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63)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64화 태동. 반혐영제국 연맹 (1)(63/355)
건국의 아버지들 (2)
미국 맥주를 마시러 가자는 제안에 마리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승낙의 뜻을 밝혔다.
“맥주가 그거 맞나요? 보리로 만든 술?”
미지의 음식을 맛본다는 말에 마리의 눈이 어린아이처럼 반짝였다.
예상 이상의 반응에 제퍼슨이 의외라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백작부인께서는 맥주를 맛보신 적이 없는 겁니까?”
“네. 궁저···언이 아니라 제가 사는 곳에서는 맥주를 맛볼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프랑스의 귀족분들에겐 맥주가 그리 보편적이지 않은가 보군요. 대부분이 와인을 즐긴다는 말은 들어본 것 같습니다.”
“그러시군요. 나름 특이하긴 해도 입에 맞으실 겁니다.”
제퍼슨은 별반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합스부르크가의 궁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맥주는 입에도 대보지 못했다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그냥 어지간히도 귀하게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나 한번 하고 넘어가겠지.
나와 마리, 그리고 데옹과 제퍼슨이 양조장에 도착하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직접 나와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제 도착했군. 기다리고 있었네, 제퍼슨.”
“오랜만입니다. 제가 보낸 편지는 받아보셨습니까?”
“물론이지. 노예가 아주 발에 불이나게 뛰어와서 가져다주더군. 자네 옆에 계신 분이 그 라마르슈 백작님인가?”
새뮤얼 애덤스는 초상화에서 봤던 것처럼 조금 엄격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이 당시의 하버드 대 졸업생들은 전반적으로 이런 이미지였다고들 하니 이상한 건 아니려나.
나는 제퍼슨이 소개하기도 전에 앞으로 나서서 손을 내밀었다.
“라마르슈 백작 지네딘 앙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영어에 능숙하시군요. 아니, 프랑스의 귀족이라면 당연히 라틴어나 영어에도 능통하겠군요.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양조장이라고 해서 술을 만들기만 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제 생각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군요.”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양조장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펍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작은 건물에는 이미 군데군데 자리잡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마리는 처음 보는 광경에 신기하다는 듯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백작님과 부인께서는 이런 형태의 술집에 와보신 게 처음인가 보군요.”
“저는 알고 있긴 합니다. 영국에서 슬슬 유행 중인 펍을 참고하셨나 보군요. 여기 데옹···여사도 영국에 오래시간 있었으니 아마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네. 영국에 있을 때 가끔씩 가서 술을 마신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리워라.”
“오, 영국에서는 이런 귀부인께서도 펍에 출입하시나 보군요. 그러면 본토의 펍과 비교해서 여긴 어떻습니까? 여성들도 편하게 올 수 있도록 더 개선을 해야할까요?”
애덤스는 영국에 오랜시간 체류했다는 데옹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물론 데옹이 펍에 갔던 건 귀부인으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갔겠지만···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지.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리고 사실 펍이라는 게 맥주 맛만 좋으면 그만이죠.”
“호탕하시군요. 부인처럼 아름다우신 분께서 그러시니 한층 더 매력이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대체 뭐가 돋보인다는 것인지.
이 자리에서 눈앞에서 오가는 대화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표정관리를 하며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야기는 여기서 계속 할 겁니까? 분위기도 소란스럽고 사람들이 많아서 산만한 것 같은데.”
“그러니 위장용으로는 더욱 좋지요. 여기서 구석진 자리로 가면 주변과 단절돼서 소리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애덤스는 그렇게 말하며 펍의 카운터 뒤쪽에 위치한 자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확실히 각도상 바깥에서는 이쪽이 보이지 않으면서 소리도 어느정도 차단되는 좋은 장소였다.
아마도 건물을 올릴 때부터 이런 용도로 써먹을 자리를 마련해 놓았던 거겠지.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논의를 하도록 하죠. 부인, 여기서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보니까 간단한 음식들도 팔던데 이곳 사람들이 먹는 식사라는 걸 하면서 데옹과 이야기하고 있을게요.”
표정이나 눈빛만 봐도 마리가 지금 상황을 얼마나 재미있게 받아들이는지는 알 수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인데 이런 너저분한 분위기를 굉장히 쉽게 받아들이는 건 의외였다.
아무래도 최근 시민들과 교류하며 서민들의 삶에 관심이 커진 게 영향을 준 것일까.
이유가 뭐든 간에 이건 긍정적으로 볼 일이지 딱히 문제가 될 요소는 아니다.
마리는 이내 자신의 앞에 놓인 맥주잔을 신중하게 들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제 딴에는 진중하게 맛을 보려는 거였겠지만 새로운 인형을 받은 소녀처럼 보여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침내 조심스럽게 맥주를 들이킨 그녀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어떻습니까? 처음 맛본 맥주의 맛은.”
