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36)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36화 지각변동(36/355)
지각변동
“카우니츠의 말로는 오늘 정말 명배우가 따로 없었다고 하던데.”
“제 주가를 높여놔야 폐하께 걸리는 부담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테니까요.”
오늘 쇤브룬 궁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소란에 휩싸였다.
성공적으로 결혼동맹이 성사된 걸 기념해야 하는 경사스러운 날에 뜬금없이 암살 미수가 터졌다.
그것도 프랑스에서 온 외교단의 호위 책임자가 대표를 죽이고, 그걸 오스트리아 측에 덮어씌우려고 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걸 프랑스의 왕자가 멋지게 꼬리를 잡아 해결한 것도 잠시.
이번에는 테레지아가 충격적인 발표를 터트렸다.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한나 폰 합스부르크 로트링겐은 프랑스의 왕자 루이 크리스티앙 드 프랑스와 결혼할 것이다.>
지금까지 공주가 왕세자와 결혼하는 걸로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원래는 더 소란스러울 거라고 예상했는데 자네의 안배 덕분에 일이 상당히 쉬워졌네. 감사를 표해야겠지.”
“저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저야말로 예상외의 변수를 전부 우리 쪽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조정한 폐하의 수완에 많이 배웠습니다.”
테레지아는 내게 말한 대로 결혼 발표와 동시에 오스트리아 전역에 천연두 백신 접종을 시작할 거라는 계획을 선포했다.
동시에 마리의 결혼 상대인 나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홍보가 시작됐다.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천연두에 대한 공포는 결코 프랑스 못지않았다.
사실 더 심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당장 국민들이 존경하는 테레지아 여제가 천연두에 걸려 사경을 헤맨 지 아직 몇 년도 채 되지 않았다.
또한 공주 중 무려 2명이 천연두에 걸려 요절했고, 한 명은 기적적으로 회복했지만 아름다웠던 외모를 영영 잃어버렸다.
여기에 제국의 2인자인 요제프 2세마저 두 아내를 연달아 천연두로 먼저 떠나보냈다.
나라의 기둥인 왕족들이 천연두로 줄초상이 났으니 백성들 역시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테레지아는 바로 이 점을 이용해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천연두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효율적으로 뿌리 뽑기 위해 기꺼이 결혼을 선택한 공주와 그 결혼을 지지한 여제.
거기에 아내가 될 사람의 나라를 조국과 똑같은 조건으로 대우해주기로 약속한 나까지.
빈의 시민들은 이번 결혼을 진심으로 반기고 축복해주었다.
“오늘 자네가 보여준 멋들어진 연극 덕분에 귀족들의 반발도 많이 나오지 않았네. 직접 본 이들에게는 아주 인상 깊었던 모양이야.”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죠. 얼마나 신경 써서 마련한 자리인데.”
시민들의 열광적인 지지가 있다면 귀족들도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만사형통이 되지는 않는다.
다행히도 빈의 귀족들은 자존심은 높아도 눈치가 빠르고 계산도 확실했다.
내가 존재감을 확실히 뿜어내자 그들은 재빠르게 나의 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견적을 뽑았다.
어차피 요제프 2세와 테레지아가 전부 밀고 있는 이상 내 위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귀족들은 절대 바보가 아니었다. 국가 간의 협약이 체결된 이상 왈가왈부해봐야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렇다면 이 흐름에 거스르기보다는 올라타는 게 상책이다.
처음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려던 귀족들은 시민들의 반응을 확인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적극적으로 환영의 뜻을 밝혔다.
내가 알현실에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오늘 온종일 귀족들의 방문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그나저나 지금 구금되어 있는 그놈은 어쩔 셈인가? 프랑스로 끌고 가서 그곳에서 처벌받게 해야겠지?”
“예. 일단 그 전에 입을 열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폐하께서는 에스터하지가 절 암살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어느 경로로 손에 넣으신 겁니까? 혹시 놈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아시는 바가 없으신가요?”
“그게 좀 애매하네. 카우니츠가 그 정보를 처음 가져왔을 때는 그렇게까지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닌 듯싶었어. 그래서 투구트 남작에게 에스터하지 옆에 붙여서 적당히 연기하며 정보를 뽑아내라고 지시했지.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자네가 이런 상황을 의도하고 정보를 흘린 게 아닌가 의심도 했었네.”
