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09)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 109화(109/537)
신시대의 물결
여명의 햇살이 런던의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순간, 런던은 의회 개원이라는 전통적인 행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썩였다.
상원 의사당에는 이미 귀족원의 의원들이 전부 자리를 잡고 있었고 내각의 장관들도 지정된 자리에 모여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직인가?”
오늘부터 공식적으로 총리로서의 업무를 시작하게 되는 웰즐리가 초조하게 바닥을 두드리며 연신 가쁜 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왜 갑자기 긴장하고 그러세요?”
“그러게나 말이야···이게 뭐라고 괜히 심장이 두근두근 하는구만.”
“어차피 딱히 총리님이 하시는 건 없으니 그냥 느긋하게 지켜만 보세요.”
“···그렇긴 하지. 사실 나는 오늘 개원식에 참석하는 게 일정의 전부거든. 폐하께서 연설을 끝내시면 그걸 지지한다는 말 정도만 하면 내 역할은 끝이지. 그러고보니 자네는 이후 일이 더 있지 않았나?”
“그렇죠. 손님을 맞이해야······.”
내가 뭐라고 말을 더 하려던 찰나 시간이 11시를 가리키자 실내의 분위기가 한순간 크게 들썩였다.
이내 귀족원의 문이 열리고 Black Rod로 불리는 검은 막대의 신사가 안으로 들어오며 개원식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그를 따라 서민원의 의원들이 줄지어 귀족원 안으로 들어오며 의사당 뒤쪽 끝에 주르르 도열하기 시작했다.
본래 서민원과 귀족원의 의원들은 서로 왕래할 수 없지만 개원식이 열리는 이 날만큼은 예외다.
단, 의회 해산을 알릴 때 외에는 왕은 서민원에 출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서민원 의원들이 귀족원 의사당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귀족원에 서민원 의원들이 자리가 있을리가 없으니 개원식이 끝날 때까지 그들은 저 뒤에 서서 구경해야 하지만.
“여왕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든 의원들이 자리에 서자 이번 행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낼 시간이 됐다.
대대로 내려온 권위와 전통을 한몸에 두른 여왕이 당당하고 침착하게 방 안으로 들어오자 조금은 부산스럽던 실내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이내 왕좌에 오른 그녀가 당당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로 의사당에 깃든 침묵을 깨트렸다.
“친애하는 의원 여러분. 우리는 오늘 영광스러운 대영제국이 진보와 문명의 등불로 우뚝 서는 시점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군주로서 왕국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도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신 신의 섭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가지 중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선, 유럽의 일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전능하신 신의 은총과 지혜로 우리 정부는 혁명의 메아리가 여전히 울려 퍼지는 유럽 대륙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부지런히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또한 우리 정부는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우리 형제들에게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여왕의 연설은 보통 의회에서 작성해주지만 이번 연설문은 여왕의 의지가 상당부분 반영되었다고 알려졌다.
대영제국 전역에서 여왕의 인기는 굉장히 높았고 지식인들과 시민들은 생생한 여왕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는 국민들의 안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높은 벽으로 사방을 둘러치고 아늑한 곳에 앉아 있기만 해서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의 한탄은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의 새로운 총리, 찰스 웰즐리 경과 존경하는 정부 구성원들은 사회 개혁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할 신성한 의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교육은 우리 제국의 힘을 키우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이 나라의 깃발 아래에서 태어난 모든 어린이에게 지식과 미덕을 통해 일어설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야 합니다.
나는 증기 기관의 경이로움과 현재 우리 땅을 가로지르는 철로와 강철의 그물망을 바라볼 때마다 자부심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이러한 혁신과 진보는 우리 제국을 지탱하는 근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혁신을 계속 활용해야 합니다.
나는 신이 나와 내 정부에 부여한 책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어질 우리의 통치가 정의, 연민, 결단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질 것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맹세합니다.
친애하는 의원 여러분, 흔들림 없는 헌신으로 여러분의 임무를 수행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이라는 이름의 격동의 바다를 항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단결하여 대영제국의 해가 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신의 가호가 우리에게 함께하기를.”
