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80)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80화 분리수거 (2)(80/355)
분리수거 (2)
“목걸이가···가짜라고요?”
크리스티앙 왕자의 말에 실내는 일순간 적막에 잠겼다.
오를레앙공도, 그를 따르는 귀족들도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기만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역시.”
루이 15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예상외이기는 했으나 이런 상황이 그렇게 놀랍지만은 않았다.
아무렴 자신의 손자가 이대로 손놓고 당하고만 있을리는 없지 않은가.
“저들은 처음부터 전부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던 게로군.”
루이 15세는 자세를 편히 하고 손에 턱을 괴었다.
오를레앙공이 저렇게나 당황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가, 가짜라니···어떻게 목걸이가 가짜일 수가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전 라모트 백작부인이 아내를 사칭해 사기를 치려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아니. 그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미리 알고 있었다면 현장에서 적발했으면 되는 걸 이렇게 번거롭게 돌아올 이유가 없을 텐데요.”
반론을 하면서 머릿속이 정리된 오를레앙공의 표정이 눈에 띄게 안정됐다.
다른 귀족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감했다.
정말로 라모트 백작부인이 사기를 친 게 맞고, 그걸 미리 알았다면 일을 이렇게까지 키울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루이 15세도 여기엔 어느정도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아무래도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구나. 사기를 알면서도 막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냐.”
“그건 지금 이 상황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앙은 태연하게 답했다.
1 더하기 1은 2라는 걸 설명하듯 담담한 어조였다.
“거기서 라모트 백작부인을 검거하고 끝냈다면 최악의 경우 그 여자 한 명만 처벌받고 끝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 말은 이게 그 여자의 단독 사기극이 아니란 뜻이냐?”
“물론입니다. 하지만 제가 흑막이라면 반드시 꼬리 자르기를 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뒀을 겁니다. 그래서 일단은 그쪽의 노림수대로 풀린 것처럼 상황을 연출한 겁니다.”
크리스티앙은 여유롭게 귀족들을 둘러보았다.
조금전만 해도 승리감에 취해 있던 자들 중 누구도 그의 시선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마 이 사건을 기획한 자들은 퍽이나 저를 물어뜯고 싶었나 봅니다.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다면 전방위적으로 기사가 쏟아져 나올 리가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지. 네 말대로 이게 정말로 기획된 공작이었다면 지금 기사를 낸 신문사들은 대부분 지령을 받고 움직이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예. 돈만 된다면 이 나라의 왕실의 위상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말종들입니다. 언론이 소신껏 기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필요는 있지만 이런 식의 방종을 허락해서는 국익에 해가 될 뿐입니다. 출판총감에게 마땅한 조치를 취하라 일러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다. 그냥 듣기 싫은 소리를 해서 탄압하는 게 아니라 명백한 선동과 조작을 하는 이들이라면 봐줄 이유가 없으니. 처벌의 수위와 방법을 전적으로 네게 일임하도록 하마.”
오를레앙공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왕자가 무엇을 노리고 있었는지 이제 조금씩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척 하면서 최대한 이쪽의 기반을 노출되도록 만든 것이다.
오를레앙 가의 영향력이 닿는 신문사들을 총폐업 시키면 언론은 완벽하게 크리스티앙의 손에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여기서 왕자비를 의심하는 듯한 말을 하는 귀족들도 이미 오를레앙공의 편으로 간주됐을 것이다.
이대로 흐름이 넘어가면 안 된다.
오를레앙공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내 반론을 펼쳤다.
“물론 의도적으로 왕실의 명예를 실추시키려 한 게 사실이라면 그런 자들은 철퇴를 맞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선 그 목걸이가 가짜이고 라모트 백작부인이 사기를 치려 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제시되어야 반발이 적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간단합니다. 진짜 다이아몬드는 보석상 뵈머가 멀쩡히 가지고 있으니까요. 아, 물론 일이 터지자 부랴부랴 다이아몬드를 뵈머에게 돌려주고 연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겠군요.”
