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of the French Royal Family RAW novel - Chapter (87)
프랑스 왕가의 천재가 되었다 87화 싸움이란 이겨놓고 시작하는 법이다(87/355)
싸움이란 이겨놓고 시작하는 법이다
러시아 사절단은 거의 귀신에 홀린 표정으로 베르사유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탔다.
나는 오귀스트와 함께 느긋하게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후우···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네.”
오귀스트가 아까의 대인배스러운 풍모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습할 때보다도 훨씬 더 잘하셨습니다.”
“고작 두 세 문장 정도 말했을 뿐인데 이 정도라도 잘 해내야지.”
“교황청으로 갈 때는 그것도 못하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발전하고 계신 거죠.”
“···그거 칭찬 맞지?”
“물론이죠.”
오귀스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 주일에 걸쳤던 연습이 확실히 성과를 냈으니 뿌듯한 기분이겠지.
“아까 저들의 얼굴을 보셨죠? 형님께서 수고해주신 덕분에 일이 훨씬 쉬워질 것 같습니다.”
“그래. 엄청나게 당황하는 것 같긴 하던데.”
당연한 말이지만 협상을 하러 온 외교단이라면 본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엄청난 준비를 해온다.
이번 러시아 사절단의 책임자인 오스터만은 교황청에서 나와 오귀스트를 본적이 있기 때문에 사전준비에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게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걸 안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오귀스트에게 교황청에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주문한 이유도 바로 이런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서다.
기왕이면 이번 기회를 살려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아직은 어림도 없었다.
대범하면서도 자상한 지배자의 분위기로 두 세 문장을 말할 수 있게 하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들어갔다.
이것도 첫 만남에서 상대방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극도로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복잡한 상호작용을 고려하면서 코딩을 해야했다면 바로 오류가 뿜어져 나오지 않았을까.
“아마 지금쯤 저쪽은 마차 안에서 머리를 싸매고 토론에 한창일 겁니다. 대사관에 도착해서 정보를 받기 전에는 어차피 알 수 있는 것도 없겠지만.”
물론 러시아 대사관도 오를레앙공의 처형에 대해서는 여타 귀족들과 비슷한 수준의 정보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오귀스트는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이쪽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
이미 프랑스에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그들은 내 노림수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머리를 굴리든 유의미한 해답에 도달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자, 그럼 우리도 슬슬 출발하죠. 이번 환영식을 위해서 준비한 게 많으니 즐길 건 즐겨야죠.”
“그러고보니 이번에 연주될 오페라를 작곡한 사람이 네 후원을 받고 있다지? 굉장히 젊다고 들었는데 이런 중요한 무대에 세우는 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보통 그런 생각을 하겠죠. 그러니까 더더욱 일부러 모차르트에게 기회를 준 겁니다. 게다가 이건 안 그래도 프랑스의 궁중 문화에 선망이 있는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좋은 과시가 될 겁니다.”
“아~프랑스는 저렇게 어린 예술가마저 이 정도의 무대를 연출할 수 있는 건가? 하는 놀라움을 느끼긴 하겠군.”
이 세상에 문화승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특히 러시아는 프랑스어와 프랑스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왕실에 도입하는 중이라 프랑스에 대한 동경을 지닌 이들이 꽤 많았다.
이번에 온 사절단도 예외는 아니다.
본 협상에 들어가기전에 이쪽이 우위에 설 수 있다면 그 어떤 방법이라도 동원할 용의가 있다.
그런데 오귀스트는 이런 치밀한 밑작업에 조금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크리스티앙, 그래도 러시아는 우리 동맹국이 아니더냐. 게다가 이번에 이야기가 잘 풀린다면 오스트리아처럼 혈맹 관계가 될 텐데 너무 함정을 파놓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 아닐까?”
“동맹국이라 해도 결국에는 타국입니다. 어차피 저들도 자신들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형태로 우리를 이용해 먹을 생각이 한가득일 겁니다. 너무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게다가 동맹국일수록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형태로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그래···뭐, 너에게 다 생각이 있을 테니 난 이번에도 너만 믿고 있으마. 어차피 폐하께서는 너에게 모든 전권을 주셨으니 내가 왈가왈부할 거리도 없고.”
