선을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모두의 눈빛에 담긴 생각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저놈은 뭔데 국왕 폐하께서 직접 지명하시는 거지?
주목을 받을 생각도 없었고, 그럴 일이 일어날 거라는 예상조차 못 했기에 심각하게 당황스러웠다.
왕이 치매라도 걸렸나?
나를 지목하는 이유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가 되든 아니든 왕이 직접 말을 걸었으면 바로 응답을 해야 한다.
다행히도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당황한 블랑메닐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폐, 폐하! 저 아이는 그러니까······.”
“아까 환영식에서 보니 확 눈에 띄어서 기억에 남더군. 자네와 아는 사이인가?”
“···예. 아마도 제 사촌의 손자쯤 됐을···아니, 손자가 맞습니다. 저 아이가 워낙 총명해서 현재 저희쪽에서 돌봐주고 있습니다. 현재 리세 루이르그랑에 재학중으로······.”
“오! 선왕께서 후원하신 곳에 다니고 있다니 이 또한 인연이로군. 더욱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지는데?”
이 양반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혹시 내 정체를 눈치채고 일부러 떠보려는 건 아니겠지.
정보가 어디서 샌 게 아닌 이상 그럴 리는 없다.
그러면 대체 이유가 뭘까.
사실 환영식 때부터 나를 향한 루이 15세의 시선을 느낀 건 사실이다.
바로 고개를 숙여 잘 보진 못했지만, 그의 얼굴을 스친 감정은 경악과 당혹감이었다.
오징어에 가까웠던 전생과는 달리 지금의 나는 객관적으로 굉장한 미남이긴 했다.
또래의 여성들과 대화를 해보면 전생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반응들에 감격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국왕이 놀랐을 리는 없을 터.
애초에 루이 15세도 젊었을 적에는 유럽 제일의 미남자라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이지 않은가.
아니, 잠깐. 설마 그래서인가?
루이 15세까지 프랑스 왕실의 남성들은 호리호리한 미남자가 많았다.
하지만 내 아버지인 루이 페르디낭은 모계 쪽 혈통의 영향으로 비만에 가까웠고 그의 장남인 오귀스트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도 나는 할아버지 쪽의 유전자를 짙게 물려받았지만, 그만큼 어린 시절의 루이 15세와 많이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루이 15세 자신도 모르게 나에게 시선이 끌렸을 가능성은 있다.
게다가 같은 핏줄이니 이유 모를 어떤 끌림이 있었을 수도 있고.
철이 들 때부터 가족이 없었던 나는 이해할 수 없으나 간혹 그런 경우도 있다고 하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떤 확신을 가지고 나에게 말을 건 건 아닌 게 확실하다.
그냥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이니 한 번 불러봤을 뿐이라고 봐야겠지.
너무 당황하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을 추스른 나는 블랑메닐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잔뜩 위축된 척 어깨를 떨었다.
내 연기를 보고 감을 잡은 블랑메닐이 나를 감싸주는 척 변명을 늘어놓았다.
“총명하다고는 해도 이제 막 콜레주에 들어간 아이입니다. 폐하의 눈에 든 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지만, 이렇게 이목이 쏠린 곳에서는 아무래도 입을 열기가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아, 하긴 그렇지.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의견을 내보라고 하면 얼어버릴 수밖에. 내가 배려가 부족했나 보군.”
이제라도 알았으면 다행이네.
간신히 한숨 돌린 건가 싶던 찰나.
루이 15세가 주변을 슥 둘러보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 오늘 공개 만찬은 여기서 마무리해야겠군. 주변을 물려주게. 나를 보러온 고마운 시민들에게는 가는 길에 빵이라도 한 조각씩 나눠주도록 하고.”
“예? 폐, 폐하 갑자기 그게 무슨······!”
“생각해 보니 이런 국가 중대사를 완전히 개방된 곳에서 논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
그러면 13살 소년에게 그런 중대사를 물어보는 건 괜찮은 거냐.
아무래도 기어코 내 말을 한 번 들어보겠다는 건데 이쯤 되면 벗어날 방법은 없는듯싶다.
여기서 너무 빼기만 하면 국왕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이후의 내 입장을 고려한다면 차라리 유능한 면을 어필하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법원귀족들과 왕의 수행원들을 제외한 모두가 홀에서 나가자 자연스레 모두가 내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폐하의 앞에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영광입니다. 하지만 미천한 식견이 괜히 폐하의 심중을 어지럽히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이건 그냥 학생들의 의견을 한 번 들어보고자 하는 정도니 걱정하지 말거라. 기탄없이 말해보도록.”
“예. 그러면 감히 발언하겠습니다. 루이르그랑에 로마에서 유학 온 학생이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듣기로는 현재 교황 성하께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나도 그런 보고는 여러 번 들었다. 그럼 고등법원의 의견대로 교황이 새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는 뜻인가?”
현 교황인 클레멘스 13세의 수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아는 바가 맞다면 앞으로 길어봐야 2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등법원의 바람대로 예수회가 바로 추방되는 건 아니다.
