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59)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 159화(159/537)
갈라치기 (2)
“어째서 일본이 대영제국과 수교를 해야 하는지 알려면 먼저 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는 청나라와 전쟁 중에 있고 아마 십중팔구 청나라는 러시아에게 연해주를 빼앗길 겁니다.”
“거기까지는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대영제국을 통해 러시아와 불가침 조약을 맺으려 한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일본측은 우리도 조선과 똑같은 방식으로 하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게 무슨···혹시 러시아가 우리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겁니까?”
“물론이죠. 게다가 러시아 혼자만이 아닙니다. 프랑스 역시 베트남의 응우옌 왕조를 집어삼키고 그 다음에는 이 일본을 노리고 있을 겁니다. 아시아에서 태평양으로 나가는 교두보나 다름없는 이 땅은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동북아 우물안 개구리로 살아왔을 모리는 당연히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되는대로 하는 말이니 당연히 이해를 못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워낙 진지한 말로 뭔가 엄청 전문적인 걸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되면 지식이 부족한 사람으로서는 자연스레 압도당할 수밖에.
“하지만 그렇게 치면 조선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요.”
“다르죠. 사실 조선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육지로 이어져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내려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불가침 조약? 말이야 번지르르하지만 그것만 믿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국가의 사례는 널리고 널렸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든 관계를 트고 싶어할 겁니다. 게다가 프랑스는 물론 본국의 입장에서도 러시아가 일본까지 영향력을 넓히면 아시아의 식민지들이 전부 위험해지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이를 막으려 할 겁니다.”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처럼 공포분위기를 잔뜩 조성하자 모리의 두 눈이 점점 심각함으로 물들었다.
“혹시 지금 다이묘들 가운데서는 막부와 대영제국과 수교하는 걸 반대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반대까지는 아닙니다. 다만 아무리 전하께서 계시다고 하더라도 이기리스는 결국 서양 국가가 아닙니까. 그래서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 마음은 당연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미 폭풍이 눈앞까지 와있는데 집을 보강할 생각은 하지 않고 폭풍이 피해가기만을 기도하고 있다면 결국 집과 함께 휩쓸릴 뿐입니다. 지금이라도 대비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 대비가 대영제국과의 수교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그를 향해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록위마의 궤변을 펼쳐나갔다.
“이미 쇼군께서도 확실히 천명을 했지만 저는 도쿠가와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즉, 대영제국과 일본을 잇는 가교가 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없다는 거죠.”
“이번에 전하께서 보여주시는 모습과 해주시는 말씀을 듣고 저 역시 많이 놀라긴 했습니다. 아마 저처럼 느낀 사람들이 많긴 할 겁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제 출신에 관해서는 대영제국의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아마 유럽 국가들 중 일본이나 조선에 가장 호의적인 나라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대영제국일 겁니다.”
“하긴···국서의 나라이기도 하니까요.”
“예. 그리고 저는 이번 통상조약은 일본이 서양의 국가와 수교를 하는 게 아니라 형제의 나라인 대영제국과 수교를 하는 거라고 강조할 생각입니다. 그러면 프랑스나 러시아가 대영제국과 수교를 했는데 어째서 우리와는 하지 않는 거냐는 주장을 내세우진 못할 테니까요. 그리고 러시아의 침략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러시아가 아무리 이 땅이 탐이 나더라도 대영제국이 형제의 나라라고 천명한 일본을 건드릴 생각은 하지 못할 테니까요.”
이거라면 존왕양이를 외치는 그쪽의 사상과도 배치될 게 없다.
일본은 이인과 친하게 지내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형제의 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니까.
“하지만 개항을 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많은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혹시 전하께서는 이에 대한 해결책도 있으신지···아, 그렇다고 제가 대영제국과 관계를 맺는 걸 반대한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개항을 하고 대영제국과 밀접하게 얽히면 여러가지 사고가 끊이지 않겠지요. 저희도 인도나 청나라 같은 아시아 국가들과 무역을 하고 있으니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는지 다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도 세심하게 고려해 협정문을 만들 생각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전하께서 이토록 저희 일본을 신경써주고 계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제 주제 넘는 소리가 불쾌하셨을 수도 있을텐데 이렇게까지 잘 들어주시니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본디 주군이 잘못된 길로 가면 목숨을 걸고라도 충언을 하는 게 참된 사무라이 정신이라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이묘께서도 참된 무사도를 지닌 사무라이라 할 수 있겠죠. 저는 그런 걸 좋게 보고 있으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일뽕에 이어서 사무라이 뽕까지 한가득 채워주자 모리의 입가가 씰룩거리며 연신 위로 올라가려다가 도로 내려왔다.
