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25)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25화 마리 앙투아네트(25/355)
마리 앙투아네트
“어라? 그러면 베르사유 궁전과 파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건가요?”
“걸어서 최소 몇 시간은 훌쩍 걸리니 완전히 붙어 있다고는 할 수 없겠죠. 말을 타고 가면 금방이긴 합니다.”
“그렇군요. 전 지금까지 그냥 막연하게 거의 붙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프랑스에 직접 와보지 않았다면 그렇게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실제로 상당수의 많은 관광객이 파리에 오면 당연히 베르사유궁전이 지척에 있을 거라고 여기니까.
“그나저나 다과는 입에 맞으신가요? 프랑스 분들은 달콤한 과자를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그런 쪽으로 차려 달라 부탁했는데.”
“아주 마음에 듭니다. 공주님께서는 배려심이 정말 깊으시군요.”
어쩌다 보니 나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랑제리의 앞에서 조촐한 다과회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프랑스에서 온 왕자와 꼭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유럽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왕비가 될 인물이 얘기 좀 하자는데 내가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베르몽 주교는 마리의 전반적인 교육 수준을 알기 위해 시종과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먼저 떠났다.
덕분에 프랑스의 왕자와 오스트리아의 공주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흔치 않은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제가 프랑스로 가면 앞으로는 프랑스의 문화에 맞춰서 살아야 하니까 미리 공부를 해두고 있답니다. 그런데 왕자님은 이쪽 언어에도 능통하시네요?”
“어렸을 때는 이쪽에서 살았으니까요. 물론 격식있는 표현은 오기 전에 시간을 들여서 따로 공부했습니다.”
루이 크리스티앙의 기억은 희미해도 언어나 최소한의 상식처럼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사항은 까먹지 않았다.
마리는 내 말의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면 크리스티앙 님도 오스트리아에서 사시다가 프랑스로 건너가신 거군요. 어떻게 보면 저랑 비슷하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아무래도 프랑스가 조국이니 원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쁨이 더 크셨나요?”
“글쎄요··· 마냥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기대하는 마음은 있었겠지요.”
미안하지만 그때 일은 아무리 물어도 떠올릴 수가 없다.
어쨌든 지금 대화로 이 공주님이 어째서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지는 대충 이유를 알았다.
아무리 공주라고 해도 마리 앙투아네트는 많아 봐야 15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정든 고국을 떠나 타국에 가서 평생을 살게 됐으니 불안하지 않을 리가 없겠지.
그러니 비슷한 처지였던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마리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크리스티앙 님은 지금 베르사유궁에 살고 계시죠? 거기 생활은 어떤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베르사유의 생활이 어떨지는 들려드릴 수 있습니다만 제가 지금 그곳에 살지는 않습니다. 전 파리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거든요. 베르사유에는 공개 만찬이 있는 주말에만 들르고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제 배경이 조금 특수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없죠.”
베르사유 궁전에 사는 건 프랑스 권력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는 소리다.
귀족들의 경우 자신들의 영지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초라한 처소를 이용하면서도 궁전에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베르사유의 법도는 오스트리아와는 많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거긴 정말로 삶의 모든 게 대중에게 공개되나요?”
“전부는 아닙니다. 그래도 음··· 굉장히 많은 부분이 공개된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겠네요. 사생활에 관해서는 반쯤 포기하고 있어야 충격이 덜하실 겁니다.”
왕족이라면 어느 나라든 간에 일정 부분의 삶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다.
쇤브룬 궁도 정원 정도까지는 신분확인만 된다면 들어와 구경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루이 14세 이후의 베르사유처럼 왕족의 생활을 낱낱이 공개하는 쪽은 굉장히 극소수였다.
항상 웃는 얼굴이던 마리의 낯에도 처음으로 살짝 그늘이 졌다.
“그 말이 진짜였다니···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어도 과장이 섞인 줄 알았어요. 머리가 조금 어질어질하네요.”
“그래도 공주님이라면 잘 적응하실 겁니다.”
“···크리스티앙 님이 조금 부러워지네요. 파리에 계시면 자유롭게 시내를 돌아다니고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있으실 텐데.”