“다른 무엇도 아니고 형님의 결혼에 관한 문제니까요. 최고의 혼인동맹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오귀스트가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으음···그렇지. 이번 일이 잘 풀리면 나도 결혼을 하게 되는 건가.”
“실감이 안 나십니까?”
“아니, 뭐 나도 네가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하는 걸 보면 그렇게 살아보고 싶긴 한데···그럴 수 있을까 고민도 되고 무섭기도 하고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이번에 혼담이 오가는 대상은 그 어느 면으로 봐도 형님쪽으로 추가 많이 기우니까요. 사실 형님께서 원하지 않는다면 이걸 구실로 얼마든지 혼담을 엎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대 프랑스 왕국의 왕자와 결혼하려면 최소한 상대쪽에서도 신분의 격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의 왕실에는 그런 신분을 가진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 없다.
예카테리나 2세는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편법을 다 동원했지만, 그래도 문제를 삼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문제를 삼을 수 있었다.
“이번 논의의 핵심은 우리 프랑스가 러시아의 저 눈가리고 아웅하는 행위를 인정해줄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사실 형님의 성격을 고려하면 저런 상대가 더 편하긴 할 겁니다.”
“그렇긴 해. 나를 이겨 먹으려는 생각 따위는 절대 못할 테니까.”
어떤 상대든 기가 쎈 타입이 아닌 게 최우선.
이 조건만 만족한다면 누구라도 좋다는 오귀스트의 확고한 취향에 나는 그만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
베르사유 주재 러시아 대사관.
“···하아.”
알렉산드르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되새겨보며 한숨을 흘렸다.
환영행사는 상상 이상으로 훌륭했다.
러시아가 서유럽의 체계를 본따 체제 정비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군사적으로 많이 따라왔을지 몰라도 아직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격차가 컸다.
특히 궁중음식과 음악은 차이가 두드러졌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표트르 대제가 적극적으로 러시아의 서구화를 추진한지 이제 백 년도 지나지 않았다,
뭘 어떻게 해본들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과 세월의 차이를 극복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알렉산드르가 충격을 받은 건 단순히 이런 점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 작곡가도 이제 열일곱이 된다고 했었나······.”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사절단의 대부분은 의심섞인 눈으로 무대를 지켜보았다.
“음악은 표현이다. 기술적인 부분이 좋아 봐야 연륜이 쌓이지 않는다면 특유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없는 법이거늘.”
오스터만은 그런 식으로 불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알렉산드르는 마냥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진 않았다.
모차르트라는 젊은 천재 음악가를 발굴한 사람이 다름 아닌 크리스티앙 왕자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 예상대로 모차르트의 음악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젊어서 어쩌구 저쩌구 하던 오스터만은 이번에도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안 그래도 선배 외교관들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던 알렉산드르는 이 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
“머리가 꽉 막힌 꼰대들 같으니···뭐만 하면 나이, 나이 하더니 결국 제대로 보는 게 하나도 없었어.”
러시아의 외무부는 군부만큼이나 경력과 경험을 중시하는 집단이었다.
사실 외교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경향이 강하다.
알렉산드르는 몇 번이나 어리다는 이유로 의견이나 제안을 기각당한 경험이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아무래도 선배들은 그만큼 경험이 더 있으니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거겠지.
그래도 선배들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판단이 자신보다 더 현상을 제대로 짚고 있겠지.
개뿔. 전부 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선배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경험이나 연륜 같은 건 전부 허상.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신기루였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이 내세울 게 없으니 고작 나이나 경험 따위를 들먹이며 알량한 우월감을 즐기려고 했겠지.”
그 증거가 바로 크리스티앙 왕자의 존재다.
러시아 대사관에서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오를레앙공은 크리스티앙 왕자를 암살하고 반역을 꾀하려던 죄로 처형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되짚어 봤을 때 이건 오를레앙공이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었다.
오를레앙 공작이 누구던가.
프랑스에서 가장 강한 권세를 누리던 귀족이다.
이런 대귀족이 고작 사생아 출신의 어린 왕자 하나 어떻게 하지 못하고 역으로 목이 잘려서 죽었다.
