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353)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 선각자 >(353/355)
< 선각자 >
집에 가는 날이 갈수록 뒤로 밀리고 있다.
아무리 일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파리에 비하면 한참이나 시골인 한성이나 교토에 머무르려니 슬슬 심심···하기는 개뿔.
전혀 그렇지 않다. 매일매일이 새롭고 활기가 새로 넘치는 느낌이다.
이왕 고국을 떠나온 거 여기 식대로 도박도 즐겨보고 술도 펑펑 마셔보고 싶긴 했지만 국왕이라는 신분이 발목을 잡았다.
어차피 호위라는 명목으로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자들이 있으니 허튼 짓을 했다가는 바로 마리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게 보고되면 귀국하자마자 마리의 앞에서 무릎꿇고 한바탕 설교를 듣는 걸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휴일을 마무리하게 될 것이다.
그럴 수는 없지. 암암.
굳이 유흥이 아니더라도 즐길 건 많았으니 상관없다.
처음에는 핑계거리였지만 정약용은 정말로 사력을 다해 내 요구에 응해주었다.
사실 국비로 프랑스 유학을 갈 수 있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이나 일본 지식인들로서는 얼마나 탐이 나겠나.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프랑스의 국왕이 보증해주는 자리라고 하면 더더욱 눈이 돌아갈 수밖에.
실제로 대한민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은 거의 매일같이 자신이 얼마나 프랑스를 사랑하는지 충성서약을 늘어놓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나 말 잘 듣는 놈들이 대체 왜 전쟁하자 히히히! 하면서 급발진을 해버린 걸까.
아마 향후 수십년간 풀리지 않을 의문으로 남지 않을까.
“폐하! 혹 마음에 걸리는 사람은 없으십니까?”
“자네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이들이라 그런지 다 똘망똘망하더군. 특히 프랑스의 선진적인 지식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가 잡혀 있는점이 좋았고.”
“그런 이들이 아니라면 전부 탈락시켰습니다.”
“우리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가면 그들이 이 나라를 든든하게 책임져줄 테니 마음 푹 놓고 지켜보게.”
“예. 그러면 오늘 데려온 이들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정약용이 가지고 온 명단을 쭉 훑어본 나는 그중 눈에 띄는 이름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사람은 나이가 제법 있는데?”
“아, 예. 물론 학생은 아니지만 제 아들과도 가까운 사이라 몇 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나라가 조선일 때부터 실학에 관심이 많았고 프랑스의 선진 문물을 동경하던 사람입니다.”
“김정희라······.”
역사 시험에서 조선 후기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그 추사체의 주인공의 이름을 이런 곳에서 접할줄은 몰랐다.
사실 서예로 유명한 사람을 꼽자면 한석봉이 유명하겠지만 글씨의 예술성과 독창성으로 따지면 추사를 따라올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이름이 적힌 명단에서 시선을 떼지 않자 불안해진 정약용이 슬쩍 물었다.
“지금이라도 나이가 많은 이들은 전부 제외할까요?”
“아니. 배움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오히려 지금 뿌리내린 사고방식이 있을 텐데도 프랑스에 와서 새로운 걸 배우려는 태도가 가상하군.”
사실 학생들만 데려가는 건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크지만 너무 먼 미래를 내다본 큰 그림이라는 문제점이 있었다.
저들이 완벽히 프랑스화 된 상태로 고국에 돌아와봐야 진짜로 높은 자리에 바로 올라가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미 인맥이 빠방한 이들을 몇몇 섞어 데려가서 구워 삶는 게 확실하게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방법이다.
내 허가가 떨어지자 이전처럼 김정희도 정약용에게 이끌려 넙죽 고개를 숙이며 준비해온 감사어구를 줄줄 읊었다.
“폐하! 소신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 한 몸 바쳐 대한민국이 프랑스의 뒤를 조금이라도 따라갈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약소하오나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서예와 난초 그림으로 제법 이름이 알려진 터라.”
