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49)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49화 우리 말로 해결합시다 (1)(49/355)
우리 말로 해결합시다 (1)
교황령을 상징하는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 드넓게 펼쳐진 광장.
그 한가운데에 교황령과는 어울리지 않는 두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하인리히는 흥미롭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 영국의 그래프턴 공작은 프랑스 외교단이 떠난 자리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는 중이었다.
“듣던 것과는 인상이 아예 다른데······.”
“프랑스의 왕태자는 귀국과는 별로 대화를 하고 싶지가 않았나 봅니다.”
하인리히가 이죽거리자 그래프턴 공작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혀를 찼다.
이게 무슨 결례냐며 따질 새도 없었다.
오귀스트가 입을 다물자마자 크리스티앙이 왕태자가 피곤해서 쉬어야 한다며 예의 바르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그 자가 왕태자 루이 오귀스트 본인이 맞긴 합니까?”
“그렇겠지요. 초상화랑 똑같이 생겼던데.”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라는 게 주된 평가로 알고 있었는데 이쪽만 그렇게 알고 있던 건 아니겠지요?”
“소문이야 언제나 와전되는 법입니다. 아니면 그 소심한 성격을 가진 이조차 그렇게 반응할 정도로 귀국의 인상이 좋지 않은 게 아니겠습니까.”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래프턴 공작쪽이 먼저 한숨을 픽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프랑스의 속셈을 모르니 일단 더 왈가왈부하진 않겠습니다. 귀국께서는 이 참에 저희와 회담을 가지실 요량이 있으십니까? 상의해야 할 문제들이 여럿 있을 텐데요.”
“글쎄···본국으로서는 귀국과 나눌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과거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건 사실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양국 모두 잘 끝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건설적으로 미래를 논의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허허, 미래라.”
하인리히가 헛웃음을 흘렸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는 7년 전쟁 말기의 상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한창 전쟁이 진행중일 때 영국이 지원을 중단하며 외국인 용병에 의존하던 프로이센의 병력이 절반 이하로 줄어버렸다.
당연히 무참한 패배가 이어졌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결까지 생각하는 등 절망적인 상황이 이어졌었다.
천운으로 러시아의 왕이 교체되면서 전쟁에서 발을 빼서 망정이었지 아니었다면 프로이센은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과정을 옆에서 모두 지켜본 하인리히로서는 당연히 영국의 뻔뻔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프로이센에 대한 지원을 끊은 건 분명 저희 측의 실책이 맞습니다. 다만 그때는 저희 쪽도 내각이 교체되면서 정국에 혼란이 있던 시기라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폐하의 의중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일단 귀국의 뜻을 존중하겠습니다. 그래도 전쟁에서 함께 피를 흘리며 싸운 혈맹이었으니까요. 그러니 굳이 지금 부딪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은근슬쩍 동맹임을 강조하는 그래프턴 공작의 의도를 짐작한 하인리히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여기서 영국과 얼굴을 붉힐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안 그래도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으니까요.”
프로이센은 까놓고 말해서 지금 영국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영국은 그냥 짜증나는 존재일뿐, 어차피 바다 건너 저 멀리 있는 놈들이다.
그보다는 더욱 공고해진 프랑스 오스트리아 연합이 프로이센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인리히가 이 자리에 온 이유도 프랑스 오스트리아 동맹의 핵심인 프랑스의 왕자를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그래프턴 공작도 그 점을 알기 때문에 저렇게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리라.
“각국의 대표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지요. 부디 저희도 귀국도 서로 원하는 걸 얻어갈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그럼 프랑스에서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쪽이 막아줄 거라 믿겠습니다. 저는 오스트리아 쪽을 더 신경 쓰겠습니다.”
“예. 저도 처음부터 프랑스를 예의주시하려 했습니다. 크리스티왕 왕자도 그렇고 왕태자도 그렇고 조금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최소한의 합의를 본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각자 품은 생각이 다를지라도 일단 지금은 서로 이빨을 드러낼 때가 아니다.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양쪽 모두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
광장에서 뜻밖의 만남을 가진 지 1시간 뒤.