“그 정도로 멀리 내다볼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신이겠죠. 그러면 일단 지금은 에스터하지의 입을 여는데 주력해서 흑막을······.”
“폐하. 급히 보고드려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카우니츠가 다급하게 외치며 방으로 들어왔다.
공적인 부문에서는 언제나 냉정한 모습을 보이던 그가 이렇게 당황하고 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슨 일이라도 터졌나? 혹시 귀족들 몇몇이 혼인에 반대한다고 성명이라도 낸 건 아니겠지?”
“그것보다 조금 더 심각한 일입니다. 구금 중이던 에스터하지가 죽었습니다.”
“뭐라고?”
테레지아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이글거리는 분노가 그 자리를 채웠다.
“대체 어떻게 경비를 섰기에 구금 중이던 죄인이 암살을 당한단 말이냐. 당장 책임자를 처벌하고 경위를 조사하도록!”
“폐하 그게 살해당한 건 맞지만 독극물에 의한 중독사로 보입니다. 의사의 소견으로는 아마 오늘 아침 정도에 독을 마신 게 아닌가 싶다고 합니다. 병사들이 끌고 갈 때부터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정상이 아닌 듯 보였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이미 중독증상을 보였던 거로군. 계획이 다 들통나고 끌려가는 범인이 얼굴이 정상이면 그게 더 이상할 테니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고.”
“폐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일단 왕자 전하께는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이쪽의 불찰입니다.”
조금 예상외이긴 했지만 굳이 저쪽에서 사과할 일은 아니다.
암살범 에스터하지조차 그날 아침에 이미 독에 중독된 상태였다는 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나도 입막음 시도가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손을 쓸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걸로 확실해진 점은 하나 있습니다. 에스터하지는 결국 체스판 위의 기물일 뿐이었고 그걸 조종한 인간은 따로 있다는 거죠. 그것도 이 정도 규모로 일을 꾸밀 정도의 거물이.”
“자네를 암살한 뒤에 에스터하지도 입막음으로 보내버리려고 한 걸 보면 확실히 꽤나 치밀한 인간이겠군.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해도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괜찮은가?”
“문제없습니다. 상대가 보통이 아닐 거라고는 이미 예상한 바니까요.”
프랑스에 돌아간 뒤 내 행보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르게 바뀔 것이다.
누구인지는 아직 몰라도 이 정도로 해주지 않으면 찾아내서 목을 쳐버리는 재미가 없지.
기껏 찾아내서 죽이려고 하는데 능력이 떨어지는 찌질이라면 이쪽도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적어도 그럴 가능성은 사라졌으니 이쪽도 이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일 수 있다.
좋아. 그렇다면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고.
어차피 지금부터 주도권을 쥐는 건 내 쪽이다.
지금쯤이면 내가 보낸 폭탄이 프랑스로 향하고 있을 테니 앞으로의 운신을 위한 준비도 끝났다.
하지만 자신만만한 나와는 달리 테레지아는 어딘가 석연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괜찮냐고 물은 건 자네 쪽이 아니라 자네의 아내가 될 내 딸 쪽일세. 안 그래도 합스부르크의 사람인 그 아이가 프랑스에서 적응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자네의 문제까지 겹치면 더 힘들지 않겠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만약 자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 아이가 슬퍼할 건 차치하더라도, 나 역시 딸을 금방 죽어 나자빠질 왕자에게 보내버린 머저리가 되는 건 알고 있겠지? 자네의 목숨은 자네만의 것이 아니게 되는 거니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거야.”
그걸 말이라고.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은 바로 나라고 장담할 수 있다.
죽어도 다시 돌아오니 괜찮지 않으냐고?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그런 방법을 택했다지만 앞으로 두 번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만 해도 거의 한계나 마찬가지였다.
다음에도 이전보다 최소 5배는 더 긴 고통을 맛보게 되면 제정신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그때가 되면 분명 어느 한 부분은 망가진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절대로 잘못되지 않을 거고 공주님을 누구보다 행복한 여인으로 만들어드릴 겁니다.”
“그 아이가 자네를 정말 많이 좋아하고 있네. 남자라면 결국 다른 쪽에도 눈이 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되도록 한눈팔지 말고 그 아이에게 잘 대해줬으면 하네.”
“저는 약속 하나만큼은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래. 믿고 있겠네. 그러면 약속도 지킬 겸 이제 슬슬 나가서 그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떻겠나? 내가 일부러 공식 일정을 잡아두었거든.”