여왕의 연설이 신성한 홀에 울려 퍼지자 모두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까지 격식과 엄숙함을 유지해야 하는 자리였기에 누구 하나 입을 뻥긋하거나 박수를 치지는 않았다.
여왕이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당당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자 자리에 앉아있던 귀족원의 귀족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으로 총리와 그를 따르는 장관들, 그리고 서민원의 의원들이 차례를 갖춰 다시 서민원 의사당으로 돌아왔고, 모두가 착석하는 그 순간까지 누구하나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야당측 의원들까지 전부 자리를 잡은 걸 확인한 뒤에 서민원의 의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여왕 폐하의 연설에 이어 총리님께서 의회를 대표해 발언을 해주시겠습니다.”
“예.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모두 앞서 들으셨다시피 폐하께서는 앞으로 우리가 중시해야 할 몇 가지 목표를 확실히 짚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에 자만하지 않고 계속 과학의 진보에 투자를 해야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합니다. 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고 그 우수한 인재가 국가에 이바지하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현재 우리 정부는 대규모 캐나다 이민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여기에 대영제국의 시민들이 안전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킬리언 고어 외무부 장관을 캐나다 정책의 총책임자로 임명하는 법안을 상정하는 바입니다.”
어차피 보수당이 현재 의회의 과반 의석을 지니고 있고 귀족원에서도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니 총리가 법안을 내면 통과되는 건 확정수순이다.
아니나다를까 보수당 의원들은 웰즐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찬성합니다!”
“이민정책을 처음 발안한 장관님이 전권을 가지고 지휘하는 게 가장 효율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상황이면 야당은 꿔다놓은 보릿자루나 마찬가지라 존재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그래도 총리의 발언 뒤에는 야당 대표가 발언을 하는 게 관례였기에, 멜버른 자작이 물러난 뒤 새롭게 야당을 이끌게 된 파머스턴 경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저희측도 여왕 폐하께서 제시하신 가치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총리님께서 입안하신 법에 대해 몇 가지 질문하고자 합니다. 먼저 킬리언 고어 장관이 캐나다 이민정책의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동의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캐나다의 행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자리를 신설하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교에 관한 권한까지 전부 일임하는 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외무부 장관이라는 이유 때문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캐나다 밑에 다른 나라가 아무도 없었다면 저 역시 파머스턴 의원님과 같은 생각이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캐나다는 다른 이웃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규모 정착 과정에서 혹시 모를 외교적 마찰이 생길 수 있는데 그때마다 본국과 연계해서 무언가를 하려 한다면 필연적으로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총리와 파머스턴의 토론을 지켜보던 나는 시간이 됐음을 확인하고 슬쩍 자리를 떠났다.
원래 의회가 시작할 때 정부의 방향을 두고 토론을 이어가는 건 영국 정치의 오랜 전통이며 이런 논의는 때로는 며칠동안 이어지기도 한다.
어차피 보수당이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린 이상 내가 5년 동안 캐나다의 실권을 가져가는 건 확정된 사실이었으니 나는 내 할 일을 하러 가봐야겠지.
원래는 이쪽에서 넘어갈 때까지 잠잠할 줄 알았는데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저쪽 역시 대영제국의 움직임이 신경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 보다.
대서양을 건너 온 손님이니만큼 대접에 부족함이 없어야 할 텐데 만족할만한 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물론 이쪽이 걱정해줄 의리 따위는 요만큼도 없었지만.
* * *
미국이 세계의 깡패로 우뚝서는 건 세계대전을 거치고 난 뒤의 일이다.
사실 그 전에도 미국의 국력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지만, 그들이 그렇게까지 강력하다는 사실을 세계도 몰랐고 본인들도 몰랐다.
그러니 1841년인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이때는 객관적인 국력도, 체급도 대영제국이 압도적으로 더 강했지만 잠재력만 놓고 보자면 미국은 절대로 무시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긴장할 필요는 없다.
자신들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자신들조차 모르는 상태가 바로 지금의 미국이었으니까.
