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6)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6화 상호확증파괴(6/355)
상호확증파괴
돌이켜보면 이용욱 교수는 굉장히 신기한 타입의 사람이었다.
나를 노예처럼 부려 먹은 악마이긴 했어도 능력 하나만큼은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인 건 맞았다.
논문 주제를 선정하는 것도 탁월했고, 안목 역시 누구보다 훌륭한 편이었다.
물론 그렇게 해놓고 실제 작성은 자기 학생들에게 맡긴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노예처럼 부려 먹은 학생들에게는 다 그에 맞는 보상을 해주기도 했으니 모두가 잠자코 참았던 것이리라.
무엇보다도 이용욱 교수는 연구비나 지원을 타내는데도 엄청난 재주가 있었기에 누구도 그에게 뭐라 할 수 없었다.
가끔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신기할 정도로 그는 사람들을 잘 다뤘다.
돈을 마구 끌어다 올 수 있었던 것도 분명 그런 능력 덕분이지 않았을까.
“응? 비결이 뭐냐고?”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두 달 전쯤이었을까.
지원을 구하면서도 오히려 고자세로 나가는 교수의 태도가 신기해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의외로 그는 내 물음에 선선히 대답해주었다.
“자네도 언젠가는 이런 위치에 있게 될 테니 말해주는 게 좋겠군. 제일 중요한 건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는 거야,”
“강하게 나가도 되는 상대가 있고 아닌 상대가 있는 건가요?”
“그거랑은 조금 다른데. 정확히 말하면 비위를 맞춰줘야 하는 상대가 있고, 그렇지 않아도 되는 상대가 있는 거지. 세상에는 말이지, 겸손하게 나가면 상대방을 호구처럼 보는 사람이 꽤나 많이 있거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학부 시절에 알바나 과외를 할 때 그런 일을 얼마나 많이 겪어보았던가.
“그래도 너무 뻣뻣하게 나가면 자기가 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로 불편해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상황을 잘 보고 뻗대야지. 만약 내가 그들에게 있어서 대체 불가능한 거래 상대라면 그럴 때는 오히려 강하게 나가주는 게 좋아. 이 사회는 가끔 아주 재밌게도 갑질이 아니라 을질이 가능한 경우가 있거든. 그것도 다 나처럼 그럴만한 능력이나 배경이 받쳐줘야 가능한 거지만.”
실제로 이용욱 교수는 기분을 맞춰줘야 하는 상대들과 만날 때는 또 기가 막히게 그런 역할을 잘 수행했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유연함을 갖춰야 하나 싶었지만, 그때는 막연히 먼 미래의 일이라 여겼다.
교수가 되려면 아직 한참 더 남았을 테고 그때까지 이용욱의 옆에서 관찰할 시간은 많이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인생사 어찌 될지 한 치 앞도 모른다고 하던가.
솔직히 이런 당연한 말에 이토록 크게 공감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과제든 공부든 다이어트든 내일로 미루면 꼭 이렇게 한 번씩 후회할 때가 온다.
바로 지금처럼.
“씁······.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더 잘 배워두는 건데.”
저택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걸으니 어느새 눈앞에 라부아지에의 집무실이 보였다.
상념에서 빠져나온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며 호흡과 표정을 정돈했다.
그래도 이용욱 그 인간을 따라다니며 본 것들을 용케 떠올려서 다행이다.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자세로 나가야 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앞으로 내가 제시할 카드들도 논문 셔틀을 하면서 찾아댔던 방대한 자료에서 기반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감사할 마음 따위는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 인간이 날 혹독하게 굴리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에 빠지지도 않았을 테니까.
“후······. 계획대로 잘 돼야 할 텐데.”
일순간 불안이 피어오르자 세차게 흔들어 마음을 다잡았다.
실패한다는 상상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또 죽게 된다면 지금까지 겪었던 그 끔찍한 회귀의 고통을 훨씬 더 길게 겪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두 번째 회귀에서 최소 5배 이상은 시간이 끌린 느낌이었으니 여기서 몇 번 더 죽으면 그다음은······.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다.
여기에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라부아지에를 떠올렸을 때 선명하게 느낀 굴욕감.