닳고 닳은 외교관도 아니고 가문을 물려받은 지 얼마 안 된 젊은이이니 얼마나 인정욕구에 굶주려 있겠는가.
“전하께서 이토록 저희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은 줄 몰랐습니다. 덕분에 제 기우가 깨끗하게 씻겨 내려간 느낌입니다.”
진정한 사무라이라고 추켜세워준 효과가 생각보다 더 컸던지 모리 다카치카는 더는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넙죽 인사를 올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팔이가 제대로 먹혔는지 그 이후 나를 떠보기 위해 사츠마나 도사에서 찾아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걸로 당분간 길거리에서 웬 미친놈이 칼들고 달려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이네.
* * *
막부와 대립할 잠재력이 농후한 이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는데 성공했으니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역시 쇼군과의 회담이었다.
애초에 이게 내가 일본에 온 표면적인 목적이었으니까.
쇼군은 매일 같이 나를 위해 정성스러운 연회를 열었고 게이샤들의 축하 공연은 물론 온갖 산해진미가 식탁 위로 올라왔다.
심지어 나를 제외한 다른 군인들은 날생선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걸 알자마자 이들을 위한 특식까지 따로 마련할 정도로 성의가 넘쳤다.
저번 면담 이후 사츠마나 조슈 등 다른 웅번들의 다이묘도 아무런 불편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사실 냉정하게 말해서 정성이 제법 들어가긴 했지만 꼴랑 이렇게 몇 번 연회를 열어줫다고 진짜로 친해질리가 있겠나.
이건 결국 우리 사이 좋아요 하고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의식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의식 자체는 제법 그럴싸하게 흘러갔고, 쇼군도 거기에 만족했는지 예정대로 단둘이 독대하는 자리가 어렵지 않게 만들어졌다.
“에도에서 지낸 지도 이제 며칠 되셨을 텐데 어떠십니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이라고나 할까요. 쇼군께서 환대해주신 덕분에 매일 같이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하하···고향이라. 역시 고향이 좋지요.”
“그럼요. 오늘 처음 왔지만 마치 원래부터 알던 곳에 발을 디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약 2세기 뒤의 일본 땅에는 여행 겸 사기를 위해 몇 번 와봤으니 나에게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지만 쇼군은 그걸 다르게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가 고향이라는 단어를 몇 번 중얼거리더니 나를 향해 잔을 들어올렸다.
“그게 다 전하의 몸에 흐르는 도쿠가와의 피가 반응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전하와 저는 머나먼 친척이니 앞으로 외교적인 사안을 논할 때도 너무 딱딱한 분위기 보다는 조금 더 느긋하게 토론에 임하면 좋을 듯 합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그 리플리 효과인가 뭔가 하는 건가?
족보를 조작해서 나를 도쿠가와로 만들더니 단 둘이 있는 장소에서도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게 이제는 이걸 기정사실로 그냥 믿어버리려는 모양새다.
어차피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식적으로 나를 도쿠가와의 핏줄이라 소개한 이상 이제 쇼군에게는 퇴로가 없다.
아, 사실 그거 조작이었어요라고 하면 그날로 막부의 권위는 저기 시장바닥 깔개만도 못한 수준으로 떨어질 테니.
“하하하, 그러면 저야 더 바랄 게 없지요. 안 그래도 저도 점점 더 이 나라에 애착이 생기는 느낌이라 앞으로도 쇼군과 더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었습니다.”
“오오, 그렇습니까? 어떤 점에서 그런 느낌이 드시던가요?”
“평화로우면서도 단아한 분위기가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청나라처럼 너무 요란한 건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요. 단순히 크고 화려하게만 짓는 게 아니라 이렇게 절제된 미학이 돋보이는 게 진정한 품격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전하께서는 보시는 안목이 남다르십니다. 하하하!”
