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184)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184화 상대가 안 된다(184/355)
< 상대가 안 된다 >
“좋아, 진격하라! 프랑스 놈들을 쫓아내자!”
“우오오오!”
호엔로에 공작의 거침없는 함성과 함께 프로이센군의 대공세가 시작되었다.
조심스럽게 정찰병을 운용해 간파한 대로 역시 프랑스군은 우익에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프랑스군의 속셈은 대강 예상이 됐다.
이쪽의 우익에 상대적으로 병력이 허술해 보이니 프랑스군의 좌익에 힘을 실어 치고들어오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희생양이 될 불쌍한 제물들로 검둥이들이 주력인 부대를 세워둔 게 틀림없다.
“자기과신에 빠진 젊은이들이 흔히 하는 실수지. 자신의 전략만 맞춰두고 상대방의 움직임까지는 예상하지 않는 초보적인 실수.”
프랑스군의 노림수는 어디까지나 좌익이 돌파하는 동안 우익이 버텨줘야 성립한다.
만약 우익이 지리멸렬 후퇴하면 오히려 프랑스쪽의 중앙이 위험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호엔로에 공작은 병력을 집중해 우익의 일점돌파를 선택했다.
이쪽의 우익이 상대적으로 병력의 수가 적다고 해도 영국군이 가지고 온 화포를 상당수 배치해 뒀다.
서로 전력을 집중해 타격한다면 무조건적으로 프랑스쪽이 먼저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실제로 용맹한 프로이센 병사들의 돌격에 프랑스의 우익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나며 대응사격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좋아! 적들이 도주한다! 이대로 놈들을 궤멸시켜버리자!”
호엔로에 공작의 독려에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교들의 얼굴에 실소가 번져갔다.
“뭐야? 제대로 된 싸움도 못해보고 계속 밀려나기만 하잖아?”
“깜둥이들이 다 그렇지. 그러면 쟤네가 뭐 잘 싸울 거라고 생각했냐?”
“아니, 아무리 그래도 총알받이 하라고 데려놨는데 그것조차 제대로 못할 줄은 몰랐지.”
“깜둥이들도 자기 목숨 아까운 줄은 아나보지. 크크크!”
평상시 같으면 방심하지 말라고 소리쳤겠지만 호엔로에 공작도 이번만큼은 똑같이 조소를 흘렸다.
지금 자신들이 쥐어패고 있는 대상은 신성로마제국군이나 프랑스군의 정예가 아니다.
프랑스 군복만 입혀놨다 뿐이지 실체는 노예로 굴러먹던 깜둥이들 아니던가.
깜둥이들 외에도 인디언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놈들도 깜둥이들과 별 다를 게 없는 놈들인 건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렇다 쳐도 총알받이 역할도 제대로 못해낼 놈들을 데려오다니···프랑스는 의외로 사람이 부족한 건가?”
역시 자유와 평등의 수호자니 뭐니 하는 헛소리를 하지만 프랑스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대면서 실속은 없는 나약한 놈들.
신에게 축복받은 땅에 태어난 덕에 언제나 흥청망청 놀기만 하는 놈들이 강건한 프로이센군을 이길리가 없었다.
“이거, 프랑스군의 수가 많아 걱정했는데 기우였습니다.”
“이대로 프랑스군을 격멸시키면 프랑스 본토로 밀고들어가는 것도 검토해보는 게 어떨까요?”
거침없이 적들을 밀어붙이는 아군의 용맹한 모습을 바라보는 호엔로에 공작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동시에 프랑스 놈들이 얻은 명성은 그저 허명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저런 깜둥이들을 군대로 부리는 수준의 놈들과 치고받고 싸워댔으니 이기지 못할리가 있는가.
온갖 모욕과 경멸, 조롱의 말이 떠올라 입이 근질근질했으나 지휘관의 체면이 있으니 일단 참았다.
어차피 하고 싶은 말들은 다 부하들이 대신 해주고 있었으니까.
“자자, 계속 밀어붙여라! 껌둥이들에게 백인들의 진짜 전쟁을 알려주자!”
“오늘 안으로 프랑스군을 밀어버린다! 전진!”
혼비백산 도망가는 적을 좇아 한참을 나아가자 처음으로 프로이센군의 진격속도가 떨어졌다.
이쪽의 포격과 총성에 정신을 못 차리던 놈들이 처음으로 반격다운 반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봐야 프로이센군은 당황하지 않았다.
