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22)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22화 오스트리아에서 불어온 바람(22/355)
오스트리아에서 불어온 바람
지금까지 내 머릿속 로베스피에르의 이미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혁명가였다.
유능하기도 했지만 그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청렴함이다.
오죽하면 ‘부패할 수 없는 자’라는 별명이 붙었겠는가.
물론 도를 넘은 그의 공포정치는 옹호의 여지가 없는 실책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집권한 1년 동안 단두대로 보내진 사람만 해도 천 단위가 아니라 만 단위였다.
그 반동으로 그토록 애용한 단두대에서 자신 역시 목이 잘리게 되지만, 그의 반대파들도 로베스피에르의 청렴함만큼은 인정했다고 한다.
그런 미래의 냉혹한 정치가가 지금 눈앞에서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다.
도무지 매워지지 않는 인식의 갭에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말없이 빤히 쳐다보고만 있자 당황한 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왕자님··· 혹시 제가 무슨 실례라도?”
“아니···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런 수줍은 반응을 보이면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고.
역시 아직 어려서 가치관이 확실히 형성되지는 않은 걸까.
하긴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신입생이 벌써부터 혁명가의 소양을 갖추고 있을 리는 없다.
왕과 왕비의 머리를 단두대에서 잘라버려야 한다고 외쳐댔던 로베스피에르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내 사인을 받고 싶은 걸 보아하니 자네 같은 신입생들도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나 보지?”
“왕자 전하를 부정적으로 보는 학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그야말로 왕족의 모범이 되실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이유를 좀 알 수 있을까?”
“그거야 당연히 실제 백성들의 삶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죠. 천연두 백신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일선에 나가기까지 하셨잖습니까. 거기에 왕궁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고도 파리에 머물며 학생들과 교감하며 지내고 계시고요. 저는 왕자님을 존경하고 동경하고 있습니다!”
아직 순수해서 그런가 슬쩍 떠보기만 해도 용비어천가가 아주 술술 나온다.
일단은 내 계획대로 대중에게 이미지가 심어진 듯하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로베스피에르 같은 사람들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좋은 신호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내가 아는 로베스피에르라면 아무리 존경하는 사람이라도 혁명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단두대에 목을 매달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마음 놓고 있다가는 “왕자님, 혁명을 위해 죽어주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건 분명한 기회라 볼 수 있다.
애초에 루이르그랑에 들어왔을 때부터 로베스피에르는 언젠가 만나리라 예상했고, 대책을 세워두려 했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앞으로도 자네의 기대에 부끄럽지 않은 왕족이 되도록 노력하겠네.”
“여, 영광입니다. 저도 열심히 배워 꼭 왕자님처럼 국가와 시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역시 귀족이나 왕족을 위한다는 말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잠깐 생각을 정리한 나는 즉석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짜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함께 가서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겠나?”
“예? 저와 단둘이 말씀이십니까?”
“그래. 나도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소년들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두고 싶으니.”
“···더, 더, 더없는 영광입니다. 왕자 전하!”
워 이러다 얘 울겠는데? 지금 눈동자에 한가득 차오른 저 감격을 보라.
남자 극성빠는 일단 사절이니 나는 얼른 그를 내 처소로 안내했다.
그래.
이대로 풀어둬서 위험한 인재라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결국 두 개밖에 없다.
크기 전에 잘라 버리든지 아니면 내 색깔로 물들이든지.
일단 지금의 내 처지를 고려하면 누구를 묻어버리는 전략은 쉽게 쓸 수 없다.
그러니 최선의 방법은 이 세기의 혁명가를 철저히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를 동경하고 추종하는 만큼 지금부터 조금씩 공을 들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일부러 마차도 타지 않고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으려니, 어느새 고등법원에서 얻어준 내 저택 안까지 들어왔다.
“여, 여기가 왕자님이 거하시는······.”
어째 반응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집에 들어온 사생팬의 느낌이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서재에 있는 책들을 힐끔거리던 로베스피에르의 시선이 돌연 어느 한 곳에 고정됐다.
“이 책은 설마······.”