“와인이랑은 완전히 다르네요. 깊은 맛은 확실히 부족한데···그래도 나름의 특색은 확실히 있어요. 조금 더 마셔봐야겠네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는 맥주잔을 마치 와인잔처럼 들어 천천히 입에 가져갔다.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게 우아한 자세가 역으로 귀여워보였던지 애덤스와 제퍼슨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지나치며 애덤스와 제퍼슨에게 가는척 하면서 옆에 앉은 데옹에게 작게 속삭였다.
“마리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쪽의 대화도 주시하고 있도록. 자네도 폐하께 보고를 올려야 할 테니.”
데옹이 맥주를 홀짝이며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 주십시오. 부인께는 제가 영국에서 거주하며 겪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를 안주삼아 들려드리겠습니다.”
오랜 세월 스파이로서 활동도 했으니 이 정도야 그에겐 별 거 아닌 일이겠지.
나는 신나서 재잘대는 마리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애덤스와 제퍼슨을 마주보고 앉았다.
“그러면 이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볼까요?”
애덤스가 모두의 자리에 맥주를 한잔씩 올려놓았다.
소신발언을 하자면 18세기의 맥주는 당연히 현대의 기술로 양조한 맥주보다는 맛이 없었다.
에일의 깊은 맛도, 라거의 청량함도 무얼 맛봐도 전부 편의점에서 사먹던 것보다 부족한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현지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마시는 건 이것만의 흥취가 있는 법.
“나쁘지 않군요.”
“그렇지요. 별로 고급 술은 아니더라도 이런 맥주 한 잔에 서민의 삶이 녹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애덤스는 엄격한 인상과는 다르게 유쾌하게 웃으며 잔을 부딪쳐오며 말을 이었다.
“백작님께서는 북아메리카 식민지들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시다고요.”
“예. 그렇죠.”
“그러면 식민지의 독립에 관해서는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애덤스 그건······!”
협의되지 않은 이야기기였던지 제퍼슨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애덤스가 괜찮다는 듯 손을 휙휙 저었다.
“이미 자네와 이야기 한 것만으로도 백작님은 전부 눈치챘을 걸세. 여기까지 와서 같은 이야기나 하면서 말을 빙빙 돌릴 이유가 어디 있나. 피차 시간낭비지.”
“그래도 너무 성급하지 않습니까. 만약 프랑스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면······.”
“대다수의 경우 적의 적은 친구가 되는 법. 그건 자네가 편지에도 써두었던 내용 아닌가.”
너무나도 직설적인 화법에 제퍼슨이 눈을 감고 이마를 짚었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애덤스가 생각없이 이런 말을 누설하는 건 아니라고 확신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 유명한 새뮤얼 애덤스이기 때문이다.
이 남자에 관한 현대의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되어 있다.
독립전쟁의 주역이자 독립파의 거두인 위대한 혁명가라는 설부터 그저 폭도들을 선동한 극악한 선동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이 정도로 극과 극으로 평이 나뉜다는 건 평가의 주인공이 어느정도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사실 혁명가는 한꺼풀 뒤집으면 선동가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며, 실제로 애덤스는 독립파를 이끌며 정치적인 선동도 많이 했다.
사람의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데 도가 튼 사람이다.
단순한 이라고 생각하고 방심하는 건 금물이리라.
나는 일단 모르는 척 능청을 떨며 그의 말을 받았다.
“식민지는 영국에서 독립을 원하시는 겁니까?”
“이미 짐작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피차 노리는 바는 비슷할 텐데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하죠.”
“글쎄요···그렇기에는 너무 위험한 화제인데요.”
“위험부담은 저희가 훨씬 크죠. 당장 백작님께서 지금 이야기를 영국에 밀고하면 저희는 줄줄이 끌려갈 겁니다. 이보다 쉽게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의 약점을 일부러 노출해서 상대를 끌어들이는 방법인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상대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는 확신이 없다면 이런 방법은 쓸 수 없다.
게다가 만에 하나 내가 한편이 되지 않는다면 분명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 두었을 터.
이런 타입의 사람과는 되도록이면 척을 지지 않는 게 정답이다.
“저를 그토록 신뢰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확실히 애덤스 씨의 말대로군요. 이게 프랑스 왕실의 공식적인 의견이 되지는 않겠지만 제 개인의 생각으로도 괜찮다면 여러분과 어울려 드리겠습니다.”
“충분합니다. 여기서 백작님께서 보고 들으신 것들이 분명 프랑스 왕실까지 흘러들어갈 테니까요.”
“그럼 처음의 질문에 관해 답을 드릴까요? 전 당연히 북 아메리카의 13개 식민지가 영국에게서 독립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죠. 그래야 프랑스에도 이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애덤스의 노골적인 지적에 제퍼슨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애덤스, 그런 화법은 백작님께 실례입니다.”
