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10)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 110화(110/537)
정의의 사도
1841년 햇살이 따사로운 아침.
긴급 미국출장을 갔다가 돌아온 제임스는 다시 보이는 런던의 풍경에 마음이 평안해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고향만한 곳은 없다고 역시 먼 길을 떠난 뒤 돌아오면 이곳의 모든 게 정겹게만 보인다.
스치기만 해도 피부에 치명타라는 말이 있는 템즈강의 똥물조차도 지금 그의 눈에는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런던에서 머무는 동안 뭘 할지 계획도 이미 다 세워두었다.
이번에는 최소 3개월 정도는 아무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푹 쉬면서 우아하게 휴가를 즐기리라.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쁜 일정을 소화해냈다.
킬리언을 대신해 탐정 사무소를 개설하고 그 탐정 사무소를 영국 최고의 조직으로 키워냈다.
여기에 미국 대공황을 이용해 미국의 석탄회사와 기관차 회사, 그리고 영국의 거대 석탄 기업까지 인수해놓은 게 수년 전.
킬리언의 수완은 거의 미래 예지에 가까워 사업을 하는 제임스도 당시에는 기꺼이 일을 즐겼다.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돈이 복사가 되는데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런데 뭐라고 해야할까.
계속 그러다가 보니 뭔가 이제는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지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하려나.
어째 이제 뭔가를 다 이루었다는 느낌이 들면 계속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던져주니 도무지 쉴 틈이 나질 않았다.
당장 킬리언이 청나라로 갈 때만 해도 그랬다.
그가 없는 사이 사업을 잘 관리하고 규모를 키우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신대륙으로 가서 감자역병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라니?
처음에는 드디어 우리 도련님이 어딘가 이상해진 게 아닐가 했다.
하지만 가장 어처구니 없는 건 진짜로 그 감자역병이라는 놈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게 퍼지면 농민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될 거라는 점이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킬리언은 아일랜드의 기네스와 협업해 캐나다와 미국에 양조장을 만들라는 명령도 내렸다.
그리고 겸사겸사 탐정 사무소를 미국에도 확장하라고 하네?
미국이야말로 탐정 사무소로 때돈을 벌 수 있는 금광이라나 뭐라나.
물론 킬리언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냥 말로만 툭 던져놓고 불가능한 걸 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그는 미국방면을 맡길 최적의 인재를 붙여주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앨런 핑커톤.
어떻게 알았는지 탐정 사무소에서도 손에 꼽히게 뛰어난 인재였던 그를 추천한 킬리언의 안목은 과연 틀리지 않았다.
영국 탐정 사무소의 막대한 자금과 뛰어난 조직력을 활용한다면 미국 내에 새로 생길 탐정사무소 역시 5년 안에 미국을 휘어잡는 거대 조직으로 성장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치안은 영국보다도 훨씬 더 좋지 않았기에 무장한 사립 탐정들이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다시 말해 돈이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 킬리언 도련님은 합중국에서 다시 한번 돈을 갈퀴로 긁어모아 자신의 왕국을 더 넓히려는 생각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이쪽은 런던에서 당분간 편안하게 휴식하며 격무에 찌든 몸을 달래줘야지.
돈이야 썩어 넘칠 정도로 있으니 어디 한적한 휴양지에 가서 최고급 위스키와 산해진미,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둘러싸인 호화로운 휴가 계획이······.
“제임스, 이번에 해줘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는데.”
“오······.”
런던으로 돌아오자마자 찾아온 악마의 부름에 의해 산산이 깨어져버렸다.
“친애하는 도련님, 저는 아메리카 출장에서 이제 막 돌아왔는데요.”
“아 걱정마. 지금 신대륙에 바로 다시 가라는 건 아니니까. 이번에 합중국에서 거물 의원이 한명 방문했는데 이 사람에게 선량한 후원자인척 접근해서 열심히 밀어주면 돼.”
“많이 해본 일이군요. 그거라면 제 전공이죠. 지금 쌓이고 쌓인 제 울분을 그자에게 풀어줘야겠네요.”
정치인에게 접근해 뜻이 맞는 후원자인척 하면서 돈다발을 살포하고 쓸만한 약점을 손에 쥐어놓는다.
킬리언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했고 워낙 오래 해온 일이라 이제는 숨쉬는 것처럼 익숙한 일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온 불쌍한 봉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악랄한 도련님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는 인형이 되겠구만.
“그런데 이번 대상은 진짜 거물이거든. 지금까지의 그 어떤 상대보다 공을 많이 들여야 할 거야. 그리고 그 사람이 진짜로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게 도와줘야 해.”
“예? 이용하는 게 아닌가요?”
