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48)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48화 모든 사절은 로마로 통한다 (3)(48/355)
모든 사절은 로마로 통한다 (3)
18세기 유럽은 절대 강자라 할 수 있는 국가가 없었지만, 엄연히 뜨는 해와 지는 해는 있었다.
gdp로는 여전히 프랑스가 1위를 고수하고 있으나 산업혁명 이후의 영국이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는 중이다.
프로이센은 한창 상승세였으며 오스트리아는 내리막.
그 와중에 러시아 제국이 슬금슬금 올라오며 세계의 판도가 이전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게 확실히 티가 났다.
경제 규모로만 보면 여전히 중국과 인도가 압도적이라고는 해도 군사력으로는 이미 뒤집혔다.
앞으로 세계가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갈 거라는 건 명약관화한 사실.
그 중에서도 영국은 그 주인공이 자신들이 될 거라는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공작님. 교황령까지 안전한 항해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항구를 지키는 병사들이 일제히 전 총리, 그래프턴 공작 어거스틴 피츠로이를 향해 경례했다.
그는 미소로 병사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고맙네. 자네들도 수고들 하게.”
“예!”
영국에서 교황령까지 가는 길은 제법 시간이 걸린다.
그래프턴 공작은 배 아래로 부서지는 파도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하다하다 전 총리였던 내가 교황령까지 가서 여론몰이용 작업을 해야 하다니···토리당 이 버러지 같은 놈들.”
현재 영국의 의회는 보수당의 전신인 토리당과 자유당의 전신인 휘그당이 양분하는 상황이었다.
그래프턴 공작은 고작 33세의 젊은 나이에 휘그당의 수장으로 총리직에 오른 이례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를 고작 2년도 유지하지 못하고 토리당에게 권력을 이양하면서 물러났다.
프랑스에서 터진 천연두 백신 파동과 코르시카 합병으로 여론이 바닥을 쳐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코르시카 합병 건이야 그렇다 쳐도 백신은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한다는 거야. 그 제너라는 놈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황당했을 뿐이다.
프랑스에서 천연두를 퇴치할 백신이 나왔는데 거기에 핵심적인 공을 세운 사람이 영국인이란다.
프랑스의 왕자가 영국이 먼저 이 영광을 누릴 수도 있었지만 신의 도우심으로 자신이 먼저 성과를 냈다는 말을 했다고도 들었다.
미친 새끼인가 싶었다.
이건 그냥 누가봐도 자신의 입지를 띄우기 위해서 영국을 욕받이로 쓴 게 아닌가.
그러나 우매한 대중들은 그런 깊은 노림수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냥 원색적으로 우리 정치인들은 뭐했냐 우우우 하면서 들고 일어나 쪼아댈 뿐.
“그 크리스티앙 왕자가 이번에 교황령에 온다고 합니다.”
수행원이 그래프턴 공작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귀띔했다.
“알고 있다. 왕태자도 온다지? 프랑스의 왕태자는 소심하기 이를데 없는 자라고 했는데 의외더군. 그나저나 크리스티앙이라···얼마나 뻔뻔한 낯을 한 자인지 한번 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어.”
“역시 악감정이 있으신 겁니까?”
“글쎄···처음엔 그랬지만 솔직히 그게 아니었어도 토리당 놈들에게 자리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을 거야.”
백신이 터지지 않았다고 해도 코르시카 합병을 막지 못했다는 시점에서 기반이 약한 그래프턴 공작은 버틸 길이 없었다.
까놓고 말해서 그래프턴 공작은 일종의 명예사를 당했다고 봐도 좋았다.
그래서인지 크리스티앙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증오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다.
“크리스티앙 왕자만이 아닙니다. 에스파냐와 신성로마, 러시아, 프로이센, 심지어 오스만 투르크에서까지 사절을 보낸다는 게 확인 됐습니다. 게다가 그 면면들이 장난이 아닙니다.”
“프랑스 외에도 확인이 됐다고? 누군데?”
“먼저 프로이센은 그 프리드리히 하인리히가 외교단의 대표입니다.”
“뭐라? 프리드리히 2세의 동생이 직접 온다고?”
그래프턴 공작이 입을 떡 벌렸다.
프랑스의 크리스티앙만 신경 쓰고 있었는데 그 이상의 거물이 갑작스레 튀어나왔다.
프로이센의 위대한 국왕 프리드리히 2세가 가장 신뢰하는 동생이자 7년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명장.
그런 자가 직접 온다는 사실은 그래프턴 공작으로서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었다.
“이것 참···처음부터 그런 이름이 튀어나오다니 이후의 이름들을 듣기 겁이 나는군.”