그러니 나도 그 흐름에 합류해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너스레를 떨고 있으면 그만이다.
“대영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혹시 오시는데 불편함은 없으셨습니까?”
“굉장히 성대하게 환영해주셔서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오늘 의회 개원식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장관님이 직접 나와서 맞아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대통령직에 계셨던 분이 직접 오셨는데 당연히 제가 직접 나와야죠. 이틀 뒤 의원님을 환영하는 공식 만찬이 예정되어 있으니 부디 마음껏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편의를 봐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장관님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젊으신데도 믿을 수 없을만큼 능력이 좋고 많은 업적을 남기셨다고요.”
들은 게 아니라 급히 조사해 본 거겠지.
어느쪽이 됐든간에 나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더 쉽게 풀릴 테니 나야 좋았지만.
“저도 의원님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제가 합중국으로 갈 일이 생긴다면 꼭 만나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와주시다니 이 또한 운명의 인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를 만나고 싶으셨다고요? 어째서?”
“그거야 의원님께서 현재 합중국에서 노예 해방에 가장 관심이 많으신 분이니까요. 저도 노예 해방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꼭 한번 만나뵙고 의견을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존 퀸시 애덤스.
미국의 대통령이기도 하지만 특이하게도 임기 이후 적극적으로 노예제 폐지에 앞장서서 퇴임 뒤의 평가가 더 좋은 정치인이다.
신대륙으로 건너가면 만나봐야 할 후보자 중에 한명이었는데 이렇게 직접 와주다니 이게 신의 인도가 아니면 무엇일까.
“장관님께서 노예제 폐지에 관심이 많으시다고요?”
“물론입니다. 아시다시피 대영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를 폐지한 국가가 아닙니까. 저는 여기에 깊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원님께서도 노예제 폐지를 위해 한걸음 먼저 그 업적을 이룬 대영제국을 살펴보시고자 오신 게 아니었습니까?”
“아···물론 그런 목적도 있긴 했습니다만.”
“그런 거라면 저만 믿어주십시오. 제가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의원님께서 여기 머무시는 동안 곁에서 유익한 정보를 뽑아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신대륙에서 노예제 폐지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매진하는 투자자가 있는데 혹시 의원님을 소개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동지를 찾은 애덤스가 흥미롭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됐다. 완벽히 미끼를 물었구만.
“물론입니다. 제임스라고 신대륙에서 기관차와 석탄 채굴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인데 흑인 인권에 엄청난 열정을 지닌 친구입니다. 자신이 태어난 이유가 신께서 흑인들을 해방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보낸 거라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친구입니다. 하하하.”
“합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그런 마음을 품기 쉽지 않았을 텐데···진짜라면 대단한 사람이로군요.”
“아마 사업차 일주일 정도 뒤면 런던으로 들어올 텐데 그때 한번 만나보십시오.”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라면···좋습니다. 저도 흥미가 조금 동하긴 하는군요.”
“아마 의원님과도 마음이 금방 통할 겁니다. 하하하!”
졸지에 한 순간에 제임스를 인권투사로 둔갑시킨 나는 이후에도 노예제가 얼마나 야만적인 제도인지 열변을 토하며 애덤스의 혼을 쏙 빼놓았다.
덕분에 본래 목적이었음이 틀림없는 아일랜드 이민정책의 아자도 꺼내지 못한 그는 홀린 듯 내 이야기를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쪽이 뭘 하려고 하는지 관심이 많은 게 당연하지만 당분간은 다른 곳에 신경을 좀 쓰고 있어 보라고.
어차피 조금 뒤면 본인들 집에 산불이 날 태니 다른 곳에 눈 돌릴 틈도 없겠지.
21세기 감성으로 무장한 인권전사 제임스가 전미를 강타할 테니 말이다.
이거 이러다가 나중에 대영-미국 양국 위인전에 실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인권의 아버지 킹 제임스! 역시 이 또한 릅ㅅ···아, 아니다. 그만 생각하자.
어쨌거나 부하의 미래까지 끔찍히 생각해주는 상관. 내가 이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