숙소로 안내받은 오귀스트는 불안한 속내를 여실히 드러내며 주변을 계속 서성거렸다.
“···괜찮겠지? 뭐 잘못되는 거 아니겠지?”
“······.”
조용히 서류를 검토하려고 하는데 자꾸만 신경이 쓰이게 말을 툭툭 던졌다.
나는 대강 원하는 답을 들려주었다.
“걱정 마세요. 아무런 문제 없을 겁니다.”
“그런 것치고는 분위기가 많이 싸했던 것 같은데?”
“저쪽도 깜짝 놀랐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제가 수습도 했으니 공식적으로 문제 삼을 수도 없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오귀스트는 아직도 심장이 진정되지 않는 듯 연신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형님, 그래도 영국 국기를 처음 봤을 때는 제법 자연스럽게 불쾌한 표정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때 감각을 계속 떠올려 보면 한층 더 연기가 자연스러워질 겁니다.”
“···아니 그거야 상대가 영국이었으니까······.”
“그럼 더더욱 걱정하실 필요 없죠. 그 영국을 상대로 거하게 한 번 지른 거 아닙니까. 세부적인 대화는 저에게 맡기시고 형님께서는 그자들에게 강렬한 인상만 남겨주시면 목적은 성공입니다.”
“그래. 그럼 타국 외교관들과 만났을 때는 이대로 가기로 하자. 그런데···교황 성하와 만나면 어떻게 하지?”
사실 나도 그 점을 고민하던 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교황 앞에서 알겠소, 고맙소, 이런 단타 문장만 끊어치면서 분위기를 잡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교황이 지금 위세가 많이 죽었다고 해도 마땅히 예의를 표해야 하는 존재인 건 부정할 수 없다.
“굳이 교황 성하 앞에서까지 그런 자세를 유지할 필요는 없겠지만···그렇다고 너무 저자세로 나가거나 심약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됩니다. 어쨌거나 이번에 에스파냐는 우리가 함께 교황청을 압박하길 바라고 있을 테니까요.”
“아···예수회 추방 건에 공식적으로 서명하게 하는 것 말인가. 자신 없는데······.”
“솔직히 그리 우선순위는 높지 않습니다. 그냥 형식상 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되겠죠.”
“그러면 그것도 네가 대신 해주면 안 될까?”
자신이 말해놓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오귀스트가 멋쩍게 웃었다.
역시 이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겠지.
어차피 프랑스에서 출발하기도 전부터 이런 그림이 될 거라는 가능성은 고려하고 있었다.
다만 오귀스트를 허수아비로 세워두고 내가 모든 논의를 끌어가는 게 무조건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다른 국가의 대표와 짤막하게 나누는 대화 정도야 제가 옆에서 조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황 성하와 만나면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으니 제가 다 수습하지 못하는 상황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습니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그냥 내가 교황 성하와 만나지 않으면 그만 아니야?”
“일단 외교단의 대표는 형님이십니다. 그런 형님을 건너 뛰고 제가 만난다면 모양새가 좀······.”
“아···그런가. 프랑스가 교황청을 무시하는 걸로 비칠 수도 있겠군.”
프랑스도 그렇고 다른 모든 국가들이 이번에 방문한 표면적인 목적은 새로운 교황의 취임 축하다.
그런데 막상 외교단의 대표가 교황의 얼굴조차 보지 않고 돌아간다면 이건 돌려서 교황청을 맥이는 행위로 해석될 것이다.
다른 강대국들도 한 자리에 있는 이상 괜히 공격받을 구실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아니, 잠깐. 경우에 따라서 꼭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지도.”
변명거리만 있다면야 오귀스트를 배제하고 내가 직접 교황과 만나는 그림은 충분히 연출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그런 상황을 조성하냐겠지.
