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43)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43화 좋은 발판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43/355)
좋은 발판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42.
루이 15세는 본래 신하들에게 상당히 관대한 편으로 알려져 있었다.
신하들이 무안해할까 봐 실수해도 크게 혼내는 법이 없었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는 일도 적었다.
파리에서 가장 거대한 광장인 루이 15세 광장에 가득 들어찬 사람 중에 국왕이 정말로 분노한 모습을 본 이들은 극소수였다.
실제 지금 이 일도 결국 흐지부지될 거라 여기는 사람도 꽤 많았다.
기껏해야 법원 정도나 처벌당하고 말겠지.
루이 15세가 의욕적으로 뭔가를 해보려다가 금방 접어버린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지금까지 국왕의 행적으로 보면 법원을 싸그리 쓸어버린 뒤, 너무 심했나 하면서 반성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루이 15세는 이런 신하들의 속내를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문제점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 알면서도 포기해 버리는 절망적인 결단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의 루이 15세에게는 가장 큰 고질병이었던 우유부단함과 심리적인 나약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큰 정을 붙이고 있는 손자를 암살하려고 한 분노, 거기에 프랑스를 다시 정상화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책임감까지.
크리스티앙의 부추김에 완벽히 넘어간 루이 15세는 이미 자신의 역할에 반쯤 취해 있는 상태였다.
“지금부터 대역죄인들에 대한 처벌을 결정할 재판을 시작하겠다.”
소란스럽던 광장이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루이 15세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인 군중들을 슥 둘러보았다.
그가 알기론 이 정도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한곳에 모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160년 전을 끝으로 열리지 않았다는 삼부회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귀족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부르주아들은 물론이고 왕족들까지 전부 자리에 참석했다.
이 재판이 어느 정도의 파장을 몰고 올지 직접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리라.
“우선 원고 측이 제시한 고발내용부터 들어보겠다.”
루이 15세의 지목에 모푸가 앞으로 나섰다.
두꺼운 서류 뭉치를 한 아름 들고나온 그는 누가 봐도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고등법원에 걸린 혐의가 한두 개가 아니지만, 그중에 가장 악질인 건 역시 왕족 살해 모의 전력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단순히 모의로 그친 게 아니라 실제로 암살범을 고용했다는 정황도 포착했습니다.”
모푸는 일부러 잠깐 말을 멈추고 대중들이 자신의 말에 반응하기를 기다렸다.
“뭐야? 그러면 진짜로 고등법원이 왕자 전하를 암살하려고 한 거야?”
“앞에서는 잘해주는 척하고 뒤에서 암살범을 고용했다고? 쓰레기 새끼들이네!”
“더 볼 게 있나? 그냥 다 사형시켜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군중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모푸는 이외에도 고등법원에 걸린 혐의들을 차근차근 풀어놓았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고등법원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권한을 지나치게 남용하며 부당이익을 챙겨왔습니다. 특정 계층에게 불리한 법안이 등기되지 못하도록 거부권을 행사해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고, 언론을 이용해 여론몰이하며 불법적인 행위를 무마해왔습니다.”
“우우우우! 사형해라, 사형!”
“놀랍게도 이들의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수년 전 기근이 들었을 때 폐하께서는 백성들을 염려해 기금을 조성해 밀을 공급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여기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그 대가로 차익을 수취한 정황까지 포착되었습니다.”
“피고 측은 반론할 사항이 있는가?”
루이 15세의 서늘한 시선을 받은 법관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본래 피고 측의 변론은 변호인이 해야 하지만 이번 재판은 변호사가 없었다.
국왕이 법원을 치려는 걸 뻔히 아는데 여기서 변호를 맡아 눈 밖에 나려는 사람이 상식적으로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재판은 피고인 법관들이 스스로 변호를 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물론 이들은 전부 파리에서 난다긴다하는 법조인들이었기에 변호하는 것 자체는 무리가 없었다.
다만 이미 결론이 나와 있는 재판이라 어떤 반론을 해 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게 문제일 뿐.
“폐하. 저것들은 사실이 아니옵니다.”
