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297)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297화 백기투항(297/355)
< 백기투항 >
사람은 본질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동물이다.
10년 뒤의 만찬 따위 오늘의 샌드위치만도 못하고, 내일 왕창 욕을 먹어도 당장 면피만 할 수 있으면 기꺼이 그렇게 하는 게 사람이라는 생물이다.
결국 퍼시발은 내가 차를 두 모금 마시기도 전에 두 번째 안으로 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총리님···제가 의회와 국민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는 건 핑계가 아니라 진심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걸 런던으로 들고 갔다가 암살당하는 거 아닌가 걱정입니다.”
“그러면 런던은 불바다가 되는 거죠···라고 말하고는 싶지만 저도 그 정도까지 나갈 생각은 없습니다.”
영국 본토가 한번쯤은 불타야 쟤네가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지만, 거기까지 가면 너무 많은 민간인이 죽는다.
정말로 결사항전을 택하면 기꺼이 그렇게 해주겠지만 내가 나서서 유도할 마음까지는 없었다.
“사실 퍼시발 총리님의 고충도 이해합니다. 영국은 타국의 군대에 본토를 유린당한 기억이 너무 오래되긴 했으니까요.”
지금 상당수의 유럽 국가들은 자국 땅에서 전쟁을 한 경험이 있는 세대가 아직도 살아있다.
그러나 영국은 압도적인 해군력으로 오랫동안 적국의 침입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영국의 시민들은 전쟁이 그저 신문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먼 나라 이야기라 여기는 자들이 많았다.
물론 동네 이웃들이 전쟁터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래 봐야 결국 전장은 머나먼 외국 땅 어딘가다.
적어도 본토가 전화의 불길에 휩싸일 거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은 자들은 아직도 많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총리라는 작자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굴욕적 항복조약을 맺고 오면 어떻게 될까.
원역사처럼 총 맞고 임기 중 암살당한 최초의 총리로 기록된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으리라.
“크리스티앙 총리님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니 적어도 제가 많은 노력을 했다는 걸 드러낼 수 있는 증거라도······.”
“그거라면 첫 번째 안을 들고 가시면 됩니다. 원래 프랑스가 이런 요구를 했는데 총리님이 유럽 역사에 길이 남을 협상력으로 제 의지를 꺾고 두 번째 안으로 타협을 봤다고 하시죠. 그 정도면 구색은 살지 않겠습니까?”
대영제국이 완전히 갈가리 찢겨나갈 위기에서 프랑스의 경제에 종속되는 정도로 막아냈다면 그거야말로 더 네고시에이터 급 협상가지.
그러니까, 결국 나는 퍼시발 총리의 은인이 되는 셈 아닐까?
영국을 망국으로 이끈 역대 최악의 쓰레기 총리가 아니라 그래도 나름 뒷수습은 했다는 사람으로 남을 테니까.
물론 피트를 쫓아내고 헛짓거리를 한 건 나조차 도저히 세탁이 불가능하지만, 그 정도는 본인이 감내해야 할 문제 아닌가.
“무, 물론 그렇게 해주시면 제 부담이 크게 덜어지긴 하겠지만···그래도 그···시민들과 의회를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건 변하지 않으니······.”
“설마 제게 연설문이라도 써달라고 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당연히 아닙니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더 쉽게 조약을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설득할 수단이 없겠느냐 뭐 그런 거죠···하하······.”
“그런 거라면 제가 편지 한 장 써드리겠습니다.”
“···예? 총리님의 편지를 가져가면 의회가 더 발작을 하지 않을까요?”
“누가 그걸 의회에 가져가라고 했습니까? 그러면 당연히 안 돼죠.”
궁지에 몰리면 사람이 시야가 좁아진다더니 똑똑하다던 양반이 왜 이렇게 됐나.
진짜로 뇌 정지가 와버렸네.
“예? 그러면 누구에게······.”
“총리님께서 팽시켜 버린 사람 있지 않습니까. 지금 영국 시민들이 목이 터져라 돌려놓으라고 소리치는 인물.”
“피트 경이라면 여기 오기 전 도와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별장의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이 편지를 보여주시면 그래도 납득해줄 겁니다. 아니면 할 수 없고요. 그땐 총리님께서 알아서 잘해주시길.”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항복을 거부한다?