김정희의 뒤로 나라에서 따를자가 없을 정도의 독보적인 수준을 자랑한다는 석파란과 내 위업을 적어둔 멋들어진 글씨체가 돋보이는 병풍이 눈에 띄었다.
“이거 참 의미있는 선물이로군. 나폴레옹도 이런 거 참 좋아하는데 혹시 가능하다면 그에게도 비슷한 걸 해줄 수 있겠나?”
“대원수님께 드릴 수 있다면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실력발휘좀 해주게. 아마 프랑스에 가면 보란 듯이 자기 방에 전시를 해둘 테니까.”
나폴레옹의 업적을 달달달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야 광동 프랑스 군인 중에는 널렸으니까 적당히 골라서 붙여주면 되겠지.
김정희가 나간 뒤로도 나는 몇몇 사람들에게 더 인사를 받으며 건성건성 명단을 훑었다.
어디 다른 네임드는 더 없나 하고 살피던 와중 어딘가가 눈에 익은 이름을 하나 발견했다.
“이채중이라···누구였지? 기억이날 듯 말듯한데.”
내가 딱 보고 기억이 안난다면 경우의 수는 두가지다.
거의 비중이 없는 듣보잡이었거나 이름이 아닌 다른 호칭으로 불렸을 인물.
하지만 후자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엄청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을 거 같긴 하다.
내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던 정약용이 재빠르게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었다.
“이채중은 방금 전에 보신 김정희와도 가까운 사이입니다.”
“이씨는 이 나라 옛 왕족의 성씨라고 하던데 혹시 왕족입니까?”
“날카로우시군요. 왕족이긴 하지만 국왕의 적계와는 거리가 좀 많이 떨어진 사람입니다.”
역시 왕족이라서 눈에 익었던 거구만.
“그런데 왕족이 프랑스에 유학을 가고 싶어한다고?”
“왕족이라고는 해도 이번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기는 합니다. 아니, 오히려 종친의 모범이라고 할 정도로 조용하고 무난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프랑스에 오고 싶어하는 이유는?”
“자식교육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하.”
명쾌한 한문장에 모든 이유가 다 이해가 됐다.
대한민국의 드높은 교육열은 역시 아주 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이 맞는 모양이다.
부모된 입장으로서 세계 최고의 선진국에서 자식 교육을 시킨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면 이건 못 참지.
사실 국민들에게 강제로 끌려내려오다시피 한 왕가의 일원이 자신들을 망하게 한 나라에 가서 산다는 건 말만큼 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직접 얼굴을 맞댄 이채중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연신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 저도 프랑스로 갈 수 있는 거로군요.”
“그래. 자식 교육 문제로 꼭 프랑스의 선진적인 교육을 배워보고 싶다고?”
“예. 제 자식들이 꼭 프랑스의 문화와 지식을 익혀 앞으로 새로 바뀔 이 나라에서 제 역할을 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긴 이제 종친이라고 하더라도 국정에 참여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테니.”
“폐하께서는 동양의 문화에 이해가 깊으시다더니 정말로 소문대로군요. 그렇습니다. 다른 자식들은 몰라도 막내 아이가 워낙 총명하니 저도 욕심이 나서······.”
옛 왕실의 후손이 프랑스에 건너가서 교육을 받은 뒤 고국으로 돌아와 대활약한다?
머릿속으로 살짝만 상상을 해봐도 아주 좋은 그림이 그려진다.
이거 잘만 하면 생각보다도 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지도.
“자네···이채중이라고 했나? 황실에 있을 때는 뭐라고 불렸나? 이 나라의 왕족들은 무슨무슨군이라고 불리지 않나?”
“아, 제 군호는 남연군이었습니다.”
순간 머리가 잠깐 띵한 느낌이 들었다.
남연군이라면 그 남연군인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래서 어딘가 묘하게 익숙하면서도 듣보잡의 냄새가 솔솔 났구나.
자식이 똑똑하다고 자랑하는 것도 자연스레 납득이 갔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슬쩍 남연군에게 질문을 던졌다.
“총명한 아이들은 나라의 미래가 되는 법이지. 자네 막내 아이 이름이 뭔가?”
