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24)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24화 여제와 공주(24/355)
여제와 공주
“듣던 것보다 더 훤칠하고 인물이 좋군. 부르봉 왕가의 사람들은 예로부터 품격있고 고아한 자태로 명망이 높았지.”
“황송한 말씀입니다. 저도 유럽 제일의 미인이라는 폐하를 이렇게 실제로 뵙게 되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 늙은 몸인데 미인은 무슨.”
“세월의 흐름은 육신을 노쇠하게 만들지 몰라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미를 퇴색시킬 수는 없습니다. 폐하께서 지니신 아름다움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입에 버터를 듬뿍 머금은 것마냥 아부가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이런 분야에서는 나도 전생에서 좀 치던 몸이다.
틀에 박힌 미사여구나 아부를 했다하면 오히려 호감도가 깎여버리는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존재.
그런 지도교수와 십 년을 부대끼며 살았던 인내와 아부의 달인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군. 그럼 자네가 볼 때 내가 가지고 있다는 본연의 미는 무엇인가?”
마리아 테레지아 정도의 위치라면 평소에도 수없이 많은 아첨에 둘러싸여 살아가게 된다.
그녀라면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허식은 바로 구분할 수 있을 터.
“합스부르크의 상속자이신 폐하는 마땅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여인의 몸이라는 이유로 갖은 방해를 당하셨었지요. 일반적인 왕족의 여인이었다면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거나 세상에 무릎 꿇었을 테지만 폐하께서는 강인한 의지와 결단력으로 그걸 이겨내셨습니다.”
“그것도 이제 그리운 추억이로군.”
“게다가 철천지원수였던 프랑스에 동맹을 제의한 포용력까지 갖추셨지요. 실리적인 이유로 맺은 동맹이라지만 그래도 양국의 오랜 원한을 생각하면 먼저 손을 내미는 건 분명히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폐하의 이런 결단들은 전부 역사의 한 면을 장식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찬란하게 빛날 테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알현실에 도열해 있는 귀족들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레지아 역시 꽤나 만족스러웠던 칭찬이었는지 눈매가 이전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풀렸다.
“그런 말을 해주는 대상이 다름 아닌 프랑스의 왕족이라는 게 무엇보다 나를 흡족하게 하는군. 고맙네.”
“폐하께 감사의 말을 들으니 더없는 영광입니다.”
이대로 의례적인 인사말을 몇 마디 주고받은 뒤 헤어지나 싶었는데 의외로 테레지아는 대화를 끝내지 않았다.
“동맹에 관한 실무적인 논의는 이쪽과 저쪽의 대표에게 맡겨두면 될 테고. 나는 좀 더 다른 걸 묻고 싶은데 답을 해줄 수 있겠나?”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당연히 답해드리겠습니다.”
“내가 받은 서신에는 그 천연두 예방제··· 백신이라고 했나? 그걸 우리 쪽에 보급하는데 크리스티앙 왕자가 도움을 줄 거라 쓰여 있었는데······.”
천연두 이야기를 꺼내는 테레지아의 얼굴에 일순간 수심이 깃들었다.
총애하던 딸들의 외모를 망쳐버리고 그걸 넘어 몇몇은 목숨까지 잃었으니 그 슬픔이 오죽하겠는가.
어차피 사전에 논의가 된 사항이라면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무조건 긍정밖에 없었다.
“예. 병마에 국경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그 백신이라는 걸 맞으면 천연두에 아예 걸리지 않게 되는 건가?”
“아예라고 절대적으로 확답할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은 그렇게 되고, 극소수는 걸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생명에는 위협을 받지 않습니다.”
테레지아는 살며시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근처에 있는 나에게는 분명히 들렸다.
“몇 년만 더 빨리 왔었더라면······.”
자식들을 먼저 보낸 한을 끌어안고 사는 어머니의 한탄이다.
찰나에 불과한 짧은 순간이었으나 여제보다는 부모에 가까운 테레지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크리스티앙 왕자는 오스트리아에서 자랐다고 했는데 혹시 그 때도 백신이라는 물건을 개발할 생각이 있었는가?”
“···그때도 천연두를 고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습니다만 너무 어려서 능력이 받쳐주지 못했습니다.”
“그렇군. 그러면 어쩔 수 없던 운명이었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다행히도 테레지아는 내가 오스트리아에서 어렸을 때 무얼 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크리스티앙으로서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았기에 오스트리아에 있었을 때에 관해서는 완전히 백지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테레지아는 빈민가에서 자랐었다는 내 배경을 알고 더 물어보지 않은 거겠지만, 나로서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되니 한시름 덜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폐하. 요제프 2세 폐하의 존안은 뵙지 못한듯한데 혹시 궁에 계시지 않으신 것입니까?”
