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64)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 164화(164/537)
너만 모르는 이야기 (2)
타국의 외교 사절로 가는 이들은 나라를 대표해 가는 그 나라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다.
행동거지, 어조,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절대로 허튼 소리를 내뱉지 않는다.
물론 세상 그 무엇도 거칠 게 없던 전성기 청나라 같은 제국이 조공국에게 사절을 보낼 때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긴 하다.
사절로 와서 개차반으로 행동하고 간 관리들의 예시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보다 확실하게 더 강대국인 나라와 협상을 할 때는 절대 예외가 없다.
어떤 코투리라도 잡히면 안 되기 때문에 극도로 말을 조심하고 어떤 여지도 주지 않으려 애쓰는 게 바로 외교다.
그런 점에서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은 외교라기 보다는 한편의 촌극이라 할만하지 않을까.
“전하! 흥선군 대감이 잠시 무언가를 혼동했나 봅니다. 하하···당연히 저건 저희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니 괘념치 마십시오.”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나름 신선하네요. 혹시 사전에 두분 의견이 조율되지 않은 겁니까?”
이게 돌려까기라는 걸 모르지 않을 김좌근의 얼굴이 점점 더 흙빛으로 물들었다.
“하하하···하하, 아닙니다. 사실 이 자리에 들어오기도 전에 다 이야기를 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혼란스러웠던 나머지 못볼 꼴을 보였습니다. 이 점 사죄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흥선군 대감은 어째서 사전에 논의가 됐었다면서 다른 말을 하신 겁니까?”
“아니, 그게······.”
잠시 당황하던 그는 아예 눈을 딱 감고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한 생각을 물어보셔서 그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저는 통상을 아예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 이곳 상해에 와서 직접 귀국의 웅장한 군함들을 보며 통상은 필요하다고 확신을 했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조선과 영길리의 차이는 너무나도 극심합니다. 통상을 한다면 우리의 은이 일방적으로 유출될 우려가 있으니 아직은 이르지 않나 하는 수준의 이야기를 한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렸을 때도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건 나를 향해 말하는 걸까.
아닌척 하면서도 나를 곁눈질하는 시선이 아주 잘 느껴지는데.
김좌근 역시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찢어죽일 거 같은 시선으로 흥선군을 노려보던 것과 다르게 숨을 멈추고 대화를 지켜보았다.
그러니까 흥선군이 갑자기 헛소리를 하기 시작한 게 내 반응을 확실하게 떠보기 위한 나름의 승부수였던 건가.
예상외의 말을 듣는다면 누구라도 표정에 미동이 생기는 법이니까.
“예전에도 통상을 논한적이 있었다고요? 신기하네요. 혹시 본국 외에 다른 유럽 국가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표정 한번 잘못 지으면 호주머니에 들어오려던 수십억이 그대로 날아가버리는 세계에서 십수년을 굴러온 사람이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묻자 흥선군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실은 어렸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불현듯 머리를 스쳐서 말입니다. 그때도 저는 통상을 하면 나라의 국부가 유출될 거라고 생각했고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애초에 통상을 요구하는 건 요구하는 쪽에서 그로 인한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는 건 개항을 하는 쪽은 손해를 본다는 것이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국제무역 이론으로 들어가면 무역을 하는 양쪽 모두 사회적 편익이 증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건 제가 감언이설로 여러분을 속이는 게 아니라 이미 본국에서는 학문적으로 다 정립이 된 사항들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영국이 조선과 교역을 하면 빨대를 꽂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이 시기의 영국은 물론 서양의 열강들이 미쳤다고 모두가 잘먹고 잘살자는 모토로 아시아 국가들을 개항시키고 다녔겠는가.
그랬다면 애초에 불평등 조약을 맺지도 않았겠지.
나는 별다른 반박을 못하는 흥선군과 김좌근을 둘러보고는 태연스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대영제국이 조선과 러시아의 불가침 조약을 중재해주는 이상 이쪽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본국의 시민들이 납득을 하지 않을테니까요. 참고로 제가 여왕 폐하의 남편이기는 하지만 본국은 국왕이 원하는 대로 국정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습니다. 그 점은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무슨···투표를 통해 조정의 관리들을 뽑는다고 들었습니다.”
“실무를 보는 관리들까지 투표로 뽑는 건 아닙니다. 아, 그래도 장차관은 현직 의원들이 맡는 경우가 많으니···굳이 비유를 해보자면 비변사의 당상이나 육조의 판서나 참의급이 투표로 뽑힌다고 보면 되겠군요.”
“허어···그 정도입니까?”
김좌근과 이하응은 사이좋게 당혹감이 서린 미소를 지으며 말을 흐렸다.
과거 제도야말로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이 보기에 투표로 지도자를 뽑는 건 무슨 바보 짓인가 싶겠지.
사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평균적인 교육수준이 어느 정도는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게 사실이라 저들의 인식이 마냥 틀린 건 아니다.