“아, 루소의 사회계약론? 그거 앞부분 보면 루소 본인에게 받은 사인도 있어.”
“왕자님은 사회계약론의 저자와도 친밀하게 지내고 계신 겁니까?”
“지금도 편지를 주고받고 있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종이 다발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상자를 보여주자 로베스피에르의 눈에 살짝 물기가 고였다.
뭐지, 눈물샘 너무 약한 거 아니야?
“왕족의 신분이심에도 왕권신수설을 부정한 지식인과도 소통을 하고 계시다니···. 저는 오늘 또 다른 세계를 본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 그렇다니 다행이네.”
“역시 이 학교에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업도 너무 마음에 들고 이렇게 배울 점이 많은 분도 옆에 계시니까요.”
그 수면제 수업이 마음에 든다니 역시 비범한 사람은 취향부터가 남다른 건가.
완전히 스위치가 눌린 로베스피에르는 혼자만의 세계에 들어가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쏘아댔다.
“집안에서는 제가 성직자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만 이곳에 와서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로마 공화정의 역사와 카토와 키케로 같은 위인들의 저서를 접하고 차오르는 감동에 몸을 주체할 수가 없더군요. 혹시 왕자님께서도 읽어보셨습니까? 역시 왕족의 눈으로 봤을 때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이 보일까요?”
“로베스피에르, 우선 이것부터 확실히 짚고 넘어가지. 이 세상에 완벽한 체제는 없어.”
“예?”
“찬란했던 로마 공화정도 결국 한계를 드러내고 제정으로 전환됐지. 물론 그렇다고 제정이 공화정보다 무조건 우월하다는 게 아니야. 모든 체제는 일장일단이 있어. 그중에 상대적으로 무엇이 현 상황에 더 어울리느냐, 어떤 장점을 취할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잠시 의자에 앉아 머리를 식힌 로베스피에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말석이라도 왕족인 내가 저런 의견을 낸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나게 진보적인 입장이라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왕족이 고작 일개 학생과 이렇게 토론을 해주는 것 자체가 분에 넘치는 호의다.
그걸 모를 리가 없는 로베스피에르였기에 최대한 내 말을 이해하고 수용해 보려는 태도를 취하려는 거겠지.
그 후로도 쭉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소년이 강철 같은 판단력과 지성을 갖춘 인물로 성장하려면 아직 최소 10년은 더 필요하다.
지금의 로베스피에르는 최종 진화한 프리저는 고사하고 기뉴특전대급도 되지 않는다.
충분히, 내 혀로 구워삶을 수 있다.
“자네 같이 열린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니 나까지 머리가 상쾌해지는 기분이로군.”
“과찬이십니다. 오히려 저야말로 왕자님의 균형 잡힌 고견에 너무나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앞으로 종종 이런 자리를 가지는 게 어떤가? 함께 커피도 마시고 다과도 먹으면서 학문이나 사상을 토론하면 유익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저,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어찌나 흥분했는지 물잔을 엎어버린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의 앞섬이 흥건하게 젖어 들어가고 있는 줄도 자각하지 못했다.
“안 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
오히려 네가 내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상을 접하고 배우면 그게 더 위험하니까.
완전히 감동의 도가니에 빠진 로베스피에르는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며 몇 번이고 고개를 넙죽넙죽 숙였다.
일단 그물은 성공적으로 던져놓았다.
이제 물고기가 이 그물을 뚫고 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살을 찌워야겠지.
내 프랑스에서 단두대의 칼날을 떨어트릴 결정권을 쥘 사람은 이 꼬마가 되어선 절대 안 된다.
만약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건 아마······.
배고프니 일단 밥부터 먹고 나서 생각하자.
※※※
“크리스티앙 왕자의 동향에 딱히 의심스러운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슈아죌은 보고서를 대강 읽고 옆으로 툭 던졌다.
“베르사유궁에서 보지 않았나. 그 왕자는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자기 위치를 잘 알고 처신을 하려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게 위장일 가능성도 생각해두어야 합니다.”
