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190)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190화 역습의 러시아(190/355)
< 역습의 러시아 >
“···마지막으로 먼 파리까지 흔쾌히 와주신 각국의 귀빈들께 프랑스를 대표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모두가 평화와 화합을 바라는 마음은 같을 터. 부디 앞으로 이어질 회의로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세기가 평화의 세기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루이 16세가 일장 연설을 끝마쳤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는 그를 향해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이게 다 회의를 주최한 프랑스의 대표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쉴 새 없이 압박한 내 덕분이다.
루이 16세 본인은 죽을 맛이었겠지만 의외로 주변국에서 그를 향한 시선은 부러움과 감탄이 대다수였다.
그의 얼굴을 처음 본 각국 대표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역시 프랑스의 루이 16세···듣던 것보다 더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신데?”
“대체 어떤 분일까 기대를 했었는데 직접 뵈니 그런 명성을 떨치시는 이유를 알겠네.”
카리스마? 명성?
저 인간들이 나랑 같은 사람을 보는 게 맞긴 한 건가.
실수할까 봐 이 꽉 악물고 기계처럼 정해진 대본을 외우고 있는데 카리스마는 무슨 놈의 카리스마.
“루이 16세 폐하야말로 계몽군주의 이상이 그대로 형상화된 분이라 할 수 있겠지. 프랑스가 체질 개선에 완전히 성공한 것도 저분이 위대한 결단을 내린 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각 국가의 대표들을 수행하고 파리에 온 지식인들은 프랑스의 진보된 체제에 연신 부러움이 가득한 감탄사를 흘렸다.
하긴. 그들의 눈에 루이 16세는 스스로 절대왕정의 권력을 의회와 총리에게 이양한 세상에 다시 없을 명군으로 보일 것이다.
어찌나 이미지 세탁이 잘 됐는지 미국에서는 루이 16세를 유럽의 조지 워싱턴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 표현에 발끈한 프랑스인들이 조지 워싱턴을 미국의 루이 16세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또 백미였다.
“조지 워싱턴은 왕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걸 포기했지. 사실 그는 왕으로서 누리는 권력이 얼마나 달콤한지 체험해 보지는 못했단 거다. 반면 위대한 루이 16세께서는 절대군주의 권력을 스스로 축소하시지 않았나. 그것도 영국처럼 타의가 아닌 자의로!”
몇몇 의원들은 나에게도 동의를 구했지만 아무리 형이라고 해도 솔직히 그건 아니잖아?
무슨 거창한 신념 때문에 권력을 내려놓은 게 아니라 그냥 무거운 책임에서 해방된 채로 권리만 누리고 싶어서인데.
그렇다고 또 자국의 왕을 어디 타국의 대통령에 비비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이게 꼭 나쁜 건 아니다.
루이 16세가 이렇게 대외적인 이미지가 좋다면 앞으로 종종 얼굴 마담으로 세워서 이리저리 굴릴 수 있을 테니까.
이번에만 잠깐 일하고 다시 꿀 빠는 삶으로 돌아가려 했겠지만 어림도 없지.
맹활약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고 확인된 이상 앞으로 나와 계속 어울려 주셔야겠습니다, 형님.
내 시선에 가벼운 오한을 느꼈는지 슬쩍 몸을 떤 루이 16세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어주자 헛기침을 한 루이 16세가 내 쪽을 가리켰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는 본국의 오를레앙 공작 루이 크리스티앙 총리가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파리까지 먼 길을 와주신 각국의 대표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의 진행을 맡은 루이 크리스티앙입니다. 최대한 공정하고 치우치지 않은 진행을 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짤막하게 말을 마친 나는 바로 첫 번째 의제를 꺼냈다.
사실 공정하게 한다고 하긴 했지만 이번 회의는 자리만 봐도 공정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
의장석인 이쪽을 중심으로 좌우로 쭉 늘어서 있는 좌석의 순서는 철저하게 국력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쪽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는 영국, 신성로마제국, 에스파냐, 러시아, 투르크 등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영향력이 부족한 소국들은 저 구석의 자리를 배정받았다.
물론 그래도 아무도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억울하고 더러워도 국제사회는 철저하게 약육강식이다.
이 간단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우선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은 현재 러시아와 투르크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분쟁입니다. 이건 단순히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성로마제국과 프로이센, 그리고 영국까지 얽혀 있는 큰 문제입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언권을 요청한 러시아의 황태자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로마노프가 입을 열었다.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강화협상이 질질 끌리는 건 명백히 영국의 탓입니다.”
