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314)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 왕의 여자 >(314/355)
< 왕의 여자 >
“조선과 일본 외교단이 놓고 간 선물이라고?”
“그렇다네요.”
오랜만에 돌아오자마 산처럼 쌓여있는 진상품들이 이쪽을 반겨준다.
영롱하게 빛나는 최고급 도자기들과 비단에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수공예품 등등, 중원의 천자에게나 바칠 정도로 으리으리한 문화재 더미가 눈앞에 있었다.
“아주 작정하고 퍼다줬구만. 당신한테 다른 말은 더 없었고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 정도? 제가 청탁 같은 걸 일체 받지 않는 건 유명할 테니 대놓고 눈치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어요.”
조선에서 온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그 눈치없는 말을 할 위인들일텐데···이번 대표가 정약용이라 선을 넘지 않은 건가.
“인상은 어떻던가요?”
“곤도 경이야 여러번 봤으니 별로 더 말할 게 없네요. 그런데 눈치를 보아하니 먼저 방문했던 조선쪽을 굉장히 신경쓰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양국의 관계를 모르니 뭐라 더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사실 그 두 나라가 앞으로 속을 좀 썩일 거 같아서 걱정이긴 하네요.”
정약용은 파리를 떠나기 전에 나를 찾아와 곤도에게 들은 구상을 줄줄이 다 털어놓았다.
저놈들이 저런 터무니없는 구상을 하고 있는데 절대로 자신들은 프랑스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없을 테니 안심하라나 뭐라나.
사실 조선이 일본이랑 뭘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 충격적이긴 했다.
아무래도 현대인인 내 무의식에 한일관계는 절대 어느선 이상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서 조선과 일본은 그렇게까지 척을 질만한 일이 없었다.
임진왜란이야 일본측에서 도요토미는 나쁜 놈이고 지금 자기들은 전혀 상관없는 정부라고 한발 물러서며 잊혀지는 분위기.
여기에 양쪽이 다 프랑스를 롤모델로 삼아 개화에 박차를 가하는 입장이다.
조선이 아직 일본을 왜구라고 깔보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을 한다는 그림을 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처음엔 유교 꼰대들이 기승을 부릴테니 어림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쪽도 상황이 많이 바뀐 듯 하고.
어쩌면 내가 아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미래가 펼쳐질지도 모르겠다는 흥미도 잠시.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냉정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조선과 일본의 연합은 내 입장에서는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조선이야 뭐 마음의 고향인 느낌도 있고 잘되면 굳이 기세를 꺾고 싶지는 않다.
내 영혼은 한국인이니 환국의 위엄을 재현하겠다! 같은 국뽕물은 찍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안되면 어쩔 수 없고 잘되면 좋은 딱 그 정도의 심리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이것도 다 나의 프랑스에 위협이 되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원래라면 조선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아시아의 패권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어야 했다.
진짜로 근대화에서 성공해서 환골탈태를 한다고 해도 연해주 정도만 먹고 깔짝대는 정도로 끝나겠지.
그러나 일본이랑 같이 엮이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곤도가 지껄인 조일연방제국 뭐 이런 건 집어치우고 군사동맹만 맺어도 아시아 국가중에는 이 둘을 견제할 나라가 없다.
그래도 광동 프랑스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이쪽과 대립하지 않는 선에서 덩치를 키우는 건 충분히 가능할 터.
만주국같은 동맹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아시아 국가들끼리 치고받으면 이쪽이 개입할 수도 없다.
그렇게 덩치를 무럭무럭 키워서 아시아의 새로운 패왕이 되면 어떤 변수가 될지 나도 예측이 가지 않는다.
원역사의 일본이 그랬듯 훼까닥 돌아버린 군국주의로 엇나가게 될지 누가 아는가.
무엇보다 내 성격상 역사에서 한번 사고친 이들을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믿어주는 건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다.
오죽하면 친아들이 프로이센을 합병하는 것조차 막았을까.
일단 대동아공영이라는 불순한 말이 튀어나온 것부터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
나온 맥락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맥락이 다르다고 레벤스라움이나 안슐루스 같은 말을 허허허 웃으며 넘어갈 수는 없는 거 아니겠나.
