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60)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 160화(160/537)
우리는 왜?
의심의 불을 지펴놓긴 했어도 도쿠가와 이에요시는 그래도 한 나라의 쇼군이다.
그렇게까지 빼어난 지도자는 아니더라도 위에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의 눈치라는 게 있는 법이다.
바로 덮어두고 내 말을 믿는 대신 나름대로 진의를 파악해보고자 하는 티가 펄펄 풍겼다.
“조슈의 다이묘는 영민하고 지혜로운 자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나 부주의하게 입을 놀렸다니······.”
“그렇게 불순한 발언 같은 건 아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지방의 다이묘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걱정을 말한 거였고 저는 그런 우려를 달래준 것이었으니까요. 다만 거기서 나온 대화를 곱씹어보니 자칫 잘못하면 이게 좋지 않은 흐름으로 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조슈의 다이묘는 제가 이 나라의 사정을 전혀 모른다고 생각했으니 그런 우려를 솔직히 털어놓은 것일 테고요.”
“좋지 않은 흐름이라면······.”
“존왕양이란 과거 대륙의 방백들이 오랑캐를 토벌하고 왕을 섬긴다는 명분으로 세력을 확장할 때 쓰였던 말이죠. 이 나라에서는 존황이라고도 한다지만 뭐 나라의 근본인 황제를 섬긴다는데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다만 최근에는 여기에 양이까지 결합되어 존황양이른 외치는 자들이 늘어났다는데 이건 당연히 쇼군께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든 겁니다.”
본래 일본에서 존황양이 사상이 본격적으로 태동하는 건 일본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 개항하는 쿠로후네 사건이 터진 뒤였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태평양으로 나오지 못한 반면 도쿠가와 쇼군이 나를 이용해 본인의 권위를 높이려고 하니 반대급부로 지방의 웅번에서 서양을 배척하자는 말이 나와버린 것이다.
물론 내가 일뽕을 거하게 채워주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겠지만 원래 이 시대에는 정보의 전파 속도가 늦다.
막말로 쇼군에 반감이 있는 다이묘가 작정하고 정보를 통제하기만 해도 그 지역의 사람들이 제대로 된 진실을 아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전하의 말대로 그런 말을 외치는 불순분자들이 최근에 몇몇 생겨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니 전하께서 직접 신경쓰실 일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역사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역사는 항상 반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존황양이는 결국 명분과 주장에 불과할 뿐 그들이 원하는 건 결국 따로 있지 않습니까. 항상 저런 말을 내세우는 자들치고 진정으로 왕으로 옹립하려는 이들은 별로 없던데 말이죠. 실제로 조슈 역시 대영제국의 무기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 걸 보니 진심으로 양이를 내세우는 건지 의심이 들고요.”
“조슈가 이기리스의 무기를 탐낸다는 말씀입니까?”
“대영제국의 군사교범과 군제에 대해서 굉장한 관심을 보이더군요. 최근 조슈 번은 내정 개혁에 크나큰 성과를 보이고 있고 뛰어난 무관들도 많이 배출했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했습니다.”
내부 사정을 듣지 않았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계속 늘어놓으니 쇼군도 결국 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됐다.
“전하께서도 저들의 사상이 막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당연하죠. 말씀드렸다시피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 아닙니까. 저들에게 있어서 쇼군이 천황 폐하를 겁박하고, 대영제국에게 붙어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하는 매국노가 되는 건 그야말로 순간일 겁니다.”
“···역시 그렇겠죠? 제 생각에도 저건 그럴싸한 말만 지껄이면서 본인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다이묘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쇼군이 간단히 찍어누를 수 있다면 사실 이런 걱정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 이에요시도 설마 자신이 밀리겠냐 싶지만 계속 성장하는 지방 웅번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는 중일 터.
내가 계속 쇼군의 불안감을 부채질하자 이미 약간의 술기운까지 돌고 있던 그는 도저히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커다란 실수는 커다란 밧줄처럼 수십 겹의 가느다란 섬유로 만들어집니다. 다시 말해 저런 전조 증상들이 하나하나 모이다 보면 곧 커다란 사고로 격화될 수 있다는 뜻이죠. 쇼군께서도 미리 대비를 해두셔서 나쁠 건 없을 겁니다.”
“귀중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전하의 호의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런 걸 쇼군께 말씀드렸다는 걸 저쪽에서 알면 더욱 더 반 서양 감정이 거세질뿐이니 제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철저하게 비밀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불씨는 지펴뒀으니 이제 가만히만 있어도 쇼군이 알아서 지방의 다이묘들을 견제하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내가 없던 말을 한 건 아니라 지방의 웅번들 역시 쇼군이 자신들을 견제한다는 걸 알면 더욱 더 빠르게 들고 일어나 대립이 가속화되겠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쇼군이 슬쩍 내 잔에 술을 따라주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에 양국간의 통상조약을 맺을 때 상호방위 의무도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그래야 프랑스나 러시아가 힘으로 이 땅을 어떻게 하지 못할테니까요.”