테레지아가 사실상의 여제로 군림하고 있다고는 하나 현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그녀가 아니었다.
일단 명목상으로는 테레지아의 아들 요제프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단독 황제였고 어머니와 공동 통치를 하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제대로 된 통치권을 행사하진 못했다.
합스부르크 세습령을 다스리기 위한 작위인 헝가리의 왕, 보헤미아의 왕, 오스트리아 대공을 모두 어머니가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테레지아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어머니의 뒤에 가린 2인자 신세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 건 이상하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냔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테레지아는 내 질문에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엄밀히 말하면 당혹보다는 창피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요제프 2세 황제는 현재 호프부르크 궁에 있네. 심신이 지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터라 대외적인 일정은 전부 내가 처리하고 있는 상황일세. 권한은 전부 내가 가지고 있으니 이번 동맹 체결에 장애가 되는 일은 없을 거라 약속하지.”
왠지 더 묻지 말아 달라는 분위기가 풀풀 풍겼다.
확실히 동맹국의 왕자가 왔는데 나와보지도 않을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니겠지.
여기서 괜히 발을 잘못 디뎠다간 지뢰를 밟고 폭사할 수도 있다.
나는 더 이상 질문을 이어나가지 않고 다시 백신 접종에 관한 화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제너나 기요탱을 데려왔다면 더 수월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겠으나, 그들은 지금 파리에서 갈려 나가고 있는 중이라 대동할 수가 없었다.
대신 이번에 함께 온 의료진들도 이론과 실무에는 빠삭했으니 그들의 도움을 받아 오스트리아에 기술을 알려줄 예정이다.
대략적인 계획을 설명 들은 테레지아는 크게 만족해하며 다시 완벽한 군주의 얼굴로 돌아왔다.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간 나의 아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하지만, 앞으로 같은 슬픔을 겪을 일은 없을 거라는 점만으로도 신께서 내려주신 축복이겠지. 이쪽도 귀국이 보인 성의에 화답할 방도를 찾아보겠네. 며칠 뒤 연회가 있을 예정이니 거기서 또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뵐 그 날을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우아하게 인사를 올린 후 알현실을 빠져나왔다.
뭔가 여러 가지 감정이 오고 간 느낌인데, 지금으로서는 뇌리에 꽂히는 무언가는 없었다.
요제프 2세의 부재도 일단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역사상 테레지아보다 오래 사는 게 확실한 그가 지금 시점에서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리가 없다.
지금 시점에서 크게 아팠었다는 기록 역시 딱히 본 적이 없으니 확실하다.
그럼 어째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인가.
이번 양국의 협상에서 테레지아와 의견이 충돌해 뒤로 밀려난 걸까.
그랬다면 원 역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어야 하니 그럴 가능성은 또 낮아 보였다.
결혼 동맹에 관한 논의가 1년 정도 뒤로 밀린 정말 사소한 나비효과.
이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한 건지는 이제부터 내가 고민해봐야 할 숙제였다.
※※※
“···이 쇤브룬 궁은 황족분들께서 여름에 머무는 별궁입니다. 별궁이지만 그 위엄이나 아름다움은 정궁인 호프부르크에 뒤지지 않으며······.”
나는 정보를 수집할 겸 궁전을 견학하고 싶다는 핑계로 관광을 빙자한 정찰을 돌고 있었다.
그라비에는 카우니츠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가버렸고, 에스터하지도 카우니츠가 붙여준 투구트 남작이라는 자와 어딘가로 사라졌다.
현재 내 주변엔 궁전을 안내하기 위해 붙은 시종과 공주의 교육을 위해 프랑스 왕실이 파견한 베르몽 주교뿐이었다.
오를레앙 교구에서 온 베르몽 주교는 쇤브룬 궁의 아름다움에 홀려 연신 감탄사를 흘리는 중이었다.
“오오, 왕자님. 저것 보십시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말로 베르사유궁에 버금갈 만큼 웅장하지 않습니까?”
“방이 1400개가 넘어갈 정도로 크니 당연히 웅장할 수밖에. 궁전의 맞은편에 세워진 글로리에테에서 보는 풍경 역시 장관이라니 나중에 한 번 봐봐.”
“왕자님께서는 상당히 해박하시군요. 쇤브룬 궁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시다니.”
“그거야 뭐 옛날에 오스트리아에서 잠깐 있었으니까 주워들은 이야기가 있는 거지.”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안내해주던 시종은 마지막으로 궁전의 동쪽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오랑제리라고 폐하께서도 가끔 들리셔서 열대 과일을 가꾸십니다. 아마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토록 길고 웅장한 오랑제리는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자부심이 뚝뚝 묻어나는 설명을 들으며 내부를 들여다보니 오렌지나 열대 과일나무들이 얼핏 보였다.