물론 나와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입장이 아예 다른 아내는 이런 감성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제가 볼 때는 조선도 일본도 굉장히 예의를 중시하는 나라 같았어요. 동양은 원래 그런 기조가 강하다고 하니 이 점을 잘 이용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뭐···그래야지요. 일단 저 둘 사이를 갈라놓을 계획을 세워봐야겠네요.”
잠재적인 말썽꾸러기들을 억제하는 최고의 방법은 뭐니뭐니해도 서로 싸움을 붙이는 거다.
특히 아시아 국가는 원래 유럽 이상으로 서로간에 섞이지 않으려 하는 성향이 강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전에도 이런 적이 많지 않았나요? 익숙한 작업이니 별로 어렵진 않겠네요. 그냥 늘 하던 일이 국가 단위로 확장됐을 뿐.”
“부인,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허구한날 모략만 꾸미는 사람으로 들리잖아요?”
“아~아니었나요? 모처럼 이렇게 마주 앉아서 와인을 기울이니까 예전 생각이 나네요. 전에는 이렇게 앉아서 참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리운 이야기네요.”
갑작스레 추억 여행을 떠나는 건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고들 한다.
옛날에는 이런 실감이 드는 게 슬펐지만 최근에는 이것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어떻게 보면 이제 진짜로 빼도박도 못하고 늙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고 또 어떻게 보면 더욱 관록이 쌓였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야 당연히 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만큼 관록이 쌓였다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 또 없긴 하다.
“부인은 가끔 그런 생각 하나요? 과거로 돌아가면 그때도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까하는 그런 실없는 생각.”
“당연히 하죠. 물론 그때마다 선택은 같았지만요.”
아내는 편안한 얼굴로 침대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같이 지낸 세월이 세월이기에 굳이 뒤의 말을 듣지 않아도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는 훤히 짐작이 갔다.
이거 참···이 나이가 됐으면서도 괜히 머쓱해지네.
쑥스럽구만.
※※※
나이가 들어갈수록 많은 게 변해간다.
이제는 손녀, 손자가 할머님이라고 부르며 쪼르르 달려와 안기는 게 익숙한 나이.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풍경보다 파리의 거리가 훨씬 더 마음에 안정을 가져오게 된지도 수십년이 더 지났다.
그동안 겪은 수많은 경험들이 희미해지고 가깝게 지낸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이제는 추억 저편으로 사라져간다.
그럼에도 절대로 희미해지지 않는 기억들은 있는 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욱 선명해지는 과거의 추억들.
오랜만에 남편과 느긋하게 와인을 기울이던 앙투아네트는 새삼스레 예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게 정확히 언제쯤이었더라.
아마 남편이 공작위를 받고 프랑스의 진정한 실세로 군림했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이는 워낙 공사다망했던지라 눈앞의 사소한 자갈들은 신경쓰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걸 처음 깨달았던 시기는 파리로 오고나서 3년쯤 지나서였을까.
사실 그리 큰 문제가 될 법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런 게 쌓이고 쌓이고 계속 쌓이다보면 또 모른다.
“흐음···그건 또 신기한 일면이로구나. 하긴 세상에 모든 게 완벽한 초인은 없는 법이니. 우리 손자에게도 그런 귀여운 결점쯤은 하나 있어야지.”
이런 고민을 상담할 상대는 절대적으로 남편의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국왕뿐.
그런데 막상 루이 15세는 이를 대수로운 문제라 여기지 않았다.
“본래 프랑스 왕가의 사람에게 사소한 추문 정도야 장신구나 다름없는 법이란다. 철저하게 도덕적인 황실에서 자란 우리 아가에게는 조금 언짢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이는 프랑스 왕실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잖아요.”
“물론 그렇긴 하지. 하지만 어차피 출판총감이 그 아이와 친분이 있는 이상 시민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올아다닐 일은 없을 게다.”
물론 그거야 그렇겠지만 남편도, 루이 15세도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사실 입소문, 괴담 같은 것의 진원지는 다름아닌 귀족 귀부인들의 주둥아리라는 사실을.
여기서 알게 모르게 생성된 헛소문이 귀족들 사이에서 어떤 인식을 만드는지는 여자들이 아니면 피부로 실감하기 힘들다.