마리 앙투아네트의 성격이 어릴 때부터 자유분방하고 해맑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 앞으로는 베르사유궁에서 잘 포장된 전시용 상품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모르긴 몰라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겠지.
“저도 말석이지만 왕족의 신분이라 그렇게 자유롭게 행동하진 못합니다. 아무래도 공개적인 석상 같은 데 가는 건 좀 꺼려질 수밖에 없죠.”
“아, 하긴 그렇겠네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프랑스로 가기 전에 크리스티앙 님 같은 분을 만날 수 있어서요. 프랑스에 갈 때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있을 테니 그동안 저와 종종 이야기를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나는 생긋 웃으며 천천히 커피잔을 들어 향을 즐기는 척하며 머리를 맹렬하게 회전시켰다.
눈앞의 여인에게는 미안하게 됐지만 정치는 현실이고 내게 있어서는 생존의 수단이다.
이용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이용하고 손절해야 할 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끊어버려야 한다.
그럼 이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소녀는 어떠한가.
착한 아이이고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는 성품의 소유자라는 건 틀림 없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악평 중 대다수가 거짓이라는 건 현대에서는 이제 꽤나 유명할 것이다.
그녀는 실제로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라는 말 따위는 하지도 않았고, 사치를 부리지도 않았으며, 거만하기는커녕,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선량한 왕비였다.
단지 혁명이 정당화되려면 왕과 왕비가 처형당해야 마땅한 악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거짓된 이미지가 덮어 씌워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왕비들과는 다르게 그녀는 혁명 이전부터 시민들에게 욕받이로 쓰였다.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프랑스의 철천지 원수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핏줄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금이야 동맹국이지만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원수로 지낸 역사는 무려 200년이 넘었다.
이제부터는 동맹할게요~라고 해봐야 그간 쌓인 국민감정이라는 게 한순간에 사라질 리가 없다.
특히 마리의 남편인 루이 16세는 다른 프랑스의 왕들과는 다르게 정부를 두지 않았는데 이조차 애먼 왕비가 욕을 먹었다.
저 오스트리아에서 온 계집년이 우리 폐하의 바가지를 긁어서 국왕께서 기를 펴지 못한다는 황당한 논리가 판을 쳤다.
본래 프랑스의 시민들은 왕을 직접 욕할 수는 없으니 왕의 정부를 욕받이로 쓰는 전통이 있었다.
그런데 루이 16세가 정부를 들이지 않으니 그 불만이 전부 왕비에게로 가버린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정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평생을 부당한 헛소문에 시달리며 살아갔다.
어떻게 보면 프랑스 역사상 가장 불쌍한 왕비일지도 모른다.
물론 대혁명이 터졌을 때 외세의 힘을 동원해 혁명세력을 짓밟으려 한 건 분명 실책이다.
이 부분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쌓여온 스트레스와 그녀가 느꼈을 공포를 생각하면 약간의 정상참작 정도는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프랑스에 가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거잖아요. 제 남편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은 아직 직접 뵌 적도 없고. 친한 친구 분이 가까이에 계셔주신다면 정말 든든할 거예요.”
“걱정 마십시오. 공주님이 프랑스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일단 말로 던지는 공수표야 아무리 질러도 훗날 이행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나는 면밀하게 이 여인의 가치를 검토해보았다.
우선, 가장 요긴하게 마리를 이용할 방법은 그녀를 원 역사처럼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루이 오귀스트와 결혼을 한다고 해도 그녀가 프랑스에서 배척당할 합스부르크가의 사람이란 건 원 역사와 같다.
게다가 백신 접종을 마친 루이 15세는 이제 천연두로 죽을 일이 없다.
필연적으로 오귀스트는 왕세자로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 테고 마리 역시 당분간 계속 왕세자비의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
여기서 마리와 오귀스트를 한꺼번에 묶어서 온갖 추문과 루머를 터트린다면?
효과적으로 현 왕세자의 지지기반을 갉아먹을 수 있을 터.
이 전략을 사용하려면 필연적으로 프랑스에 간 뒤로는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
괜히 가깝게 어울렸다가는 추문의 대상이 내가 되어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다만 이건 비겁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 추잡한 방식이라 채용하기는 좀 그랬다.