법관들의 실질적인 변론인 역할을 맡은 블랑메닐이 세상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안 그래도 그는 크리스티앙의 말만 믿고 있다가 뒤늦게 끌려와 재판을 받게 된 신세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로 죄없이 끌려온 사람의 얼굴로 보일 지경이었다.
“사실이 아니다? 그럼 자네들은 저게 다 모함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전부 다 거짓이라는 말은 아니옵니다만··· 그래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왕자 전하의 암살 건은 저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법원에서 압수한 자료 그 어디에도 그런 정황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 하지만 수년 전에 너희들이 그런 음모를 꾸몄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는구나. 이미 이것만으로도 참형을 면치 못한다는 건 인지하고 있는 것인가?”
“그, 그것은······.”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블랑메닐이 루이 15세의 근처에 시립해 있는 크리스티앙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아직 저번에 만났을 때 크리스티앙이 했던 말에 최후의 희망을 걸고 있었다.
“폐하! 법원이 전하에게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하려 한 건 사실이오나 이는 전하께 이미 사죄를 한 일로······.”
“사람을 죽이려고 해놓고 사과했으니 끝난 일이다? 너희들이 정말로 법을 다루는 인간들이 맞긴 한 건가?”
루이 15세가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법관들의 목이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너희들의 후안무치함을 보고 있자니 점점 더 정이 떨어지는구나. 모푸, 법원의 혐의는 방금 언급한 것들이 다인가?”
“아닙니다. 이 외에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불법 행위들이 많습니다.”
“모함입니다! 피고 측은 증거의 제시를 요구합니다. 법원에서 압수한 자료에 언급되지 않은 죄목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고등법원은 크리스티앙에게 약점이 노출된 이후로 저질렀던 비리들을 최대한 은닉해 놓았다.
자료들을 탈탈 털어가 놓았어도 절대 발견할 수 없는 항목들이 많았다.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이미 증거와 그 증거를 제공한 증인을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증거? 증인?”
“지금까지는 신변 보호를 위해 비공개로 두고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겠지요.”
어리둥절하던 법관들도 이내 감을 잡았다.
그러니까 역시 밀고자가 있었다는 소리다.
법관들은 배신자의 얼굴이라도 보고자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주시했다.
그리고.
연단 위에 올라온 인물의 정체를 확인한 그들의 입에서 분노와 황당함이 섞인 절규가 터져 나왔다.
“라부아지에?”
“너 이 새끼! 네가 어떻게 법원을 배신······!”
오랫동안 법원의 고문으로서 자리를 지켜온 그의 이적행위는 법관들을 당황시키기 충분했다.
이런 와중에도 블랑메닐은 다른 법관들과는 달리 마냥 정신줄만 놓고 있지 않았다.
그는 중대한 진실을 눈치챘다.
라부아지에가 아무리 법원의 뒤를 캐려고 했어도 이 정도 혐의를 긁어모으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크리스티앙이 이전에 법원을 협박하기 위해 언급한 것들 외에도 훨씬 더 많은 자료가 제시됐다.
즉, 본래대로면 라부아지에가 알 리가 없는 범죄자료들이 그의 손을 통해 흘러나왔다는 의미다.
뒤에 누군가가 있지 않고서는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라부아지에의 뒤에 있는 사람이야 누구인지는 뻔했다.
“크리스티앙 왕자··· 처음부터 이럴 속셈이었던 건가.”
법원의 패착은 크리스티앙 왕자의 감시를 라부아지에에게 일임해 두었다는 것.
둘이 처음부터 한패였는지 아니면 라부아지에가 크리스티앙에 넘어간 건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확실한 건 둘은 처음부터 고등법원의 뒤통수를 칠 기회만을 노려왔다.
하지만 라부아지에에게 크리스티앙의 감시를 맡긴 법원은 크리스티앙이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보고를 받지 못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도 이보다 심하게 뒤통수를 맡지는 않았으리라.
“전부··· 전부 짜고 치는 연극이었다고?”
블랑메닐은 고개를 들어 루이 15세의 뒤편을 바라보았다.
크리스티앙은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법원을 쳐내려는 생각이었다면 어째서 오스트리아로 떠나기 전 자신들의 뒤를 봐주었단 말인가.
