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26)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 126화(126/537)
즐거운 결혼식 (2)
프랑수아 기조와의 만남은 잘 해결됐지만 그의 방문은 사실 시작에 불과했다.
프랑스에 이어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수많은 나라에서 연달아 장차관급 인사들이 쏟아져 들어오며 나는 그들의 의문을 해소시켜줘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래도 다행히 오스트리아까지는 괜찮았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방문객이 누구던가.
클레멘스 폰 메르니히.
나폴레옹 시대 이후 새로운 유럽 질서를 창출하는데 공헌한 오스트리아 제국 굴지의 외교 거물 중 한명이다.
사람 피곤하게 꼬치꼬치 캐물을 줄 알았지만 그와의 만남은 속전속결로 순식간에 마무리 됐다.
“대영제국이 나폴레옹처럼 전 세계에 전란의 불씨를 퍼트릴 일은 없겠죠?”
“네. 그럴 일은 당연히 없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세계 평화를 위해 열심히 해보죠.”
거의 너 이번일과 관계없지? 그래, 열심히 하자 하는 수준으로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회담이 끝난 뒤 클레멘스는 더 나를 찾지 않았다.
이럴거면 굳이 왜 직접 온 건가 싶었지만 그는 대영제국 하나 보다는 거기에 얽혀 있는 다른 수많은 나라들의 반응을 더 신경쓰는 듯 보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과거라면 몰라도 지금은 대영제국이 오스트리아 제국과 대립할만한 구도 자체가 나올 일이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오스트리아로서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프랑스나 러시아가 어떻게 움직일지 더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덕분에 가벼운 스파링 수준으로 한숨 돌린 나는 비교적 멀쩡한 정신으로 진짜로 주의해서 대해야 할 인물과 대면할 수 있었다.
상남자들의 집단인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하남자들의 집합체인 우리 마더 로씨아···아니, 러시아 제국의 외무 장관.
카를 네셀로데는 처음부터 이 결혼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분위기를 은연중에 풍기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물론 닳고 닳은 외교관이 그런 티를 대놓고 내는 멍청한 일을 저지를 일은 없으니 표면적인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축하드립니다. 이번 결혼으로 대영제국의 외교는 한층 더 날개를 달고 뻗어나가겠군요. 저로서는 그저 대영제국의 이런 수완이 부러울 뿐입니다.”
이렇게 살짝 가시가 있는 말을 하는 것조차 아마 다 계산된 행동이겠지.
사소한 반응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관찰하면서 이쪽의 의도를 파악해보겠다는 심산이리라.
“수완까지는 아닙니다. 저는 외무부 장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남성으로서 폐하의 사랑에 보답을 드리고 싶을 뿐이니까요. 다른 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장관님께서는 대영제국 역사상 최연소 외무부 장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후로도 계속 빛나는 커리어를 쌓아가고 계시고요. 그런데 그런 자리를 다 내려두고 국서가 되실만큼 폐하에 대한 사랑이 깊으시다는 말씀이로군요.”
“조금 무안하긴 하지만 정리하자면 그렇게 되겠군요.”
“그런 말씀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요. 사실 본국은 이 경사스러운 결혼을 누구보다도 더 기뻐하며 축하하는 분위기지만 그래도 우려를 표하는 자들이 없지는 않았으니까요.”
이 인간도 보아하니 프랑수아 기조와 딱 같은 입장인가 보구만.
이거 러시아와 프랑스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이쪽을 견제하려고 하면 재미 없는데.
“안 그래도 비슷한 우려를 많이 받긴 했습니다. 이거 졸지에 결혼식이 열리기 전까지 해명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게 생겼습니다. 하하하.”
“해명이라 하시면···다른 나라도 장관님께 직접적으로 우려를 전달했다는 말씀입니까?”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오해다, 우리 대영제국은 절대로 그럴 마음이 없다라고 몇 번이고 강조를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 얻은 영토를 안정화하는 것만으로도 여력이 없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까지 집어삼키려 한다? 이건 솔직히 저희 입장에서는 너무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여왕 폐하와 결혼을 하는 장관님의 신분은 그저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말씀이로군요.”