“그 상호방위라는 건 국가간의 다툼에만 적용되는 겁니까?”
쇼군의 말이 내포하고 있는 진짜 의도.
타국과의 전쟁이 아닌 반란세력과의 전투가 일어나면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나는 그가 가장 듣고 싶은 답을 해주었다.
“우리 대영제국은 조약의 주체를 일본의 정부라고 해석할 겁니다. 즉, 누군가가 일본 정부를 공격한다면 상호방위 의무가 발동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뜻이죠.”
“그럼 저는 만에 하나라도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군요.”
“그래도 외세가 개입하는 건 그다지 모양새가 좋지 않죠. 최대한 그런 일이 없도록 하셔야 할 겁니다.”
“하하하, 그야 물론이죠. 그냥 만약을 위해 여쭤본 겁니다.”
지금이야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겠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한 웅번 연합과 실제로 싸워보고도 그런 웃음이 나올까?
사실 나로서는 쇼군쪽이 처절하게 밀려주는 게 개입하기 딱 좋은 그림이 나온다.
그러려면 쇼군만이 아니라 사츠마나 조슈에게도 눈에 띄지 않게 은근슬쩍 지원을 해줘야 할 텐데 뭐가 좋으려나.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쇼군이 술잔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제 천황 폐하께서 계시는 곳에 가셔야 할 텐데···괜찮으십니까? 폐하께서 아무래도 전하를 직접 뵙고 싶어 하셔서···무엇보다 외국과의 조약은 형식적으로나마 폐하께서 승인을 하셔야 하니 허가를 구해야 합니다만.”
“안 될 거야 없지요. 오히려 여기까지 왔는데 폐하를 뵙지 않으면 그도 모양새가 우습지 않습니까.”
“그래도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폐하를 알현하는데 절차와 예절이 필요하긴 하지만 관대하신 폐하께서도 양국이 우애를 맺는 자리에서 너무 과한 예의를 따지는 건 오히려 결례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게다가 전하께서는 여왕 폐하의 부군이시니 절을 하는 절차는 서양에서 왕에게 예의를 표하는 형식으로 대체하자고 다 이야기가 됐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하하!”
이건 좀 의외네.
역시 네덜란드와 교역을 해온 짬밥이 어디 가진 않는 건가.
천황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하라고 강요했으면 갑분싸를 만들 수 있었는데 아깝게 됐구만.
“폐하께서는 참으로 어질고 관대하시군요. 얼마나 양국의 우애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계신지 말씀만 들어도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쇼군께서 폐하께 충심으로 고하셨으니 폐하께서도 저런 결정을 내리셨겠지만요.”
“전하께서도 저에게 귀중한 정보를 주셨으니 저도 이 정도는 해드려야지요. 그러면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만면에 미소를 띠운 채 굳게 손을 맞잡고 회담을 끝냈다.
역시 회담에서는 정보력의 유무가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만약 내가 19세기 일본의 상황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쇼군이 이렇게나 쉽게 내 말에 속았겠는가.
이건 그 누구를 쇼군의 자리에 가져다 두더라도 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무 상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
어차피 이대로 갔어도 쇼군은 역사속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였는데 나를 만난 덕분에 명맥은 유지할 수 있게 됐잖아?
도쿠가와의 일원으로서 도쿠가와 가문의 명맥 자체는 확실하게 유지해줄 테니 마음 푹 놓고 나에게만 의지하고 있으라고.
* * *
조선, 한성.
얼마 전 수렴청정을 끝내고 친정을 시작한 국왕 이환은 아직까지는 대신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며 국정 전반에 관한 능력을 키워나가는 중이었다.
국왕의 권위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아직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젊은 왕이 너무 대놓고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면 반감을 사기 쉽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이환은 아직까지는 대신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척 하며 자신의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특히 최근의 국제 정세는 너무나 복잡하고 많은 사건이 빠르게 일어나 아직 일의 전말을 다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니 일단 신하들의 의겸을 수렴해 최대한 정확한 판단력을 갖추는 게 급선무다.
“···그러니까 병판의 말은 청은 절대 아라사를 이기지 못하다는 겁니까?”
“예, 주상전하. 신은 전에 북경까지 가서 청의 현실을 낱낱이 전부 보았습니다. 과거 전 세계를 호령한 대청은 이제 없습니다.”
“그러면 중화의 질서는 이미 깨졌으니 소중화인 우리가 그 정기를 이어받았다고 봐도 되는 것인가.”