검증회를 직접 보지 않은 슈아죌과 달리 그 자리에 있던 모푸는 크리스티앙에 대한 꺼림칙함을 거둘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일련의 흐름이 너무 짜 맞춘 듯이 그에게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심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모략보다는 군략에 더 해박한 슈아죌은 모푸의 의견을 기우로 취급하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그래 봐야 아무런 배경도 없는 사생아 왕족일세. 왜 그렇게 고민을 하나? 설령 자네 말이 맞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뭐가 달라지겠나. 솔직히 난 처음에 그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파리에서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내는 걸 보니 신분은 인정해줘도 되겠단 생각이 들더군.”
냉정히 봤을 때 크리스티앙에게 관심을 기울이기엔 슈아죌이 책임져야 할 게 너무 많았다.
7년 전쟁의 패배 후 발언권이 위축되었던 그는 코르시카를 훌륭하게 합병해내면서 과거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야망에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왕이 총애하는 정부인 뒤바리 부인과의 알력 다툼도 있는지라 여러모로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사생아 왕족 하나가 뭘 하든 지금의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문제였다.
“그럼 고등법원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딱히 문제 있나? 저번에 반대했던 재정개혁법도 이번에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이 왔을 텐데?”
“검토한다고 해놓고 시간만 끄는 고전적인 수법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그때 가서 대가를 치르게 해주면 될 일이지. 그것보다 우리는 저 영국 놈들의 행패에 초점을 맞춰야 하네.”
“영국을 견제하려고 해도 현재 프랑스는 무력충돌을 할 여력이 없습니다. 외교적으로 해결을 볼 수밖에요.”
7년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프랑스의 재정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가 없었다.
빚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재정개혁에는 번번이 실패해 손해가 계속 누적되고만 있는 형국이었다.
아무리 영국이 미워도 여기서 또 한판 붙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남대서양의 지도를 노려보고 있는 슈아죌의 속마음은 달랐다.
“영국은 여기 포클랜드 제도를 자신들이 혼자 꿀꺽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남대서양에서 우리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기만 하겠지.”
“그쪽은 스페인이 알아서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쪽에서 항구도 하나 넘겨줬으니까요.”
“지금의 스페인이 어떻게 홀로 영국과 대항하겠나. 당연히 동맹국인 우리가 손을 들어줘야지.”
슈아죌의 생각이 워낙 강경했기에 모푸는 별다른 반박 없이 그냥 말을 삼켰다.
현 국왕의 성정을 고려하면 설령 포클랜드에서 무력충돌이 난다고 해도 프랑스가 개입할 가능성은 낮다.
슈아죌이 저렇게 강경하게 나가는 건 그의 정치 생명을 깎아 먹는 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차기 수석국무장관은 자신에게 돌아오게 될 터.
그때가 되면 자신에게는 법원과 크리스티앙을 한꺼번에 견제할 무기가 생기게 된다.
모푸가 차분하게 기회를 엿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찰나, 슈아죌이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자네와 이야기하느라 중요한 일정을 하나 잊고 있었군. 슬슬 폐하께 갈 준비를 해야겠어.”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 그게 오스트리아 대사에게서 연락이 왔네. 자네도 알다시피 크리스티앙 왕자 때문에 워낙 소란이 일어서 여러 가지 업무가 뒤로 밀리지 않았나. 오스트리아에서 그것 때문에 빨리 답을 달라는 독촉 서한을 보낸 모양일세.”
“오스트리아에서 그렇게까지 재촉할 만한 일이라면······?”
슈아죌도, 모푸도 그 내용이 무엇일지는 익히 예상이 됐다.
오스트리아의 막내 공주와 프랑스 왕세자와의 약혼.
앞으로 양국의 관계를 결정지을 중대한 화제가 본격적으로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온 것이다.
“논의를 하자고 하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미뤄버렸으니 저쪽에서 한바탕 뭐라고 하겠군.”
“그것도 그렇군요. 항의를 받았을 때 어떻게 답변할지를 미리 생각해 봐야···아!”
“좋은 생각이라도 났나?”
의아한 얼굴로 묻는 슈아죌을 보며, 모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고로 화장실에 간 사람이 물을 내려야 하는 법이지요. 일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직접 해결하고 오라고 떠넘기면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