“놈들이 응전한다! 침착하게 전열을 갖추고 응사하라!”
쥐새끼도 죽기 전까지 몰리면 고양이가 아닌 사람도 무는 법이다.
당연히 깜둥이나 인디언들도 무작정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놈들이 반항한다는 건 이미 궁지에 몰렸다는 방증이다! 그대로 찍어눌러라!”
“놈들이 있는 쪽에 엄폐물들이 많아 쉽게 접근이 어렵습니다!”
“그럼 병력을 넓게 펼쳐서 차근차근 조여라!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이다!”
몸을 숨길 지형이 생겼으니 나름 반항해보겠다는 나름 깜찍한 생각이긴 한데 그래도 열등한 놈들의 한계는 명확하다.
어차피 이쪽의 수가 월등한 이상 아무리 엄폐물에 몸을 숨겨봐야 측면이 노출되지 않는가.
“아니지. 뭔가로 몸을 숨길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칭찬해 줘야 하나? 저놈들 머리 수준으로는 그마저도 나름 애쓴 결과물일 텐데 내가 너무 백인들의 기준으로 생각한 것 같군.”
호엔로에 공작의 지시대로 병력의 우위를 살리기로 한 프로이센군은 종대에서 횡대로 전환하기 위해 공간을 확보해나갔다.
하지만 병사들이 생각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망원경으로 지켜본 호엔로에 공작이 처음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저기! 껌둥이들이 대응사격 중인데 저렇게 굼뜨게 움직이면 어떻게 하나!”
“평탄한 흙바닥인 줄 알았는데 음푹 꺼지는 곳이 꽤 많다고 합니다. 놈들이 함정을 파둔 것 같습니다.”
“뭐라고? 병신 같은 놈들이 꼴에 너절한 꼼수를······.”
몸이 푹 잠겨버릴 정도의 깊은 함정은 없었지만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거나 넘어질 정도의 구멍이 꽤 많았다.
이건 몇 시간만에 뚝딱 할 수 있는 작업량이 아니다.
이 근처에 처음 자리를 잡았을 때부터 몰래몰래 준비해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저 놈들은 전투가 이 부근에서 열릴 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설마···이렇게 되도록 우릴 유도한 건가? 아니, 그럴리가. 이쪽은 적의 노림수를 파악하고 역으로 그걸 이용하기 위해서······.’
초조함으로 점점 마음이 다급해진다.
지금까지는 이쪽이 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형세였기에 아군의 무게중심은 전부 자신쪽으로 쏠려 있었다.
중앙을 지키고 있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부대도 조금씩 이쪽을 향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정체가 된다면?
“그래. 화포를 쏴라! 어줍잖은 엄폐물은 그냥 화포로 날려버려!”
“무리입니다! 놈들의 화포가 배치된 지대가 약간 더 높습니다. 게다가 상상 이상으로 화력이 거셉니다!”
콰아앙!
콰콰콰콰! 콰쾅! 탕탕!
부하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갑작스레 빗발치는 포탄 세례에 아군이 눈에 띄게 위축됐다.
프랑스 2군단은 그 어떤 부대보다 실전에서 포를 많이 다룬 이들이다.
배치된 대포의 수도 가장 많았고, 장교들과 포병들도 숙련된 베테랑들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프로이센군은 생각외로 거센 적의 저항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밀어붙여! 어떻게든 뚫고가라!”
“놈들이 계속 쏴대고 있는데 어떻게 갑니까!”
“어차피 수는 이쪽이 많아! 찍어눌러!”
“개같은 프랑스 깜둥이 새끼들! 정정당당히 싸우지 않고 별에별 치졸한 수를 다 쓰는구나!”
나아가는 이쪽은 기가 막힐 정도로 쉽게 총과 대포에 노출되는데 저 놈들은 이상하게 잘 맞지도 않는다.
포병의 숙련도부터 차이가 나는 것인가, 아니면 지형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가.
어쨌거나 병력수 자체는 이쪽이 압도적이다..
설령 축차투입을 하더라도 적의 힘을 빼다가 기회가 오면 이쪽의 우월한 머릿수로 압도해버리면 그걸로 전투는 끝난다.
“당황하지 마라! 놈들은 겁을 집어먹고 발악하는 것뿐이다! 저기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 이상 결국 예정된 죽······.”
탕!
전방에서 열심히 소리를 높이던 장교가 날아온 총탄에 머리를 맞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다시는 병사들을 독려하지 못했다.