그들에게는 안됐지만 이건 변하지 않을 역사적인 사실이다.
나는 여기에 그럴싸한 추론을 덧붙여 내 평판을 높일 기회로 삼기로 했다.
“하지만 새로운 교황께서 예수회를 바로 쫓아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블랑메닐을 비롯한 고등법원의 귀족들이 흠칫 놀라 이쪽을 흘겨보았다.
반대로 루이 15세는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괸 채 계속해보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현재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는 조반니 추기경을 차기 교황으로 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교황이 되신다고 과연 예수회를 즉결 추방할까요?”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이미 조반니 추기경은 예수회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약조를 했으니.”
“하지만 지지하지 않겠다는 게 곧바로 뿌리를 뽑아버린다는 건 아닙니다. 4년에서 5년 정도 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해체를 해도 추기경은 자신이 한 약속을 어기는 건 아닙니다.”
“그런 예측을 한 근거는?”
“조반니 추기경 역시 예수회의 교육을 받고 올라온 분이시니까요. 게다가 예수회 중 일부가 국가의 정보를 흘리는 첩자 노릇을 해왔던 건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게 백일하에 드러나는 건 카톨릭에도 좋은 일이 아닐 겁니다. 최대한 머뭇거리면서 시간을 끄는 사이 예수회 명의의 재산은 상당수가 빼돌려질 것이고 정보누출의 증거들도 폐기 되겠지요.”
의외로 설득력이 느껴지는 말이었는지 루이 15세도 마냥 내 말을 한 귀로 흘리진 않았다.
지금이야 반신반의하겠지만 내 말이 그대로 실현되면 이거 뭐지?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뜰 테지.
어차피 노예무역이 지속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은 이상 예수회에 집착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교회나 교황의 의지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19세기 초에 대영제국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이 단계적으로 폐지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정보를 까봐야 내가 이득을 볼 여지만 줄어드니 예언자 놀이를 할 마음은 없다.
나는 핵심적인 천기누설을 하지 않는 선에서 이어지는 루이 15세의 질문에 적당히 답을 해주었다.
문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국왕은 손자와 수행원들을 데리고 베르사유로 돌아갔다.
법원 귀족 중 몇몇은 국왕을 배웅하기 위해 파리 성문 밖까지 따라 나갔다.
그사이 연로함을 핑계로 자리를 뜨지 않은 블랑메닐이 따로 이야기하자며 나를 독방으로 데리고 갔다.
“도련님, 폐하께서 이러시는 의도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부터 꺼내는 걸 봐서는 어지간히 예상외였나 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조급해진 그가 재차 물었다.
“폐하가 도련님을 콕 집어서 말을 거신 이유가 짐작이 가십니까?”
“그건 제가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대법관께서는 폐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혹시 저와 닮았던가요?”
“그거야 초상화가 남아있을 테니 비교해 보면 될 거 같기는 한데···제 기억상으로는 확실히 조금 닮은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고작 그런 이유로?”
나는 대답 대신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누가 알겠는가.
루이 15세는 자식들을 몇이나 일찍 떠나보낸 사람이다.
핏줄에 대한 마음이 그만큼 각별해도 별로 이상하지는 않다.
물론 이제와서 허울뿐인 귀족으로 삼아준다고 해도 내 쪽에서 사절이다.
어차피 중요한 건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왕실이 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니.
“사실 폐하가 갑작스레 여길 방문한 거야말로 가장 의외였던 일 아닙니까? 저에게 말을 건 거야 사소한 일이죠.”
“···그렇긴 합니다. 아마도 전에 폐하 쪽과 가까운 법관들을 조사한 게 원인인 듯하군요.”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폐하께서는 법원을 찍어누를 기회를 살피고 계시다고요.”
“예. 저번 조사로 이미 심증은 굳혔습니다만, 이번에 이렇게까지 나오신 걸 보니 확실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제아무리 고등법원의 위세가 강하다고 해도 왕권과 비교하면 명월 앞에 반딧불.
다른 귀족들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무력하게 얻어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혈통귀족들이 법원의 편을 들어줄 가능성은 낮았다.
어쨌든 예수회를 때려잡는다는 건 그들도 찬성일 테니까.
블랑메닐의 노안에 새겨진 주름이 한층 더 깊게 파였다.
왕이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사실 나도 국왕의 이런 행보는 상당히 의외였다.
하지만 남의 불행은 언제든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는 법.
한 발 떨어져서 지금 정국을 분석해보면 나에게 해가 될 건 없었다.
오히려 지금이라면 선심 쓰는 척하면서 법원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
“대법관님. 예수회 관련 건이 질질 끌리면 여론에 좋을 게 없을 겁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미 법원은 예수회를 불법 조직으로 규정했습니다. 이 이상 강경하게 나가려면 폐하께서 힘써주셔야 하는데······.”
“적어도 교황이 먼저 나서기 전까지는 폐하가 직접 칼을 뽑아들 일은 없을 겁니다. 지금 이러시는 것도 지속적으로 여론을 환기시킨 뒤 법원을 고립시키려는 걸 테니까요.”
