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224)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224화 자강두천(224/355)
< 자강두천 >
“전부 말씀대로였습니다. 제가 뭘 하지 않아도 저쪽에서 엉기더군요.”
예상대로 탈레랑은 일정이 다 끝나기도 전에 희희낙락한 얼굴로 돌아왔다.
“일본과 베트남쪽 사신들은 우리와 수교를 하는 것 자체는 이미 확정지어뒀습니다. 남은 건 얼마나 좋은 조건을 받아내느냐인데···이미 저쪽의 속내를 안 이상 그건 어려울 게 없죠.”
정치와 외교에서는 먼저 속내를 간파당한 쪽이 무조건 지게 되어 있다.
게다가 이미 근대화된 유럽에서 외교로 최고봉의 위치에 오른 탈레랑이 볼 때 아시아의 사절단은 빨아먹기 좋은 호구들로 보이겠지.
“그러면 저쪽과는 언제, 어떻게 조약을 체결할 생각이지?”
“일단 대략적인 안을 제가 잡아둔 뒤 그쪽으로 외교관을 파견할 생각입니다. 총리님께서도 이 방법이 좋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정석이겠지. 어차피 참파는 가만둬도 베트남에 먹힐 곳이니까 적당히 이용하는 게 좋아. 그리고 베트남 역시 이쪽이 작정하고 참파를 밀어주면 오히려 자신들이 밀릴 수도 있으니 그 점을 이용해 최대한 이권을 확보하면 될 거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팡구에서 온 곤도는 은근 조선의 동향을 신경 쓰고 있더군요.”
그거야 바로 옆 나라니까 견제를 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그 조선조차 바로 옆에서 다른 나라들이 잘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니 똥줄이 타지 않던가.
“곤도는 자신이 온갖 광대짓을 다 해놨는데 조선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보장받지 못하면 마음이 많이 불편할 거야. 너에게 그런 티를 내지는 않던가?”
“자기 딴에는 숨긴다고 했지만 다 보이더군요. 자신들이 어째서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았습니다.”
물론 탈레랑은 내게 사전에 각국의 상세한 배경지식을 전수받았기 때문에 사신들의 말을 전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것이다.
“그나저나 그 곤도가 신경 쓰는 조선은 정작 별 움직임이 없나?”
“대표는 뭔가 고민이 많아 보였습니다. 대신 부대표가 와서 은근슬쩍 간을 보려 하더군요.”
“오, 그래?”
정약용이 대체 어떤 풍둔 주둥아리술을 날렸기에 저 유교 탈레반 대표가 의견을 굽혔을까.
“조선 부대표가 말하기를 총리님께서는 동양의 사상과 이론에도 정통하시니 조선 왕실에 보내는 서신에서 그걸 좀 강조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뭘 하려는지 대강 알겠네. 그거야 어렵지 않지.”
동도서기론, 중체서용, 양무운동.
원역사에서도 청이나 조선이 뒤늦게 근대화를 하며 내세웠던 이론이다.
동양의 우월한 사상은 내버려 두고 서양의 기술만을 취하자는 뷔페식 개혁이다.
언뜻 보면 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건 본질적으로 하자가 있는 방식이었다.
“사상과 기술이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이미 글러 먹었다는 걸 저쪽이 깨닫기까지 과연 얼마나 걸릴까······.”
“시행착오를 거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뭐, 거의 70년 이상 빠르게 이 이론을 실험해볼 결정을 내린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일 수도 있다.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뻔히 보여 심드렁하긴 하지만 어쨌든 인정할 건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아는 조선이라면 여기까지 와서도 끝까지 혼자 성리학을 고수하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제법 높다고 봤으니까.
정약용 같은 사람이 이번 사절단에 끼어있었던 게 조선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행운일지도 모른다.
이 실낱같은 동아줄을 잡을지 아니면 스스로 놔버릴지는 이제 저쪽의 조정에 달린 일.
솔직히 이 정도면 나로서는 전생의 삶에 최소한의 의리는 다 지켰다.
“그런데 탈레랑. 내가 지켜보라고 한 건은 어떻게 됐지?”
“아, 안 그래도 보고를 드리려 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잠잠한데 이번에도 영국이 말썽이더군요. 영국 대사 캐슬레이 자작이 비밀리에 아시아 국가들과 접선하려 하는 듯합니다.”