조금 더 고민을 해보려던 찰나.
“전하. 교황청의 라자로 추기경이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그럴 듯한 상황을 만들 좋은 핑계거리가 제발로 찾아와 줬다.
“라자로 추기경이? 무슨 일로?”
“예. 아무래도 각국에서 귀빈들이 왔으니 환영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고 합니다. 거기서 논의할 게 있으면 논의도 하면서 얼굴을 붉힐 일은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는 내용 같더군요.”
“어제 표정을 보아하니 대강 그럴 것 같더라니.”
라자로 추기경의 서신을 훑어보니 안절부절 못하는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만 영국도 추기경의 의견에 찬성했다는 대목은 조금 마음에 걸렸다.
오귀스트도 그 부분을 읽고는 미심쩍은 반응을 보였다.
“영국 놈들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가?”
“뻔하죠. 대충 어떤 식으로 강짜를 부릴지는 예상이 됩니다.”
“오, 그런가? 그럼 난 너만 믿고 하라는 대로 하면 되겠군.”
“예.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이쪽도 사전작업을 좀 쳐둬야겠군요.”
나는 재빠르게 종이를 한장 가져오라고 한 뒤 전달사항을 적어 부하에게 넘겨주었다.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 측 인물들에게 이걸 비밀리에 전하면 된다. 되도록 영국···아니, 프로이센측 인사들에게도 귀에 들어가지 않게 신경쓰도록.”
“예.”
절제된 걸음으로 뒤돌아가는 부하의 모습을 보고 있던 오귀스트가 의문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프로이센이 영국 편을 들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까 마주쳤을 때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는데.”
“적극적으로 편을 들지는 않겠지만 만약 편이 갈린다고 해도 이쪽에 붙지는 않겠죠. 주의를 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그래. 그 말이 맞다. 영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무조건 이쪽의 편은 아니니까.”
물론 이쪽도 프로이센을 굳이 자극해 적으로 만들 마음은 없었다.
오스트리아야 프로이센을 찍어누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겠지만, 그건 그쪽의 사정이지 이쪽이 급한 건 아니니까.
그보다는 영국에게 크고 아름다운 빅 엿을 선사하는 게 백만배는 더 중요하다.
그 대미를 장식할 메인 이벤트를 위해 지금은 함정을 깔아둬야 할 때.
내일만 보고 사는 놈은 오늘만 보고 사는 놈한테 먹힌다지만 그건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주식도, 협상도, 전쟁도, 정보가 없는 자는 정보를 손에 쥔 자를 이길 수 없다.
단순하지만 그게 세상의 진리다.
※※※
교황청 국무원의 드넓은 회의실.
평소에는 수많은 주교들이 자리하는 이곳은 평소의 십분지 일도 되지 않는 인원이 배석해 있었다.
인원이 적다고는 해도 그들이 지닌 신분과 위치 때문인지 공간이 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오귀스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프턴이나 하인리히 같은 이들도 수행원을 대동한 채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중앙에 앉아있는 라자로 추기경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가장하며 사람들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손이 달달달 떨리는 게 저러다가 쓰러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그렇게 묘한 기류가 떠도는 실내에서 처음으로 입을 연 사람은 러시아의 이반 오스터만 대사였다.
“이제 다 모인 거 아닙니까? 슬슬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요.”
“아직 오스만의 셀림 왕태자가 오지 않았습니다.”
“굳이 기다려줄 이유가 있겠습니까? 사실 신을 믿지도 않는 사람이 어째서 신성한 교황청까지 왔는지도 의문인데요.”
모두 대답 없이 쓴웃음을 흘렸다.
러시아와 오스만은 지금 이곳에서 실제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유이한 국가들이었다.
러시아가 부랴부랴 교황청에 사절을 보낸 건 이 기회를 틈타 조금이라도 자신의 편을 더 만들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스만은 그걸 알기에 러시아를 방해하거나 최소한 어떻게 사태가 돌아가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왕태자를 보낸 것일 터.
