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200)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200화 함정카드(200/355)
< 함정카드 >
그리스에서 참패라는 말로도 부족한 패배를 겪은 투르크는 결국 종전이라고 쓰고 항복이라고 부르는 협정을 제의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그 제안을 받아들임과 거의 동시에 나는 그리스에 도착했다.
사실 전쟁의 뒤처리를 하는데 총리가 직접 가는 경우는 요즘 시대에는 거의 없었다.
솔직히 나도 슬슬 배를 타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데에 질렸다.
그냥 탈레랑만 보내도 충분했을 거라는 건 나도 잘 알았다.
그래도 굳이 내가 직접 온 건 일종의 과시성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왜, 당장 영국만 해도 피트가 직접 오지 않았는가.
오스만을 박살 내고 유럽 최강대국으로서의 위신을 세움과 동시에 박해받던 그리스를 해방한 관대함을 뽐낼 수 있다.
속내가 풀풀 풍기는 행보였으나 그리스인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오스만과의 회담이 열릴 아테네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휘날리는 프랑스와 영국의 국기가 우리를 반겼다.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과거에야 콧대 높고 오만한 이들이었다고 해도 지금의 그리스에 영국과 프랑스는 구원자나 마찬가지다.
그토록 원했던 400년의 염원을 불과 수개월 만에 후딱 처리해준 충격 역시 한몫을 했을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프랑스 만세!”
“자유와 문명의 수호자!”
“크리스티앙 총리님! 그리스를 부탁드립니다!”
열렬한 환호가 쏟아지는 건 비단 이쪽만이 아니었다.
위풍당당하게 시내를 나아가는 영국군을 향해서도 이쪽과 거의 엇비슷한 인파가 몰렸다.
“피트 총리님! 한 번만 이쪽을 봐주세요!”
“앞으로도 영프 연합군이 그리스를 지켜주는 건가요?”
“오스만 놈들을 죄다 상어밥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침체 되어 있던 이 시기 아테네의 인구는 대략 2천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거리에는 명백하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바글거렸다.
설마하니 나와 피트의 얼굴을 보려고 옆 도시에서 우르르 몰려온 건가.
얼마나 독립이 기쁘면 자국도 아니고 타국의 총리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을까.
이왕 이렇게 된 거 팬 서비스라도 해주면서 여론관리를 해주는 게 좋으려나.
잠시 나아가는 속도를 늦추고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니 안 그래도 폭발 직전이던 분위기가 대기권을 뚫고 저 위로 날아갔다.
그렇게 나는 예정보다 1시간 정도를 더 아테네 시민들과 어울려준 뒤, 빠듯하게 시간에 맞춰서 약속 장소로 향했다.
회담이 열리기로 한 장소는 아테네의 랜드마크이자 그리스 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건축물, 파르테논 신전이었다.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모신 신전답게 이곳은 동로마 때까지만 해도 나름 신전다운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배하는 나라가 바뀔 때마다 신전에서 성당으로, 성당에서 모스크로 바뀌면서 어떻게든 관리는 되는 모양새였으나···오스만이 이후 신전을 화약창고로 써버리면서 모든 게 망가졌다.
덕분에 내 눈에 비친 파르테논 신전은 현대에서 보았을 때와 그렇게까지 다르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영국이 멀쩡한 조각상들을 다 가져가기 이전이라 그런지 최소한의 유물들은 남아 있다는 게 차이점일까.
“이런 역사적인 장소를 이렇게나 험하게 다뤘다니······.”
옆에 앉아있던 피트가 다른 사람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분노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이 그리스의 문화를 사랑하는 지식인의 모습이다.
물론 나는 저 인간이 왜 저러는지 대강 짐작이 됐기에 실소만 나올 따름이었지만.
거참 빌드업 착실히 잘하시네.
“피트 총리님께서 그리스 문화에 이토록 애착이 깊으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단순히 그리스 문화여서만이 아닙니다. 유럽 문명의 시발점인 그리스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이 신전 아니겠습니까. 이걸 소홀히 다뤘다는 건 곧 전 유럽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게 깔려 있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죠.”
“일리 있는 해석이로군요.”
웃음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하며 나는 반대편에 앉아있는 투르크 쪽의 대표단을 살펴보았다.
