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21)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21화 시대라는 이름(21/355)
시대라는 이름
20. 시대라는 이름
“···법원에서는 현재 그런 의견이 주류라고 합니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서, 나는 라부아지에의 보고를 받았다.
“당분간은 폐하의 권위를 세워주는 쪽으로 가자는 건 현명한 판단이야. 애초에 왕권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니까.”
“예. 사실 이번 건은 법원에서도 당혹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너무 과도하게 나선 게 아닌가 하고요.”
“좀 그런 감이 있긴 했지.”
법원으로서는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었을 테니 어쩔 수 없었겠지.
사실 내가 그렇게 되도록 계속 장작을 넣어준 것이지만, 그걸 눈치챈 사람은 아직까진 없어 보였다.
법원도 예수회 관련 건으로 압박받는 사태는 피했으니 얻은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단지 최종적으로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게 나일 뿐.
“폐하를 알현하는 곳에는 이미 수많은 귀족이 자리하고 있을 겁니다. 어설픈 모습을 보이면 안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베르사유궁의 정원에는 구경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해 발을 디딜 틈조차 없었다.
관광객들로 붐비던 현대의 베르사유궁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마치 다른 건물을 보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 거울의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시간이 됐다.
“그럼 다녀오지.”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절대로 위축되지 마십시오.”
다른 건 몰라도 이제 누구 앞에서 쫄거나 겁을 집어먹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세 번이나 죽음을 맛보았기 때문일까.
주의력은 올라갔으나 두려움 같은 감정은 이전보다 훨씬 마모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온통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보니 걸음을 디딜 때 탕하고 울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리 대리석이 고풍스러워 보여도 적당히 발라야지 건물을 통째로 이렇게 해놓으니 사람이 살 수는 있을까 하는 느낌부터 든다.
여름이야 버틸만하겠지만 겨울엔 어쩔 것인가.
벽난로조차 심미성을 중시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넓은 궁을 덥히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하긴 그러니까 왕의 만찬 위에 올려놨던 포도주가 얼어버렸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있는 거겠지.
게다가 루이 15세 이전까지는 이 넓은 궁에 화장실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이야 영국에서 들여온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해 놨다고는 하지만, 느낌이 구리구리한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절대 이런 곳에 들어와서 살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잠깐 들러 구경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 이만큼 화려한 궁전이 또 없다.
특히 왕을 알현하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거울의 방은 화려함의 극치라 할만했다.
그 이름대로 17개의 창문과 578개의 거울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이 공간은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은 그 화려함에 넋을 잃는다.
현대인인 나조차 처음 봤을 때는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전근대의 사람들이야 오죽했을까.
베르사유궁에 상주하는 귀족들은 거울의 방 근처에 늘어서서 국왕을 향해 나아가는 나를 유심히 관찰 중이었다.
“저 사람이 폐하께서 인정하셨다는 그?”
“백신이라는 걸 만든 공로를 폐하께서 인정해주셨다고 하더군. 원래 영국에서 먼저 개발할 수 있었다고 하던데 저분이 선수를 친 거라는 말도 있어.”
“그래? 영국 놈들 아주 이를 갈며 분해하겠군. 그런데 저분은 오스트리아 빈민가에서 자랐다는데 왜 이렇게 여기에 익숙해 보이는 거지? 역시 혈통은 혈통이란 건가······.”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내색 따위는 하지 않는다.
베르사유궁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는 모든 동작과 발걸음 하나하나, 심지어 숨을 쉬는 것마저 예법의 지배를 받는다.
모여있는 귀족들의 상당수는 빈민가에서 자란 내가 궁의 법도와는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길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기대에 응해줄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귀족들의 감탄 반, 실망 반 섞인 시선을 받으며 국왕의 앞까지 나아간 나는 공손하게 몸을 굽히고 왕의 말을 기다렸다.
“예법을 아주 잘 배웠구나.”
루이 15세의 첫 마디는 짤막한 감탄이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어도 이 정도면 어디 가서 흠 잡힐 정도는 아니다.
내 성장 배경을 고려하면 이것만 해도 불가사의한 수준을 넘어선 경이다.
“궁중 예법을 어딘가에서 따로 배웠느냐?”
“왕실의 품격에 누가 되지 않도록 죽을힘을 다해 연습했을 뿐입니다.”
루이 15세의 옆에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고 있는 인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 명은 전에 보았던 법관 모푸였으며, 다른 한 명은 외견을 봐서는 슈아죌 공작인 듯 했다.
그리고 조금 더 뒤쪽에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는 또래 아이들이 있었다.
