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265)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265화 멸망의 그림자(265/355)
< 멸망의 그림자 >
대청제국 하북성.
청더에는 피서산장, 또는 열하행궁이라 불리는 황실의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황실의 여름 집무지로 원래부터 북경에 이은 청나라 정치의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단연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게 북경을 버리고 도망온 가경제가 줄곧 이곳에 머물며 국정을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태자 민녕은 몇 번이고 북경으로 돌아가자는 요청을 했지만 가경제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유는 딱 하나.
양이들에게 점령당한 북경을 자신의 발로 다시 밟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핑계일 뿐 현실은 쪽팔려서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더라도 감히 천자 앞에서 그런 망령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황태자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끊임없이 억누르며 부친을 설득하려 애를 썼다.
크리스티앙도 천자가 돌아온다면 북경을 비워줄 용의가 있다고 몇 차례나 말하지 않았던가.
순간의 쪽팔림을 감수하지 못하겠다고 황실의 수도를 계속 비워놓고 있는 건 황제가 내릴 판단이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예감이 좋았다.
지금까지 항상 자신이 궁을 찾았던 것에 비해, 오늘만큼은 천자가 직접 자신을 불렀기 때문이다.
어쩌면 드디어 심경에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아버지의 앞에 당도한 황태자는 자신의 예감이 맞았다는데에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항상 술에 찌들어 살던 황제의 얼굴에 실로 오랜만에 생기가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폐하! 이리 건강하신 모습을 뵈오니 소자의 마음도 날아갈 듯 기쁘옵니다.”
“오오, 그래. 태자도 지금까지 수고가 많았다. 내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동안 훌륭히 빈자리를 채워주었어. 과연 내 뒤를 이을 태자라 칭할만하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아직 폐하께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사옵니다.”
“암, 암! 지금까지는 마음이 무거워 국정에 너무 소홀했음을 내 부정하지 않겠다. 허나 이제는 다를 것이야. 한 줄기 서광이 다시 이쪽을 비추기 시작했으니. 역시 천하의 섭리란 돌고 돌아 다시 원래의 질서를 되찾는 법이지.”
뭔 말을 하는 건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천자가 의욕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기쁘기 그지없다.
크게 위 아래로 고개를 흔들며 맞장구를 치는 목소리에도 절로 흥이 실렸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폐하, 언제쯤 다시 자금성으로 환궁하시겠습니까? 제가 불란서측에 즉시 의견을 전달하겠습니다.”
“하하, 그럴 필요없다. 짐이 짐의 궁으로 돌아가는데 그런 양이들의 의견이 무엇이 중요하겠느냐.”
“···예? 그래도 일단 지금은 오랑캐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시늉은 해야······.”
“그럴필요 없대도. 어차피 놈들은 곧 있으면 쫓겨나게 되어 있으니.”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헛소리인가.
혹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부친이 환각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황태자는 천자의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의문을 표했다.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역시 너는 아직 듣지 못했나 보구나. 얼마전 영길리의 사신이 비밀리에 나를 찾아왔었느니라. 그들은 반 불런서 연합을 만들어 전쟁을 선포하겠노라 약속했지. 아마 지금쯤 이미 전쟁이 발발했을 것이다.”
“예? 영길리가 불란서와 전쟁을?”
“영길리만이 아니다. 아라사도 함께라고 한다. 여기에 저들의 대륙에서도 함께 전쟁이 터질 거라고 하니 불란서 놈들이 이곳에서 쫓겨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게야.”
어···무슨 말을 해야 할까.
황태자는 생각지도 못하고 훅 쏟아져 들어온 정보의 홍수에 잠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래도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이건 자신들에게는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최대한 현명하게 움직이면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어떻게든 바로잡는 게 가능하다.
문자 그대로 천재일우, 하늘의 도우심이었다.
