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06)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 106화(106/537)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구경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집안 싸움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서민원에서 시작된 신구 세대의 대립은 당연히 귀족원에서도 예의주시하며 지켜보는 화제였다.
특히 현재 귀족원은 사실상 보수당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민원에서도 계속 보수당의 힘이 강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런 소란이 벌어졌으니 당연히 심기가 불편한 귀족들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웰링턴 공작은 슬슬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즈음 명망 높은 귀족들을 불러모았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최근 서민원이 많이 시끄럽습니다. 해서 우리도 확실히 방침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여러분을 불러모으게 됐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총리님이 자리에 없으신데요.”
“전 총리죠. 엄밀히 말하면 총리가 아니니까요. 하여튼 전 총리는 지금 문제의 중심에 있으니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부르지 않았습니다.”
총리라 서민원에도 출석하고 있지만 로버트 필은 엄연히 귀족의 작위를 받은 귀족원 소속의 의원이었다.
하지만 웰링턴 공작이 확실하게 선을 긋자 다른 귀족들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공작님, 안 그래도 어제 아드님께서 런던의 모든 기자들을 다 불러놓고 엄청난 연설을 했다고 하던데 혹시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
“자세한 건 듣지 못했지만 그 아이가 어떤 신념으로 움직이는지는 들었습니다. 물론 아들이라고 개인적으로 편을 들 마음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 당이 계속해서 실권을 잡는 것이니.”
“총리···죄송합니다, 전 총리께서는 귀족원이 힘을 모아 서민원에 압박을 넣어주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이대로 가면 서민원에서 보수당의 영향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서민원에서 영향력이 약해진다? 글쎄요. 냉정하게 봤을 때 지금 귀족원이 전 총리의 편을 들면 시민들이 어떻게 바라보겠습니까. 지금 내각이 붕괴된 이유는 그들이 너무 과하게 젊은이들을 핍박하고 권력을 독점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고압적인 이미지가 강한 귀족원이 여기서 로버트 필을 밀어주면 이런 인식이 쐐기를 박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성향이 보수적인 귀족들은 하극상에 가까운 웰즐리의 행동을 그리 반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로버트 필의 뻘짓으로 자신들에게 흙탕물이 튀는 건 사절이었다.
웰링턴 공작의 형이자 오랫동안 보수당의 터줏대감이었던 리처드 콜리 웰즐리 후작도 못마땅하다는 듯 대놓고 혀를 찼다.
“토사구팽을 해도 좋고, 젊은이들에게 예절을 주입해주려는 시도도 좋습니다. 그걸로 뭐라고 할 마음은 없어요. 하지만 그걸 못하고 역으로 본인이 불신임을 당해 쫓겨났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죠. 엄밀히 말해서 그건 부패가 아니라 무능입니다.”
킬리언에게 미리 언질을 받은 앵글시 후작도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를 보탰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건 그냥 능력이 모자라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습니다.”
귀족원 의원들은 아래사람을 길들이려는 의도 자체는 뭐라 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선을 잘 타야지 너무 과하게 찍어누르려다가 반발로 본인이 찍혀나갔다면 모양새가 너무 추하지 않나.
“하지만 공작님, 이제 몇 개월 뒤면 바로 선거가 열릴 겁니다. 여기서 이렇게 서로 싸우다가 자칫 선거에서 패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어떻게는 뭘 어떻게 합니까. 그때는 못난 아들놈에게 당에 분란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야죠.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일을 벌인 거라면 그런 인간에게 서민원의 조타륜을 맡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당에 해를 끼치면 가차없이 쳐낸다.
단, 다음 선거에서 이기고 능력을 증명한다면 지켜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웰링턴 공작의 명쾌한 입장에 다른 귀족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다음 선거까지는 그냥 중립을 표방하고 지켜보기로 할까요?”
“저도 그게 좋겠습니다. 괜히 저런 진흙탕 싸움에 끼어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우리 체면이 있는데 저런 저급한 싸움에 발을 들이밀어서야 되겠습니까. 허허허.”
“저도 에버딘 백작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급떨어지는 싸움에 굳이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지요.”