“···전하. 중화의 질서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일단 청나라처럼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흔들리는 사태가 있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그거야 백번 옳은 말이지만 양이들은 기질이 사납고 피를 탐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번에 영길리의 중재로 아라사와 협약을 맺을 거라고 들었는데 그 정도면 마음을 놓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세계의 중심이라 듣고 자랐던 청나라가 저렇게 무기력하게 동네북이 됐다는 현실이 지금도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영길리에 이어서 아라사한테도 얻어 터지고 있는 걸 보면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듯 하다.
국왕은 김좌근이 능히 왕권을 견제할 권신의 싹이라고 생각해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나 그가 영민하고 머리 회전이 빠른 건 익히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영길리의 힘을 빌려 아라사와 불가침 협정을 맺나는 것도 군말하지 않고 승낙했던 것이다.
“전하. 협정을 맺으면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볼 수 있겠으나 그건 엄밀히 말하면 시간벌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선이 능히 외적의 침입을 격퇴할만큼의 힘을 갖추지 못한다면 아라사든 영길리든 결국 우리 국토를 넘볼 게 분명합니다.”
“병판의 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이 나라에서 군비를 늘리고 병력을 보강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냉정하게 말하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하여 시도해보지도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우선 이번에 아라사와 협정을 맺을 때 영길리를 최대한 이용해볼 수 없을지 생각해 봅시다. 그나저나 그 불가침 협정이란 건 대체 언제 맺을 예정인 겁니까?”
“아라사가 현재 청과 전쟁 중에 있으니 결과가 나오는 대로 영길리에 중재를 요청할 생각입니다. 상해에서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기리안 과이가 현재 막부의 초대를 받아 왜국에 방문했다고 하니 그가 상해로 돌아오는 대로 다시 사절을 보내보심이 어떠할까 합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은 국왕의 눈가가 꿈틀 움직였다.
“기리안 과이가 왜인들과 접촉하고 있다? 어째서?”
“이무래도 이쪽이 아라사와 협정을 맺으려고 하니 저쪽도 불안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직접 기리안 과이를 초대해 무언가를 꾸미는 중이 아닐지······.”
“허어. 기리안 과이는 양이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하나 조선에서 태어난 조선인이 아닙니까. 그런데 조선 땅에 먼저 오지는 못할망정 왜인들의 땅에 먼저 방문하다니.”
“전하. 왜인들의 경우는 그들이 섬기는 일왕이 정중하게 기리안을 초대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건 신의 예상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직접 방문한 이상 일본은 막대한 이권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쭉 들어보자면 김좌근은 유독 기리안 과이에 대한 평가가 후한 느낌이었다.
다른 비변사의 대신들은 그렇게까지 주의를 하지 않았지만 김좌근만큼은 달랐다.
대신들은 김좌근이 너무 엄살을 떠는 거라고 했으나, 상식적으로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를 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욱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조선 팔도에서 기리안 과이를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를 한 사람은 김좌근뿐이라는 걸 고려하면 그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를 조선 땅으로 초대하는 건 득보다는 실이 많겠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왜인들이 우리 조선 사람을 저렇게 극진히 대우하는데 조선이 외면해서는 체면이 살지 않습니다. 그러니 기리안이 왜국에서 상해로 돌아가는 시점에 병판께서 상해를 한번 방문해 주시지요. 가서 협정에 관해 이야기도 나누어 보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격동하는 시대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을지 방도를 찾아보도록 하세요.”
“전하의 명에 따르겠사옵니다. 그런데 상해로 갈 때 혹시 다른 한명을 더 대동하고 가도 되겠습니까?”
“정식으로 사절단을 보내는 거니 당연히 규모에도 신경을 써야겠죠. 대동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병판께서 좋을 대로 꾸리셔도 됩니다. 그런데 굳이 콕 집어서 한명이라면 생각해둔 사람이 있다는 건데 누굽니까?”
“어쩌면 저 외에도 기리안 과이를 직접 봤을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조사를 해본 결과 아니라고는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해도 의구심을 떨칠 수 없어서······.”
“기리안 과이를 만난 사람? 듣기로 그가 조선에 있을 때 행적은 아무리 조사를 해도 나온 바가 없다고 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비변사에서 거짓보고를 올렸을리는 없는데 이 정보의 괴리는 무엇인가.
“확실한 건 아니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검증을 해볼 참입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참으로 궁금합니다. 누구입니까? 기리안과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그 사람이.”
“전하께서도 잘 아시는 이 나라의 종친, 흥선군이십니다.”
“···흥선군?”
왜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오는 거지?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에 순간 멍했지만, 연유가 어떻든 확인해 본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 않을까.
국왕은 당분간은 김좌근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행동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었다.
잘되면 좋고, 안되면 이걸 핑계로 안동 김씨를 쳐내고 왕권을 강화하면 되지 않겠는가.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국왕으로서는 손해볼 게 없다.
젊은 왕은 조급해하지 않고 김좌근과 흥선군이 상해에서 어떤 답을 가지고 올지 기다려보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