애덤스가 뭐라고 반론하기도 전에 이번엔 내가 먼저 넉살좋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술 자리에서는 이 정도 수위가 딱 어울리죠. 그 편이 이야기도 빨리 진행되고요.”
“알아주시니 다행입니다.”
“일단 프랑스의 입장에서도 식민지의 독립을 환영할 수밖에 없는 건 맞습니다. 영국이 계속 이 땅을 차지하고 세력을 넓혀가면 결국 양국의 힘의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커지기만 할 테니까요.”
“백작님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리고 프랑스가 우리의 독립을 지지해준다면 이쪽도 훨씬 더 쉽게 독립 여론을 조성할 수 있을 겁니다. 동맹국들까지 합세해 외교전을 펼치면 유혈사태 없이도 독립이 가능할 가능성도 있겠죠.”
아니, 그건 아니지.
누가 그렇게 호구처럼 남 좋은 일만 하면서 손해를 감수하겠는가.
“그건 어려울 겁니다. 식민지가 영국에 가지는 가치를 고려해 봤을 때 절대 순순히 놔줄리가 없으니까요. 유혈사태는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식민지 쪽에서 그렇게 타국에 의존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독립에 대한 의지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고요.”
“그건···확실히 그렇겠군요.”
“자신들은 기꺼이 피를 흘리겠다는 각오가 서있지 않는다며 타국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냥 업혀가려는 모양새를 취한다면 당장 저부터 폐하께 절대 관여하지 말라는 진언을 올릴 겁니다. 그리고 독립한 뒤의 외교관계를 고려했을 때도 그쪽이 더 도움이 될 겁니다.”
“···백작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희의 독립은 역시 저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독립 후에도 휘둘릴 수밖에 없겠군요.”
독립은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건 어느 시대에서나 통하는 진리였다.
물론 이번 경우에는 단순히 프랑스의 국력을 최대한 아끼면서 부가적인 이득을 얻으려고 댄 핑계였으나, 의외로 효과가 좋았다.
애덤스는 자주독립이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했고, 제퍼슨도 나름 감동한 듯한 눈치였다.
“식민지의 이후 미래까지 고려하시다니 백작님과 함께 일을 도모하기로 한 결정에 점점 확신이 생기는군요.”
“예···뭐, 저희는 영국과는 다르니까요. 식민지분들과는 향후로도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바람입니다.”
“설령 영국과 무력충돌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프랑스가 편을 들어준다면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결집할 수 있을 겁니다.”
애덤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퍼슨의 말을 받았다.
“독립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현실적으로 기댈 수 있는 보루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막막한 심경이었는데 바로 이때 프랑스에서 온 백작님의 존재를 알게 된 겁니다. 게다가 식민지의 정세를 훤히 꿰뚫고 있는 식견을 지니시고 있다는 제퍼슨의 보증까지 더해졌지요. 저는 지금 신께서 식민지의 독립을 위해 역사하고 계시는 현장을 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습니다.”
애덤스의 말처럼 지금 상황이 소름돋을 정도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물론 내가 딱 그런 시기에 맞춰 찾아왔기 때문이지만 다른 이들은 이걸 하늘의 인도라고 여길 수밖에 없을 테지.
상식적으로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프랑스가 13개 식민지의 세부사정을 속속들이 알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건 망상의 영역이니.
“하지만 지금 저희는 구체적인 협상이나 조약을 논할 상황은 아닙니다. 저는 일개 백작일 뿐 프랑스를 대표하는 입장이 아니고, 여러분들도 아직 13개의 식민지를 대표하는 신분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래도 저희에게는 뜻을 함께하는 수많은 동지들이 있습니다. 식민지의 독립을 이끌어가는 건 결국 저희들일 것이고, 저희들의 요구가 백작님을 통해 프랑스에 전해지다면 일종의 합의와도 같은 성격을 띨 수는 있겠죠.”
“그 부분은 저도 공감합니다. 향후 이 식민지의 중심적인 인물이 될 분들은 분명 독립파와 워싱턴 씨 같은 분들이겠죠. 그러니 저도 프랑스의 입장을 확실히 여기서 밝혀두겠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을 내 비상을 위한 발판으로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확실하게 깔아둔 대전제.
원 역사에서 프랑스가 저질렀던 실수를 되풀이할 마음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다.
“정말로 식민지가 영국에게 맞서 독립할 저력이 있다면 프랑스의 여론은 당연히 여러분을 지원하는쪽으로 흐를 겁니다. 하지만 전쟁도 결국 자본의 논리로 흘러가는 게 현 시대의 숙명. 이쪽이 개입하기에 충분한 이득이 없다면 프랑스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반대로 확실한 보상을 약속해준다면 당연히 그 반대가 되겠죠.”