만약 호엔로에 공작이 모든 병력을 전부 투입해 총공세를 펼쳤으면 그나마 상황은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센군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자 기다렸다는듯 프랑스 본대가 밀고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당초 예상했던 아군의 좌익쪽이 아닌 중앙방면을 파고드는 예상히 못한 수를 뒀다.
“전령! 당장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가서 이쪽으로 더 오지 말고 중앙을 지키라고 전해! 이쪽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가 뚫을 테니 중앙을 먼저 사수해야 한다!”
호엔로에 공작이 처음으로 내린 정답에 가까운 판단이었으나, 애석하게도 나폴레옹이 이끄는 중앙의 군단들은 이미 프로이센 연합군과 전투를 시작했다.
동시에 호엔로에 공작의 공세가 주춤해졌다고 판단한 다부는 2군단에게 역으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2군단은 그 명령에 호응해 호엔로에 공작의 부대를 밀어붙였다.
“적들을 모조리 죽여버려라!”
“총리님을 위하여!”
“죽여라! 죽여어어어!”
타타탕!
“뭐, 뭐야! 저 깜둥이 새끼들이 미쳤나!”
“어이, 거기! 대형을 유지해! 당황하지 말···커억!”
효율적인 사격, 지형지물을 이용한 엄폐, 포병과의 유기적인 연계 등 모든 면에서 프로이센군은 자신들이 얕보던 프랑스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거리가 좁혀진 뒤에 벌어진 총검을 이용한 육탄전에서는 그 차이가 더 극명하게 갈렸다.
“뒤져! 뒤져 이 새끼들아!”
“이 개같은 노예제 옹호자 새끼들!”
“그게 뭔 개소리···크악!”
일부러 자제하고 있던 폭력성을 모조리 드러낸 2군단 병사들은 인간 도살자들이 따로 없었다.
프랑스어를 알아듣는 몇몇 프로이센 병사들의 억울한 단말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쉴새 없이 목숨을 수확하고 다녔다.
“죽어! 죽어! 프로이센 새끼들아!”
“우오오! 다부 장군님을 위하여! 총리님을 위하여!”
“자유 만세! 프랑스 만세!”
아군이 보더라도 공포스러울 정도의 그 모습은 조금의 과장도 없이 전장에 강림한 악귀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흉포함을 멀리서 지켜보는 나폴레옹 본대의 전사들 또한 끓어오르는 야수의 심장을 억제하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 인류애를 먹고 자라는 무적의 야수. 하나된 프랑스는 무적이다.
“2군단 전우들이 치고 나간다! 우리가 질 수 없지!”
“프로이센을 쓸어버려라!”
“우오오! 자유! 비바 라 프랑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삼색의 물결이 전장을 뒤덮었다.
※※※
“자, 서둘러라! 우리는 2군단의 측면으로 돌아 공격하는 적의 후방을 칠 것이다! 2군단이 버텨주고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서둘러라!”
기병대를 이끄는 조아킴 뮈라는 나폴레옹에게 받은 명령대로 병력을 전선에서 뒤로 빼 빙 돌아왔다.
정찰병의 보고에 의하면 전황은 나폴레옹의 예상과 한 치의 틀어짐도 없이 진행되고 있는 듯 보였다.
“역시 대단한 친구야. 이 복잡한 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꿰뚫고 있다니······.”
이렇게 적을 손바닥 위에 놓고 농락하는 이상 전쟁에서 지는 게 더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여기서 대승을 거둔다면 사실상 이번 전쟁을 끝내버릴 수도 있다.
전쟁이 시작된 지 아직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물론 아군이 패한다면 역으로 이쪽이 백기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그림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미 적은 함정에 빠졌고 이쪽은 다부의 2군단을 도와 멍청하게 앞으로 돌출된 적군을 두들기면 그만이니까.
“자! 전군 이제 곧 전선에 합류한다. 우리의 목표는 2군단을 도와 적군을 밀어내는 것······.”
“대장님! 급보입니다!”
“설마 2군단이 버티지 못하고 패주했단 거냐? 다부의 군단이 그럴리가 없을 텐데?”
“그게 아니라 2군단이 적의 공세를 완전히 박살내버렸다고 합니다. 사기가 꺾인 적의 좌익 중 일부는 도주중이고 일부는 중앙과 합류해 군을 재편성하려는 것 같습니다.”
“······.”
뭐지?
