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229)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229화 이독제독(229/355)
< 이독제독 >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실 지금 시대의 프랑스는 심각한 남존여비 사상에 찌들어 있었다.
이건 한 톨의 과장도 없는 진실이다.
흔히들 자유와 평등을 내세운 프랑스라면 이런 쪽으로도 개방적일 거라 예상하겠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루소조차 여성은 남성과 완전히 다르며 남성과 동물 사이에 놓인 존재라 주장했다.
그러니 당연히 여성에게는 인권도 없고, 교육할 필요도 없으며, 참정권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부여해서는 안 된다.
이게 현시대를 살아가는 보수주의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런 점에서 푸리에가 주장한 여성관은 굉장히 상식적이고 올바른 의견이기는 했다.
푸리에는 여성과 남성은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이며 신체적인 다름은 비본질적인 차이라 보았다.
그리고 이런 차이로 인류의 반에 해당하는 인간의 욕구를 극도로 억압하는 건 인류애적 가치를 훼손하는 거라 여겼다.
구체적인 페미니즘의 시조는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로 평가받지만, 최초로 여성주의라는 용어를 정립한 건 분명 푸리에의 업적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내 생각도 푸리에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여성과 남성은 신체적으로 두드러진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겠지.”
“역시 총리님은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다만 농경사회에서는 생산력이 곧 사람의 가치이고 그걸 지킬 수 있는 무력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네. 그러니 자연적으로 남성이 보다 더 높은 가치를 점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사실 인간이 주장하는 대부분의 가치는 인간의 기술과 삶의 수준이 그만큼 나아졌기에 누릴 수 있게 된 것들이다.
여성의 인권 또한 다르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의 타고난 신체적 차이를 기술의 발달로 조금씩 상쇄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의 생활도 그만큼 안정됐다.
만약 인간이 언제까지나 농경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과연 이런 주장들이 나왔을까?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시대가 진보하면 그 사회는 당연히 진보된 시대에 걸맞은 가치를 향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이 성장했는데 내부 장기가 어린이일 때와 같다면 반드시 어딘가가 고장 나기 마련이다.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쥐뿔도 없는 구조에 현대식 제도를 운용하면 바로 박살 나겠지만, 그 반대 역시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다.
“지금 프랑스라면 여성을 대등한 동반자로 인정할 만큼 성숙했다고는 생각하네. 아직 차별이 좀 있기는 해도 흑인도 같은 인간이라고 인정해주는 분위기로 가는데 여성이라고 그렇게 못할까.”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럼 바로 사회 계몽에 들어가면······.”
“아니, 뭐든지 급하게 가면 과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우선 전반적인 사회 여론을 조성할 필요가 있네.”
올바른 일을 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사회 질서를 흔든다거나 과한 충돌을 일으키는 건 지양해야 한다.
안 그래도 새로운 논쟁거리가 실시간으로 피어오르는 사회에 내가 굳이 기름을 넣어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금 이 새로운 이념이 최근 뜨겁게 사회를 달구고 있는 노동인권과도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아직 전쟁이 끊이지 않고 기술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시대에 여성과 남성에게 완전히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건 여러 대립을 낳을 여지가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보수적으로 접근하···려는 찰나,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총리님, 하지만 원래 개혁은 급진적일 수밖에 없는······.”
“아아, 그래. 이렇게 하는 게 좋겠군. 사실 나도 자네처럼 어떻게 하면 여성의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을까 깊은 고민을 해왔었네.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의 능력을 인정하는 나이니 오죽 현실의 상황이 안타까웠겠나.”
“역시! 총리님도 페미니스트셨군요!”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게. 자네는 유럽이 어떻게 흑인 노예제를 폐지했는지 그 과정을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총리님께서 노예제가 가진 비인간성을 강력히 규탄하시고 영국을 끌어들여서······.”
“그래. 바로 그 지점이라네. 영국과 프랑스의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에 다른 누구도 반대하지 못했던 거지.”
현재 유럽을 움직이는 국가는 프랑스고 그 뒤를 쫓아오는 게 영국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와 영국의 이해가 일치하면 대다수의 사안은 막힘 없이 처리된다.