하지만 열살 밖에 되지 않은 왕태자가 뭘 알겠는가.
왕태자는 얼굴마담에 불과할 뿐, 현실적으로 오스만에서 온 이들을 이끄는 건 호위명목으로 따라붙은 예니체리들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는 각국의 대표들은 섣부른 발언을 지양하고 말을 아꼈다.
이대로 어색한 침묵이 감도려던 순간, 다행히도 마지막 자리의 주인이 도착했다.
끼기기긱.
나무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됐다.
뒤늦게 도착한 오스만 투르크의 왕태자.
셀림 빈 무스타파가 그를 호위하는 예니체리들과 함께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각국 대표들의 시선은 각양각색이었다.
누가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예니체리 중 한 명이 정중하게 격식을 차리며 인사를 올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희는 조용히 여러분들의 대화를 관망하기만 할 테니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가 경계를 하겠습니까. 이빨이 빠진 사자를.”
작게 중얼거리는 정도였으나 러시아 대사의 말은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똑똑히 들렸다.
혹여라도 싸움이 붙을까봐 기겁한 라자로 국무원장이 황급히 선수를 쳤다.
“그러면 모든 귀빈들께서 참석하셨으니 이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런 자리를 제안해주신 그래프턴 공작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별말씀을요. 평화롭고 온건한 방식으로 일을 풀어가는 게 문명국가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 아니겠습니까.”
“···크흠.”
다른 누구도 아닌 영국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자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비(非)평화 비(be)폭력의 선두주자 중 한 축을 담당하는 곳에서 저런 소리를 태연히 해댈 수 있다는 게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기도 하다.
아마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라자로 국무원장도 내심 어이가 없지 않을까.
그래프턴 공작은 다른 이들이 뭐라고 느끼든 상관없다는 듯 태연한 신색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이런 자리를 요청드린 건 새로운 교황께서 취임하신 경사스러운 때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불미스러운 일이라면 정확히 뭘 말하는 겁니까? 아무리 여러 국가들이 모였다고 해도 설마 교황청 안에서 다투기야 하겠습니까.”
오스트리아의 대사로 온 카우니츠의 말에 스페인측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의 뜻을 밝혔다.
“그렇습니다. 이런 곳에서 힘 자랑을 할 몰상식한 나라가 설마 있으려고요. 아무리 무력시위를 빵먹듯이 하는 국가라도 여기서는 자중하겠지요.”
명백히 뼈가 있는 발언에도 그래프턴 공작은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이윽고 모두가 애써 피하고 있던 화제를 입에 올렸다.
“하지만 교황청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려는 시도는 있을 수 있겠지요. 예를 들면···예수회 추방에 빨리 서명을 하라거나 특정 국가의 비인도성을 규탄해 달라거나 하는 요구가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마 그래프턴 공작은 이 말로 스페인이나 프랑스쪽의 격동을 끌어낼 수 있을 거라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스페인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냐고?
이쪽이 이미 사전에 말을 맞춰 놓았거든.
그래프턴 공작은 자신이 원하던 반응이 나오지 않자 의아한 눈길로 재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오귀스트와 내쪽으로 향하자 나는 오귀스트만 볼 수 있게 슬며시 손가락 4개를 내밀었다.
“그쪽의 말이 맞소.”
기계처럼 반응한 오귀스트의 발언에 그래프턴 공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리 언질을 받지 못한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어···음···동의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설마하니 이런 전개가 될 거라고는 예측 못한 그래프턴 공작의 말이 살짝 꼬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친 그를 향해 점잖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걸 본 그래프턴 공작의 얼굴이 한층 더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마음 익히 이해한다.
미친 듯이 당황스럽겠지.
이 놈이 뭐 잘못 먹었나, 이쪽의 노림수가 읽힌 건가, 무슨 다른 꿍꿍이 속이 있는 건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있을 것이다.
그래. 그러면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