이 이해할 수 없는 보고에 뮈라는 말을 모는 자세 그대로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나폴레옹의 예상대로라면 다부의 2군단은 적어도 1.5배는 되는 적의 공격을 받아내야 했다.
그런데 그걸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역으로 깨부쉈다고?
그것도 자신의 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정찰병이 헛것을 본 게 아니냐?”
“아닙니다. 애초에 2군단에서도 상황이 정리됐다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아니···이건 뭐······.”
그럼 우리는 대체 여기서 뭘해야 하지?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임무 완료라는 보고가 들어와버렸는데 어쩌면 좋을까.
뮈라는 순간적으로 상황도를 펼쳐서 아군의 전력과 적군의 배치를 가늠해 보았다.
나폴레옹은 분명 명령대로 행동하되 변수가 생기면 현장의 판단을 우선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임기응변 능력을 시험받게 된 뮈라는 생각을 멈추고 본능에 따르기로 했다.
항상 이런 결정의 기로에서 직감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기병을 이끌고 있을 때는 더더욱.
“적의 좌익이 패퇴했다면 중앙은 더 볼 것도 없지. 그렇다면 남은 건 퇴각뿐인데···어떻게 할까······.”
잠시 지도를 확인한 뮈라는 처음에 명령받은 적의 측면이 아닌 최후방보다 더 멀리 떨어진 깊숙한 지역을 가리켰다.
“퇴각하는 잔존병력들. 여기서 괴멸시킨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전과확대지.
어차피 이긴 싸움, 한 놈이라도 더 조져서 프로이센을 유럽의 병자로 만들어 버리면 되는 것이다.
뮈라는 더 없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질주하는 말의 속력에 더욱 더 박차를 가했다.
※※※
“웰즐리 대령! 중앙에서 구조 신호가 오고 있네!”
프레데릭은 망원경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혹여 악마에게라도 홀린 것인지.
그리 위풍당당하게 돌격했던 아군은 어느새 우왕좌왕 볼썽 사납게 몰이사냥을 당하는 중이었다.
호엔로에 공작쪽은 어떻게 되었는지 보이지도 않고, 중앙쪽에는 펄럭이는 프랑스의 군기가 빽빽하게 들어서고 있었다.
“이쪽의 병력을 움직여야 하네! 뭐하고 있는 건가!”
다급한 그와는 달리 영국군의 지휘를 맡은 웰즐리는 미동없이 망원경으로 전장을 이리저리 살펴볼 뿐이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의욕적으로 대포를 발사하는 가 싶더니 어느새 포격도 멈춘지 오래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쟁을 하러 온 게 아니라 구경온 줄 알 정도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웰즐리 대령! 이런 식으로 아군의 패퇴를 방관한다면 자네도 패전의 문책을 당할 수밖에 없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문책이라니요. 저는 명령받은 대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뭐, 뭐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프레데릭은 이제 체통도 잊고 세된 목소리로 날카롭게 외쳤다.
“설마 다 거짓말이었다고? 처음부터 이쪽 편에서 제대로 싸울 마음 자체가 없었다는 소리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약 이쪽이 승기가 보인다면 연합군의 승리에 기꺼이 한 팔 보탤 생각이었죠. 하지만 보이시지 않습니까? 저기에 들이받는 건 그냥 자살행위입니다.”
“···그러니까 영국은 처음부터······.”
“제가 폐하와 의회에게 받은 명령은 프랑스군의 허와 실을 파악해 향후 본국의 대프랑스 전략에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
너무나 당당해 외려 역으로 말이 나오질 않는다.
이 모든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는 샤른호스트도 프레데릭과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콰콰쾅!
두 사람이 그러든 말든 웰즐리가 신호를 보내자 포병들이 빈 공터를 향해 마구잡이로 대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짓거리인가 싶어서 쳐다보는 프레데릭에게 그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본국은 몰려오는 프랑스군을 향해 가진 모든 대포를 쏘며 저항했으나 안타깝게도 프랑스군의 힘이 너무 강하군요. 그래도 저희는 포기하지 않고 가진 모든 화약을 총동원해 응전하겠습니다.”
“허, 허어······.”
이쯤 되니 쳐들어온 프랑스보다 도와주겠다고 온 영국이 더 악마처럼 보인다.
가진 화약을 탈탈 털어 자신들이 말하는 응전을 끝낸 웰즐리는 포병들에게 대포를 가지고 우선적으로 퇴각하라 명령했다.
“이렇게 부득이하게 패퇴하게 됐으니 공작께서도 저와 함께 본국으로 가시죠.”