그때는 나도 어쩔 수 없지.
나폴레옹 맛 좀 한번 봐보라고 할 수밖에.
※※※
정치에 학을 떼고 별장에 틀어박힌 피트라고 마음이 편할 리는 없었다.
정치란 그에게 있어서 언제나 주변에 있는 공기와도 같았으며 삶과 따로 분리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인생의 일부였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정치와 완전히 무관한 자연인으로 돌아왔으니 이 어색함을 견디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어르신, 오늘자 신문입니다.”
“그래. 두고 가라.”
하루종일 별장에 박혀서 휴식을 취하고는 있어도 곁에는 각국의 최신 신문들을 비치해 놓는다.
-갈수록 강도를 더하는 프랑스의 압박. 과연 해결책은 있는가.
-임박한 폴란드 독립. 폴란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도 폴란드와 연계추진.
-퍼시발 총리. 프랑스와 담판을 짓기 위해 파리로 출국. 과연 성과를 낼 수 있을까.
-피트의 총리 복귀를 촉구하는 런던 시민들. 친우들에게 직접 들어보는 윌리엄 피트의 속내.
“아주 지랄들을 하고 있구만. 그러니까 내가 말할 때 좀 듣지.”
현직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유일하게 좋은 점은 이렇게 제3자의 입장에서 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말한 그대로 상황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는 게 서글플 따름이다.
예측 그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건 곧 평생을 투자해 가꿔온 자신의 대영제국이 박살 나고 있다는 뜻이니.
피트는 커피의 쓴맛을 입안 가득 머금은 채 프랑스에 있는 지인이 보낸 최근 소식을 받아봤다.
-퍼시발 총리와 크리스티앙 총리의 회담이 합의점을 찾은듯함.
“합의가 성사됐다고? 설마······.”
예상 밖의 소식에 가슴 한 켠이 싸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크리스티앙이라면 이번 기회로 대영제국 자체를 끝장낼 것이다.
다시는 나라 꼴을 하지 못하도록 갈기갈기 찢어버려서 밟아놓겠지.
대영제국이 완전히 하나로 결속되어 있는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도 스코틀랜드는 계속해서 나가려고 간을 보고 있는 상황 아니던가.
지금까지 문제없이 나라가 운영된 건 유럽에서 못해도 두 번째 초강대국이라는 위치를 든든히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떨어져 나가는 게 이득이라면 기꺼이 떨어져 나가줄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자신은 견딜 수 있을까.
퍼시발과 여당 의원들과 달리 자신은 목숨은 건사할 수 있겠지만 사람이 양심이 있다면 그럴 수는 없다.
피트는 책상 한쪽에 고이 올려놓은 권총으로 시선을 옮겼다.
만약 정말로 이 나라가 끝장나는 일이 온다면 이 책임을 함께 떠안고 떠나리라.
그런 씁쓸한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집 안을 청소하던 시종이 다시금 방으로 들어왔다.
“어르신. 퍼시발 총리님께서 제발 한번만 뵙기를 청하십니다.”
“뭐? 또 왔다고? 그 인간 프랑스에 있지 않았나?”
“귀국하자마자 바로 이리로 온 듯합니다. 반드시 전해야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죠?”
“···들어오라고 해라.”
이렇게까지 급하게 온 걸 보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방금 전 받아보았던 프랑스와 있었던 회담에 관한 내용일지도 모르니 이전처럼 문전박대할 수는 없었다.
크리스티앙과 퍼시발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피트는 권총을 눈에 띄지 않게 서랍으로 집어넣고 어지럽게 쌓여 있는 신문을 모두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피트 경,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겉치레는 되었으니 본론이나 말해보시죠. 여기 온 이유가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 때문입니까?”
“···예.”
“역시 그랬군.”
그게 아니라면 저번에 그 굴욕을 당하고도 여기까지 다시 기어오진 않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기세 좋게 불신임 결의를 하더니 지금 꼴이 이게 뭡니까? 적어도 뒷수습은 다 하고 제게 팔을 벌리러 오셔야죠.”
“···면목 없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를 위해서는 피트 경이 나서주셔야 합니다.”
“이 나라가 아니라 총리님의 안위를 위해서 아닙니까?”