안에 들어가서 좀 더 자세히 관찰하려고 문을 열자 희미한 악기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안에 있나 보군.”
“예. 아무래도 여러 행사가 열리는 곳이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군요. 오늘은 일정이 잡혀있지 않은 걸로 아는데요.”
내부를 들여다본 시종이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난 걸음을 멈추고 입구 근처에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연주에 심취하신 분을 방해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니 잠시 기다려 보지.”
“배려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흘러나오는 선율로 봐서 악기는 하프 같은 게 아닌가 싶었다.
음악에 전문적인 조예가 있는 건 아니지만 연주하는 사람의 솜씨는 꽤 괜찮았다.
프로 수준은 아닌 것 같았지만 묘하게 심금을 울리는 감성이 느껴졌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선율에 어딘가 서글픈 분위기가 감돈다.
하프란 악기가 지닌 특징 때문일까.
음악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그 이상은 알 방법이 없었다.
몇 분 정도 지나자 흘러나오던 악기 소리가 잦아들었다.
“음? 손님이 오셨었네요.”
그제야 이쪽의 기척을 알아차렸는지 어딘가 쑥스러워 보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공주님. 어째서 이곳에서 연주하고 계셨던 겁니까?”
“음··· 식물들도 악기 소리를 들으면 좋아한다는 말이 있어서 노래를 들려주려고 했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
“식물에게도 상냥하시다니 역시 공주님다우십니다.”
“또, 또 그런다. 은근슬쩍 놀리는 거지?”
나이는 나와 비슷한 열넷에서 열다섯 정도일까.
백금에 가까운 금발에 구김살 하나 없는 미소는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여길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소녀가 하프를 든 채로 이쪽을 바라보자 시종이 자연스럽게 나를 소개해주었다.
“여기 계신 분은 이번에 프랑스에서 오신 루이 크리스티앙 드 프랑스 왕자 전하이십니다. 전하, 여기 공주님은······.”
“프랑스에서 온 왕자님?”
깜짝 놀란 소녀의 목소리가 시종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고의가 아니었는지 살짝 당황한 그녀가 이내 멋쩍게 웃으며 서툰 프랑스어로 인사를 건넸다.
“보, 봉쥬르! 저 프랑스어 열심히 배웠습니다! 베르사유궁 빨리 가보고 싶습니다! 센 강도 가보고 싶어요. 어···음, 메르시 보꾸.”
어설프게 말하면서 고개를 꾸뻑 숙이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리고 미소가 지어졌다.
나도 베르몽 주교도 눈앞의 소녀가 누구인지는 이미 눈치챘다.
현재 쇤부른 궁에 머무는 공주 중 나와 비슷한 나이대면서 베르사유에 가게 될 예정인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으니.
“다정한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공주님. 저는 프랑스에 오실 공주님을 가르치기 위해 온 오를레앙 교구의 주교 베르몽입니다. 훌륭한 프랑스어 실력을 가지고 계시지만 아직 조금은 더 다듬을 곳이 남은 것 같군요. 그래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완벽하게 교정해 드릴테니까요.”
“예.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소녀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감정이 겉으로 그대로 드러나면서도 티 없이 밝은 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컸을지 짐작이 간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녀의 얼굴에 조금 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웃음기가 떠올랐다.
참으로 다양한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왕자님은··· 아, 맞다. 생각해 보니 제 소개를 중간에 끊어버리고 이름조차 말하지 않았었네요. 죄송해요, 제가 가끔 정신이 다른데 팔려서.”
들고 있던 하프를 시종에게 잠시 맡긴 그녀가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우고는 우아하게 예를 표했다.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한나 폰 외스터라이히로트링겐입니다.”
바로 이렇게 진지하게 바뀔 수 있는 걸 보면 역시 왕족은 왕족이다.
갑작스런 만남이었으나 이미 상대가 누구일지는 예측이 된 상태라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와는 별개로 이전의 어떤 위인들을 직접 봤을 때보다도 더 신기하다는 감정이 솟구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보다, 아니 어쩌면 합스부르크 왕가 전체의 인물을 합친 것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르는 여인.
타국에서 온 왕비임에도 후대에서 기억하는 프랑스 왕가의 상징적인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였다.
평생에 걸쳐 기나긴 인연이 될지도 모르는 운명과의 만남.
마리 앙투아네트가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거리에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여인에 대한 왜곡된 기록들은 찾아보면 산더미만큼 나올 테지만 그래도 이것만큼은 진짜였다.
피부가 정말 눈처럼 하얗고, 인상이 선하고, 친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