법원이 신나게 모푸를 공격하고 있을 때 무슨 생각으로 가만히 지켜보았던 것인가.
“설마 일부러?”
모푸의 입지를 일부러 약화시킨 뒤 그에게 은혜를 베푸는 척 접근하고, 크리스티앙을 철석같이 믿게 된 법원의 뒤통수를 친다.
이렇게 가정한다면 앞뒤가 맞는다.
“우리가··· 독사의 새끼를 데리고 왔었단 말인가.”
“블랑메닐! 어떻게든 해보십시오.”
“크리스티앙 왕자를 이용할 계획은 대부분 당신의 소관이지 않았습니까.”
“자신만 믿으라더니 대체 이게 뭐냔 말입니다!”
망연자실해 하는 블랑메닐에게 법관들의 원망 섞인 말들이 쏟아졌다.
당피에르 대법관도 이건 모두 블랑메닐의 안일한 인식 때문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블랑메닐 역시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악을 쓰며 반론했다.
“웃기지 마! 나는 분명히 크리스티앙 왕자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어! 머저리 같은 너희들이 마음을 놓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걸 나에게 덮어씌운다고?”
“애초에 당신이 크리스티앙 왕자를 잘 세뇌하기만 하면 큰 위험이 되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소!”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이건 너희들이 상황에 취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탓이지!”
법원의 피고들은 이미 자신들이 목숨을 건질 방도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쯤은 직감했다.
라부아지에가 제시한 증거들은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닐 정도로 치밀했고, 그들의 편이 되어줄 사람들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거라고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절망과 갈 길을 잃은 분노뿐.
루이 15세는 서로의 잘못이라며 핏대를 세워대는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라부아지에는 법원이 저지른 온갖 비리들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와 함께 침착하게 늘어놓았다.
더 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루이 15세가 손짓으로 병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즉시 병사들이 아직도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법관들의 입을 강제로 다물게 했다.
“대 프랑스의 국왕 루이 15세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보았듯이 법원은 이미 한참 전에 그 기능을 상실했다. 사람의 신체조차 썩은 부위를 도려내지 않는다면 부패가 몸 전체로 번져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하여 짐은 이 자리에서 선언하는 바이다.”
루이 15세가 잠시 말을 멈추자 주변의 모든 눈과 귀가 그에게 집중되었다.
국왕은 자신을 향한 관심과 기대, 경계, 바람 등을 한껏 만끽한 뒤.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나라의 대원칙을 확실히 세워두겠다. 법률의 지상권은 오롯이 짐에게 종속된다. 입법권 역시 그 어떤 이유로도 분할되지 않고, 짐을 제외한 누군가에게도 귀속되지 않는다. 법원은 법률의 공포와 시행을 맡아 할 뿐,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의 내용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이 다음에 취해질 조치의 강도.
그걸 아는 루이 15세는 자신이 이번만큼은 진심이라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초강수를 두었다.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하고 왕족을 이용해 국정에 개입하려 한 것은 그것만으로도 대역죄에 해당한다. 하물며 자신들의 악행을 감추고자 살해 모의까지 한 이상 감형의 여지가 없다. 이에 이번 사건에 연루된 법관 전원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법복귀족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블랑메닐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루이 15세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또한 고등법원에 걸린 각종 혐의가 모두 사실로 드러난 이상 이들에게 국가의 중대사를 맡기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이의가 있는 자는 반론을 허용할 테니 나서도록.”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설령 불만이 있더라도 여기서 나설 리가 없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 루이 15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로 고등법원에 부여된 법률의 등기 거부권을 폐지하겠다. 조세 심의권도 폐지한다. 또한 권한을 남용한 법관에게서는 관직의 세습권을 박탈하겠다.”
소리 없는 충격이 좌중을 휩쓸었다.
루이 15세의 선언은 고등법원에게 주어진 특권들을 사실상 모조리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미 고착화된 법복귀족들의 세습권까지 손을 대는 건 평상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만큼은 누구도 국왕의 행동을 견제하지 못했다.
명분은 물론 시민들의 지지도 전부 루이 15세와 함께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크리스티앙과 모푸는 법원을 탄핵하는 사유에 시민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사안을 교묘히 끼워놓았다.