“우연이라기 보다는 제가 이 정도 배경이라도 갖췄기에 결혼이 가능했다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방금도 말했지만 대영제국이 근 수년 사이에 새로 얻은 영토는 전부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이고 우리의 제일 목표는 이곳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겁니다. 다른 곳에는 눈을 돌릴 시간적 여유가 없단 거죠.”
아시아 국가로의 진출은 너무 얼토당토 않은 일이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거야.
네셀로데는 내 말의 진위를 파악해보려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차를 홀짝였다.
대영제국이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할양받은 영토만 하더라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바다 곳곳에 펼쳐져 있다.
여기에 신대륙에서는 캐나다에서 끊임없이 인구가 늘어나며 영토도 계속 서쪽으로 확장되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런 배경을 알고 있다면 내 말에 강한 설득력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
적어도 그럴 의도가 없다는 말은 믿지 않아도, 그럴 여유가 없다는 말은 충분히 믿을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당분간은 그럴 수 있겠군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다른 지역을 통치하는 건 생각보다도 좀 더 까다롭고 힘든 작업입니다. 러시아도 엄청나게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육로로 이어져 있으니 서로간의 입장 차이로 오해가 있었던 듯 합니다.”
“허허, 그러면 우리가 바다로 좀 나가면 그런 오해가 불식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면 분란의 여지도 적어질 테고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더 큰 분쟁의 소지가 될 가능성도 충분하지요. 러시아가 흑해를 온전히 소유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의 영토를 빼앗아야 할 텐데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가 공포에 떨지 않을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은근슬쩍 밑으로 내려오려고.
어차피 대영제국이 나서지 않아도 러시아의 남하에 발작을 일으킬 유럽 국가들은 한둘이 아니다.
당장 프랑스부터가 눈이 뒤집혀서 러시아의 남하를 막자고 주변 국에 호소할 게 뻔하다.
그럼 러시아의 편을 들어줄 우방국들은 많으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러시아의 동맹은 러시아의 육군과 해군 두 개 밖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러시아의 외교 수준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되지도 않는 유럽의 헌병 행세나 하면서 주변국을 못살게 굴고 다녔으니 어느 누가 친하게 지내고 싶을까.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대영제국이 유럽 국가들에게 쉴새없이 러시아의 위험성을 가스라이팅하고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아,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희가 바다를 차지한다는 건 흑해쪽이 아닙니다. 솔직히 욕심은 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걸 저라고 모를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말하는 건 더 동쪽입니다.”
“동쪽이라면···연해주, 그러니까 프리모리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바로 거기입니다. 유럽과는 전혀 상관없는 머나먼 극동의 땅이니 긴장감을 조성할 우려도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쪽은 청나라가 점유하고 있는 땅일 텐데요.”
“홍콩이나 상하이도 원래는 청나라의 땅이 아니었습니까.”
너희도 청나라 땅 빼앗아갔으니 우리도 좀 먹어야겠다. 방해하지 마라 뭐 이런 말인가.
사실 연해주야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지역이 아니지만 러시아와 청나라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영토였다.
연해주를 잃는다면 청나라는 동해로 바로 빠져나갈 수 있는 영토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러시아는 그런 지정학적 요충지를 손에 넣음으로써 손쉽게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된다.
괜히 러시아가 원역사에서 2차 아편 전쟁이 터지자마자 허겁지겁 끼어들어서 중재해줄 테니 연해주를 넘기라고 청을 압박한 게 아니다.
만약 청이 여기에 응하지 않았다면 러시아는 군사를 동원해서라도 연해주를 쳤을 거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측이었다.
그리고 그 예측이 맞다는 사실을 지금 네셀로데가 온 몸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원래부터 이런 목적으로 이쪽과 협상하기 위해 온 것인지, 아니면 영국이 당장은 아시아에 개입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방향을 선회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목적은 확실해 보이네.
“제 귀에는 청나라와 전쟁을 하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 제대로 이해한 게 맞을까요?”