이목구비에 비슷한 부분이 있는 걸 봐서 누구인지는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루이 페르디낭의 아들들이자 나와는 배다른 형제.
루이 오귀스트와 루이 그자비에, 그리고 샤를 필리프겠지.
저들이 갑자기 불쑥 솟아난 나라는 불청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 번쯤은 대화하면서 속을 떠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주의해야 할 건 형제들만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수많은 귀족 중 내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아주 잘 느껴진다.
이용해먹을 구석이 없을까 고민하는 놈부터, 내 밑천이 어느 정도일지 떠보려는 놈, 그리고 그냥 경멸 어린 시선을 던지는 놈까지.
너무 드러내놓고 싫어하는 걸 티 내줘서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헷갈리지 않아도 되니까 오히려 좋네.
반면, 아마도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을 루이 15세는 딱히 주변의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제 정식으로 왕족의 일원이 되었으니 너도 베르사유로 들어오너라. 네가 머물 자리를 마련해주마. 지금까지 고생한 것에 대한 보답 역시 해줄 것이다.”
왕자들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아아, 보인다 보여.
안 그래도 좋지 않던 내 이미지가 나락을 뚫고 내려가는 모습이.
설마 우리 할아버지는 나를 사회적으로 죽이려고 일부러 무리수를 두고 있는 건 아니겠지.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도록 조소를 머금은 나는 이내 표정을 풀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국왕을 올려다보았다.
“과분한 황은에 그저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하지만 그 부분만큼은 재고를 부탁드립니다.”
“어째서? 왕실의 일원으로 편입되었으니 마땅히 파리를 떠나 이곳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오나 저 동방에도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제 분수에 과하게 어긋난 호사를 누리려 하면 독이 된다는 뜻이옵니다.”
“왕족이 궁에서 사는 게 과한 호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루이 15세는 아무래도 진짜로 나를 곁에 두고 내 시궁창스러웠던 과거를 보상해주고 싶은 모양이다.
그럴 가능성은 진즉 고려해 보았으나 역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미 너무 과하게 주목받은 이상 잠깐은 몸을 숙이고 냉각기를 가져야 한다.
여기서 국왕의 총애를 입었다며 신나게 날뛰어서는 그대로 훅 갈 가능성만 높아질 것이다.
특히 베르사유궁은 매일같이 수많은 귀족으로 붐비기 때문에 행동의 자유도 크게 침해된다.
백 번을 생각해 봐도 여기에 머무는 건 득보다 실이 큰 자충수였다.
“영광스럽게도 폐하께서 왕족으로 인정해주신 몸이기는 하나 저는 아직 모자란 게 많은 몸입니다. 당장 지금 이 순간만 하더라도 예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작게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베르사유에서 잔뼈가 굵은 귀족들이라고 해야 할까.
국왕의 귀에는 들리지 않도록 볼륨 조절하는 솜씨가 아주 도가 텄다.
그래도 나는 주변의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끝까지 당당하게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는 현재 태양왕께서 후원하셨던 리세 루이르그랑에 재학 중입니다. 그곳에서 왕족에 어울리는 소양과 품격을 기른 뒤에 궁으로 들어오는 게 저에게 있어서도, 왕실에 있어서도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그럴듯한 대답이었기에 갈등하던 루이 15세로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너에게 그렇게나 부담이 크게 간다면 어쩔 수 없겠구나. 네 뜻을 존중해주마. 그곳에서 수학해 훌륭한 왕족이 되어 돌아오너라.”
“이해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우아하게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이쪽을 향한 귀족들의 시선이 살짝이나마 누그러진 게 느껴졌다.
그들의 눈에는 굴러온 돌이지만 그래도 자기 주제 파악은 하는 놈으로 보였을 테니.
물론 그렇다고 거기에 고마워할 마음 따위는 없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뜨고 싶었다.
권력욕과 시기, 질투, 야망 온갖 탐욕스러운 감정이 용광로처럼 녹아있는 이곳.
베르사유 궁전은 결국 구시대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하나의 징표였다.
지금이야 저렇게 자신들의 세상인 것처럼 벽을 쳐두고 있지만 머지않아 이 모든 질서가 무너질 때가 올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그렇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구시대의 모순을 먹어 치우고 거대한 역사의 파도를 만든다.
때가 되면 나는 그 커다란 흐름에 정면으로 뛰어들 것이다.
그때까지는 고고한 귀족 나으리들이 뭐라고 하든 마음껏 즐기시라고 놔둘 뿐이다.
※※※
1769년 가을.