“···지금 하노버를 버리라는 뜻인가?”
“저 괴물들을 육지에서는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하노버에서 본국의 폐하께 충성을 다하겠다는 귀족들과 신민들은 전부 포섭해둔 상태입니다. 공작께서도 지금 이끌고 계신 부대와 함께 바로 합류해서 건너가시죠. 그편이 훗날 이 땅을 수복하는데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웃기지 마라! 결국 같은 가문의 형제들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냐!”
“버리는 게 아니죠. 같은 형제들이니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할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그 증거로 공작께서는 저기 계신 다른 분들처럼 프랑스군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잖습니까?”
지금까지 묘하게 전쟁에 협력적이지 않다 싶었더니 설마 이런 짓을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이미 영국으로 재산과 인재들을 빼돌릴 준비가 끝났다면 이건 웰즐리가 여기 도착하기도 전부터 진행되고 있던 계획이 틀림없다.
어떻게 뒤통수를 쳐도 이렇게까지 후려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여기서 뻗대고 있어봐야 가진 모든 걸 잃을 뿐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서글펐다.
처음부터 선택지가 없었다는 걸 깨달은 프레데릭이 서글프게 고개를 떨구었다.
“우리들의 권리는 여기 있을 때와 다름없이 보장받을 수 있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우리는 다 같은 국왕 폐하의 백성들 아니겠습니까.“
웰즐리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퇴각을 지휘하면서도 끝까지 정중함을 잃지 않았다.
프레데릭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으나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아, 너무 정직하게 후퇴하면 프랑스군의 추격에 애꿎은 병사들만 피해를 입을 테니 저희는 프로이센군을 지원하러 가는척 하면서 뒤로 물러나도록 하죠.”
“아군을 방패삼겠다는 건가!”
“방패라니요. 그저 후퇴하는데 도움을 받을 뿐입니다.”
아무리 봐도 그게 그거였지만 원래 다 가져다 붙이기 나름인 법이다.
웰즐리는 프로이센의 중앙을 시원하게 밀어버리는 프랑스군을 마지막으로 주시한 뒤, 무심하게 말머리를 돌렸다.
불현 듯 영국을 떠나기전 총리와 장관에게 들었던 당부가 머릿속을 스쳤다.
-프랑스가 온 유럽을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려는 야욕을 부린다면 이쪽도 총력을 다해 저지할 테지만, 지금의 프랑스는 너무나도 영악해. 자신들을 주축으로 한 연합을 만들고 그 연합의 구성원들을 위해 전쟁을 한다는 명분으로 설치고 있지. 이래서는 반 프랑스의 기치를 건 연합을 형성해봐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네.
당장 이번 전쟁만 해도 프랑스는 신성로마제국쪽에 영토를 넘겨주라고 프로이센을 압박하고 있지, 자신들이 직접 땅을 차지하려 들지는 않았다.
피트 총리가 가망 없어 보이면 바로 군을 물리라고 했던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프랑스는 어차피 프로이센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어떻게 할 마음은 없다.
물론 그래서 더 대처하기 까다로웠지만 영국도 나름대로 착실하게 준비를 하고 있는 건 확실했다.
-그러니 웰즐리, 프랑스의 군대를 똑똑히 보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이겨낼 수 있을지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게. 본국의 젊은 육군 장교 중 가장 촉망받는 인재인 자네를 보낸 건 그런 이유도 있어서니까.
장차 프랑스와 영국은 세계의 패권을 두고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다에서라면 몰라도 육지에서는 전투를 할 엄두도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서로 숨통을 끊지 못하는 지리멸렬한 싸움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
영국이 프랑스를 확실하게 누르기 위해서는 웰즐리라는 영국의 검이 나폴레옹이라는 프랑스의 검을 꺾어줘야 한다.
적어도 피트가 그리는 커다란 그림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구도인 게 확실했다.
하지만······.
‘자신이 없는데요, 총리님.’
프레데릭과 병사들의 앞에서야 지휘관으로서 표정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저것들을 어떻게 이기란 말인가, 저건 순 괴물이잖은가.
나보고 저것들하고 싸우라고? 에이, 이건 아니지.
‘역시 넬슨, 당신밖에 없다!‘
솔직히 언제부터 영국이 육군에게 그렇게 기대를 걸었다고.
영국인은 원래 물고기를 먹는 민족이다.
대영제국은 바다의 전사들이라고.
< 상대가 안 된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