“폐하. 정말로 그게 사실이라면 저희는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개입하기 가장 좋은 시기를 재야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아무리 영길리와 아라사가 연합을 했다고 하더라도 불란서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 참에 영길리와 아라사를 아예 축출해 버리고 불란서 한 국가만 우리와 교역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아아, 그럴 필요는 없다. 이미 영길리와 협력하겠다고 약조를 다 해놨으니.”
“······예?”
누구냐. 아까 왠지 모르게 예감이 좋다고 생각했던 바보 머저리는.
“영길리의 사신은 확실히 약조를 해주었다. 지금 불란서 놈들이 점거하고 있는 홍콩만 내어준다면 자신들은 더 바랄 게 없다고. 아라사는 연해주를 원한다고 하니 좀 아깝긴 하지만 떼어주면 될 거다. 그래봐야 불란서 놈들이 뜯어가는 거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니.”
“폐하! 저번에 이미 증명되었듯 불란서의 국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놈들과 맞서는 건 너무 피해가 큰······.”
“그러니 저 영길리 놈들과 협력한다고 하지 않느냐. 이이제이, 이독제독. 본래 중원의 왕조는 오랑캐들을 제어하기 위해 다른 오랑캐를 사용해왔다. 이번에도 별 다르지 않다. 아니, 진즉 이렇게 했어야 했어.”
“폐하. 그런 거라면 차라리 불란서를 이용해 영길리와 아라사를 축출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다급해지고 어조가 점점 빨라졌다.
대체 뭔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이건 정말로 내릴 수 있는 모든 결정을 통틀어 최악의 판단이었다.
“어허! 이래서 네가 아직 많이 배워야 한다는 거다. 불란서는 확실히 양이들 중 가장 강한 오랑캐지. 그런데 그들에게 힘을 실어줘서 다른 오랑캐들을 전부 내치면 어떻게 되겠느냐. 놈들의 탐욕스러운 이빨은 당연히 그 다음 사냥감으로 우리를 노리게 될 것이다.”
“그게 정론이긴 합니다. 하오나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강한 국가를 적대하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저희에게는 그만한 여력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걱정할 거 없다. 영길리 놈들이 좋은 방법을 알려주었으니. 그놈들이 아주 교활한 머리는 잘 돌아가더구나.”
잔뜩 신이 난 가경제가 서서히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 남부와 동부에서는 불란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지?”
“예. 의화단이라는 폭도들이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폭도들이라니. 부청멸양을 외치는 이 시대의 참 애국자들인데.”
“폐하. 설마하니 그들을 이용하시겠다는······?”
“그래. 이제야 네가 말이 좀 통하는구나.”
천자의 몸이 조금씩 앞으로 기울어질수록 황태자는 아버지의 눈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해가 갔다.
생기가 돌아왔다고 여겼던 건 저 눈에 가득 서린 광기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 절대로 이런 분이 아니었는데 궁을 버리고 도주한 굴욕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바꾸어놓았는지.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대화가 성립하지 않을 거라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폐하. 그러면 그들을 어떤 식으로 이용할 계획이십니까?”
“우리 측 인물을 비밀리에 의화단과 접촉시킬 거다. 황실은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뜻을 밝히고, 우선 불란서를 먼저 격퇴하자고 뜻을 모으면 될 게다. 어차피 그자들도 양이들 중 불란서가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걸 알 테니.”
“괜찮은 계책이지만 전국에 퍼진 의화단을 하나로 결집하려면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황실이 공식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이쪽과 불란서는 절대로 함께 갈 수 없는 사이가 될 겁니다.”
의화단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프랑스의 총리를 암살하려고 한 집단이다.
만약 황실이 이런 자들의 손을 들어준다면 더 발뺌할 거리조차 사라지는 꼴이 된다.
아니, 암살의 배후가 황실이었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어질 것이다.