“경사스러운 장소에서 살벌한 이야기를 논하는 건 적절치 않은 거 같아 차후 다시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하지만 귀국에는 전혀 피해가 될 일이 없을 테니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장관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무작정 대립하기만 하는 건 양국 모두에 그리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자주 이야기를 나눠서 불필요한 오해는 덜어내고 양국 모두 미래의 이익을 위해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러시아가 연해주를 차지하는 건 대영제국으로서는 좋을 일이 없긴 하지만, 냉정히 보면 이쪽이 단독으로 저걸 저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막는다고 치더라도 저기에 눌러앉아 방어선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언젠가는 무조건 러시아에 도로 뺏기게 되어 있다.
그러니 원역사에서도 베이징 조약으로 러시아가 연해주를 가져가는 걸 영국이나 프랑스도 묵인한 걸 테지.
네셀로데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딱 연해주만 먹겠다, 그러니 너희는 방해하지 말라고 선을 그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저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말하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러시아도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청나라와 한판 해볼 생각인듯 한데 중요한 건 프랑스도 지금 아시아에 깔짝거리려고 발을 뻗으려는 중이라는 점이다.
러시아에 프랑스까지 나서서 설쳐대면 안 그래도 불안에 떠는 동북아 국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사뭇 기대가 되는구만.
이거 저쪽에 알려줄 정보가 하나 더 늘었네? 다 일러바쳐야지. 내가 다 이를꼬야.
친척집에 다가올 위기를 이렇게 잘 전해주다니 이제와서 보니 나는 역시 조선의 종친이자 쇼군의 친척이 맞는 모양이다.
그러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리라 기대하는 건 도둑놈 심보가 아닌 당연한 권리의 추구라고 볼 수 있겠지?
* * *
외무부 장관으로서의 모든 업무를 다 마치고 마침내 맞이하게 된 운명의 그 날.
이른 새벽에 눈을 뜬 나는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몸이 덜덜 떨린다거나 긴장으로 심장이 타들어가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커피를 10잔은 마신 사람마냥 갈수록 정신이 또렷해져만 갔다.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딱히 더 할 것도 없어서 일단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소파에 앉아 멍하니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결국 이런 날이 오기는 오는구나.
최근 장관으로서 공적인 업무에 계속 불려다니느라 잠시 잊고 있었을 뿐, 다른 이들은 이미 나를 사실상 대영제국의 국서로 대우하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이 지나면 사실상이 아닌 실제로 그렇게 불리게 되겠지.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도착한 수행원들이 내가 해군 원수의 제복을 입고, 대영제국의 최고 훈장인 가터 훈장의 별을 다는 걸 도와주었다.
함께 따라 온 웰즐리가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휘파람을 불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크으! 원래도 멋있었던 사람이 그렇게 갖춰입으니 런던 시내 모든 여인들의 눈길을 끌 정도로 멋드러지는구만. 이거 폐하께서 불안해서 자네를 어디 밖에 내보낼 수나 있겠나?”
“제복 하나 입었을 뿐인데 너무 호들갑 아닙니까?”
“자네가 뭘 모르는구만. 원래 여인들은 저런 제복에 로망을 느끼는 법이라고. 그나저나 이제 식장에 갈 텐데 기분은 어떤가?”
“좋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고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원래 다 그런 걸세. 흐흐흐, 오늘이 제일 좋을 때니 즐겨두라고. 유부남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하네.”
뭔가 여러 가지 의미가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한 마디였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농담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인생의 첫 결혼식···좋긴 좋다. 엄청나게 설레고 발이 땅바닥이 아닌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은 곧 과거와의 작별이라는 뜻과 동의어이기도 하지 않는가.
이제부터의 삶은 지금까지 이어진 킬리언 고어의 인생과는 180도 틀어진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잘할 수 있겠지? 그럼, 잘할 수 있고말고.
애초에 잘할 자신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으려니 이쪽을 데리러 온 마차가 도착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나보구만. 그럼 가볼끼?”
“네. 그렇게 하죠. 오늘이 외무부 장관 킬리언 고어의 장례식입니다.”
“대영제국 국서의 탄신일이기도 하고.”
오늘부로 이 나라 권력의 핵심으로서 전면에서 활동하는 일은 당분간 끝이다.
이제부터는 이 나라의 숨은 실세로서.
대영제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서서히 스며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