“나머지도 신경 써야 할 인물들입니다. 신성로마는 외교의 총책임자인 카우니츠가, 에스파냐는 차세대의 거물이 될 거라 여겨지는 호세 모니노, 러시아 역시 이후의 외무부를 책임질 거라 평해지는 이반 오스터만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는 무려 왕태자인 셀림 무스타파가 올 거라고 하더군요. 아직 열 살 정도밖에 안 됐다고 하니 실질적으로 휘하의 예니체리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겠지만요.”
“···이거 예상보다 일이 심각해지는 것 같은데.”
처음에는 그냥 최근 영국의 위세를 과시해서 자국 시민들에게 인기나 좀 끌어볼 요량이었다.
프랑스에서 루이 크리스티앙과 왕세자가 참석한다고 했지만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이렇게 줄줄이 열강의 거물들이 참석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영국이 지금 떠오르는 태양이라고 해도 유럽의 강대국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깽판을 치긴 어렵다.
하려고 하면 못할 건 없었으나 위험부담이 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될 장소라면 모를까 이번 회동은 안 봐도 어떨지 그림이 그려졌다.
당장 자신들 영국과 프랑스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사이고 최근에도 거하게 전쟁을 벌였다.
에스파냐는 포클랜드 제도를 합병할 때 영국에게 꼬리를 한 번 내렸기에 앙심이 남아있을 터.
여기에 프로이센과 신성 로마제국은 분명 앞으로 또 거하게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여기에 프로이센은 7년 전쟁 마지막에 영국이 슬쩍 발을 빼서 이쪽에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러시아와 오스만투르크는 틈만 나면 전쟁을 하고 있으니 분위기가 좋으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7년 전쟁급의 대전이 다시 불붙을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수락한 자리였는데···조금 더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있겠네.”
지금 제일 좌불안석인 쪽은 졸지에 강대국들의 놀이터가 된 교황측일 테지만 그래프턴 공작은 그들 입장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중요한 건 이 뜻하지 않은 변수를 영국 쪽에 이득이 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
프랑스의 왕태자와 프로이센의 명장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가 선택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경로로 들어온 첩보는 더 없나?”
“아직 특별한 건 없습니다. 프랑스 쪽을 제외하면 물리적인 거리가 다들 상당히 떨어져 있는지라······.”
“그래. 그러면 교황령에 도착하는 대로 일단 정보부터 수집한다. 방침은 그 다음에 세우도록 하지.”
수행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펜촉에 잉크를 묻히며 물었다.
“원래 계획은 그럼 폐기인 겁니까?”
“아니. 그건 그대로 가야지. 다만 수위는 조금 낮출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쪽의 반응을 살살 긁어볼 정도로만 떡밥을 흘려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저희야 사실 그렇게 급한 건 아니니까요.”
과거 교황령은 유럽의 중심이자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런 성역에서 세계의 질서를 새롭게 주도할 국가들이 부딪치는 건 역사의 필연일지도 모른다.
그래프턴 공작은 점점 멀어져 가는 영국의 대지를 눈에 담으며 천천히 앞으로의 일정을 되새겨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다고 해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세계가 격변의 때를 맞이하고 있다고 해도 시대의 흐름을 막지는 못한다.
앞으로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될 주인공이 있다면 그 주인공은 오직 하나.
다름아닌 자신의 조국 영국뿐이다.
그것만이 그래프턴 공작이 가장 확신하고 있는 운명이었다.
※※※
나와 오귀스트는 성대한 인사를 받으며 프랑스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몸 조심해야 해요. 전 당신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성과 같은 건 솔직히 전혀 없어도 상관없어요.”
베르사유까지 따라온 마리는 내가 마차에 오르기 바로 전까지 걱정스러운 당부를 잊지 않았다.
“알았어요. 절대 위험한 일 없을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쉬고 계세요.”
“···네.”
이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다들 걱정이 지나친 거 아닌가.
루이 15세도 마리처럼 표현을 안하고 있을 뿐이지 뒤로는 온갖 호들갑을 다 떨어놓았다.
당장 호위 책임자가 누가 될지 다른 귀족들은 출발 당일날까지도 알지 못했다.
교황령까지 어떤 경로로 갈지도 전부 루이 15세의 주도로 결정됐다.
나는 마차 위에 올라 거의 울상이 된 마리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면서 반사적으로 허리쪽을 문지르는 나를 보며 오귀스트가 피식 웃었다.
“어째 표정이 시원섭섭해 보이는데?”
“설마요. 아직 그런 나이 아닙니다.”
“하긴 할아버님만 봐도 우리 집안이 쉬이 지칠 사람들은 아니지. 그런데 나는 왜 그러는지 원······.”