이건 분명히 나로부터 비롯된 감정이 아니었다.
어쩌면 죽을 때마다 원래 몸 주인의 인격이나 감정이 점점 돌아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자아는 흐릿해지지 않은 것 같았지만 계속 회귀가 반복되면 또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실패란 결과는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도, 앞으로도 죽음을 전제로 한 계획 따위는 절대로 짜지 않을 것이다.
이 한 번으로 모든 걸 끝내겠다는 결사의 각오를 다져야 한다.
준비를 끝낸 나는 마침내 집무실의 문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끼기기긱.
나무가 긁히는 소리는 결코 크지는 않았지만 내 귀에는 아주 생생하게 들렸다.
비스듬히 열린 문의 틈새로 서류를 살펴보고 있는 중년 남성의 얼굴이 보였다.
중요한 일이 있기는 개뿔.
평소처럼 문서작업 중인 모습을 보니 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쪽으로 시선을 힐끗 돌린 라부아지에는 눈살을 찌푸리며 뒤따라온 관리인에게 핀잔을 주었다.
“내가 분명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저, 그것이······.”
“너무 뭐라 하지 말지. 내가 우겨서 들어온 거니까.”
나는 자기 자신의 집에 온 듯 자연스럽게 책상 앞에 놓인 소파에 가서 앉았다.
“이번에 새로 들인 건가? 앞으로는 로코코 양식이 유행할 거라 바로크 양식은 조금 늙티 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텐데.”
팔걸이에 비스듬하게 몸을 기댄 채 품평해대는 나를 향한 라부아지에의 시선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일단 커피 한 잔 정도는 내와야 하는 거 아닌가? 참고로 나는 설탕 듬뿍 넣은 게 취향이야.”
관리인에게 주문을 하고 나가라는 손짓을 하자 그가 어떻게 하면 좋겠냔 눈빛으로 라부아지에를 바라보았다.
라부아지에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관리인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방문을 닫고 나갔다.
당혹감을 넘어 분노마저 서린 목소리가 이쪽을 향해 내리꽂혔다.
“이게 무슨 짓이지? 드디어 실성이라도 한 건가?”
“이제 아주 대놓고 말을 짧게 하는군.”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본인이 진짜 왕족이라도 된 듯 생각하면 아주 곤란해질 수도 있다고. 귀족으로서 보여야 할 품격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지금 같은 처지를 벗어나지 못······.”
“그 귀족으로서의 품격에 암살 같은 것도 들어가는 건가?”
도중에 말을 끊고 날아든 내 비아냥에 라부아지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법정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일순간 표정 관리에 실패할 정도로 내 말이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그는 곧바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고 했으나 지금의 반응만으로도 이미 다 들킨 거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단순히 아무 말이나 던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사흘 만에 사람을 치워버리고 하는 건 좀 너무하잖아? 날 얼마나 하찮게 봤으면.”
3일이라는 구체적인 기간까지 나오자 라부아지에는 더이상 평정을 가장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서 그 정보를 들은 거지?”
“배신자를 색출하려고 해봐도 아무 소용 없을걸. 당신이 아는 사람 중에 내게 정보를 누설한 사람은 없거든. 백날 찾아봐도 헛수고로 끝날 거야.”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가 사흘 전 의뢰를 받았다고 알려준 암살자는 지금 시점에서는 나와 대면한 적조차 없으니까.
“누구에게 어떤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전부 거짓······.”
“그쯤하지? 누굴 바보로 아는 것도 아니고 계속 잡아떼기만 해서는 대화가 진행이 안 되잖아. 난 단순히 그걸 따지려고 온 게 아니라 좀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온 거라고.”
“···후우. 그래, 좋아. 이야기를 들어보지.”
“그런데 계속 말이 짧다? 앞으로도 쭉 그럴 건가?”
당연한 사실이지만 프랑스도 격식을 갖추는 공손한 표현들이 존재한다.
라부아지에나 법복 귀족들은 내게 평상시에는 그래도 존칭을 써주는 편이었다.
물론 허울뿐인 표현이었지만 나를 대우해주는 척이라도 하겠단 의미였다.
