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63)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 163화(163/537)
너만 모르는 이야기
세상은 참으로 오묘하다.
조선의 종친인 흥선군은 자신이 이런 식으로 배를 타고 해외로 나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명, 청 시기에 걸쳐 강제되던 해금령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배를 타고 서해를 거쳐 상해로 오는 건 이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기묘한 경험이었다.
“병판께서는 국외로 나가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시니 익숙하시겠군요.”
“저번에는 육로로 갔었는데 이번에는 해로로 가니 저도 기분이 남다릅니다.”
“아, 그러셨지요. 그나저나 병판께서는 이전에도 기리안 과이와 직접 만나보셨다고 하니 이번 사절단의 책임자로 가는 게 이해가 가긴 하는데···어째서 저도 여기에 포함된 겁니까? 아무도 자세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아서요.”
지금까지 물어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김좌근이 입을 연 건 사절단 일행이 상해에 상륙한 뒤였다.
그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로 흥선군을 여기에 포함시킨 진짜 이유를 들려주었다.
“이전에 대감께서 하셨던 이야기 있지 않습니까. 어린 시절 양이의 피가 섞인 노비를 봤었다는 말씀.”
“아, 그렇긴 했었죠. 하지만 그 유석이라는 아이는 조사해본 바로는 괴질에 걸려 죽었다고······.”
“물론 그랬죠. 같이 살았던 노비들도 다 그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유석은 기리안 과이가 아니라고 결론을 낸 상태였는데 아무리 더 조사를 해봐도 기리안 과이로 추정할 수 있는 인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실제로는 그 자가 조선에 살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양이들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하는데 이쪽을 혼란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가짜 정보를 흘렸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하지만 김좌근은 눈쌀을 찌푸리며 즉각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 자를 실제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감께서도 한번 만나보시면 제 말을 바로 이해하실 겁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조사를 한 이상 누군가로 특정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누군가가 기록에 손을 댔다는 겁니다.”
“기록에 손을 대? 어째서요?”
“그거야 이 일이 알려지면 곤란한 사람이 했겠지요. 거기서 역으로 생각해 보면 가장 의심스러운 이는 역시 괴질에 걸려 죽었다는 유석이라는 아이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전에 만났던 그 노비 가 기리안 과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이제는 떠올리기도 힘든 옛날 기억이지만 어렴풋하게 생각은 난다.
노비임에도 이상할 정도로 당돌하고 수상쩍게 많은 걸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었지.
만약 몇 번 더 만나봤다면 확실하게 기억을 할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게도 상세한 건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마냥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그의 탓이 아니었다.
아무리 인상 깊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열 살 무렵에 딱 한번 만나본 사람을 어떻게 세세하게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고 하더라도 그 노비가 현재 청나라를 무릎꿇린 최강대국의 요직에 앉아 있는 게 말이 되는가.
뭐라고 정확히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가슴으로 와닿지가 않는다.
물론 이건 흥선군 개인의 생각일 뿐이고 김좌근은 전혀 다르게 보고 있는 듯 했지만.
“일단 나이대만 보더라도 둘은 비슷합니다. 그리고 조선 팔도에 양이의 피를 받은 혼혈이 어디 흔하겠습니까. 한두명 있을까 말까할 텐데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 둘이나 나올리가 없어요. 유석이 기리안 과이고, 그 집안 사람들이 입을 모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하면 조각이 전부 깔끔하게 들어맞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쪽에서 거짓말을 할 이유가?”
“기리안은 조선에서 그다지 좋은 기억이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집안 사람들에게 양이 혼혈이라고 핍박을 받았던 거겠죠. 그랬다면 이 사실이 밝혀졌을 때 과연 그 집안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건 그럴듯 하네요.”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긴 하지만 유석이 정말로 기리안 과이가 맞다면 그 집안 주인이 사실을 숨긴 것도 이해는 간다.
이게 국제적인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는 일이고, 기리안 과이의 핏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나라의 종친과 닿아 있다는 웃기지도 않는 사실까지 더해지지 않았는가.
그런데 저런 인물을 학대하고 괴롭혔다면 대체 어떤 지탄을 듣겠는가.
이 정도면 이건 안동 김씨나 풍양 조씨라고 해도 감당하기 힘든 대참사였다.
“저를 데려온 이유도 짐작이 가는군요. 저보고 기리안 과이가 유석이 맞는지 확인해 보라는 말씀이겠지요?”