까놓고 말해서 찰스 웰즐리든 로버트 필이든 다음 선거에서 이기고 보수당에 다수석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곧 우리 편이다.
로버트 필도 귀족원 소속이기는 하지만 찰스 웰즐리 역시 귀족원의 터줏대감인 웰링턴 공작의 아들이 아니던가.
심지어 이쪽은 본인만이 아니라 형까지 귀족원의 소속이다.
둘 모두 외부인이 아닌 이상 둘 중 더 쓸만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당연한 이치.
귀족원 소속의 보수당 의원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이번 사건에서 중립을 지키기로 결정을 내렸다.
자신을 도와 찰스 웰즐리의 하극상을 꾸짖어 달라는 로버트 필의 부탁은 결국 어떤 응답도 받을 수 없었다.
* * *
속세에서 벌어지는 소란은 왕실의 두터운 벽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제는 그것도 옛날 이야기다.
역대 그 어느 왕들보다 정치와 시민들의 삶에 관심이 많은 빅토리아 여왕은 웰즐리의 기자회견이 있은 바로 다음 날 나를 호출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들었어요. 괜찮은 건가요?”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아무 문제 없습니다. 모든 게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전부 계획대로라고요? 그러면 왜 나한테는 미리 말을 해주지 않은 건데요.”
“그거야 아일랜드에서 디즈레일리 의원님에게 소식을 전해듣고 세운 계획이었으니까요. 폐하께 말씀드리려 했는데 이렇게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자리를 계속 피하셔서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을테니 좀 들어두라고 하면 얼굴이 빨개져서 호다닥 자리를 피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너무 억울하지 않나.
순간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는지 빅토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매만졌다.
“그건···내 실수가 맞네요. 미안해요, 그때는 심장이 진정되지가 않아서.”
“괜찮습니다. 사실 반드시 아셔야만 하는 일이었다면 제가 어떻게든 말씀드렸을 겁니다. 당시에는 폐하도 마음을 추스르실 시간이 필요했을 거고요.”
“그러면 이번 일은 내가 해줄 일이 없나요?”
“아마 전 총리님이 폐하를 찾아오시긴 할 겁니다. 의회 해산 요청을 드려야 하니 무조건 올 수밖에 없겠죠. 그때 뭐 본인의 편을 들어달라고 하거나 중재를 요청할 가능성은 있긴 하겠네요.”
“안 그래도 오늘 전 총리와 만나기로 일정이 잡혀 있을 거예요. 그때 적당한 핑계를 대서 거절하면 되겠네요. 듣자하니 그 인간이 장관을 다시 아시아 특사로 보내버리려고 했다면서요?”
기분 탓인가. 생글생글 웃고 있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살기가 스쳐지나간 거 같은데.
“네···그러긴 했죠. 도중에 무산됐지만요.”
“왜 나한테 말 안했나요? 아니,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사람을 다시 아시아로 보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에요?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폐하께서 공개적으로 반대하시면 정치개입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 선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니 걱정끼쳐 드리지 않으려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겁니다.”
“···그랬군요. 그래도 나는 용서할 수가 없어요. 직접 말하면 장관 말대로 정치개입으로 비쳐질 수가 있으니 비공식적인 루트로 발언을 유출할 생각이에요. 이 정도는 상관 없겠죠?”
현대에서도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익명의 관계자에 의하면’이라는 문구를 써먹으라는 건가.
확실히 그렇게만 말을 흘려도 상당한 효과가 나올 거 같긴 하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대충 이런 식으로 기사를 내보내 보겠습니다. 켄싱턴 궁전에 있는 시녀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여왕 폐하께서는 공정하지 못한 행위를 가장 싫어하신다. 그건 대영제국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행위이며 공을 세운 사람은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문구를 쓰면 그게 누구를 비판하는 내용인지 모를 사람은 없겠죠.”
“아주 좋아요.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관을 아시아에 박아두려고 한 인간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네요.”
“하하하···.”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로버트 필이 여왕의 분노를 살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우리 여왕 폐하가 단단히 화가 나신 거 같은데 잘못하면 내 예상보다 더 험한 꼴을 볼 수도 있겠는 걸.