그리스의 독립과 아편전쟁이 좋은 예였다.
“영국과 프랑스의 일치된 의견이라면 순식간에 유럽 전역까지 뻗어나가겠지. 그렇지 않으면 뒤처진 거라는 인상을 줄 테니까.”
“예, 분명 말씀대로입니다.”
“그렇다면 자네가 주장하는 이론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프랑스만이 아니라 영국까지 이 이론을 전파시키는 것 아니겠나.”
“그렇···지요?”
푸리에의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렸다.
좋아. 이쯤 되면 거의 다 넘어온 거나 마찬가지.
이제 살살 밀어붙이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지금 영국을 보게. 우리나라의 온건한 학자들과는 정반대로 과격하고 폭력적인 운동이 판을 치고, 노동 혁명 같은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고 있지 않나?”
“예······.”
“그러니 이쪽이 조금 도움을 주는 대가로 협력하라고 하면 저쪽도 넙죽 받아들이지 않을까?”
처음에는 영국에서 무섭게 타오르는 공산주의를 일종의 사상 병기로 써먹어 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건 바로 실현 불가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포기했다.
잘만 되면 영국을 손 안 대고 무너트릴 수도 있으나, 최악의 경우에는 공산혁명에 성공해버린 영국 인민공화국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쪽이 지지야 않겠지만,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커도 너무 컸다.
그러니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영국이 이대로 공산주의자들의 요람이 되게 둘 수는 없다.
피트의 머리가 스트레스로 모조리 빠져버리기 전에 적절한 구원의 손길을 내려줄 수밖에.
“하지만 총리님. 과연 영국 정부가 순순히 총리님의 제안을 듣겠습니까?”
“내가 제안하려는 건 이쪽의 뜻대로 따르라는 그런 강압적인 요구는 아니라네. 그저 자네의 체류를 인정하고 자네의 주장을 배격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검토해 달라는 말을 할 뿐이지.”
“예···? 제가 영국으로 간다고요?”
벙쪄버린 푸리에는 이제야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대강이나마 파악한 눈치였다.
하지만 지금 심정이 어떻든 결국 어차피 받아들인다는 선택지밖에 없을걸.
“생각해 보게. 자네가 프랑스에서 활동한다고 해도 결국 나와 행동반경이 겹칠 뿐이지 않나. 그리고 냉정히 말해서 내 영향력에 자네가 더해진다고 해도 그리 유의미한 차이는 없을 것이고.”
“뼈아프지만 반박이 불가능한 말씀이긴 하군요.”
“그렇지만 자네가 영국에서 활동한다면 지금 여성 인권의 불모지대인 그곳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 영국 정부 입장에서도 과격한 공산주의 운동보다야 여성 인권 진흥 운동이 수십 배는 더 반가울 테니 오히려 반길 가능성이 높고.”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요······.”
원래 이슈는 이슈로 덮는 법.
영국에서 여성 인권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면 이쪽도 자연스럽게 대처가 가능해진다.
저 영국 놈들도 하는 걸 우리는 왜 못하나.
영국 놈들보다 미개하다는 말을 듣고 살고 싶은 거냐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만 조성되면 게임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니까.
사실 이건 푸리에에게도 딱히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프랑스인이 영국으로 건너가 저런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기는 건데 마다할 위인이 어디 있을까.
다만 걸리는 점이 있다면 한 가지.
“총리님. 하지만 저는 어떻게 하면 영국의 과격한 공산주의 운동을 잠재울 수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게다가 저도 엄연히 공산주의자인데······.”
그렇다.
바로 푸리에도 이 시대에서는 알아주는 공산주의자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역으로 더 좋은 거다.
“자네가 생각하는 공산주의가 나라를 무너트리고 자본가의 목을 다 치고, 그를 옹호한 정부와 귀족들도 싸그리 다 숙청해버리는 것인가?”
“절대 아닙니다! 어찌 그런 끔찍한 생각을······.”
