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40)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40화 복수는 나의 것 (2)(40/355)
복수는 나의 것 (2)
“고등법원을 해체······.”
모푸는 몇 번이나 내 말을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면서 눈을 껌뻑였다.
자신이 지금 들은 게 정말인지 확신을 못 하는 눈치였다.
“그렇게나 놀랄만한 일입니까?”
“그야 당연···! 아, 언성을 높여 죄송합니다. 하지만 대체 어째서······?”
“구체적으로 뭐가 궁금하신 겁니까?”
“전하께서는 법원과 그렇게나 사이가 좋지 않으셨습니까. 지금까지 전하의 뒤를 계속 밀어준 건 법원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마 귀족들 대부분이 모푸와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와 법원은 공생의 관계이며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사이.
법원의 힘이 강화되면 내 입지도 강화되고 역으로 내 힘이 강해지면 법원의 세력도 단단해진다.
그렇게 판단했기에 모푸가 나를 오스트리아로 보내면서까지 법원의 힘을 빼놓으려 한 것일 터.
“전하를 오스트리아의 빈민가에서 발견한 이들도 법원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파리로 데려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고, 전하가 신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지원도 해주었죠. 언론을 움직여 호의적인 기사도 그렇게나 많이 뿌려댔습니다. 그런데 왜······.”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쭉 나열하던 모푸는 문득 뭔가를 떠올린 듯 이마를 어루만졌다.
“혹시 어떤 이권을 둘러싸고 알력다툼이라도? 아니면 전하의 입지가 너무 강해지니 법원이 전하를 통제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견제를 하려 했다든가.”
“그건 아닙니다. 총리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표면적으로만 보면 고등법원은 저의 든든한 지원군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자들을 아군이라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
“···예?”
“현 고등법원의 상층부가 얼마나 권력에 집착하고 있는지는 총리님도 아실 겁니다. 인간인 이상 권력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이치지만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선을 넘었죠.”
법원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새로운 칙령이나 법에 대한 거부권이다.
국왕이 강하게 나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이들의 권한을 침범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줄타기하고 있었지만, 그래 봐야 정말로 중요한 개혁법안을 통과시키는 데는 지지부진했다.
현재 답도 없이 썩어가고 있는 프랑스를 근본적으로 개조하려면 가장 먼저 이들을 쓸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전하께서는 그동안 어쩔 수 없이 법원과 협력하는 척을 하셨다는 겁니까?”
모푸가 미심쩍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상식적으로 지금 들은 말만으로는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이것도 어쩌면 자신을 낚을 함정을 파는 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진실의 일부를 알려주었다.
“총리님. 저는 제 주변의 사람들이 실수하거나 성과를 내지 못해도 바로 쳐내지는 않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라도 실패는 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배신을 하거나 뒤통수를 치려는 자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고등법원이 전하를 배신하려고 했었다는 겁니까?”
“적어도 뒤통수를 치려고 했었다는 점에서는 배신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한 번 그랬던 자들은 언제라도 다시 그럴 수 있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특히 암살 같은 걸 하려고 한 싹수가 노란 자들은 특히나 더.”
“암···살?”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단어였는지 모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재차 질문을 던졌다.
“설마 에스터하지와 짜고 친 자들이 고등법원이란 말씀이십니까?”
“설마요. 그랬으면 이미 고등법원은 풍비박산이 났겠죠. 제가 말하는 건 더 이전입니다.”
나는 모푸에게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일들을 대략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고등법원이 날 어떻게 이용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암살범을 보내 죽이려고 했던 이야기들까지.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 그의 얼굴이 경악과 분노로 얼룩졌다.
“설마 그렇게까지 썩어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역시 그들은 이 나라의 해악에 불과한 기생충들입니다. 과감히 도려내지 않으면 숙주조차 죽음에 이르게 할 겁니다.”
“제가 그들을 찍어내려는 이유를 이제 아시겠지요?”