역시 영국이야. 이렇게 뒷공작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할 뻔했다니까.
“캐슬레이 자작 입장에선 꽤나 짜증이 나긴 할 거야. 정작 이번 전쟁에 돈을 가장 많이 퍼부은 건 자신들인데 돌아가는 걸 보니 뭔가 이상하단 느낌이 들기 시작할 테니까.”
“어떻게 할까요? 저쪽 사신단에게 미리 언질을 줄까요?”
“아니. 만약 여기까지 와서 영국 제안에 혹할 놈들이라면 오히려 걸러지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다. 바보들이 알아서 떨어져 나가준다면 우리 입장에선 나쁠 게 없어.”
“일종의 충성심 시험이로군요. 그러면 감시만 붙여두고 따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 후로도 30분에 걸쳐 상세하게 탈레랑의 보고를 들었고, 앞으로의 지침을 알려주었다.
캐슬레이 자작이 지금 시기에 움직이기 시작한 게 그의 독단일 리가 없다.
분명 피트에게 따로 명령을 받은 게 틀림없으리라.
영국은 어차피 이쪽의 계약에 묶인 상황이라 지금 당장 동북아로 눈길을 돌릴 수가 없다.
영국은 프랑스와는 다르다.
아니, 영국만이 아니라 이 시기의 유럽 국가들은 아시아에서 거하게 털어먹을 생각으로만 머리가 꽉 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나라에서 소수민족을 분리하는 작업을 맡은 영국이 어떻게 지금 아시아 국가를 수탈할 수 있겠나.
머리를 싸매고 고뇌에 잠긴 피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결국 지금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결국 일본과 베트남을 꼬드겨서 이쪽과의 통상을 최대한 뒤로 미루는 거겠지만, 이미 저쪽은 낚인 고기나 마찬가지.
영국이 뭘 제시하더라도 어지간해서는 말을 들을 리가 없다.
남은 건 조선인데···이쪽은 뭐 더더욱 신경 쓸 필요가 없지 않을까.
오히려 내심 캐슬레이 자작이 꼭 서용보와 만나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제 아무리 혐성으로 무장한 영국이라고 해도 혐성을 부릴 상황이 아니면 냉철한 협상에 임해야 한다.
탈레앙에 비견되는 외교관인 캐슬레이 자작이라면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합리적인 사람을 최고로 열받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시대의 사대부들이다.
어디 한번 K성리학의 매운맛을 마음껏 느껴보라고.
※※※
캐슬레이 자작 로버트 스튜어트는 영국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유망한 외교관이었다.
특히 현 총리인 피트는 그의 능력을 높이 사 현재 가장 중요한 프랑스 주재 대사의 중임을 맡겼다.
캐슬레이 자작의 임무는 무섭게 발전중인 프랑스의 내부에서 최대한 영국의 이익을 대변해 활동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피트에게 받은 임무는 천하의 캐슬레이 자작으로서도 상당한 중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영제국의 대동아시아 전략을 위해서는 프랑스가 이 이상 동북아에서 세력권을 넓히면 곤란하다.
직접 지시를 하지는 않았지만 피트의 말을 해석하자면 자신이 어떻게든 프랑스를 방해하든가, 아니면 영국에게 이익이 될 결과를 가져오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 리가 있나.
“저희로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통상을 논의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라······.”
어렵게 자리를 마련한 대월 외교관은 돌려서 캐슬레이 자작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거야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저희 대영제국은 인도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이번에 청나라와의 전쟁을 주도한 유럽의 강국입니다. 당장 프랑스와 통상을 트는 것보다 저희와 교역을 하는 게 귀국에도 더 큰 이득이 될 거라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프랑스가 아시아에서 차지하고 있는 땅은 서인도의 극히 일부와 황무지나 다름없는 홍콩이 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도의 광대한 시장을 귀국과 연결해드릴 수 있습니다.”
“으음···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편 판매국과 거래를 트기는 조금······.”
결국 그게 걸림돌인가.
지금 아시아의 국가들은 네덜란드의 상인들 때문에 이번 전쟁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쥐고 있었다.
즉, 어째서 전쟁이 일어났는지 진짜 이유를 전부 다 알고 있다는 의미다.
영국이 아무리 소수민족을 위해서라 외쳐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유는 다 이것 때문이었다.