다시 말해 이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프랑스를 밀어낸다면 좋겠지만, 혹여라도 실패한다면 황실 자체가 갈려나갈지도 모르는 진짜 도박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불란서가 강하다고 해봐야 놈들의 본국은 저 멀리 있지 않느냐. 이곳에서 삼국의 연합된 전력을 마주하는데 버텨낼 재간이 있을 턱이 없지.”
“······.”
과연 그럴까.
황태자는 불란서군과 실제로 대치를 해본적이 있기에 잘 알았다.
청나라가 영국과 러시아, 프랑스와 각각 싸웠던 기록도 철저히 검토를 해보았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현재 양이들 중 손꼽히는 강함을 가진 저들은 모두가 청나라보다 강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전성기가 저물어버린 청의 국력으로는 저들 중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게 뼈아픈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프랑스는 수준이 다르다.
사용하는 병기의 질도, 군을 이끄는 지휘관도, 그 지휘관을 제어하는 최상층부도 전부 규격 외였다.
“폐하. 소자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소자는 저희 대군이 불란서에게 어떻게 초토화 되는지, 그 참혹한 광경을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장치와 다를바 없습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정교한 기계 장치입니다. 영길리와 아라사가 강하다고 하더라도 저들에겐 미치지 못합니다. 실제로 아라사는 저희 팔기군의 역습에 패퇴한 전적까지 있지 않습니까.”
“그 부족한 부분은 연합으로 보충하면 그만이다. 아무리 특출난 힘을 지니고 있다 한들 한 손은 열 손을 거들지 못하는 법. 물론 네가 너무나 끔찍한 광경을 보았기에 두려움이 있는 건 잘 안다. 하지만 걱정 말거라. 앞으로 몇 달만 지나면 이 땅 위에서 저 증오스러운 불란서 놈들은 자취를 감출 테니.”
가경제의 어조는 일견 듣기에는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는 어떠한 타협의 여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황태자는 이 순간 확실히 알았다.
아버지는 단순히 판단력이 흐려진 게 아니다.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상대국에 대한 증오와 분노였다.
북경을 버리고 이 행궁까지 쫓겨나며 골수에 미친 증오심에 눈이 멀고 귀가 닫혀버린 것이다.
이제는 황태자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째서 말이 없느냐? 만약 네가 못하겠다면 군기대신 중 한 명을 시킬 터이니 부담없이 말해도 좋다.”
“···폐하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그래. 내 흡족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으마.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 양이들을 쓸어버리고 다시 자금성으로 들어갈 수 있겠구나. 흐흐흐.”
그 뒤로도 가경제가 뭐라뭐라 말을 했지만 황태자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발길로 행궁을 나선 황태자는 한참을 그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하늘은 정녕 우리를 버리신 것인가······.”
하늘이 하늘의 아들인 천자를 버리다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그동안 어떻게든 프랑스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이렇게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줄이야.
어찌나 황당하고 허탈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일 지경이었다.
‘이대로 가면 청은 반드시 망한다.’
하지만 황태자가 무얼할 수 있겠나.
천자의 뜻이 저렇게 확고한 이상 다른 이의 의지는 이제 중요치 않다.
게다가 조금 알아보니 행궁에 함께 피난온 다른 대신들도 천자의 뜻에 찬동하는 눈치였다.
이들 역시 프랑스를 향한 분노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그러나 직접 보지 않은 자들은 모른다.
자금성에 틀어박힌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아 행궁으로 쫓겨나고도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 한 자들.
뒤늦게라도 북경으로 돌아와 돌아가는 상황을 보았다면 최소한의 감은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젠 의미없는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이대로 가면 해체는 물론이고 우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황태자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자신들이 여기에서 살아남는 그림이 그려지질 않았다.
천자가 저렇게 폭주하고 있는 이상 청의 멸망은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면 이를 피하려는 의미없는 노력보다는 차라리 다른 방식의 활로를 찾아봐야 한다.
그래. 이를 테면···선위라든가.
< 멸망의 그림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