“전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법원의 비리를 낱낱이 밝힐 증거들을 이미 가지고 계시단 뜻이겠군요. 그걸 공개만 하면 쉽게 놈들을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세간에서는 총리님처럼 법원과 제가 사이가 좋은 줄 알고 있으니까요. 제가 나서서 법원과 대립하는 느낌을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모푸가 앞서 말했듯이 내가 법원을 탄압하는데 전면에 나와버리면 외부에서 보는 구도가 묘하게 보일 수 있다.
내가 법원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건 어쨌든 사실이다.
그런데 뒤늦게 법원의 비리를 밝히고 그들을 규탄하는 건 빨아먹을 것만 빨아먹고 팽시키는 걸로 보일 여지가 충분했다.
시민들이야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다른 귀족들의 눈에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국왕에게 칼자루를 받더니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만 힘쓴다는 비판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내가 전면에 나서면 법원도 대응할 게 뻔하지 않은가.
게다가 법원 쪽에서는 내가 통수를 쳤다고 생각할 테니 더 악에 받쳐서 물어뜯으려 하겠지.
어느 쪽으로 봐도 내가 직접 무대 위에 오르는 건 아직 시기상조다.
그러니 표면적으로 법원을 무너뜨리는 사람은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
“그럼 왕자님께서 법원의 부정에 관한 증거를 저에게 넘기고, 제가 그걸 이용해 법원에게 반격을 넣으면 되는 겁니까? 그런 식이라면 전하께 부담이 그리 가지 않을 테니까요.”
“예. 그런 쪽으로 가겠지만 처음에 그들을 공격할 건 비리와 부패가 아닙니다. 지금 시민들의 여론으로는 그런 쪽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귀족들도 부패를 저지른 자들이 한둘이 아니라 미적지근하게 반응할 테고요.”
“···그러면 어떻게 법원을 공격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미 가장 좋은 공격거리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저를 암살하려고 했던 놈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이나 더 암살당하고 난 뒤 확실히 느꼈다.
사람을 뒤에서 찌를 생각이나 하는 놈들은 미리미리 쓸어내 버려야 후환이 없어진다.
이미 암살범을 고용한 전적이 있는 놈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 번 그랬으면 두 번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나는 그런 쪽으로는 기억력이 만땅이라고.
“하지만 그걸 입증할 증거를 구할 수 있을까요? 심증만으로 터트리면 괜히 이번 암살 건과 엮여서 정치적인 꼼수를 부린다는 역풍이 불 수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선량한 내부 제보자가 한 명 나올 테니까요. 제가 모든 준비를 마쳐둘 테니 총리님께선 그냥 다 썰어진 고기 위에 포크만 올리시면 됩니다.”
“증거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카드는 없겠지요. 알겠습니다.”
“대신 법원의 윗대가리들을 솎아낸 이후의 뒤처리는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물론입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죽을상이었던 모푸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이번 일을 원만히 끝마치면 모푸는 강력한 내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원 역사에서는 모푸처럼 뭔가를 해보려다가 국왕과의 의견 불일치나 귀족들의 견제로 물러난 사람이 많다.
마경에 가까웠던 18세기 말의 프랑스는 어느 한 명이 잘해보려고 한다고 잘 될 수가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내가 세력을 확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런 이들에게 구명줄을 던져준 뒤 살살 꼬드기는 것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결점들은 내가 적절히 조정해주면 된다.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니 방향만 잘 잡아주면 충분히 좋은 방향으로 뻗어 나갈 수 있으리라.
연락을 기다리고 있겠다며 희희낙락 자리를 뜬 모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참으로 오래도 기다렸다.
영문도 모르고 암살당했을 때부터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부디 최대한 불쌍하고 절박하게 살려달라고 빌기를 바란다.
물론 들어줄 일은 없겠지만.
※※※
다시 돌아온 튈르리 궁.
마리와 함께 도착한 정원에는 미리 언질을 받고 도착한 방문객이 한 명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모습 중 가장 화려하게 옷을 빼입은 라부아지에였다.