“예. 바로 그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제가 대놓고 물어볼 수가 없어서요.”
“하긴 이해는 갑니다. 영길리의 국서에게 너 조선에 있었을 때 노비였냐? 라고 물어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죠.”
만약 완전 헛다리를 짚은 거라면 저런 질문은 무례라는 단어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역대급 외교 참사가 되어버린다.
아니, 제대로 이해한 거라고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불쾌하기 이를데 없는 질문이 될 수 있다.
김좌근의 의도는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걸 허가해준 주상의 뜻도 충분히 동감할 수 있다.
문제는···자신이 기리안 과이의 얼굴을 본다고 하더라도 그가 유석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는 자신이 없다는 거다.
아니, 성장기가 다 끝난 뒤에 봤다면 모를까 10년도 훌쩍 더 지난 과거에 본 10살짜리 아이의 성장한 모습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못하겠다고 발을 뺄 수는 없으니 눈을 부릅뜨고 최대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볼 수밖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해에 도착한 뒤에도 기리안 과이는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 동안 흥선군 이하응은 김좌근과 함께 상해 총독부와 대영제국의 해군 기지를 구경하며 시간을 떼웠다.
“영길리 이 놈들···다른 건 몰라도 배 하나는 어마어마하군요.”
“직접 보니 느껴지시지요? 이런 배를 우르르 끌고 다니는 자들과 적대한다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청나라가 쪽도 못 쓰고 박살 난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허어···그런데 이렇게 배가 크면 무겁고 느리지 않겠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우리가 쓰는 배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고, 심지어 바람의 흐름조차 거의 무시할 수 있어서 기동력조차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대포의 사거리는 거의 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하니 이 정도면 이순신 장군께서 살아 돌아오신다고 하더라도 당해낼 도리가 없죠.”
아무리 그래도 이순신 장군이라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눈앞에서 자신들이 타고 온 배와 비교도 되지 않는 군함의 위용을 보니 김좌근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저런 군함을 끌고 다니는 오랑캐들과 싸워서는 안 된다는 건 이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도 공감이 된다.
괜히 청나라가 박살난 게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실제로 받으니 이게 단순히 국내에서 글로만 써진 결과를 봤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현실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낀 흥선군은 긴장되는 마음을 억누르며 기리안 과이가 상해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전에 뵀을 때보다 훨씬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전하께서 이리 성공하시니 저도 마치 제가 성공한 것만큼이나 가슴이 뜨거워지고 벅찬 느낌입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대감께서도 이번에 병조판서로 임명되셨다지요? 그 정도면 현 조선 내에서도 비할 사람이 없는 빠른 출세가도를 밟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렇게 말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 여기는 이번에 저와 함께 온 조선의 종친 흥선군 이하응 대감이십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하!”
조선 팔도 전체를 들썩이고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세도가의 대신들마저 긴장하게 만든 영길리의 국서.
기리안을 처음으로 마주한 흥선군은 슬쩍 눈을 내리까는 척 하면서 필사적으로 그의 얼굴을 살폈다.
아, 이렇게 보니까 뭔가 어렸을 때 본 그 얼굴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아닌가?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봐서 비슷하게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타들어가는 이쪽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눈길을 돌린 기리안이 사람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조선의 종친이라고 하면 호적상으로는 제 머나먼 친척이 되는 셈인가요? 하하하.”
“그렇게 볼 수 있겠죠. 흥선군 대감도 조선 팔도를 넘어 온 세계를 전율케 하는 전하의 명성을 흠모해 이 자리까지 부득불 따라오신 겁니다. 어찌나 한번 뵙고 싶다고 하셨는지 제가 그 정성에 다 감동할 지경이었습니다.”
“오, 그래요?”
흥미롭다는 듯 이쪽을 보는 그의 시선에서 감정을 읽어내보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어떤 속내도 읽을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처세술과 분위기를 읽는 능력 하나만큼은 조선에서 따를 자가 없다고 자부해온 흥선군으로서는 나름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이쪽이 가타부타 별 말이 없자 약간 초조해진 김좌근이 슬쩍 고개를 돌려 시선을 보내왔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래서 맞는 거야 아니야!’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은 간다.
하지만 대체 어쩌란 말인가.
흥선군 역시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김좌근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서양 놈들은 그놈이 그놈, 그년이 그년처럼 생겼는데 대체 어떻게 나보고 저 사람을 구분하라고!’