“영국의 장기적인 성장세를 꺾는다는 확실한 이득이······.”
“그런 막연한 미래의 일로 지금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이야 그런 계산으로 움직일지 몰라도 실제로 피를 흘리는 이들은 납득하지 않을 테니까요.”
실제로 미국 독립 전쟁 당시 프랑스는 이전 전쟁으로 입은 피해를 다 회복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또다시 엄청난 지출을 해댔으니 왕국 전체는 버틸만 했어도, 왕실의 재정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영국에게 크고 아름다운 엿을 먹이는 게 중요하다고 해도 내 살을 깎아 남의 배를 불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애덤스도, 제퍼슨도 여기엔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저 애덤스가 약간 궁색한 어조로 변명섞인 한 마디를 입에 담을 뿐이었다.
“저희도 물론 이권을 약속드리고 싶지만 아까 전 말씀대로 저희가 아직은 무언가를 약속드릴만한 신분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토해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여러분들이 머지 않아 식민지를 하나로 묶을 중심이 되실 거라면 이 점을 지금부터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는 거죠. 공존공영. 서로가 모두 이득을 보면서 번영하는 형태로 나아가야 진정한 화합을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백작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다함께 힘을 모아 영국의 압제를 끊어내는 해방의 길을 걷도록 하죠. 하하하.”
애덤스가 텅 빈 잔에 맥주를 다시 채워넣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
새뮤얼 애덤스의 펍을 나왔을 때는 이미 주변이 어둑해진 뒤였다.
나와 마리는 마운트 버넌으로 돌아가는 마차 위로 올랐다.
제퍼슨은 애덤스와 조금 더 할 이야기가 남았다며 펍에 남았다.
“이야기는 잘 끝났나요? 웃음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분위기는 좋았던 것 같은데.”
마차가 앞으로 나아가자마자 마리가 내 옆에 바싹 붙어 앉으며 물어왔다.
술 기운이 도는지 붉어진 얼굴로 살짝살짝 엉겨 붙는 게 평상시와는 다른 느낌이라 은근히 자극이 굉장했다.
“혹시 거기서도 저희가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까?”
“아니요~제대로 된 내용은 잘 못들었어요. 그래도 애덤스 님이 마지막에 압제자 영국을 타도하자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들렸답니다.”
“음···다른 사람에게도 들렸다면 위험할 수도 있는 발언이었는데 목소리가 컸나 보군요. 다음에는 더 신중하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상하지 않아요?”
마리는 왠지 모르게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검지로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는 양조장을 가리켰다.
“맥주 맛이 이상하기라도 했나요?”
“아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생각해 보면 우습잖아요. 애덤스 님은 양조장에서 노예를 부리고 있었어요. 분명히 의복도 잘 다려입었고 급료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노예제도에 편승해 있다는 건 변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영국을 압제자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걸까요?”
의외로 날카로운 부분을 찌르고 드네.
여태까지 마음에 쌓아두고 있던 게 술 기운을 빌려 한 번에 터져나온 걸까.
“그래도 애덤스 정도면 굉장히 온건하게 노예를 다루는 축일 걸요.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반론할 겁니다,”
“그런 식이면 이곳도 영국이 가진 식민지 중에는 굉장히 온건한 대우를 받는 축 아닌가요. 오히려 영국이 더 낫죠. 그들은 적어도 식민지인들을 노예로 다루진 않으니까.”
훗날 미국에서 벌어질 인디언 전쟁이나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을 고려하면 마리의 지적은 확실히 타당한 비판이었다.
“부인,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식민지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원래 사람은 반론할 수 없는 사실로 두들겨 맞으면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법이거든요.”
“알아요. 저도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는 건 아니랍니다. 하지만 그냥 뭔가 트집을 잡아보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아직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원래 정치란 그런 겁니다. 자신이 내뱉은 말과 완전히 모순되는 말을 태연하게 하며 주장을 번복하고, 어제까지만 해도 적이었던 사람과 웃으며 악수를 할 수 있어야 하죠. 그런 모순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내는 게 정치인이란 존재입니다.”
“워싱턴 님이나 제퍼슨 님은 그런 느낌은 아니었어요.”
“두 사람은 아직 정치쪽에 발을 푹 담그진 않았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애덤스는 확실히 정치인이라는 틀에 훨씬 더 부합하는 사람이겠네요.”
그게 뭐냐며 칭얼거리는 마리를 달래며 나는 마차의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댔다.
서로간의 속내를 얼마간 꺼내보였다고는 하나 완전한 신뢰관계가 형성됐다고는 볼 수 없다.
저쪽은 이제 나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 머리를 짜낼 테고, 그건 내쪽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욱 머리가 아픈 일의 연속이겠지만, 뭐가 되었든 이쪽으로서는 잘 된 일이겠지.
어차피 최종적으로 웃는 사람이 누구일지는 정해져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