“이하응입니다. 아직 갓난 아이지만 아이를 여럿 키워본지라 얼마나 총명한지 딱 체감이 되더군요. 하하하.”
이하응, 이하응.
예상대로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즐겁게 그 이름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쯤이면 슬슬 그 이름이 태어났을 시기이기는 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프랑스로 올 장학생이.
그것도 프랑스의 선진문물을 이 나라에 퍼트릴 첨병이 될 사람들의 후보로 그 이름이 올라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떻게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이 자식을 프랑스에서 키우고 싶다고 할 줄은.
“아무리 폐지 됐다고 해도 왕족이라는 명함은 영향력이 없기가 힘들지. 나중에 자네 아들이 프랑스에서 성장한 뒤 이쪽으로 돌아오면 분명히 어느 정도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건 알겠지?”
“예. 그거야 당연히 감내해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옛 왕족이라는 굴레가 오히려 자네 아들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줄 장식이 될 수도 있어. 몰락한 옛 왕실의 후예가 진정한 민주정을 발달시키기 위해 고국에 헌신한다. 아름다운 그림 아닌가?”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저도 소원이 없겠습니다.”
남연군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연신 자식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원래 부모란 자식 자랑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입이 멈추지를 않는다.
나도 그 기분은 익히 알았기에 딱히 저지할 마음은 없었다.
“아직 어린 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편견도 없이 자유롭게 자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음, 그렇지.”
“저는 우리 하응이가 프랑스의 우수한 문화를 고국에 전파하는 선구자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프랑스와의 우애를 상징하는 비석이라도 세운다면 더더욱 뜻 깊을 거 같은데. 나중에 프랑스로 오면 내가 꼭 자네와 자네 아이를 한번 보러 가겠네.”
“감사합니다! 폐하께서 내려주신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남연군이 넙죽넙죽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나갔다.
히죽히죽 웃으며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 정약용이 의아한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폐하께서 저토록 관심을 보인 사람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뭐 그랬지.”
“하긴 그래도 전 왕족이었는데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다고 프랑스에서 살겠다고 하니 특이하긴 하죠.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응원하고 싶네요.”
“나도 그렇네. 지금 막 떠오른 생각인데 이번 장학생들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비석 하나라도 세울까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내 의도를 짐작도 못하는 정약용은 당연히 고개를 아래 위로 흔들며 활짝 웃었다.
“그렇게까지 신경써주시니 저로서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내용은 어디보자···보다 발전된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지 말자는 것은 스스로 뒤처지자는 것이요, 뒤처지자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것이다라는 말을 적당히 자네가 다듬어서 새기도록.”
“알겠습니다.”
정약용이 부랴부랴 지시를 내리러 떠나자 자연히 혼자 남게 된 내 입가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하응이라는 이름을 여기서 들을 줄이야.”
이름만이라고 하면 생소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 이 사람은 현대에서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유명하다.
이름보다는 칭호로 100배는 더 유명한 그 사람.
이하응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대원군이라는 호칭만큼은 고등학생 이상이면 대부분이 안다.
워낙 꽉 막힌 이미지라서 현대에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세대 틀딱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서양과 화친하는 건 나라를 파는 거라며 규탄했던 이가 이제는 프랑스의 문화를 퍼트릴 미래의 유망주로 내 나라에 온다는 것이다.
아마 이곳의 역사에서는 이하응은 흥선대원군이 아닌 프랑스의 지식을 조국에 열심히 전파한 선각자로 기록되겠지.
유럽만이 아니라 아시아, 그리고 조선과 일본의 역사를 완벽하게 뒤틀었다는 실감이 지금처럼 강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새삼스럽게 내가 이제 그만큼이나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쉬워진다.
이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모르긴 몰라도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텐데.
예전이었다면 진심으로 아쉽다거나 울적한 기분이 들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냥 조금 아쉬울 뿐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앞으로의 다가올 미래를 확인하는 건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의 몫이니까.
나는 그 미래를 즐겁게 상상하며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나갈 뿐이다.
앞으로 천년이 지나도 영원히 회자될 명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