“그렇지? 그러니 자네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피트에게는 서신을 미리 써둘 테니 아마 두 팔 벌려 환영해 줄 걸세.”
“······.”
“이번 일만 잘 처리되면 자네는 영국 총리의 감사를 받은 프랑스인이라는 찬사와 여성 인권의 해방자라는 두 가지 명예를 동시에 누릴 수 있겠지.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한번 도전해볼 용기가 솟구치지 않나?”
이야기가 여기까지 진행된 이상 이미 결론은 나온 거나 마찬가지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고민해보던 푸리에는 이윽고 결연한 눈빛과 함께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총리님의 뜻대로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좋아. 절대로 후회할 일은 없을 테니 나를 믿고 따라주게.”
“예! 총리님만 믿고 전력을 다해보겠습니다.”
내친김에 푸리에만이 아니라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 생시몽도 함께 손잡고 영국으로 보내버리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쪽의 폭탄으로 저쪽의 폭탄을 덮어버린다.
이게 바로 이독제독이지.
대머리가 될 뻔한 걸 원형탈모 정도로 봐줄 테니 피트는 내게 감사 편지라도 한 장 보내도록.
※※※
“빨갱이들이 또다시 시위를 하고 있다고?”
“예. 이번에는 저번보다도 규모가 더 큽니다.”
“미쳐버리겠군···진짜로 군대를 투입해야 정신을 차릴 생각인가.”
처음에 대충 찍어누르면 말을 들을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이놈의 공산주의자들은 바퀴벌레처럼 박멸되지를 않았다.
한 마리를 죽이면 두 마리가 알을 까는 것처럼 생명력이 끈질겼다.
피트는 오판을 인정했다.
이건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라 템즈 강에 몰아친 허리케인이다.
아차 하는 순간 쓸려나가 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위협적인 재해였다.
“혹시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나라는 없나? 이 개 같은 악마의 종자들이 우리 영국에만 서식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잖아?”
“알아본 결과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쪽과는 다르게 빠르게 사그라들었고 꽤나 건설적인 토론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어째서? 프랑스나 이쪽이나 산업화를 하는 방식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프랑스는 대규모로 노동법을 손보면서 노동자들의 숨통을 틔워주었다고 합니다. 이게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본격적인 양상을 띠기 전에 이루어진 거라 은근 효과가 좋았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한 발 뒤처진 것인가.
피트는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머리를 박박 긁었다.
최근 들어 급격하게 올라온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리를 긁을 때마다 손가락 틈새로 머리카락이 한 움큼 뽑혀 나왔다.
이걸 보면 또다시 스트레스가 치솟고 자연히 머리가 더 많이 빠지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이 무한동력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았기에 위장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이대로 몇 달만 가면 머리카락이 남아나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에 애꿎은 차만 들이킬 뿐이었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광명의 빛이 그를 찾아왔다.
“총리님. 프랑스의 크리스티앙 총리에게 온 서신입니다.”
“···설마하니 또 뱀의 혓바닥으로 아닌 척하면서 나를 조롱하려는 건 아니겠지.”
피트는 고풍스러운 봉투를 신경질적으로 찢어버리고 편지지를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평소처럼 자신을 돌려 까는 내용이라면 그대로 불쏘시개로 던져버릴 작정이었다.
관료들은 혹시라도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봐 슬쩍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예상외로 한참이 지나도 피트의 시선은 편지에서 고정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화를 내기는커녕 좋아서인지 아니면 어이가 없어서인지 영문을 모를 웃음을 흘리는 중이었다.
“허허···이것 참······.”
“총리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자유와 평등의 나라는 무슨···이 새끼들이야말로 제일 악마같은 놈들인데.”
가능하다면 영국을 사악하다고 성토하는 다른 국가들에 이 편지를 한 번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책략을 떠올리는 인간의 어디가 자애롭고 관용적인 총리인가.
차라리 자신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선량한 총리라고 하는 게 말이 되겠다.
눈앞에서 팔랑이는 크리스티앙의 서신을 바라보는 피트의 입가에 더없이 흡족한 웃음이 걸렸다.
< 이독제독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