오를레앙공의 저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던 외무부 중진들의 평가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말하던 경험이나 연륜 같은 게 정말로 그렇게 큰 요소였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크리스티앙 왕자 한 명이었다면 그가 이레귤러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조사를 하면 할수록 프랑스는 현재 젊은 사람들이 두각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오늘 연주를 한 모차르트라는 사람만 해도 그렇지. 그 사람은 크리스티앙 왕자보다도 더 어리다며?”
예술쪽 분야만이 아니다. 크리스티앙의 측근들은 대다수가 40도 되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었다.
최근 들어 놀라운 논문을 속속 발표하며 과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라부아지에도 이제 서른이 되는 젊은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게 프랑스가 가진 저력일지도 모른다.
물론 알렉산드르는 크리스티앙이 범인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천재들만을 곁에 두고 있다는 걸 알 리가 없었다.
“후···부럽구나, 프랑스. 저렇게 생각이 열린 사람이 위에 있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법이거늘.”
알렉산드르는 푸념을 흘리며 애꿎은 차만 들이켰다.
오스터만이 프랑스에 관한 정보를 더 수집하겠다며 사람들을 끌고 나갔기 때문에 대사관에 남은 외교관은 그 혼자였다.
“지금까지 헛다리만 짚었는데 쓸만한 정보를 건져올 리가 없지. 에휴···이쯤 되면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경애하던 선배에 대한 존칭은 이제 온데간데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있는 그때.
“알렉산드르 외교관 님,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방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는 약간 짜증이 섞인 어조로 대답했다.
“누구인데 약속도 잡지 않고 이렇게 온단 말이냐.”
“그게···오를레앙 공작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뭐라고? 뭘 물어보고 있는 거냐. 당장 이쪽으로 모셨어야지!”
알렉산드르는 자리에서 튕겨 일어나 바로 응접실로 달려갔다.
그는 비슷하게 안내를 받아 들어온 크리스티앙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다.
“전하. 이렇게 찾아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미리 연락을 주셨다면 제가 성대하게 준비를 해놓았을 텐데······.”
“그냥 지나가는 와중에 들린 겁니다. 사실 이렇게 갑자기 만남을 청하는 건 결례일 수 있겠지만 알렉산드르 외교관님과는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거든요.”
“예? 저와요?”
알렉산드르가 촉망받는 젊은 엘리트인 건 맞지만, 이번 사절단의 최고 총책임자는 오스터만이다.
어중간한 고관도 아니고 프랑스의 제 1귀족인 오를레앙 공작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워 하는 그와는 달리 크리스티앙은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러시아와 프랑스의 결혼 동맹은 유럽의 판도를 좌우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당연히 러시아에서도 심혈을 기울여 사절단을 구성했을 텐데 그쪽처럼 젊은 사람이 포함됐다는 건 당연히 그만큼의 능력을 갖췄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봐주시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저는 경험을 쌓으라는 배려로 포함된 것에 불과합니다. 제 의견은 대부분 채용되지 않더군요.”
“외교쪽은 아무래도 보수적인 경향이 있으니 그렇겠지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시각 때문에 꽤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역시 전하께서도 그런 고초를 겪으셨었군요.”
알렉산드르의 눈이 동경과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크리스티앙은 그의 눈을 마주하며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 나이가 들면 누구라도 조금씩 완고해지는 법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의식적으로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젊은이들만이 떠올릴 수 있는 참신한 생각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전하의 곁에는 그토록 젊은 인재들이 많았던 거군요.”
“그런 점에서 전 이번 회담도 기대중입니다. 알렉산드르 님처럼 젊은 피가 있으면 더 생동감 넘치는 회담이 되지 않을까 싶거든요.”
다른 누구도 아닌 프랑스의 최고귀족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본국의 꼰대들과는 차원이 다른 포용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저도 전하께서 어떤 식으로 회담을 이끌어가실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디 양국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저는 어느 국가가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취할지 계산하기보다는 양국이 앞으로도 쭉 우정을 다질 수 있는 토대를 쌓고자 합니다. 그런 건설적인 합의가 도출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며 크리스티앙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래, 이게 바로 앞으로 미래를 책임질 대귀족이 마땅히 보여야 할 품격이다.
알렉산드르는 감동으로 벅차오르는 마음을 억누르며 공손히 크리스티앙의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그는 볼 수 없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크리스티앙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