투르크의 대표로 온 압둘 카디르는 회담의 시작 전부터 돌려 까기를 시작한 피트의 공세에 진땀을 흘렸다.
“아닙니다. 저희가 유럽 문화 전체를 무시하기 위해 파르테논 신전을 훼손했다는 건 너무 앞서나가신 추측입니다.”
“그렇다면 왜 파르테논 신전을 이 모양으로 방치해둔 겁니까. 이 건축물의 역사적인 의의를 모르진 않았을 텐데요.”
“그거야 당시 상황이 조금 미묘했기 때문에···그래도 저희가 딱히 유럽 국가들을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뭐,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일단 믿겠습니다.”
이쯤 했으면 기선제압은 충분히 됐다는 판단에서인지 피트는 순순히 고개를 까딱였다.
이쪽도 나름 계획이 있었는데 영국이 이렇게 의욕적으로 나오니 할 말이 없네.
어차피 손해될 건 없으니 당분간 지켜봐도 괜찮겠지.
영국의 혐성을 초근접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으니 오히려 더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그러면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선 이번 전쟁의 귀책 사유는 전적으로 오스만에 있습니다. 인정하시지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억지 아닙니까.”
“억지라니요. 파리 회담의 협약을 정면으로 어긴 건 오스만 아닙니까.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독립을 원하는지는 지난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걸 찍어누른 건 오스만이죠.”
“그것 역시 억지에 가까운 주장입니다. 오스만은 그리스에 사실상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저희는 최소한의 도리는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어떻습니까. 이번 전쟁의 빌미는 솔직히 영국에서 제공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맞지.
누가 봐도 이번 전쟁의 물꼬를 튼 건 영국의 무지성 시비 틀기였으니까.
하지만 대영제국과 피트가 이런 정석적인 논리에 반박 거리를 준비해 오지 않았을 리가 없지.
예상대로 피트는 오히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눈빛으로 압둘 카디르를 바라보았다.
“저희가 대체 어떤 빌미를 제공했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일방적으로 대사관을 철수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서. 이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대사관을 철수하진 않았겠지요.”
“말도 안 되는 이유가 아니죠. 아주 정당하고 이치에 맞는 이유였습니다. 오스만에 주재 대사였던 엘긴 백작은 귀국에서 제공한 부실한 식단 때문에 아직도 영양실조를 호소하고 있단 말입니다. 오히려 이쪽에서 보상을 요구해야 할 판입니다.”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오죽하면 엘긴 백작은 현재 케밥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을 정도입니다. 케밥 비스무리한 요리만 봐도 몸이 덜덜덜 떨린다고 하는데 그걸 본 제가 다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세상에 이런 개소리를 이토록 진지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졸지에 케밥 먹고 PTSD가 온 게 돼버린 엘긴 백작이 불쌍할 따름이다.
물론 내가 느낀 황당함은 압둘 카디르가 느낀 감정의 백 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누가 봐도 어거지인 피트의 주장을 반박하는 대신 내 쪽으로 물음을 돌렸다.
“프랑스도 영국과 같은 입장인 겁니까?”
“그거야······.”
어지간한 개소리여야 편을 들어주지 여기에 긍정했다가는 후대에 내 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유보적인 대답을 내놓는 게 상책이지.
“저는 그 케밥이라는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대답을 할 수가 없군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이 전쟁을 어떤 형태로 마무리 지을 것인가. 그걸 논하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그거야······.”
“프랑스가 원하는 조건은 간단합니다. 이번 전쟁은 자국의 이득을 위한 전쟁이 아니었으니 과한 배상금은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이쪽이 전쟁으로 소모한 금액에 2할의 이자만을 얹도록 하죠. 대신 오스만은 그리스 일대에서 독립을 원하는 모든 국가의 독립을 약속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국경선은 이후 실무자 회의에서 결정 짓도록 하고요.”
어차피 이렇게까지 대판 깨진 이상 오스만은 그리스의 독립을 거절하지 못한다.
이 정도면 나름 합리적인 제안이었지만 압둘 카디르는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아마 이걸 들어주면 이후 제국의 붕괴가 연쇄적으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리라.
여기서 한 번 더 강하게 압박을 해줘야 싶던 찰나, 이 순간만큼은 이심전심인 피트가 쐐기를 박았다.
“이 정도의 요구도 수락하지 못한다면 우린 오스만이 전쟁을 계속할 의도가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결과는 책임지지 못합니다.”