앞으로 나올 반론을 미리 차단해버린 크리스티앙은 유유히 오를레앙공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라모트 백작부인은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이쪽으로 다시 연행되어 올 겁니다. 그녀가 들고 있는 가짜 다이아몬드가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되겠죠.”
“···설마 이미 영국쪽과도 말을 맞춰놓으신 겁니까?”
“예. 왕족을 사칭해 사기를 친 사기꾼이 가짜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영국에서 판매를 하려 한다고 말해뒀습니다. 정확한 도착 일시까지 말해줬으니 항구에서 배에 내리자마자 도로 잡혀서 끌려올 겁니다.”
“그럴거면 그냥 배에 타기 전에 잡아서 구금시켜 뒀어도······.”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프랑스를 뜨기도 전에 잡아버리면 라모트 백작 부인이 느낄 절망이 너무 가볍지 않겠습니까.”
무미건조하게 말을 이어가던 크리스티앙의 목소리가 이 순간만큼은 섬뜩할 정도의 살의를 머금었다.
“떨어지는 낙차가 크면 클수록 사람은 더 큰 절망을 맛보는 법입니다. 라모트 백작부인이 저지른 죄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의 마음고생은 해줘야 적절한 벌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모든 계획이 잘 풀렸다며 배에 타서 의기양양하게 영국으로 향한 라모트 백작부인.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않고 앞으로 활짝 필 자신의 인생을 상상하면 약간의 배멀미조차도 행복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영국 병사들에게 붙잡혀 프랑스로 가는 배에 도로 밀어넣어진다면?
그때 느낄 절망이 얼마나 깊을지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도망칠 곳 하나 없는 좁은 배 안에서 프랑스로 오는 시간 역시 일분 일초가 공포스럽지 않을까.
물론 다가오는 파멸의 시간을 기다리며 마음졸일 사람은 라모트 백작뿐만이 아니다.
오를레앙공은 크리스티앙이 품고 있는 분노의 깊이를 자연스럽게 실감할 수 있었다.
“저를 공격했다면 몰라도 정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아내를 끌어들인 건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비열한 정치공작에는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습니다.”
“음~그래,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말고.”
루이 15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를레앙공은 이 치밀한 핑계에 이를 갈았다.
본래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함정을 파둔 뒤, 이를 빌미로 숙청을 거행하면 자칫 귀족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크리스티앙 왕자 부부가 서로 죽고 못살 정도로 애틋한 사이라는 건 이미 전국에 파다하게 퍼진 사실이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아내에 대한 마음을 강조하면 거부감을 살 일도 없어진다.
정적을 처절하게 짓밟는 음험함이 자신의 여인을 상처입힌 자를 징벌하는 정의로움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오를레앙공은 혼란스러웠다.
단순히 계획을 들킬 줄은 몰랐다. 이런 단편적인 감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순조롭게 흘러간다고 여겼던 모든 일이 상대방에게는 그저 한 편의 웃긴 광대극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잘못되었던 것인지.
자신은 대체 무슨 실수를 했던 것이고, 어떻게 했으면 이렇게까지 일이 틀어지지 않았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생각이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혼란스럽다는 감정을 넘어 일말의 공포심마저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볼 때 두려움을 품는 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 외경을 받아들여 상대방을 숭배하게 되고, 누군가는 공포를 없애고자 상대방을 배제하려 든다.
그러나 오를레앙공은 현재로서는 둘 중 무엇도 고를 수가 없었다.
이미 선택지 자체가 사라진 상황이라는 걸 싫어도 자각하게 된다.