“오셨습니까.”
코앞까지 다가온 그가 정중하게 무릎을 굽혀 예의를 표했다.
“왕자비 마마에게는 처음으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라고 합니다.”
“저도 이야기는 들었어요. 천재 화학자 맞으시죠?”
“화학자는 맞지만 천재라는 수식어는 조금 과장된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라부아지에는 꽤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미녀에게 칭찬을 받고 기분이 좋지 않을 남자는 세상에 없을 테니.
“그건 그렇고···. 전하, 부탁하신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돌연 그가 목소리를 훅 낮췄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일말의 긴장감마저 배어있었다.
“수고했네. 마리, 저는 이 사람과 업무에 관한 일로 이야기 좀 할 테니 먼저 들어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저는 낮잠 좀 자고 있을게요,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너무 졸립네요.”
마리는 내 뺨에 입을 맞추고 라부아지에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라부아지에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다정다감하신 분이군요. 합스부르크 왕가라고 해서 좀 더 화려하고 고고한 모습을 상상했었는데요.”
“처음 보면 한결같이 그런 반응을 보이더군.”
“예. 왕자비 마마의 진솔한 모습이 시민들에게 노출될 기회를 지금부터라도 자주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왕자 전하의 지지도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확실히 라부아지에는 머리 회전이 빠르다.
내가 파리에 거점을 둔 이유 중 하나가 되도록 시민들과 자주 접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물론 그렇게 해야지.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시민들의 인식을 가장 쉽게 좌우할 수 있는 건 언론의 힘이야. 그리고 현시점에서 그 언론을 틀어쥘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말 안 해도 알겠지?”
“예. 결국 지금 하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로군요.”
라부아지에가 건넨 자료를 훑어본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가지고 있을 줄 알았지. 자네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전해주게.”
“아버지께서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말씀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이걸 건네준 것만으로도 자네 아버지는 내게 진 빚을 다 갚은 거야. 가서 내 쪽에 붙은 선택을 결코 후회할 일 없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게나. 잘못될 일은 어디에도 없을 거라고.”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앞으로 여기 출입하지 않고 예정대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라부아지에는 그렇게 할 말만 하고 재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멀어지는 그에게서 눈을 떼고 손에 들린 문서를 따로 챙겨두었다.
예상대로 라부아지에 가문은 내 암살에 관한 증거를 모아두고 있었다.
일이 잘못되면 고등법원이 라부아지에 가문에 모든 혐의를 다 뒤집어씌울 수 있으니 당연히 뒤로 자료를 모아놓았을 거라 확신했다.
그럼 이 자료를 가장 확실히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역시 이걸 받았을 때 가장 빡칠 사람에게 건네주는 거지.
※※※
루이 15세는 최근 기분이 좋았다가 나빠졌다가를 거의 매일 같이 반복하고 있었다.
딱히 조울증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흡족한 일과 열 받는 일이 계속 번갈아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 손자 루이 크리스티앙과 관련이 있었다.
손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귀족들이 상당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없기는 해도 절대 바보는 아니었다.
오히려 능력적인 면만 놓고 본다면 상당히 통찰력이 있는 쪽이라고 봐도 좋았다.
그런 그가 보기에 크리스티앙은 왕족에 편입된 자신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처신하고 있었다.
굳이 베르사유궁에서 머물지 않고, 왕가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그 와중에 혹시라도 왕세자의 위신이 떨어질까 걱정해 조치를 취해두기까지 했다.
이렇게나 기특한 손자를 누군가가 암살하려고 한 것이다.
이건 단순한 살인미수가 아닌 루이 15세의 왕권에 대한 도전이었다.
아무리 유약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고 해도 이 정도로 허수아비 취급을 하면 열이 안 받을 수가 없다.
결단코 흐지부지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래. 튈르리 궁으로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렇게 돌아왔다는 건 혹 조사에 진전이 있었던 게냐?”
루이 15세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베르사유로 돌아온 손자를 맞이했다.