“아니, 이걸 우리 탓을 하신다는 겁니까? 엄밀히 따지면 러시아가 너무 과욕을 부리기 때문에 협상에 진전이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피트가 짐짓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렉산드르는 그런 피트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반론을 이어나갔다.
“러시아는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정당하게 승리를 거두었고, 승전국으로서 마땅한 권리를 행사하려는 겁니다. 물론 당사자인 오스만이 반론을 한다면 충분히 들어줄 용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대체 무슨 권리로 여기에 갑자기 끼어들어서 분란을 조장하는 겁니까?”
“그거야 누군가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지요. 만약 모든 국가가 철저하게 힘의 논리에만 따른다면 이 세상에 어떤 지옥이 펼쳐지겠습니까.”
“그 지옥을 만드는데 오히려 자신들이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신 모양이로군요.”
“그것은 터무니없는 모함입니다. 본국은 언제나 세계의 평화와 인권의 신장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노예무역을 가장 먼저 폐지한 국가가 어디입니까? 바로 프랑스와 저희 대영제국입니다.”
피트는 마치 인권의 투사라도 된 양 비장하게 주먹을 쥐어보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가 막힌 알렉산드르가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그는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자, 그러면 어째서 저희가 러시아와 오스만의 전쟁에 끼어들었는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흑해 연안을 차지하기 위해 숱한 분쟁을 일으켜왔습니다. 이번 전쟁까지 치면 벌써 8번···아니, 9번인가요? 이 정도로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을 드러낸 국가가 최근 유럽에 존재를 했는지 의문일 정도입니다.”
“아니, 그건······.”
“그래서 저희는 이 분란을 슬슬 끝낼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싸움이 반복된다면 이 전화의 불씨가 유럽 전체로 번져나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
예상대로 영국의 전략은 러시아를 영토 확장에 미친 깡패로 몰아가는 것인가.
사실 피트의 열변은 얼핏 들으면 말이 되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러시아가 바다를 손에 넣고 싶어서 눈이 돌아가 있는 상태라는 건 딱히 거짓말이 아니기도 했으니.
투르크 쪽 대표 역시 영국의 편을 들어 러시아를 비판하고 나섰다.
“러시아는 흑해를 완전히 차지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수도를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 말대로입니다. 솔직히 저희도 심정적으로 러시아의 편을 들고 싶겠습니까, 오스만의 편을 들고 싶겠습니까. 저희가 오죽하면, 이슬람을 신봉하는 오스만의 손을 들어주었을까요.”
영국 측이 그리는 구도는 얼추 짐작이 갔다.
러시아가 노리는 건 흑해 연안의 완전 지배고 그걸 위해서는 이스탄불까지 밀고 내려가 보스포루스 해협을 점령해야 한다.
하지만 오스만도 그렇게 나오면 모든 국력을 총동원해 결사항전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는 거대한 전쟁의 씨앗이 될 터.
게다가 아무리 동맹이라고 해도 신성로마제국은 러시아가 흑해를 전부 먹어버리는 걸 탐탁지 않게 볼 테니 굳이 옹호해줄 리도 없다.
국제적인 여론전으로 끌고 가면 유럽의 국가의 태반은 러시아가 아닌 오스만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같은 기독교고 오스만은 이교도인 이슬람이라는 사실 따위는 중요치 않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한창 떠오르는 신흥국이 바다까지 손에 넣어 더 강해지는 걸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그냥 퇴물이 된 오스만의 숨통을 끊지 않고 놔둘 것인가.
유럽 국가들에 주어진 선택지는 이 두 가지였다.
이대로 무난하게 흘러가면 대다수는 오스만의 손을 들어주겠지.
이쪽에서 작정하고 나서면 여론을 흔들 수 있어도, 동맹의 편의를 봐준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가 아닌 다른 국가가 나서면 그만이다.
“피트 총리의 말은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한 가지 모순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프로이센의 황태자.
장차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라 불리게 될 남자가 고요한 분노를 삭이며 발언권을 요청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피트 총리의 말을 듣고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설마 영국이 그렇게 숭고한 뜻을 품고 각국의 분쟁에 개입하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저희는 언제나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 행동해왔습니다.”
“그러면 지원을 약속한 동맹국을 버리고 도주해 버린 것도 평화를 위해서였습니까?”
“아, 그건······.”