조세와 식량에 관한 건 심하면 폭동까지도 갈 수 있는 정계의 아킬레스건이다.
특히 프랑스는 갈수록 심화되는 체제의 모순 때문에 시민들의 고통이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왕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쪽이라는 걸 은근히 피력하며 그 방해물로 법원을 지목했다.
본디 현실이 어려워졌을 때 선악 구도를 만들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어 하는 건 사람의 본성이다.
지금까지 프랑스를 망쳐온 주범으로 몰린 이상 법원이 빠져나갈 퇴로는 완전히 막힌 것이다.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 짐의 영역을 침범한 이들은 법원만이 아닐 것이다. 하여 당분간은 짐이 직접 국가의 대사와 민생을 챙길 테니 모두 유념하라!”
민생을 챙긴다는 말에 광장에 밀집한 시민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귀족들은 그저 똥 씹은 얼굴로 상황을 관망한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법복귀족들에게 속으로 욕을 한 사발 퍼부어주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살려주십시오!”
“폐하! 제발 목숨만은!”
“전 재산을 국가에 상납하겠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사형을 선고받은 법관들이 병사들에게 끌려나가며 살려달라고 울고 빌었으나, 돌아오는 건 싸늘한 조소뿐이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입을 꾹 닫은 채 조용히 끌려가던 블랑메닐은 크리스티앙이 가까이 다가오자 이를 갈며 눈을 부라렸다.
“···배신자 같으니··· 사람이 신의가 있어야 하거늘 프랑스의 왕자로서 부끄럽지도 않소?”
“적반하장도 정도가 있는 법입니다. 배신이라니요.”
“그럼 당신이 한 게 우리를 배신한 거지 뭐란 말이오?”
블랑메닐의 분노에 찬 외침에도 크리스티앙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고 블랑메닐의 귓가에 속삭였다.
“배신이라는 건 문자 그대로 신뢰가 있을 때나 성립하는 단어입니다. 저를 감시하라고 라부아지에에게 일러둔 건 그쪽이 아닙니까. 서로가 서로의 뒤통수를 노리고 있었는데 먼저 맞아놓고 억울하다고 하면 안 되지요.”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의 일을 대비한······.”
“그리고 저는 법원이 제 목숨을 노린 이후로 단 한 번도 당신들을 아군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용가치가 없어진 도구는 용도폐기해야죠.”
“그때부터 이럴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고······.”
블랑메닐은 문득 어린 크리스티앙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미 그때부터 자신들을 치려는 계획이 어린 소년의 머릿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는 소리다.
완벽하게 상대를 오판했고 그 대가는 파멸이었다.
허탈함과 분노의 감정이 가슴속에서 진하게 끓어올랐다.
이제 남은 거라곤 죽기 전의 저주밖에 없어진 블랑메닐의 어조에서 일말의 경어마저 사라졌다.
“나는··· 우리는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고 당했지만, 너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하는 법. 언젠가 이렇게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자리에 그쪽이 서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조금이라도 심적인 부담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남긴 말이었으나 돌아오는 건 조소에 가득 찬 비웃음뿐.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럴 낌새가 보이는 자들은 전부 지금의 당신들 같은 꼴이 될 테니까요.”
“······!”
마지막으로 도발을 하려고 해봤다가 본전도 못 찾은 블랑메닐의 미간이 움푹 좁혀졌다.
크리스티앙은 지극히 정중하게, 그래서 더 분통이 터지는 어조로 마지막 인사를 속삭였다.
“안녕히 가십시오. 지금까지 제 발판이 되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가시는 길 부디 편안하시길.”
“······크리스티앙! 이 개······!”
기어코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한 블랑메닐이 괴성을 내지르려 하자 병사가 재빨리 그를 제지했다.
크리스티앙은 바둥거리는 전직 대법관의 처절한 몸부림을 마지막으로 눈에 새기고, 태연히 몸을 돌렸다.
두세 걸음 정도를 걷자 뒤에서 들려오던 소음도 이내 완전히 잦아들었다.
그것이 고등법원의 정점에 섰던 대법관이 재판장을 떠나며 남긴 마지막 족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