라부아지에의 지금 태도를 지적한 건 단순히 내가 꼬장을 부리는 게 아니다.
앞으로는 그 허울조차 차리지 않을 거냐고 지적한 것이었다.
내 말의 의미를 바로 이해한 라부아지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원래 오늘 죽일 상대에 불과했지만, 갑자기 변수가 터졌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리라.
고민은 길지 않았다.
노련한 법조인답게 그는 금방 태도를 바꾸고는 이쪽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좋습니다. 방금 전 무례한 언동에 대해서는 사죄를 드리죠. 일단은 그 건설적인 이야기라는 게 뭔지 들어보겠습니다.”
일단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걸 보니 하찮은 이야기다 싶으면 예정대로 갈 심산인가 보다.
욕이 절로 나오는 놈들이었지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애초에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
“말을 빙빙 돌리는 건 취향이 아니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까? 일단 날 죽이라고 한 건 당연히 너 개인의 생각은 아니겠지? 고등법원의 뜻일 거야. 그쪽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마땅히 쓸데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 테고.”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나를 데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있는 건데. 영 써먹을 데가 없으니 치워버리려고 했다. 아주 이성적인 판단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나도 네 알겠습니다 하고 죽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아니, 그전에 저도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당신···정말로 루이 크리스티앙 맞습니까? 사람이 하루아침에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 건지······.”
라부아지에는 혹시라도 닮은 사람이 변장한 건가 싶었는지 나를 몇 번이고 살펴보았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가정이었지만 그의 입장에선 내 변화가 상식조차 초월할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나 보다.
“그럼 내가 루이 크리스티앙이지 누구겠어.”
“하지만···저는 당신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만나면서 지켜보았고 교육 성취도도 지속적으로 보고를 받았는데 이게 대체 무슨······.”
“어째서 당신이 알고 있던 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
라부아지에가 입을 떡 벌린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당신이 아는 그대로의 사람이었다면 고등법원의 움직임을 어떻게 알았지? 이것만으로도 질문에 충분한 대답이 되지 않을까?”
“그럼 무능력해 보였던 그간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는 거군요. 과연······. 사실은 이 정도로 능력이 있으니 자신은 아직 쓸모가 있다? 이 점을 변호해 달라는 부탁을 하러 온 겁니까?”
“아니. 이미 고등법원은 날 죽이기로 한 것 같은데 이런 애원을 한다고 듣는 척이라도 하겠어? 내가 그쪽에 하려는 건 부탁이 아니라 협상이야.”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협상이란 받는 것만이 아니라 주는 게 있어야 성립되는 겁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당연히 이쪽도 카드는 있지. 종이나 펜 좀 빌려줘. 누군가 들으면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닐 테니까.”
“그러시죠.”
라부아지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종이를 이쪽으로 내밀었다.
대체 얼마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한다고 그러냐는 기색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종이에 적힌 내용을 본 라부아지에의 얼굴이 시체마냥 창백하게 질렸다.
“이, 이런 내용들. 대체 어떻게······!”
황급히 종이를 다시 가져간 그는 혹여라도 누가 봤을까 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종이를 갈가리 찢어서 촛불로 태워 흔적을 완벽히 없애기까지 했다.
“그 내용들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고등법원도 참 난감할 것 같지?”
“어디서 이런 정보들을 손에 넣은 겁니까? 아니, 그 이전에 이 내용들을 누군가에게 말한 건 아니겠지요?”
“설마.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런 멍청한 짓거리를 왜 하겠어.”
내가 종이에 써서 보여준 것들은 파리 고등법원이 그동안 권력을 남용해 저질러 온 비리의 일부였다.
고등법원은 조세는 물론 국왕이 발표하는 법률에 효력을 부여하는 기관인 만큼 그 권력이 막강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권한을 이용해 온갖 막장 행위를 벌인 뒤 은폐하는 짓도 많이 해왔다.
사법 거래는 물론이고, 조세 탈루, 횡령 등. 여러 분야에서 대활약한 기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렇게 종이를 찢어버리고 태운다고 해도 저질렀던 이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내가 적은 건 단순히 의혹 수준이 아니었다.
범죄를 저지른 귀족의 이름은 물론 그 방법까지 상세히 기술했으니 조사가 들어가면 바로 털릴 수밖에 없을 터.