내가 루이 크리스티앙의 몸으로 살아간 지도 어느새 2년이 지났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살아남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성공적으로 왕실의 일원이 된 것만 해도 솔직히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더럽게 재미없는 리세 루이르그랑에서의 학창 생활도 어느새 2년 차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조금 당황스럽게도, 아니 예측했던 대로 나는 학교에서 어마어마한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왕자 전하, 혹 일정이 없으시다면 이번에 열리는 토론회에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실 수 있는지······.”
“왕자 전하, 저번에 수업에서 발표하셨던 주제는 너무나도 감명 깊었습니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 수건에 사인을 좀······.”
천연두를 퇴치하고 예방의학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최고의 지성인이자 고귀한 왕족.
이런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 덕분인지 학교에는 어느새 내 팬클럽 비스무리한 조직까지 생겨났다.
쉰내 나는 남자들이 우오오 하면서 따라다녀 봐야 조금도 기쁘지 않다.
여기가 현대처럼 남녀공학이었다면 그토록 꿈꿔왔던 소위 존잘의 삶이라는 걸 살아볼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망상을 해봐야 내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은 남탕 또 남탕일 뿐.
“크흠··· 다들 미안하네. 요새 예법을 익히느라 바빠 좀처럼 시간을 낼 수가 없군.”
학교에 다니는 저명한 부르주아 자제들과 친분을 쌓는답시고 친근한 이미지를 밀어붙이는 중이라 냉정하게 쳐내기도 힘들다.
이렇게 파상공세로 달려드는 마수를 떨쳐낸 후에도, 집요한 구애는 계속되었다.
아니, 재미라도 있으면 몰라.
지금은 근대적인 사상이 태동하는 과도기에 가깝기 때문에 학생들의 주장은 태반이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거나 극단적이었다.
현대에 존재하는 강성 좌파와 극렬 우파?
이 시대에 온다면 그들은 살아남지 못하는 애송이들에 불과하다.
아무리 그래도 왕족인 내 앞에서 기득권을 죄다 목매달자는 이야기까진 나오지 않았지만, 듣기만 해도 머리가 띵해지는 이야기는 많았다.
괜히 진짜로 다 죽이고 공화주의로 개혁하자는 사상이 몇 년 뒤 퍼져나가는 게 아니다.
그럼 반대파는 양반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학교에 다니는 소수의 귀족 자제들이나 그들에게 붙은 부르주아들의 사상도 답이 없긴 매한가지였다.
진짜로 이 세상은 단두대로 전부 목을 쳐버리는 게 답일지도 몰······.
“저기, 왕자님······.”
“···응? 어, 그래. 보아하니 신입생 같은데 내게 볼일이라도?”
“네. 그게······.”
인적이 드문 길로 가고 있었는데도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빛내며 달려온 소년이 말을 걸었다.
처음부터 신분이 낮은 사람은 먼저 말을 걸지 못한다는 귀족의 예법을 철저히 적용할 걸 그랬나.
하지만 동경으로 빛나는 어린 소년의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보니 마냥 무시하긴 또 양심에 찔렸다.
“그래. 미안하지만 토론회 같은데 참석해달라는 거라면 미리 거절해두마. 그래도 종이나 수건에 사인을 받고 싶은 거라면 해줄 수 있으니 줘 보렴.”
“네, 네. 감사합니다.”
말을 더듬던 소년은 황급히 자신의 가방을 뒤져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일단 사인을 받을만한 게 이것밖에 없어서··· 훌륭한 성적을 받아 학교를 졸업하라고 적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총명해 보이는 게 충분히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어째 수험생활 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덕담을 들으려 했던 기억이 떠올라 피식 미소가 지어졌다.
“학생 이름은?”
“예. 막시밀리앵, 막시밀리앵 로베스피에르입니다.”
“······엥?”
펜을 움직이려던 내 손이 뚝 멎었다.
귀를 통해서 들어온 음성을 뇌가 처리하는데 살짝 지연이 생겼다.
뒤이어 왠지 모르게 목덜미가 싸해지는 느낌과 함께 눈앞에 있는 소년이 누구인지 완벽히 이해했다.
이런 미친··· 네가 왜 여기서 나와?
하마터면 속마음이 입을 뚫고 육성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로베스피에르.
혁명에 방해되는 인물들은 누구라도 가차 없이 모가지를 쳐버린 인류 역사상 최고의 단두대 매니아.
구시대를 타파하고 현대 프랑스를 상징하는 자유, 평등, 우애라는 기치를 새롭게 내건 인물.
그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이름이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