“그 사람의 신념이 성취되는 게 나에게도 이득이거든. 그러니까 이쪽을 신뢰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워낙 정치판에서 오래 있었던 사람이니까 그리 쉽지는 않을 거야.”
대체 누구를 구워삶아야 하는데 킬리언이 저런 반응을 보이나 했지만 대상의 이름을 듣자 자연스레 납득이 됐다.
존 퀸시 애덤스. 합중국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까지 올랐고 퇴임 뒤에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는 합중국 하원 최고의 거물 중 한명이 아닌가.
“그 사람과 친분관계를 쌓고 열심히 후원을 해주면 되는 겁니까? 그럼 저는 이번에는 어떤 설정으로 애덤스 의원에게 접근하면 될까요?”
“그게 바로 이 계획의 핵심이지. 너는 지금부터 흑인 인권 운동에 인생을 바친 양심있는 사업가가 되는 거야.”
“네, 네. 흑인 인권 운동에···뭐라고요? 뭐에 인생을 바쳐요?”
“노예제도는 인류의 문명과 지성을 역행하는 끔찍한 야만이며 이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이게 바로 너가 이제부터 가슴속에 품어야 할 절대적인 신념이야.”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이해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간 소리에 순간적으로 뇌가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저기 미국 흑인 노예제도의 폐지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인권의 투사가 되어라 이 말인가?
“이제는 하다하다 사업가에서 노예해방 운동가로 전직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어쩔 수 없어. 애덤스 의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그쪽으로 파고들어야 하거든. 그게 내 계획에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이득이 될 거고.”
“도련님께서 흑인들의 안타까운 삶에 그렇게나 가슴아파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노예제 폐지가 그 정도의 이득이 될 거라니.”
“아니, 심정적 이득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득이 된다고. 어차피 노예제 같은 쓰레기 제도는 그렇게 오래 존속되지 못해. 그렇다면 인류애적 가치에도 부응하면서 나의 이득도 함께 추구해줘야지.”
언제나와 같은 킬리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저거야 말로 도련님의 원래 모습이기는 하다.
대관절 노예제를 폐지하는 게 대영제국의 장관인 그에게 어떤 이득이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이해가 되겠지.
어차피 이쪽에게는 거절이라는 선택지가 없는데 불평불만을 가진다고 일이 뭐 달라지겠나.
그냥 마음 놓고 즐기면서 킬리언의 의도가 어떻게 성취되는지 감상하는 게 차라리 정신건강에 더 좋을 거 같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저 제임스, 흑인들의 인권에 목숨을 건 한 명의 투사가 되어보이겠습니다.”
“좋아. 하지만 상대는 애덤스니 서툰 모습을 보이면 바로 거짓이라는 게 뽀록 날거야. 지금부터 내가 맨투맨으로 붙어서 너의 인권감수성을 끌어올려줄테니 새로 태어난다는 마음가짐으로 잘 배워보자고.”
“후우···알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받아 적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합중국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그런데 킬리언이 불러주는 감명깊은 구절을 적던 중 문득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는 날이 더 빠를까, 아니면 항상 언젠가는 온다면서 오지 않는 자신의 휴가일이 찾아오는 게 더 빠를까.
‘나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도련님이 나에게 1년 휴가를 실제로 주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어라. 이러니까 갑자기 뭔가 자신의 안에 숨어있는 인류애가 샘솟고 공감능력이 향상되는 기분이다.
지금은 노예로 혹사당하는 불쌍한 이들에게 진심으로 연민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게 다 도련님 덕분이다.
* * *
약 일주일간의 나의 특훈을 속성으로 소화한 제임스는 이제 완벽한 인권의 수호자로 전직을 완료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중간중간 깜짝놀랄 때도 있었다.
노예들의 가혹한 근무환경을 성토할 때는 눈물을 찔끔거릴 정도의 완벽한 감정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허참, 역시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연기도 자주 해보니까 실력이 는 건가?
이 정도 수준이면 애덤스라고 해도 제임스가 원래부터 노예제 폐지에 진심인 사람이라는 걸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처음 제임스를 소개해주었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 하던 그는 제임스가 유창하게 질문에 답할 때마다 조금씩 이쪽을 믿는 눈치가 됐다.
“허어···그러니까 지금 대영제국만이 아니라 합중국 내에서도 사업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단 말인가?”
“예. 합중국이 고작 경제 불황 따위에 꺾일리가 없다는 게 저의 판단이었고 때문에 그 당시 과감하게 석탄 채굴, 기관차 제작에 종사하는 업체를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공격적 투자를 감행했고 덕분에 이제 성과가 나오는 중이죠.”