이 나라에서 가장 높으신 장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내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으랴.
당연히 고개를 직각으로 숙이며 감사하다고 우렁차게 외칠 뿐이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하는 불안감으로 말하는 건데······.”
자리에서 일어나 막 나가려고 하는 나에게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충고를 건넸다.
“설마 그러진 않을 거라고 믿지만 어려도 남녀 사이는 남녀 사이니까···. 왕가의 체면이 있으니 정식으로 혼인을 올리기 전에는 조심하게.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
“···물론입니다.”
설마하니 이런 주의를 받을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지라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테레지아가 은근히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물론 지금만 참으라는 소리지 혼인식을 올리고 나면 열심히 힘을 내서 자식들을 숨풍숨풍 낳아보게. 그래도 자네 얼굴을 보아하니 후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다행이야.”
“아, 예······.”
아주머니.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아직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딸을 상대로 해서 아이를 팍팍 낳으라니.
물론 이 시대의 왕족이라면 충분히 결혼을 할 나이이긴 했지만, 현대인의 감성이 아직 다 사라지지 않은 나로서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이야기다.
사실 전생에서는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던 오징어 솔로 부대였고, 이번 생에도 딱히 여자와 자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혼전임신 같은 걸 시킬 생각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째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여성을 만난 경험이 엄청나게 풍부하다고 보는 듯하다.
루이 15세의 우월한 유전자를 받아서 그런 걸까.
역시 잘생긴 사람은 받는 시선부터가 다르구나.
세상의 불공평함을 다시 한번 느끼며 밖으로 나오자 정원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마리가 맞아주었다.
“크리스티앙 님! 여기에요.”
구김살 하나 없는 순진무구한 미소를 보니 모략과 계략에 찌들어 있던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다.
“혹시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까?”
“곧 있으면 나오실 거라고 들었거든요.”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에 좀 안정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기나긴 죽음의 고통 때문에 들끓었던 분노와 복수심도 한층 옅어지는 기분이었다.
“공주님.”
“예?”
다소 뜬금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 떠오른 말을 그대로 입에 담았다.
“제가 누구보다 행복한 여인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마리가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다가, 그 어느 때보다도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저도 크리스티앙 님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편으로 만들어드릴게요.”
신기한 일이다.
긴장이 풀리고 나니 이제야 확실히 자각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나도 홀몸이 아니게 되는 건가.
전생부터 지금까지 쭉 혼자였던 나에게 반려자가 생긴다는 실감이 들자 생전 처음 느껴보는 뭉클한 무언가가 가슴을 타고 올라왔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하더라.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정의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냥 웃었다.
뜻밖에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진심으로.
※※※
크리스티앙이 오스트리아에서 거둔 성과는 당연히 베르사유궁에도 전해졌다.
그것도 무려 크리스티앙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에 테레지아와 요제프 2세의 친필 서신까지 당도했다.
크리스티앙이 루이 15세에게 올린 보고서는 놀랍도록 프랑스뽕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보면 뻔뻔하다고 보일 정도였지만, 누구도 그렇게 느끼진 않았다.
그 정도로 이번에 그가 이룬 업적은 상당한 것이었다.
여기에 요제프 2세와 테레지아가 직접 크리스티앙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은 서신까지 더해졌다.
감히 트집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보고서를 읽어내려가는 루이 15세는 거의 귀가 입까지 걸려 연신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하하하, 이것 보게. 이 아이가 이토록 잘 해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전하의 영민함은 분명 폐하의 자질을 물려받은 거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또한 폐하의 덕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래, 그래. 오늘은 참으로 기분이 좋군.”
루이 15세가 회담의 성과를 말했을 때 대다수의 귀족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었다.
그 고고한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가 자신의 막내딸을 사생아 왕자에게 주었다?
노망이라도 난 게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일을 크리스티앙은 해냈다.
프랑스로서는 어마어마한 이득을 본 셈이다.
우선 누가 봐도 합스부르크 왕가가 격에 떨어지는 혼인을 했다고 보이는 시점에서 부르봉 왕가의 격이 한층 높아지게 된다.
게다가 오스트리아와 결혼동맹은 성사시키면서 왕세자비의 자리는 공석으로 놔두었으니, 강력한 외교수단을 한 장 아낀 셈이다.
국민들이 곱게 보지 않는 합스부르크의 여인을 왕세자비로 삼는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아도 됐다.