“아닙니다.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다면 귀국이 원하는 조건을 말해보십시오. 설마 이제 와서 그리스 독립 따위는 받아들이지 못하겠단 말씀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어차피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피트가 케밥 운운하면서 전쟁의 귀책 사유를 모조리 오스만에게 떠넘기려고 한 건 더욱 거하게 배상을 뜯어내기 위해서였을 터.
하지만 그건 너무 과욕이다.
지금이 중세나 근대 초입이라면 아슬아슬하게 허용이 되겠지만, 지금은 이미 19세기가 시작되려 하는 시점이다.
조금 더 앞의 미래를 내다본다면 최소한의 양심은 탑재해야 뒤탈이 없다.
혐영제국처럼 오늘만 사는 놈은 내일엔 발을 헛디뎌 자빠질 수도 있다 이 말이야.
그러나 이건 모두 현대를 살아봤던 나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일 뿐.
이미 뼛속까지 털어먹을 마음으로 온 피트는 혹시라도 회담이 여기서 끝날까 봐 부랴부랴 재차 입을 열었다.
“이쪽은 한 가지 요구사항이 더 있습니다. 물론 오스만에게 추가적인 부담이 될 일은 아니니 그리 어려운 제안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일단 원하는 바를 말씀해주십시오.”
“현재 이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해 그리스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보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관리된 상태를 보아하니 처참하기 그지없더군요. 저는 방금 이걸 이대로 놔둔다면 인류사에 헤아릴 수 없는 손해를 끼칠 일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지목하는 문화재들의 관리권을 저희에게 이양해 주십시오.”
역시 내 이럴 줄 알았다.
이집트에서도 거하게 한바탕했다더니 그리스에서도 이러는 것 보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헛웃음만 나오는 논리였으나 오스만 측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즉답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요.”
분명 지금 그리스 땅은 오스만의 영토로 되어 있으니 이 땅에 있는 문화재와 보물들의 소유권도 오스만에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회담이 끝나면 그리스에서 철수할 자들.
영국이 여기 문화재를 쓸어가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물론 그리스인들이 여기 있었다면 거품을 물고 반대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애석하게도 그리스인들의 대표는 이 자리에 참석하는 걸 허락받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독립의 과정에서 어떠한 활약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그리스의 독립을 논하는 자리에 그리스의 대표가 없다.
어라, 왠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드네.
그래도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지는 신세는 면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스의 문화재를 가져간다는데 영국이 오스만의 허락을 받는 이 광경이 남 일 같지는 않아서 살짝 입맛이 썼다.
“프랑스는 그리스의 문화재에는 별 관심이 없으십니까? 이집트에서는 상당히 열과 성을 쏟았다고 알고 있는데요.”
“괜찮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저희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건 연구 자료에 가까우니까요. 그것도 나중에 이집트 측과 협상을 해서 권리를 명확히 할 생각입니다.”
“그건 너무 숙이고 들어가는 것 같은데···뭐, 그게 귀국의 입장이라면 저희가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물론 나라고 좋아서 이쪽이 고생해서 얻은 전리품을 다시 반환할 생각을 하겠냐.
이게 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인 거지.
사실 피트야 그리스에 눈이 팔려 있지만 냉정히 말해서 나는 그리스 따위는 뭐 어떻게 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차피 이번 전쟁은 합법적으로 이집트에서 토착세력인 맘루크들을 전부 청소하기 위한 쇼였으니까.
이 무주공산을 비집고 새로 들어설 이집트 정부는 프랑스의 좋은 친구로 남아줘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앞으로도 두고두고 여기에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먹을 수 있지.
그러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꿀이 뚝뚝 떨어지는 과실도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다.
영국이 이번 전쟁에서 대승리를 거둔 것도 최상의 결과였다.
이제 피트는 역시 영국은 해군이라며 돌아가는 대로 차세대 범선 제작에 온 힘을 기울이겠지.
그래. 진심으로 응원할 테니 한 번 전력을 다해봐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갑작스레 궁금해졌다.
열심히 찍어낸 범선들이 미래에 개통될 운하를 멀쩡히 통과할 수 없다면 피트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그러니 앞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로 하자.
생각해 보니 그리 먼 미래도 아니네.
< 함정카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