결국 얼굴만 봐서는 알 수 없다. 어떻게든 대화를 통해 정보를 캐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지 잠시 뜸을 들이던 김좌근이 이내 숨을 크게 들이키고 입을 열었다.
* * *
안동 김씨의 실세와 장차 조선의 대원군이 되어 세도가를 쳐내고 권력을 휘두를지도 모르는 사람.
거기에 양쪽 모두 필사적으로 내 눈치를 보면서 무얼 캐내려는지 뻔히 보였기에 더욱 웃음이 나온다.
나는 언뜻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저 두 사람의 조합이 어떤 말을 쏟아내는지 구경하며 일부러 계속 말을 빙빙 돌렸다.
“전하와 흥선군 대감은 먼 친척이라서 그런지 자세히 보면 살짝 닮은 부분도 있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예전에 어디서 만난 거 같다는 느낌도 들지 않을까 하는데······.”
“그렇습니까? 닮았나요? 저는 전혀 모르겠는데.”
“아···하하하, 그, 그렇죠. 자세히 보니 저도 닮은 거 같지는 않네요. 크흠.”
“흥선군 대감이라고 하셨나요? 저를 어디서 본 거 같은 느낌이라도 드십니까?”
내가 돌직구를 던지자 이하응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어···그러니까 그게······.”
“친.척.이라고 하니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역시 핏줄이란 신기하다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그렇지요.”
사실 피 한방울도 안섞인 거 다 알거든?
물론 그런 말은 입도 뻥긋 할 수 없을 테니 김좌근과 이하응은 석고상처럼 굳어서 연신 어색한 웃음만 흘려댔다.
그래도 나는 척 보자마자 알아봤는데 이하응 이 인간은 나를 못 알아본 건가.
이건 조금 실망인데. 어디 가서 쉽게 잊지 못할 인상적인 외모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전하, 그···왜국의 수도에 다녀오셨다고 하는데 직접 가신 성과가 있으셨습니까?”
“예. 꽤나 만족스러운 성과가 있었습니다. 사실 의외의 초대였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건 지금 이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 두분이 상해까지 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거든요.”
“조선의 종친이신 전하께서 근처까지 오셨는데 어찌 저희가 직접 나오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전하께서는 아라사와 조선이 불가침 협정을 맺는데도 힘을 써주기로 하셨으니 감사의 인사도 드릴 겸 이렇게 찾아 뵌 겁니다.”
“역시 예의를 중시하는 나라답게 조선은 법도를 아는군요. 그런데 사실 성의를 보이려면 역시 행동으로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쪽은 신경써서 러시아와 불가침 조약을 맺게 다리도 놔주었으니 대가를 받아갈 자격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거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쩔쩔매면서 고개를 숙이는 김좌근의 모습은 별로 새롭지 않았지만 어쩔 줄 몰라하는 이하응을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꽤나 묘했다.
예전에는 이 녀석에게 한 다리 걸쳐서 출세해보려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것도 이제 까마득한 과거의 기억일 뿐.
혹시라도 이쪽을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하면 더 재미있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저렇게 긴가민가 하고 있으니 뭔가 괜히 더 놀리고 싶어지잖아?
“그러면 우리 흥선군 대감님의 의견을 들어볼까요? 조선이 대영제국과 수교를 한다면 어떨 거 같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양국 모두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데말이죠.”
위정척사, 쇄국의 아이콘.
양이와 화친하는 건 나라를 파는 일이며. 교역을 하면 나라의 은화만 다 빠져나갈 뿐이라고 목놓아 외치는 미래의 우리 대원군께서는 과연 뭐라고 답할까.
대놓고 궁금해 죽겠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나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김좌근의 시선을 한몸에 받던 흥선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눈만 빙빙 굴려댔다.
“아아,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솔직한 의견을 들려주세요.”
누가 잡아먹는대? 어렸을 때처럼 자신감 넘치게 이야기를 좀 해보라고.
내 친절한 격려에 힘을 얻었는지 숨을 크게 들이킨 흥선군 이하응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통상조약을 체결하는 건 이르지 않나···싶습니다···만.”
““아,아,아니! 흥선군 대감! 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 겁니까, 지금!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지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정신 나가셨소!“
쩔쩔매면서도 할 말은 한 이하응과 종친이건 뭐건 버럭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까지 해대는 김좌근.
대환장의 콜라보구만.
암암, 이래야 내가 기억하는 조선이지.
역시 믿고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