어쩌면 한참 전부터 그런 상황이었다는 걸 본인만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는 아무도 입을 여는 자가 없자 루이 15세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면 일단 이 일은 여기서 마무리 짓기로 하지. 그 사기꾼이 여기로 연행되면 본격적으로 심문을 해서 이 사건의 배후를 캐내도록 하겠다. 이는 감히 왕실을 욕보이려 한 중대한 범죄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흑막을 캐내 그 죄를 물을 것이다. 연루되어 있는 모든 자들은 처벌을 면치 못할 테지만, 심문이 시작되기 전에 자수를 하는 자들에 한해서는 약간의 감형을 할 수도 있으니 현명한 판단을 하도록.”
오를레앙공의 몸이 움찔 떨렸다.
테레는 썩어들어가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외에도 수많은 귀족들이 눈치를 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한 크리스티앙은 자애로운 표정을 가장한 채 오를레앙공에게로 바짝 다가왔다.
긴장으로 몸을 굳힌 공작의 귀에 크리스티앙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라모트 백작부인이 영국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준 이유를 한 가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공작님이시라면 짐작이 가시겠죠?”
“······.”
“최후의 순간까지 머리를 짜내보시길. 어떤 선택을 하는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를레앙공은 손에서 피가 새어나올 정도로 주먹을 꽉 쥔 채,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터무니없는 괴물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다는 후회만이 가슴 속에서 몰아칠 뿐이었다.
※※※
베르사유 궁에서의 악몽 같은 시간이 끝나고 오를레앙공은 팔레 루아얄로 돌아왔다.
이 모든 게 악몽이고 사실 자신은 꿈을 꾸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응접실에서 테레와 마주 앉은 그는 서서히 목을 조여오는 현실의 무게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테레의 힘없는 목소리에도 오를레앙공은 입을 열지 않았다.
와인을 잔에 가득 따라 한 잔, 두 잔, 마지막으로 세 잔을 비운 뒤에서야 공작은 한숨을 토해냈다.
“완벽히 외통수에 걸렸는데 뭘 더하겠습니까.”
“그래도 무슨 수라도 짜내야지요. 이렇게 된 이상 라모트 백작부인이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암살자를 보내서······.”
“크리스티앙 왕자가 그런 얄팍한 수를 예상하지 못할 것 같습니까.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이쪽의 덜미를 잡아챌 겁니다.”
“허어···그러면 그냥 이대로 단두대에 끌려가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단 겁니까?”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이 사건의 주범인 오를레앙공이나 테레는 중형을 피하지 못한다.
아니, 오를레앙공은 방계 왕족이고 막대한 재산과 권력이 있으니 어떻게든 목숨만은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는 없다.
적어도 오를레앙 가문이 풍비박산 나는 것쯤은 각오해야 하리라.
와인을 들이키던 오를레앙공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자신만은 몰라도 아들의 미래까지 완전히 막히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아들인 샤르트르 공작은 이번 음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오를레앙공이 처벌을 받게 된다면 아들 역시 정치적인 사형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다.
옥좌를 차지하겠다는 야망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망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일을 쓰더라도 아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딱 한 가지. 이 사태를 타파할 역전의 방법이 있습니다.”
“오오, 역시 공작님이십니다! 그 방법이 뭡니까?”
“이제는 밑져야 본전···이 서신을 재정총감께 맡기겠습니다.”
밀랍으로 단단히 봉인된 편지를 받아든 테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뭐니까? 설마······.”
“예. 만약 제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걸 영국 대사에게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이 정보를 준 대가로 저희들의 망명을 받아달라는 확약을 받아주십시오.”
“설마 전쟁건을···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이걸 다른 누구도 아닌 영국쪽에 밀고한다는 건 빼도박도 못하는 반역이다.
오를레앙공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이걸 진짜로 영국에 넘길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이렇게 뒤가 없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고서는 크리스티앙 왕자를 상대로 교섭할 수 없습니다.”