나는 집중하지 않으면 듣기 힘들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계속 속삭였다.
“낭트칙령 폐지 이후 상류층 위그노들의 재산을 헐값에 처분시키고 매입한 건 왕실에서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안 그래도 할아버님은 요새 고등법원을 약화시키고 싶어서 건수만 찾고 있는 것 같던데 아주 좋은 빌미가 되겠지? 합법적으로 재산도 왕창 몰수할 수 있을 테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낭트칙령이 전대 군주인 태양왕 루이 14세의 손에 폐지당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때문에 프랑스에 있는 기독교인들, 소위 위그노라 불리는 이들은 엄청난 박해를 받았고 대다수가 국외로 이주해버렸다.
때문에 프랑스의 시계 산업이 스위스 쪽으로 넘어가 버리는 등 여러 피해가 속출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이게 아니었다면 현대에서 고급시계 브랜드의 대명사는 스위스가 아닌 프랑스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혼란기마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이들은 언제나 나온다.
법을 쥐락펴락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고등법원의 법복 귀족들은 당연히 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현시대에서 이런 류의 부정 축재는 애교에 가까운 범죄였지만, 상대방을 족치기 위한 핑계로는 더없이 좋은 명분이 되는 것도 사실.
이 증거가 왕의 귀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뻔하다.
“그러니까 이 건으로 우리를 협박하겠다는 심산입니까?”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 말 제대로 듣긴 했어? 협박이 아니라 협상이라고.”
“협상을 원하시는 거라면······. 저것들을 폭로할 계획은 현재 없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내 모가지가 어깨 위에 붙어 있는 동안에는 저 내용이 공개될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내가 죽으면 그 뒤의 일은······. 말 안 해도 알겠지?”
사실 당연히 거짓말이다.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죽으면 저 비밀들이 자동으로 공개가 되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라부아지에와 고등법원은 내 말의 진위를 가릴 방법이 없다.
내 말을 거짓으로 치부하기엔 그들이 져야 하는 위험부담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무조건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예상대로 라부아지에는 고민을 길게 끌고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쪽의 목숨을 보장하고 그쪽은 이 일을 무조건 함구한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나도 생각이란 게 있으면 이걸 폭로하진 못해. 했다가는 내 목이 달아나니까. 그러니까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휘두르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좋게 좋게 살자 이 말이라고. 이해하지?”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지금까지 능력을 감추고 미련한 연기를 한······.”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읊조리던 라부아지에는 순간 혼자 어떤 깨달음을 얻기라도 한 양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손을 파르르 떨던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랬던 겁니까. 이쪽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녀주는 척하면서 방심을 유도하고 뒤로는 이런 정보를······. 우리가 당신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처럼 당신 역시 우릴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로군요. 그리고 우리가 당신을 쳐내려고 하니 연기를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고.”
“···음?”
“과연. 단순히 우리와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이 정도로 능력이 출중하다는 걸 증명까지 했으니 노림수는 완벽히 먹혀들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게 고작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의 심계라니······. 고등법원의 귀족들조차 혀를 내두를 겁니다. 적극적으로 당신께 투자하려는 이들도 줄을 서겠죠. 소름이 돋을 정도의 계산입니다.”
“···설명할 수고를 덜어주니 다행이로군. 역시 이 정도 머리는 돌아가나 보지?”
아, 그렇구나. 내 행적을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저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최대한 표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기를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더듬지 않은 것만으로도 내 연기력을 칭찬해 주고 싶다.
뭘 멋대로 착각하고 오버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과대평가해주면 사실 나로서는 나쁠 게 없다.
라부아지에 말마따나 내 가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생존율이 높아질 테니까.
“허어···당황스럽긴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 증거가 떡하니 있으니 믿지 않을 수가 없군요.”
“원래부터 믿는 자에게는 복이 있는 법이지. 그럼 협상은 성립되었다고 봐도 좋을까?”
이미 승패는 갈렸다.
나는 아직도 귀신에 홀린 표정으로 얼떨떨해하는 라부아지에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었다.
두 번의 죽음을 딛고 얻어낸 확실한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