왕세자비를 프랑스 여인으로 삼든, 그도 아니면 다른 국가와 정략결혼을 하든 그건 이제 프랑스의 마음이다.
여기에 혹시나 왕세자가 예정된 약혼 상대를 빼앗겼다는 놀림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점까지 배려해두었다.
우리 위대한 대 프랑스 왕국의 왕세자는 이렇게 급하게 정해진 혼처와 결혼하기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니 훨씬 더 위신에 걸맞은 상대와 혼인을 할 거라는 보도를 자신의 결혼발표 이전에 대대적으로 해달라는 당부도 적혀 있었다.
루이 15세는 자신의 명성보다 왕실의 위신을 우선으로 살피는 손자의 씀씀이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렇게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손자를 오스트리아로 보내자고 제의한 모푸, 자네의 덕분이지. 정말 좋은 발상이었네.”
“과찬이십니다.”
국왕의 칭찬을 받았음에도 모푸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사실 그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진심으로 당황스러웠다.
‘테레지아 그 여편네가 미쳤나? 대체 뭘 보고 딸을 크리스티앙에게 맡긴 거지?’
오스트리아로 보낸 시점에서 결혼동맹이 성사될 거라는 예측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오스트리아의 공주는 왕세자와 결혼하게 될 거라 예상했다.
설마하니 크리스티앙이 이 정도의 공을 세워올 줄은 몰랐다.
대체 어떻게 입을 털었길래 그 노회한 테레지아와 카우니츠가 홀랑 넘어갔단 말인가.
‘아직 고등법원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건가.’
모푸의 원래 계획은 크리스티앙이 오스트리아에 있는 사이 고등법원을 확실하게 밟아놓는 것이었다.
다행히 포클랜드 제도를 둘러싼 프랑스, 영국, 스페인 간의 갈등에서 강경한 주장을 하던 슈아죌이 국왕의 눈 밖에 나 자리에서 밀려났다.
대신 총리의 지위에 오른 모푸는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반항하는 고등법원을 해체하려 했으나, 고등법원은 예상외로 촉이 좋았다.
이런 상태에서 크리스티앙이 돌아오면 정계 구도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슈아죌 공작도 영향력을 되찾고 싶어 할 테니 크리스티앙을 견제하는 데 써먹을 수 있겠지. 그러니 일단 계속 손을 잡고······.’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던 모푸는 순간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고개를 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춤이라도 출 것처럼 기뻐 보였던 루이 15세의 얼굴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어졌다.
보고서의 뒷장을 읽어내려가던 그의 손이 분노로 바들바들 떨렸다.
“뭐냐 이건······.”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감지한 모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어떤 개자식이 감히 이런 음모를 꾸몄단 말이냐!”
어지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루이 15세가 길길이 날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고서를 구겨버리려던 그는 간신히 이성을 유지하고 모푸에게 집어던지다시피 종이를 내밀었다.
“찾아내라. 당장.”
“···예?”
“이 쓰레기 같은 짓을 저지른 놈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놈들을 모조리 찾아내란 말이다! 내 직접 처형을 명할 것이다!”
황급히 보고서의 뒷장을 읽어본 모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에스터하지 이 미친 새끼가······!’
제정신이라면 이런 짓을 저지를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독단으로 저질렀을 리도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모푸의 등골이 한층 더 서늘해졌다.
‘이런 개같은··· 이러면 가장 먼저 나와 슈아죌이 용의선상에 오를 텐데. 슈아죌 이 미친놈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놈을 호위 책임자로 추천한 거야.’
에스터하지를 추천한 슈아죌. 그리고 크리스티앙을 오스트리아로 보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던 모푸.
암살미수 사건이 터진 이상 당연히 이 둘은 의심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
이럴 땐 누군가 자신을 지목하기 전에 선수를 쳐야 한다.
황급히 자세를 낮춘 모푸의 입에서 비장미가 뿜어져 나오는 절절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감히! 대 프랑스의 위신을 드높인 왕자 전하를! 제가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 폐하의 앞으로 끌고 오겠습니다!”
귀국한 크리스티앙을 견제하려는 계획은 이 순간 백지로 돌렸다.
이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칼자루를 쥔 쪽에 붙어야 한다.
외통수에 몰린 모푸만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귀족은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당분간. 그 광풍의 중심에 누가 서 있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