‘개같은 네덜란드 뻐꾸기 새끼들···아니지. 그놈들은 프랑스의 부탁으로 정보를 뿌린 거니까······.’
여기까지만 생각해봐도 프랑스의 괘씸한 의도는 대강 짐작이 갔다.
그러니까 이놈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아시아를 먹기 위한 도구로 이쪽을 이용한 게 틀림없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시면 생각이 바뀌실······.”
“죄송하지만 프랑스 측에 괜한 오해를 주고 싶지 않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베트남 사신단은 캐슬레이 자작을 피해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다음으로 만난 닌자쇼의 사나이 곤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약을 판매하는 국가와는 통상을 할 수 없다는 게 쇼군의 뜻입니다. 죄송하지만 정식으로 논의를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니, 그래도 이야기라도 좀······.”
곤도는 유감의 표시로 모형 수리검 선물을 놓고 허겁지겁 돌아갔다.
이러니까 아편을 판매하는 건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던 건데···이게 대체 뭔가.
국가 이미지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자신보고 무슨 외교를 하란 건가.
차라리 압도적인 힘의 우위로 반 협박을 하고 들어가면 편할 테지만 프랑스의 영토에서 그런 미친 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후우···그래. 어차피 저 두 놈은 프랑스의 딸랑이가 될 거라 예상했다. 어쨌든 하나만 건져도 선방이니까 아직은 패가 한 장 남아있어.’
조선. 그자들은 딱 봐도 처음부터 프랑스에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사신으로 왔으면서 그렇게 똥 씹은 표정으로 돌아다닌다는 건 분명 양국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
조선에서 거대한 천주교 박해가 있었다는 정보는 이미 입수해 두었다.
영국은 그 카톨릭 국가들과는 구별되는 종교를 가지고 있으니 이걸 빌미로 접근하면 우호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렵사리 조선의 대표라는 서용보와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영제국의 대사 캐슬레이 자작 로버트 스튜어트입니다.”
“조선의 우의정 서용보라 하오.”
“우의정이라 하면 나라에서 세 손가락에 안에 드는 고위직이라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도 귀국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소이다. 청에 아편을 판매한 국가라고.”
“아~거기엔 깊고도 깊은 오해와 숨겨진 진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차근차근 의문을 해소해드리겠습니다.”
다급해진 캐슬레이 자작이 황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의외로 서용보는 그쪽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대신 그는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혹시 대사께서는 삼강오륜을 아시오?”
“······예?”
“역시 모르나보군. 불란서 총리가 예외였던 건가.”
“크리스티앙 총리는 물론 뛰어난 인재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희 대영제국의 총리 윌리엄 피트도 크리스티앙 총리 못지않은 인재로······.”
“그러면 그 피트라는 분은 오륜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단 겁니까?”
이놈은 회담 장소에 와서 무슨 뜬금없는 말을 하고 있단 말인가.
삼강이니 오륜이니 하는 걸 자신들이 어떻게 안다고.
하마터면 그럼 니넨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아냐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동양과 서양은 그 지리적인 거리만큼이나 문화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지요. 그 차이를 좁혀가는 게 또 교류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렇긴 하지만 대화를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과는 처음부터 말을 섞지 않는 게 현명한 거라는 말도 있소. 물론 유가에서는 무지한 자들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선비의 도리라 하니 그대들이 가르침을 받고 싶다면 내 기꺼이 성리학을 가르쳐 드리겠으나······.”
“아니, 아니. 저희는 지금 서로 가르치니 배우느니 하려고 이 자리를 마련한 게 아닙니다. 조선과 영국의 건설적인 미래를 논하기 위해 만나 뵙고 싶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전에 청에 사신으로 갔었던 외교관이 이르기를 청나라는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역겨울 정도였다는 말은 한 적이 있다.
조선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청나라와는 또 전혀 다른 종류의 난적이다.
“불란서의 총리는 주자의 말씀을 이해하고 있는 선비였소. 그래서 말을 나눠보았던 것인데 귀국은 그럴 자격이 있는지 개인적으로는 의문이 드는 참이오. 삼강도, 오륜도 모르는 자들과 무슨 이야기를 더 할까.”
“······.”
숨이 턱 막히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그 어떤 상대가 오더라도 능수능란하게 협상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자부했던 캐슬레이 자작은 이날.
생애 처음으로 잔을 집어 던질 뻔했다.
< 자강두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