이후로도 내가 박물관 같은 곳에서 봤던 일본 문화의 특성을 교과서처럼 그냥 줄줄 읊어주자 쇼군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아마 쇼군의 눈에는 내가 도쿠가와의 핏줄로 인정받더니 이렇게나 필사적으로 자국의 문화를 익혀온 걸로 보였겠지.
그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나누는 동안 쇼군은 은근슬쩍 내가 다른 아시아 국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떠보려 호들갑을 떨었다.
“사실 저는 전하께서 일본이 아니라 조선을 먼저 방문하실 거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전하의 몸에 도쿠가와의 피가 흐르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전하께서 결국 태어나신 곳은 조선이니까요. 원래 사람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절대 잊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하지만 쇼군께서는 만약 그 고향에서 어린 시절 내내 핍박 받고 결국 쫓겨나다시피 떠나셨어도 그 땅에 애착을 가지실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혹시 조선에서 전하를 그렇게 대했다는 말씀입니까?”
처음에 경악해하던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는 내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아마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올 뻔했기에 표정을 숨긴 거겠지.
내가 조선에 애착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와 가장 먼저 접촉한 일본이 외교적으로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두말하면 입만 아프죠. 이건 저희끼리 있으니 하는 말인데 조선에 가면 제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쌓인 게 많아서요. 그래서 아마 의식적으로 가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런···전하 같은 위인을 그렇게 대했다니 조선의 안목이 참으로 형편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우리 쇼군께서는 저를 직접 보지도 않고도 절 제대로 알아보셨는데 말이죠.”
“하하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제 얼굴이 다 화끈거리는 느낌입니다. 원래 다른 무엇보다도 인재를 중시하는 게 저희의 방침입니다. 전 오히려 대체 어떻게 하면 전하 같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품에서 놓아버릴 수 있는지 조선의 상황이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주 좋구먼. 딱 내가 원하던 그대로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네.
“그래도 조선도 반성을 하고 있는 듯하니 최소한의 이야기는 들어보고 있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역시 제 마음이 이쪽으로 더 기우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저도 사람인지라.”
“저희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혹시 저번에 듣기로는 조슈의 모리가 전하를 찾아갔었다고 하던데 혹시 실례되는 말이 나오지는 않았습니까?”
“실례되는 말이라니요?”
“아무 말도 없었다면 다행입니다. 요새 조슈나 사츠마에서 서양과의 수교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해서 혹시나하는 기우가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딱히 직접적으로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아아, 그래서 그랬던 거군요.”
내가 슬쩍 여지를 흘리자 헤실헤실 풀어져 있던 쇼군의 얼굴이 일순간 긴장으로 굳어졌다.
“혹시 다른 말씀이라도···?”
“흠. 이건 그쪽에서 저를 믿어서 한 말일텐데 이걸 쇼군의 앞에서 그대로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 저는 혈육의 정을 우선시해야 하는 거겠지요?”
“···무슨 비밀 논의를······.”
“존왕양이라는 말에 대해서 들어보았냐고 하더군요.”
이제 막 태동해 아직 일본 전역에 채퍼지지도 않은 뜨끈뜨끈한 최신 사상.
저들에게 직접 듣지 않았다면 지구 반대편에서 온 대영제국의 국서가 절대로 알 수가 없는 단어에 쇼군의 표정이 그대로 일그러졌다.
“그런 무례한 발언을 저들이 전하의 앞에서 했다는 말씀입니까?”
“아아, 아닙니다. 저기서 말하는 양이는 저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까요. 다만 존왕이라는 사상이 서양을 배척하는 사상과 결부되면 어떤 영향이 있을까 자연스레 걱정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이 나라와 앞으로 수교를 이어나갈 우리 입장에서도 일본의 정부가 든든하게 버텨주는 게 좋으니까요.”
자,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대로 두면 훗날 천황을 옹립하고 막부를 토벌하자는 움직으로 번질 게 뻔한 저들의 움직임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잖아?
하지만 지금의 막부는 지방의 다이묘들을 죄다 토벌할 수 있을만큼 강하지 않다.
지방의 웅번들 역시 아직은 막부를 토벌할 수 있을만큼의 힘과 결속력이 부족하고.
그렇다면 나오는 답은 자연스레 하나.
과연 누가 먼저 이쪽에 팔을 벌리러 오는지 스시나 먹으면서 느긋하게 기다려 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