“형님께서도 막상 판이 깔리면 숨겨진 본능이 깨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면 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귀스트의 몸이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기울었다.
역시 남자는 남자라 이런 화제에 관심이 아예 가지 않을 수는 없겠지.
오귀스트는 이후로도 은근슬쩍 내 신혼생활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졌다.
나는 과장을 섞어 오귀스트의 의문을 풀어주는 걸로 교황령까지 가는 동안의 무료함을 달랬다.
이번 여정은 베르사유에서 항구 마르세유까지 마차를 타고 이동한 뒤, 그곳에서 배를 타고 교황령까지 가는 걸로 예정되어 있다.
오귀스트가 긴 여행에 대해서는 피로를 드러냈기에 일단 마르세유에서 식사를 하고 휴식기를 좀 가졌다.
시간이 흘러 배를 타고 이탈리아 반도까지 도착하자 다 죽어가던 오귀스트의 얼굴에도 다시 혈색이 돌았다.
“오! 드디어! 드디어 육지에 내리는 건가!”
누가보면 지중해가 아니라 대서양이라도 건넌 줄 알겠네.
항구에 정박한 배가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자 오귀스트는 수행원이 오기도 전에 후다닥 갑판으로 달려갔다.
“왕태자 전하, 그리고 왕자 전하. 도착했습니다.”
나는 수행원이 부르는 소리를 끝까지 듣고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네!”
호위들을 이끌고 배에서 내리자 교황령에서 배웅을 나온 환영단이 이쪽을 반겨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을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낯선 사람의 얼굴들을 보자마자 오귀스트의 표정은 내가 코딩해 놓은 대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역시 주입식 교육이 진리야. 성능 확실하구만.
나는 오귀스트에게 이대로 아무 반응도 보이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대신 입을 열었다.
“성대한 환영 감사합니다. 루이 크리스티앙 드 프랑스입니다. 이쪽은 위대한 프랑스의 왕태자 루이 오귀스트 드 프랑스이십니다. 지금 여독이 충분히 풀리시지 않아 제가 대신 말씀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희쪽에서 먼저 배려를 해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아, 참고로 저는 이번에 새롭게 국무원장 직을 맡게 된 라자로 오피치오 팔라비치니라고 합니다.”
“국무원장께서 직접 환영을 해주시기 위해 나오시다니 영광입니다. 폐하께서도 교황청이 프랑스를 생각하는 마음에 기꺼워하실 겁니다.”
교황청의 국무원장은 교황령의 내각 역할을 하는 국무원의 수장이다.
사실상 총리라고 봐도 무방하며 추기경 중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자가 직접 나왔다는 건 교황령이 프랑스 왕태자의 방문을 얼마나 중대하게 여기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베드로 성당과 가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아두었습니다. 우선 거기서 피로부터 푸시고 그 다음 천천히 교황 성하를 뵈러 가시죠.”
“예. 그런데 저희 외에 다른 곳에서도 외교단이 온다고 들었는데 그쪽은 모두 도착했나요?”
“예. 오스트리아가 가장 먼저 도착했고 그 다음 러시아와 오스만. 그리고 프로이센과 영국 순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역시 마르세유에서 농땡이 핀 시간이 너무 길었나 보다.
오귀스트의 컨디션이 바닥이라 어쩔 수 없던 것이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먼저 온 다른 국가들은 프랑스는 온다더니 뭐하느라 늦어지는 거지 하고 궁금해하고 있지 않겠는가.
이번에 모이는 인간들의 면면이 워낙 화려한만큼 마주치기전에 준비할 시간도 필요했다.
당장 라자로 국무원장의 얼굴만 봐도 그에게 걸린 심적부담이 얼마나 큰지 익히 짐작이 됐다.
그가 미리 대기시켜둔 마차로 나와 오귀스트를 안내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혹여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거듭된 배려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라자로 추기경의 초췌한 안색을 보니 솔직히 조금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끽해봐야 며칠 전 국무원장이 되었을 텐데 처음으로 주관하는 공식행사가 이런 거라니.
신에게 푸념 섞인 기도를 해도 솔직히 이 정도면 봐줘야 한다.
아마 제발 커다란 사고 없이 이번 일을 잘 넘겼으면 하는 생각뿐이지 않을까.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런 마음을 품을 때면 반드시 문제가 찾아오는 법이다.
사건의 시작은 다름아닌 오귀스트였다.
그가 이왕 베드로 대성당 근처로 가는 거 소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한번 구경해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나 역시 무려 30만 명의 인원이 들어갈 수 있다는 베드로 광장은 직접 본적이 없었기에 흔쾌히 찬성했다.