지금까지 손자는 한 번도 자신의 기대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무엇을 시키고, 물어보아도 언제나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훌륭한 결과를 가지고 온다.
변명만 입에 달고 사는 대다수의 한심한 귀족들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됐다.
“이번 암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대한 사건 하나를 보고드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알현을 요청했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이렇게 직접 와서 보고를······.”
라부아지에에게서 받은 문서를 읽어내려가던 루이 15세의 말이 뚝 끊겼다.
이윽고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의 입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이게 사실이냐?”
“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고등법원이 너를 여기로 데려온 뒤, 암살을 시도한 전력이 있다고?”
“당시 제가 필요 없다고 판단해 괜한 문제가 되기 전에 치워버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
루이 15세의 손이 분노로 떨리고 그 미간이 무섭도록 굳었다.
문득 최근에는 정말로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던 거냐.”
“증거가 없었습니다. 아무 물증도 없이 저쪽을 공격해봐야 저쪽은 억울하다며 잡아뗄 테니 지리멸렬한 소모전이 됐겠죠.”
“그런데 마침 이렇게 증거가 굴러들어왔고?”
“제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지자 법원 내에서 지레 겁먹은 사람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번 암살 건을 빌미로 법원을 압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겠죠. 그래서 재빠르게 이쪽에 붙어서 살길을 도모하려는 자들이 저에게 접촉해왔습니다.”
거짓말이었지만 얼핏 듣기에는 아무런 모순이 보이지 않았다.
루이 15세도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판단하고 자신도 모르게 구겨버렸던 문서를 세심히 읽어나갔다.
“그러니까 지금 저놈들은 과거에 너를 죽이려고 했던 주제에 지금은 모푸와 슈아죌이 수상하다며 신나게 물어뜯고 있었다는 게로구나. 허허··· 이런 뻔뻔한 놈들을 보았나.”
“폐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당연히 그럴 생각이다. 이놈들을 완전히 박살을 낸 뒤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짓을 획책하는 놈들이 없도록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단순히 고등법원을 해체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리냐?”
이번 건 안 그래도 시시콜콜 국왕의 말에 딴지를 걸던 법원을 완벽히 눌러버릴 기회였다.
그런데 단순히 거기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런 루이 15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크리스티앙이 간결하게 대답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결국 불충하게도 신권이 왕권을 견제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물론 아무런 견제력이 없다면 국정의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뭐든지 그 한도라는 게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작금의 프랑스는 귀족들과 기득권의 힘이 너무 강합니다. 그들은 무엄하게도 폐하의 뜻마저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왜곡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왕족을 암살한다는 참람한 계획을 태연히 실행에 옮길 수 있던 것이겠죠.”
루이 15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크리스티앙은 루이 15세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던 문제를 건드렸다.
“너는 내가 신하들에게 충분한 위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찌 그런 불충한 생각을 하겠습니까. 귀족들은 지금도 폐하를 두려워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두려움을 상쇄할 정도의 욕망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폐하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으니 그들은 다음 대를 노리고 있을 겁니다.”
“···왕세자인가.”
짚이는 바가 없었던 건 아니기에 국왕은 반론 대신 한숨으로 답을 대신했다.
시간이 지나 자신이 사라지고 왕세자가 왕위에 올랐을 때 과연 프랑스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좋게 상상해 보려고 해도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그려지지는 않았다.
소심하고 유약한 왕세자의 대에서는 분명 왕권도 지금보다 약해질 테고, 계속 치솟고 있는 국가의 빚도 줄어들지는 않을 터.
지금부터라도 뭔가를 해나가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막상 또 하려고 하니 어디부터 손을 댈지 그저 막막할 뿐이다.
크리스티앙은 루이 15세가 품고 있는 막막함과 혼란스러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 이 순간.
그는 혼란스러워하는 루이 15세가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을 귓가에 속삭였다.
“고등법원 해체를 도달점이 아닌 출발점으로 삼으십시오. 지금이 바로 왕권을 강화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