“의회를 해산하면 선거가 열릴텐데 거기서 이긴다면 전총리의 파벌은 거의 와해되는 거라고 보면 되겠죠?”
“네. 이미 이탈은 시작됐습니다. 선거가 다 끝날 때쯤이면 대부분의 의원들은 다 제쪽에 붙어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총리는 귀족원 의원이니 총리직에서 밀려나도 그냥 귀족원으로 돌아가면 되잖아요? 그 사람은 선거를 치를 필요도 없을 테고.”
“그래도 귀족원의 귀족들이 싸움에 진 개나 마찬가지인 사람을 싸고 돌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다들 거리를 두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것만으로는 불만족스러운데······.”
누가보면 지금 로버트 필과 싸우는 사람이 웰즐리나 내가 아니라 빅토리아인줄 알겠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전 총리를 확실하게 밟아놓고 싶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로버트 필은 엄연한 대영제국 귀족원의 일원이다.
너무 가혹하게 짓밟는 모습을 보여주면 당연히 귀족원에서는 너무 심하다는 목소리가 나올테고, 이는 나나 웰즐리를 향한 반감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주변 파벌만 다 내치고 본인은 적당히 숨통을 틔워주려고 한건데 왕실이 나서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폐하. 혹시 생각해두고 계신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요. 아직 이거다 싶은 건 없어요. 하지만······.”
똑똑똑.
빅토리아가 무슨 말을 더 이어가려던 찰나,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문을 두드리며 손님이 방문했음을 알렸다.
“폐하. 로버트 필 총리님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실까요?”
“네. 들어오셔도 괜찮다고 전해주세요.”
빅토리아의 허락이 떨어지자 즉시 방문이 열렸고 며칠 사이 조금 초췌해진 로버트 필이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폐하.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름 아니라 오늘 찾아뵌 이유는 말씀드린 대로 의회 해···산······.”
말을 이어가던 그가 여왕의 맞은 편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그 모습을 본 빅토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차를 마시며 사무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최근 돌아가는 일이 궁금해 장관에게 설명을 듣고 있었어요. 개의치 마시고 말씀 계속하세요. 의회 해산 건 때문에 오신 게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불신임안이 통과되었는데 제가 후임을 지명할 처지가 못되는지라 아무래도 새로 의회를 구성해야 할 듯 합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서민원으로 오셔서 의회를 해산해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수고를 끼치게 되어 송구합니다.”
“아니에요.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니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요. 혹시 그 외에도 내가 더 해줄 일이 있을까요?”
자비로움이 듬뿍 담긴 목소리였지만 사실 빅토리아는 이런 어조로 말할 때가 가장 무섭다.
로버트 필 역시 무언의 압박을 느꼈는지 나와 그녀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폐하께 이 이상의 수고를 끼쳐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잠깐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와도 되겠습니까?”
이제와서 뭐 더 할말이 남기라도 했나.
내가 괜찮다는 신호를 주자 빅토리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아마 두분 할 말이 많을텐데 이야기 나누고 오세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빅토리아에게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나는 친애하는 전 총리님을 따라 바깥으로 나왔다.
말없이 궁전 앞의 정원까지 걸어온 로버트 필은 한숨만 뻑뻑 내쉬더니 이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네···폐하께 무슨 이야기를 한 건가?”
“최근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시고 싶다고 하셔서 설명을 드렸을 뿐입니다.”
“···이미 다 이긴 거라고 생각하겠지?”
“이기고 지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일이 이렇게 되서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뭐야. 혹시 남은 수가 더 있나?
기대 반 의문 반으로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는 내 귀에 로버트 필의 회심의 한 마디가 날아와 꽂혔다.
“무승부로 하지 않겠나?”
설마설마하니 이 타이밍에 나올 거라고는 예상조차 못했던 한 마디에 하마터면 진심으로 뿜어버릴뻔 했다.
아···목숨구걸도 이런식으로 하시겠다?
“총리님.”
나는 너무 심하게 웃지 않도록 나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로버트 필에게 마지막까지 공손한 어조로 한 마디를 건넸다.
“실없는 말씀 하실 거면 가서 피시 앤 칩스나 드시고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