“그렇지. 아직 대영제국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을지 몰라도 합중국 역시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나라일세. 경제불황 한번에 추락할리가 없고말고. 현명한 이가 돈을 버는 법이니 자네는 충분히 그런 부를 가져갈 자격이 있네. 그런데 그렇게나 커다란 돈을 번 사람이 왜 노예제도 폐지에 그렇게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가?”
“그것이야말로 옳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본가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돈에 영혼을 판 망자들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막대한 돈을 번 이들은 사회에 그만한 책임을 저야 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가문의 부를 물려받은 쟁쟁한 귀족들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쌓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이 사회가 과거 야만의 시대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와 능력주의라는 두 가지 꽃을 활짝 피었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진보한 덕분에 큰 부를 쌓게 되었으니 그 사회가 더욱 진보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말인가? 돈에 미친 사업가들이 두고두고 새겨들어야 할 명언이로군.”
아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이 대두되려면 150년은 더 남은 시점에서 제임스의 말은 기업가들에게는 개소리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업가들에게 후원을 받고 그들을 원하는 대로 부리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매력적으로 들리는 말이 없지 않을까.
“저는 사업차 합중국에 여러번 방문하면서 합중국의 막대한 잠재력에 항상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건 북부에 한정된 이야기일뿐, 남부로 가면 상황이 달라지더군요. 대영제국에서는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노예제도의 참혹함이 저에게는 합중국의 진보를 막는 커다란 장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건 즉, 제 사업의 성장도 정체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죠. 그때부터 저는 노예제가 정말로 옳은가, 합중국에서 노예제도는 어째서 존속되고 있는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이 구시대의 산물은 없어지는 게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동감일세. 하지만 아직 그렇게 되려면 너무나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하네. 복잡한 이해관계가 너무나도 얽히고 섥혀서 풀어내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 됐으니. 자네라면 알지도 모르겠지만 남부쪽은 절대로 노예제 폐지를 하고 싶어하지 않고 심지어 법원의 판사들마저 그쪽의 영향력이 강하다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미스타드 호 사건 같은 말도 안 되는 재판이 벌어진 거죠.”
“···자네 그 사건을 아나? 국내에서도 논란이 많이 되긴 했지만 선고가 올해 초에 나온 사건이라 대영제국 사람이라면 알기 어려웠을 수도 있는데···이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말이 역시 진심이었던 모양이로군.”
아미스타드 호 사건은 쿠바 연안을 항해하고 있던 스페인의 노예선이 미국에 나포되어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다.
당시 노예선은 끌려오던 흑인 노예들이 봉기를 일으켜 선장을 살해하고 배를 점거한 상태였기 때문에, 스페인 정부는 저 노예들은 스페인의 소유이며 즉각 노예를 반환하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저 노예들은 포르투갈 노예상들에게 불법적으로 납치되었던 이들이라 법적으로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했지만 당시 미국은 스페인과 노예제를 옹호하는 남부의 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법관들조차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출신이 많아 노예를 스페인으로 반환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올 줄 알았으나 애덤스의 적극적인 변호와 희대의 명연설로 대법원은 결국 노예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애덤스는 이 재판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했고 실제로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업적이었다.
그리고 그걸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대영제국의 사람들이 칭송하니 기분이 들뜨지 않을 수 없겠지.
나도 여기서는 한 마디 거들며 애덤스를 한껏 치켜세워주기로 했다.
“저 역시 대통령과 정면으로 척을 지면서까지 인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분투한 애덤스 의원님의 결단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허허, 존경이라니요. 장관님도 이 늙은이를 너무 띄워주십니다.”
“아닙니다. 의원님 덕분에 합중국은 의미있는 역사의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애덤스는 저때 정의의 길로 가야한다면 내전이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을 했지만 본인은 그게 정말로 일어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겠지.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반대로 저 재판이 남부와 북부의 심각한 국론 분열을 야기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당장 지금 미국의 의회는 아직까지도 저 재판의 결과를 두고 남부와 북부의 의원들이 갈라져서 설전을 벌이는 도중이었으니까.
“대서양 건너편에서 이렇게나 유익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역시 일찍이 노예제를 폐지한 국가의 장관님이라 그런지 식견이 넓으시군요. 허허허.”
“그래서 말인데, 여기 제임스가 애덤스 의원님을 꼭 도와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저도 의원님께 도움이 된다면 본국에서 노예제 폐지를 할 때 반대파들이 어떤 주장을 했고, 그게 어떻게 논파되었는지 상세한 자료를 구해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은 어차피 폭발하게 되어있으니 그게 언제가 됐든 간에 크게 상관은 없잖아?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속담이 있으니까.
물론 진짜로 먼저 맞는 게 나을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