이 당시 베드로 광장은 완공된 지 이제 100년 정도가 된 따끈따끈한 신품이었다.
감탄과 경의가 가득한 눈길로 광장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찰나, 오른쪽과 왼쪽에서 서로 다른 깃발을 내걸고 다가오는 두 무리와 거짓말처럼 딱 마주치고 말았다.
오귀스트의 눈이 놀라움으로, 라자로 추기경의 눈이 암담함으로 물들었다.
‘너네가 왜 거기서 나와.’ 라고 온 몸으로 외치는 듯한 반응에 이쪽도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이들이 내건 깃발에는 왕관을 쓴 검은 독수리의 문양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프로이센인가······.”
대열의 가장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이는 그 유명한 프리드리히 2세의 동생인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7년 전쟁에서 대활약했다는 명성에 걸맞게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옆으로 슬쩍 빠져서 모르는척 지나가고 싶었지만, 그쪽에서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프로이센은 그렇다 쳐도 이쪽이 내건 국기를 본 프랑스측 사람들이 보인 반응 또한 극적이었다.
심지어 그 온순한 오귀스트조차 대놓고 눈에 적의가 감돌았을 정도다.
흔히 현대에서 알고 있는 유니온 기의 모습에서 붉은 X자 표시만 제거한 형태.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
즉, 영국에서 온 외교 사절단이다.
이쪽을 발견한 영국측의 대표 그래프턴 공작이 묘한 웃음을 머금고 나아가던 방향을 틀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쪽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성 베드로 광장의 한 가운데에서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의 외교단이 한꺼번에 마주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일어났다.
“이거, 이거 엄청난 우연이로군요. 안녕하십니까, 여기서 장군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프턴 공작이 먼저 넉살좋게 하인리히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인리히는 무뚝뚝한 태도로 최소한의 예의만 표하며 그래프턴 공작의 말을 받았다.
“여기서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우연이로군요. 반갑습니다. 그래프턴 공작.”
영국과 프로이센은 비록 7년 전쟁에서 동맹을 맺고 싸웠다지만 마무리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게 끝났다.
전쟁 말기 재정난에 직면한 영국이 보조금을 삭감하고 독일 주둔군을 빼버렸기 때문이다.
믿었던 영국이 혼자 빠져버리자 졸지에 고립된 프로이센은 크게 낭패를 볼 뻔했다.
거의 자살직전까지 몰렸던 프리드리히 2세가 이때 영국에 품은 악감정은 상당했다.
당연히 국왕의 동생이자 전쟁의 지휘를 맡았던 하인리히도 영국을 좋게 보지 않았다.
“솔직히 프로이센에서 갑자기 교황령에 사람을 보낼 줄은 몰랐습니다. 솔직히 조금 뜬금없었다고나 할까요? 혹시 그럴만한 중대한 사안이라도 있는 겁니까?”
“뜬금없는 짓을 벌이는 거야 귀국의 주특기가 아닙니까. 아, 실례. 뜬금없는 게 아니라 발을 빼는 걸 잘하는 거였지요.”
“하하하, 별말씀을 다.”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두 국가의 대표를 관찰하고 있으려니 이쪽까지 숨 막히는 느낌이다.
자기들끼리 몇 마디를 더 주고받던 두 사람은 이내 자연스럽게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눈이 먼저 나를, 그 다음 내 옆에 있는 왕태자를 차례로 훑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프랑스의 왕태자님과 왕자님을 한꺼번에 뵐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로군요. 그래프턴 공작 어거스틴 피츠로이입니다. 짧은 시간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프턴 공작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이쪽을 향한 탐색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오귀스트는 내가 일러둔 대로 눈에 힘을 빡 준 상태로 상대방의 가슴팍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인사를 했음에도 반응이 없자 그래프턴 공작이 묘한 얼굴로 고개를 움직였다.
이 이상 무시하고 있는 건 능사가 아니다.
상대방의 이름값이 너무 크긴 하지만 어차피 싸가지 없는 오연한 태도로 나가기로 했으니 여기선 밑져야 본전.
나는 지시를 기다리는 오귀스트에게 몰래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
그리고 오귀스트는 아주 충실하게 내가 입력해 놓은 그대로의 반응을 보였다.
한없이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고, 낮은 목소리의 세 글자가 베드로 광장의 중심부에 울려 퍼졌다.
“반갑소.”
“예, 반갑습니다.”
“······.”
“······?”
그래프턴 공작도, 하인리히도 순간 벙찐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오귀스트는 할말 끝났다는 듯 눈에 준 힘을 풀지 않은 채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기나긴 적막이 흘렀다. 꽤 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