“그건···확실히 그렇군요. 그런데 이걸 어째서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저도 오를레앙공과 함께 의심받고 있는 처지일텐데요. 공작님 휘하의 심복 중 누군가에게 맡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요. 지금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궁지에 몰리긴 했어도 오를레앙공은 자신의 현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크리스티앙은 라모트 백작부인이 사기극을 계획하고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어떤 수법을 쓸 것인지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심지어 가짜 목걸이까지 준비해놨다면 이건 한참 전부터 음모를 눈치채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배신자의 존재가 아니면 절대로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배신자가 누구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확실한 건 그 배신자가 오스트리아 암살 사건과 라모트 백작부인의 사기극을 전부 유출했다는 것.
이 사실만으로도 배신자는 오를레앙공의 측근 중의 측근이라는 게 확실했다.
그 배신자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뻗어있을지 알지 못하는 지금 섣불리 다른 사람을 쓸 수는 없다.
그러니 아들인 샤르트르 공작을 제외하면 그가 일을 맡길 사람은 테레 뿐이었다.
테레가 계획의 전모를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으니 그가 이 일을 크리스티앙에게 밀고했을 가능성은 없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마지막까지 공작님의 뜻에 따르죠.”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마지막 밑준비를 하러 가보겠습니다.”
오를레앙공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를 불렀다.
방을 나서기 전,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저택을 눈에 담으며 결연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저를 믿고 기다리고 계십시오. 반드시 성과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
파리를 뒤흔들었던 목걸이 사기 사건의 여파는 오래가지 못했다.
놀랍게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왕자와 왕자비를 모함하기 위한 사기극이었다는 데에 시민들은 엄청난 분노를 터트렸다.
이를 조장한 신문사들은 바로 폐업조치를 받았고 사장들은 줄줄이 끌려가 감옥에 수감됐다.
파리 시민들은 당연한 조치라며 끌려나간 이들에게 어떤 동정도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일을 꾸민 흑막의 정체가 밝혀지는 걸 고대하며 한바탕 피바람이 불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었다.
나는 궁에서 연일 내 결정을 응원하는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의 방문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대로 한 사람이 독대를 청했다.
드높은 자존심이 깎여나간만큼 얼굴은 상했지만 걸음걸이는 여전히 당당하고 힘이 넘쳤다.
“···제 요청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를레앙공.
천천히 걸어온 그는 고개를 숙이고는 나의 앞에 마주 앉았다.
“역시 제가 올 거라고 예상하고 계셨나 보군요.”
“사실 좀 더 빨리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지자들을 안심시키고 오느라 조금 늦으셨나 보군요.”
“···변명 따위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여기 온 건 왕자 전하와 협상하기 위해서입니다.”
“협상?”
나는 새어나오는 조소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공작님께서 저와 협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오를레앙공은 가볍게 숨을 들이키고 등을 꼿꼿이 세웠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니 더 각을 재볼 필요조차 없단 뜻인가.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패를 꺼내놓았다.
“영국과 전쟁을 준비하고 계신다더군요.”
“······.”
“이 사실을 영국이 알게 된다면 야심차게 준비하는 계획은 전부 물거품이 될 겁니다.”
나는 가만히 오를레앙공을 쳐다보았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는 앞만 바라보며 폭주하고 있었다.
“이미 제 동료에게 영국 대사에게 건넬 편지를 써서 맡겨두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일이 틀어지거나 제가 구금되면 바로 이 진실은 영국측에 전달될 겁니다. 그러면 왕자 전하께서도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겠지요.”
“그래서, 입 닫아줄 테니 자신들을 용서해 달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완전히 없던 일로 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저는 제 아들에게 모든 권한을 넘기고 완전히 정계에서 은퇴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문은 다시는 왕자 전하를 적대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전력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서로 공멸하고 싶지 않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건.
이 방법이야말로 일발역전의 묘수라 믿어 의심치 않는 오를레앙공의 동공이 이쪽을 똑바로 응시했다.
어차피 둘밖에 없는 장소다.
더 이상은 본심을 숨기지 않아도 되겠지.
나는 굳이 시선을 피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
역시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제안.
내가 돌려줄 대답은 딱 한마디면 충분하다.
“까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