피트가 허를 찔렸다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실제로 영국이 저번 전쟁에서 보여준 짓은 혐성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렸다.
동맹에 지원을 약속해 전쟁을 부추긴 다음에 정작 자신들은 손을 빼버리고, 동맹국은 실험용 생쥐로 써버린다?
이게 정말로 사실로 밝혀진다면 국제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서 이상했다.
그 피트가 프로이센이 이렇게 공격해 올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내가 아는 피트라면 분명······.
“그건, 오해입니다.”
그래. 분명히 사전에 프로이센의 반응을 예상하고 뭔가를 준비해왔겠지.
“오해라고요? 설마 이쪽을 바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저희의 지원이 부족했던 건 인정합니다. 그건 정말로 불행한 사고였어요. 저희는 5만 이상의 대군을 파견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태풍이 불어 항구가 심각한 타격을 입어 제때 병력이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놈의 태풍은······!”
“그리고 저희는 절대로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프랑스의 육군 전력이 너무 강해 빨리 패퇴했을 뿐이죠. 그럼에도 저희는 가져온 모든 포탄을 전부 소모할 정도로 격렬한 저항을 이어나갔습니다. 프로이센에서 그런 오해를 할까 봐 미리 자료도 준비해왔습니다. 부디 이걸로 프로이센의 오해가 풀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피트는 비서를 통해 프로이센 측에 두터운 서류 다발을 건네주었다.
“이건 본국의 군용 물자가 언제 어느 때, 어떻게 소비되었는지를 기록한 기밀 자료의 일부입니다. 절대 공개돼서는 안 되는 자료이지만 프로이센이 원한다면 해당 부분은 모두가 열람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드리겠습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마세나가 영국군이 있을 걸로 예상되던 자리에서 격렬한 폭음이 들렸다고 말했던 건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저놈들은 분명 꼬투리를 잡힐 걸 대비해 전투를 한 척 가지고 온 모든 화약을 써버린 게 틀림없다.
그것도 다 너희가 연기하면서 조작한 자료가 아니냐고 따질 수 있겠으나, 그건 이제 심증의 영역이다.
당시 전쟁에 참여한 모든 국가가 함께 진상조사를 한다면야 의혹을 밝힐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아무리 영국이 뻔뻔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걸 확실하게 깨트릴 물증을 제시할 수 없다면 공허한 트집에 지나지 않게 된다.
프로이센의 황태자마저 입을 다물자 피트는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라는 듯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실을 다 아는 입장에서는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로 가증스러운 태도였으나, 저 포커페이스 자체는 칭찬해줄만 했다.
어쨌거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정말로 억울한 쪽은 영국처럼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저렇게 예의 바른 얼굴을 하고 있기는 해도 아마 속으로는 여전히 방심을 늦추지 않고 바짝 경계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역시 러시아나 프로이센이 아무리 비판을 한다고 해도 영국의 회피 논리를 논파할 수는 없다.
실무진은 몰라도 그 대표인 황태자들과 피트의 정치적인 역량 차이가 확연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프로이센과 러시아의 차기 국왕이 그렇게 무능력한 인물들까지는 아니었으나 아직 경험이 너무 딸린다.
그리고 그건 말을 나눠보고 있는 피트가 누구보다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만 간다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회의의 초반 분위기를 장악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게 예상대로만 흘러가면 재미없잖아.
나는 궁지에 몰린 걸로 보이는 러시아 측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누구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짧은 순간 이쪽과 시선을 교환한 알렉산드르 황태자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객관적인 제 3자의 시선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본국의 진심을 알아주신다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러시아는 이 회의에서 만들어질 중재안에 그대로 따르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흑해 연안을 완전히 손에 넣는 건 과한 욕심이었다고 깔끔하게 인정하겠다는 겁니다.”
“······예?”
설마 이렇게나 순순히 물러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피트가 이번 회의에서 처음으로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알렉산드르 황태자는 그 반응이 어지간히 만족스러웠는지 살짝 올라간 입꼬리를 다 억누르지 못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려 보였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자고로 이 세상에 가장 믿을 수 없는 놈은 한 가지만 부탁을 들어달라고 사정하는 인간이다.
그렇게 한 가지를 들어줄 경우 백 퍼센트 확률로 줄줄이 원하는 것들이 딸려오게 되거든.
그래도, 이 세상에는 싫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조건도 있는 법이다.
바로 이 한 수를 위해, 러시아가 지금까지 숨겨온 이빨을 드러내었다.
< 역습의 러시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