남성들과는 완전히 단절된 사회라 남성들은 이미 완성된 결과물을 맞닥뜨릴뿐이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남편이 프랑스의 제 1귀족, 오를레앙 공작의 자리를 받게 되자 음지에서는 시기와 질투가 끊이지 않았다.
태양처럼 떠오르는 오를레앙 공작에게는 사소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는 미미한 소음에 불과하겠지만, 마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면전에서는 찍소리도 못할 인간들이 뒤에서 궁시렁대는 걸로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는 꼴이라니.
하다못해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로 그러면 모를까.
“···그렇단 말이죠?”
“예. 국왕 폐하와 가까운 귀족들의 안주인은 좀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역사가 꽤 오래 된 귀족가문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더군요.”
“오를레앙 공이 어떻게 목이 날아나가는지를 보고도 그렇게 입을 놀리는 게 참 뭐라고 해야할지···생각이란 게 없는 걸까요?”
“사실 사석에서 흉 좀 본 걸로 처벌당할 거라는 인식 자체가 없을 겁니다. 오히려 그러면 상대방을 쪼잔하다고 공격할 수 있으니.”
종종 귀부인들의 살롱을 왔다갔다 하는 라부아지에의 아내, 마리안의 눈가는 이미 분노의 기색이 완연했다.
“귀부인들이 당신을 업신여기지는 않던가요?”
“말도 못하죠. 운좋게 출세한 징세청부업자의 아내라고 그냥 대놓고 씹어대는데요.”
“라부아지에가 징세청부업을 그만둔 게 언제인데 아직도 그런다고요?”
“남편이 오를레앙 공작님의 심복이니 대놓고 무시하는 말을 하진 않죠. 항상 이런 식이에요. ‘어머~너무 부러워요. 우리 남편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없어서 아직도 출세를 못하고 있는데 마리안은 남편복이 너~무 많네요.’ 줄 하나 잘서서 출세했다고 돌려까는 거죠.”
그 기분 잘 안다.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자신의 옆에서 은근 신경 긁는 소리를 하던 인간들이 꽤 많았으니까.
그중 대부분이 ‘느그 합스부르크에는 이런 거 없지?’ 식의 유치한 말장난이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과감한 정리가 필요하겠네요. 오를레앙 공작에 관한 가장 악질적인 소문을 퍼트리는 대표적인 몇몇만 좀 추려주세요.”
“제가 이미 다 모아왔죠. 우선 첫 번째로 다메르발 백작가가 있습니다. 이놈들이 제일 악질이에요.”
“다메르발 백작이라면 꽤나 권세가 있는 가문인데···이런 자들이 그런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요?”
“다메르발 백작은 아직 잘 모르는 눈치입니다. 백작이 50대의 나이에 어린 귀족가의 여식을 신부로 들였는데 이 백작부인의 콧대가 하늘을 찌를 정도라 어찌나 눈꼴이 시리던지.”
마리안은 다메르발 백작부인이 어떤 식으로 남편에 대한 루머를 양성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놀랍게도 이런 짓을 하는 원인은 ‘사생아 출신의 비천한 놈이 승승장구하는 꼴이 눈꼴시렸다’로 간결하게 요약이 가능했다.
지능수준이 의심갈 정도로 저열하기 짝이 없는 이유다.
“후···진짜 보자보자하니까 끝도 없이 기어오르네요.”
“어떻게 할까요? 남편에게 말해서 오를레앙 공작님의 귀에 들어가게 할까요?”
“아니요. 이런 자질구레한 일로 그이의 귀를 더럽히고 싶지는 않네요.”
루이 15세는 프랑스 왕가의 사람이라면 이런 추문 정도는 웃으며 넘기라 했지만, 아무래도 자신에겐 아직도 합스부르크의 피가 흐르나보다.
“왕자비께서 나서시면 일이 시끄러워질 수도 있······.”
“이 정도도 조용히 처리 못해서야 오를레앙 공작의 아내가 될 자격이 있겠어요? 이 기회에 파리의 사교계를 깨끗하게 청소하기로 하죠.”
남편은 대업을 이룰 사람이다.
그런 이가 가는 길 앞에 놓인 사소한 돌멩이 정도는 미리 정리해두는 게 아내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일이 끝난 뒤에도 남편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굳이 알아주길 바라면서 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