뭘 부탁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간다.
프랑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게 됐으니 함께 설득을 해달라는 거겠지.
퍼시발에게 밀려 나간 자신까지 나서서 편을 들어주면 시민들에게도 오죽하면 이러겠느냐 하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그래. 크리스티앙 총리는 뭐라고 했습니까? 가진 걸 다 토해내고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준다고 하덥니까?”
“···처음에는 그랬지만 그래도 제가 필사적으로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 양보를 얻어냈습니다.”
“양보?”
그 크리스티앙이 퍼시발에게 양보를 해줬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우선 이걸 좀 보십시오. 제가 양보를 이끌어낸 건 이 정도가 한계였습니다.”
피트는 크리스티앙이 제시한 두 번째 안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온건한 제안에 피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로 이걸로 끝내주겠다는 겁니까?”
“예. 물론 이것도 받아들이긴 힘들겠지만······.”
“확실히 이렇게 되면 영국은 영영 프랑스를 따라잡지 못할 겁니다. 완전히 목줄을 채우고 개처럼 굴리겠다는 거니까요. 하지만 완전히 삼류 이하의 수준으로 떨어트릴 수도 있는데 이 정도로 끝내겠다는 건······.”
피트는 순식간에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해보았다.
‘우리보다는 러시아 쪽을 더 쪼개려고 하는 건가?’
이번 전쟁의 주범은 영국과 러시아지만 프랑스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더 괘씸할 수도 있다.
어쨌든 영국은 원래 전통의 앙숙이었으나 러시아는 동맹국임에도 뒤통수를 후려버린 배신자들이니까.
거기에 최근 루이 16세의 비통한 속마음이 널리 알려지며 프랑스에서 반러시아 여론이 엄청나게 퍼졌다는 기사도 보았다.
그러니 아주 크게 선심을 쓴 척하면서 영국엔 목줄을 채우고 러시아는 박살을 내려는 걸지도 모른다.
사실 객관적으로 봐도 가까이 있는 영국은 통제하기 쉬운 반면 러시아는 그렇지 않으니 러시아 쪽을 더욱 세게 치는 게 맞긴 하다.
피트는 애시당초 퍼시발이 노력해서 이렇게 양보를 얻어냈다는 말 따위는 전혀 믿지 않았다.
저 자에게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 되는가.
아마 저 인간은 지금 다른 곳에 신경이 잔뜩 팔려서 크리스티앙이 왜 이런 제안을 했는지도 꿰뚫어 보고 있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영국으로서는 나름 다행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총리님. 그래서 당신은 프랑스와 이렇게 하기로 합의를 봤다는 겁니까?”
“···예.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이걸 의회와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설을 좀 해달라?”
“역시 바로 이해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만약 이게 부결될 경우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육군이 해협을 건너올 겁니다. 피트 경에게 이 나라의 미래가 걸린 겁니다!”
로열 네이비가 박살이 난 시점에서 이미 영국은 프랑스의 상륙을 저지할 수단이 없다.
만약 여기서 모른 척해버린다면 저 보기도 역겨운 퍼시발 무리는 일소할 수 있겠으나 고국의 미래도 암운에 잠기게 된다.
잠시 생각을 좀 하려던 찰나, 자신의 속내를 간파한 것인지 퍼시발이 잽싸게 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이건 크리스티앙 총리가 피트 경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 서신입니다.”
“크리스티앙이?”
피트는 거의 낚아채듯 퍼시발의 손에 들린 종이를 받아 펼쳐보았다.
“······.”
거의 한 호흡에 모든 내용을 훑어내린 피트는 이내 초조하게 자신을 살피는 퍼시발에게 시선을 돌렸다.
“···런던으로 가시죠. 총리님의 소원대로 제가 연설을 해드리겠습니다.”
“오오, 정말입니까?”
“예. 만약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가 책임지고 설득해 보이도록 하죠. 그러니······.”
피트는 피눈물을 흘리는 심경으로 자신이 평생에 걸쳐 이뤄온 제국의 마지막을 알렸다.
“항복···하도록 합시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에 남태평양까지.
영원토록 찬란하게 빛나고 있을 것만 같았던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시대가 마침내 완전히 막을 내렸다.
< 백기투항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