법원의 능구렁이들이 상대라면 기꺼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그래도 내게 순수한 호의만을 보이는 사람이 상대라면 좀 더 점잖은 방식을 써주는 게 도리겠지.
이런 내 속내를 알 리가 없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까보다 좀 더 얼굴이 좋아 보였다.
저 순진무구한 미소를 보니 왠지 가슴 한구석이 조금 찔리는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공주님. 혹시 프랑스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예?”
“공주님 중에는 외국으로 가지 않고 빈에 계속 머물고 계신 분도 계시지 않습니까. 혹시 공주님도 그런 쪽을 더 원치 않으셨을까 해서요.”
태양처럼 환하게 펴있던 그녀의 미소에 아주 잠깐 그늘이 생겼다.
괜한 질문을 던진 건가 싶던 찰나 그녀가 표정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럴 필요가 아예 없다라고 한다면 저도 제가 태어난 곳에서 계속 살아가는 게 좋았겠죠.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프랑스와의 동맹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계세요. 그리고 그 대상으로 가장 적합한 사람은 저고요. 그러면 처음부터 제 의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죠. 물론 저 역시 아무런 불만은 없고요. 기꺼이 받아들일 뿐이죠.”
“프랑스로 가면 지금 각오하고 계신 것보다도 더 힘들 겁니다.”
일단 결혼동맹이 성사된다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에서 누리던 자신의 모든 걸 버려야 한다.
자신의 옷은 물론, 애완견, 그리고 친하게 지내던 주변 사람들, 심지어 속옷 한 장까지도 프랑스로 가져갈 수 없다.
오스트리아인이 아닌 완벽한 프랑스인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거치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결국 프랑스에서의 인식은 합스부르크에서 온 여자다.
어떻게 보면 불합리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편견에 가득 찬 시선을 보낼 거라면 처음부터 그냥 손님으로 맞이하든가.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런 배경 지식이 전무한 채로 프랑스로 갔을 리는 없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프랑스 국민들이 자신들을 싫어한다는 걸 모를 리가 있겠는가.
어느 정도는 감수하고 갔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겪어본 뒤에도 같은 마음이었을지는 의문이지만.
“아무리 힘들다고 하더라도 그게 제 의무라면 받아들일 각오는 했습니다. 왕족으로 태어났고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자란 이상 제가 해야 할 일을 외면할 수는 없으니까요.”
방금 떠올린 생각은 정정.
예상보다도 훨씬 더 반듯하고 굳센 사람이다.
“심지가 강하시군요. 감탄했습니다.”
“어머니께서 항상 강조하셨거든요. 자신의 위치를 언제나 잊지 말라고. 왕가의 공주라는 입장을 자각했을 때부터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버렸어요. 맞춰가는 수밖에요.”
서글프긴 해도 이게 현실이다.
의외인 건 마리 앙투아네트가 생각보다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
단순히 머리가 꽃밭인 밝은 여자가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숙지하면서도 이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역시 첫 번째 계획은 없던 걸로 하자.
어차피 내가 나서지 않아도 선동과 날조에 도가 튼 우리 언론 기자 양반들이 알아서 달려들게 되어 있다.
그때 상황을 보고 적절한 위치에서 어느 쪽으로든 이득을 따먹으면 되는 거다.
굳이 내가 자진해서 쓰레기가 될 이유는 없지.
“왕족으로 태어난 이상 일정 부분의 의무는 지고 갈 수밖에 없죠.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주님은 분명 좋은 왕비가 되실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해요. 사실 저도 처음 본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마 어떤 동질감을 느껴서가 아닐까 싶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삶을 살 수 없었다는 점에서는 전생도, 이번 생도 크게 다를 건 없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얼마 뒤면 여기 쇤브룬 궁에서 연주회가 있을 예정이거든요. 그 유명한 요제프 하이든이 지휘하는 관현악단이에요. 괜찮으시다면 함께 보러 가실래요?”
“저야 영광이죠. 꼭 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선선히 그녀의 제안을 수락하고 앞으로도 종종 어울리기로 약속을 잡았다.
이 정도의 친목 정도야 별 상관없겠지.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