“예. 당연히 그걸 노리고 계시겠죠. 하지만 이쪽에서 딱히 대처할 수단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블랑메닐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혀를 찼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지금 당장은 어떤 방도가 없겠지.
그러니 그쪽은 내가 던지는 미끼를 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긴 합니다.”
“···그게 뭔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간단합니다. 폐하 측에서 귀족과 부르주아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고 한다면 더 큰 사건을 터트려서 주의를 돌려버리면 되는 거죠.”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여론전을 펼칠 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과가 좋은 방법이다.
안 그래도 법원 측에 여론을 움직여 달라는 부탁을 해야 했는데 루이 15세 덕분에 일이 잘 풀렸다.
“그거야 할 수만 있다면 최선의 방법이겠지요. 그런데 갑자기 없는 건수를 만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아니요. 곧 있으면 예수회 따위는 신경도 쓰이지 않을 만큼 커다란 사건이 터질 겁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나는 앞으로 법원에서 해줬으면 하는 일들을 쭉 일러주었다.
오묘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블랑메닐은 이내 무슨 생각을 하는 듯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말이 정말이라면··· 도련님에게 걸어보도록 하지요.”
※※※
베르사유로 환궁한 루이 15세는 오늘 있었던 일을 찬찬히 되새겨 보았다.
본래 고등법원의 불온한 움직임을 견제하러 간 것이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국왕의 심기는 어지러웠다.
오죽하면 오늘만큼은 최근에 흠뻑 빠져 있는 정부, 뒤바리 부인에게 갈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런 왕의 마음을 바로 꿰뚫어 본 시종장 르벨은 왕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오늘은 사슴 정원에 가시지 않는다고 일러둘까요?”
사슴 정원은 르벨이 루이 15세를 위해 만든 정원이었으나, 실상은 거의 하렘에 가까웠다.
그래도 여인들의 수는 10명 미만이었으며, 지참금을 받고 시집을 가는 것도 가능했기에 오스만 제국 수준의 하렘은 아니었다.
“그래. 그렇게 전해주게.”
“혹시 법원에서 귀족들이 폐하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만한 발언이라도 한 것입니까?”
“아니. 뒤에서만 떠들 줄 아는 그자들이 감히 내 앞에서 입이나 뻥긋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겠지요. 법복 귀족들이 감히 폐하의 정면에서 반론을 펼칠 배짱이 있을 리가요.”
루이 15세는 와인잔을 기울이며 빤히 시종장을 바라보았다.
시종장 도미니크 기욤 르벨.
이제 나이가 거의 70에 가까운 노인으로 거의 반평생 동안 루이 15세를 섬긴 시종이다.
그 오랜 경험 덕에 베르사유 궁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을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사람이었다.
와인을 한 잔 다 비운 루이 15세가 천천히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르벨. 자네는 페르디낭을 보좌하던 시종들과도 잘 아는 사이였겠지?”
“예. 그랬었죠.”
“그러면 페르디낭의 아이를 가진 채로 종적을 감췄던 그 여인의 행방을 아는가?”
“아니요. 조사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프랑스를 떠난 걸로 확인됐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도 따로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루이 15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그 일을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처리하라고 명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데 말일세. 오늘 이상하게 눈길이 가는 아이를 봤거든. 어렸을 때의 나를 꼭 닮았는데 이상하게도 페르디낭과 닮은 부분도 꽤 보이지 뭔가.”
“예? 설마 그럴 리가······.”
“그때 외국으로 흘러 들어갔을 그 아이가 무사히 자랐다면 딱 그 정도 나이가 됐을 거야. 물론 상식적으로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져 사람을 맞출 확률만큼이나 적을 테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이 노망이 난 게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할 정도의 빈약한 추론이었다.
세상에 닮은 사람 따위 뒤져보면 얼마든지 나온다.
하지만 루이 15세는 왜인지 모르게 계속 그 어린 소년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사이가 그리 돈독하지는 않았어도 자신보다 세상을 먼저 떠버린 아들에 대한 애착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들이 남긴 세 명의 손자는 루이 15세에게는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억울하게 해외를 전전하며 살아남은 아이가 한 명 더 있다면, 적어도 귀족으로서의 작위는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이가 60이 가까워지니 괜히 더 감상적으로 됐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쯤 돌다리를 두드려보는 느낌으로 가도 상관은 없으리라.
루이 15세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손수 빈 잔에 와인을 채워 넣었다.
“르벨. 이제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하는 자네에게는 미안하게 됐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일을 처리해줬으면 하네.”
“폐하의 명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대법관 블랑메닐이 후원하고 있는 아이가 한 명 있네. 아마 크리스티앙이라는 이름이었을 텐데. 지금 리세 루이르그랑에 다니고 있을 걸세. 그 아이의 출생 이력을 조사해보게.”
르벨은 우아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루이 15세는 한 잔 더 와인을 비우고 드넓은 서재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오늘.
호화로움으로 가득 찬 이 공간이 괜시리 황량하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