현재 조선에서 바로 민주주의를 도입해 선거로 행정부를 구성한다?
이것이 조선판 정치다 절망편이 현세에 강림한다는데에 내 전재산도 다 걸 수 있다.
“아, 그래도 오해할까봐 미리 말하자면 우리는 딱히 우리의 체제를 강요할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선교라든가 그런 것도······.”
이런.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는데 역시 그 정도까지 바보는 아닌 모양이네.
“그쪽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 부분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는데 기독교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하지만 그게 귀국의 왕권을 부정하는 말은 아닙니다. 당장 우리 대영제국부터 여왕 폐하께서 전 시민의 사랑을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귀국이 지금 신경쓰고 있는 러시아도 엄연히 왕이 다스리는 군주정입니다. 프랑스나 프로이센도 말할 것도 없죠.”
“하지만 그 기독교라는 건 유교의 가치와 어긋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사회적인 혼란이 있을 수 있어요.”
“천년 만년 막아둘 수 있다고 자신하신다면 괜찮습니다. 다만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해보세요. 과연 조선이 유럽과 영원히 통상을 하지 않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있을 수 있는지. 지금 청나라가 대영제국에게 패배하자마자 바로 러시아가 칼을 들이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금 월남은 프랑스에게 야금야금 잠식 당하는 중입니다. 조선이 청나라보다 강하다고 확신하십니까?”
“그건···그래서 불가침 조약을 맺으려고······.”
“그 불가침 조약이 의미가 있는 건 중재를 해주는 우리 대영제국의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건 아시겠지요? 대영제국의 힘으로 유지되는 평화라면 당연히 우리 대영제국도 그만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조선도 저희쪽에 주는 게 있어야죠. 그게 외교 아닙니까.”
통상을 하기 싫다고? 그러면 불가침 조약도 없으니까 러시아랑 국경을 맞댄 채로 어디 한번 잘 살아보든가.
“아닙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통상을 하는 건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시기가······.”
“시기는 지금 당장입니다. 마침 이번에 일본과도 조약을 체결했으니 혼동이 생기지 않도록 동시에 문을 열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당장이요?”
“예. 그래야 러시아도 더 욕심 안부리고 딱 연해주로만 만족할테니까요. 그리고 이건 조선을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조약을 맺을 수 있는 건 바로 지금뿐입니다. 저는 이미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야 하니 조선을 방파제로 삼아야 한다고 의회에 말해놓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막 일본과 조약을 맺고 돌아가는 길이죠. 여기서 조선이 준비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
뒷일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냉정하게 봤을 때 이미 상해에 홍콩 타이난까지 대영제국이 가지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까지 영향력 아래에 넣는다면, 이 자체만으로도 태평양 포위망은 완성된 거나 마찬가지다.
조선까지 쥐고 있으면 더없이 좋긴 하겠지만 해군이 주력인 대영제국의 입장에서는 이미 마지노선은 완성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하, 하지만 전하.”
“그런 점에서 이번에 여러분이 저를 찾아온 건 확실히 좋은 판단이었습니다. 덤으로 흥선군께서 개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불안을 느끼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아직도 아직도 선택을 미룰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고 여기시는 건 좀 안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도 불가침 조약을 중재해주신다는 건 이미 확정된 사안······.”
“국제외교에서 확정이라는 건 협정서에 사인이 끝났을 때뿐입니다. 조약을 맺을 예정이었다가 엎어지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죠.”
내가 여기서 조선의 태도가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돌아가면 당연히 조선과 러시아의 불가침 협정도 물건너가는 것이다.
저렇게 되면 일본이 대영제국쪽에 붙어버린 이상 조선은 진짜로 덩그러니 홀로 남아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청의 지원군 요청을 시원하게 무시해버린 이상 청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물론 청에게 조선을 도와줄 여력 따위 남아있지도 않겠지만.
지금 조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철저하게 고립된 상태라는 걸 깨달은 흥선군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도 김좌근은 어느 정도 이런 상황을 각오하고 있었는지 덤덤한 눈치였다.
“개항을 하는 것 자체는 이미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견은 없습니다. 다만 그 조건과 범위는 아직 협상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이미 일본과 맺은 조약이 있으니 비슷한 형태로 맺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희도 바로 검토해보겠습니다.”
흥선군이 중간에 계속 태클을 걸었던 건 어차피 통상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다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을 약속받기 위한 일종의 시위였을 것이다.
나는 너희는 그런 걸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어준 것이고.
그래도 예전에는 그렇게 잘난척 으스대던 양반이 내 한 마디에 바로 꼬리를 내리고 시선을 깔아버리는 건 좀 그렇네.
조금 더 논리를 짜내서 반박을 해왔다면 더 공을 들여서 팍팍 밟아놓았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긴 해도 아직은 그냥 왕실의 흔한 종친 A 정도에 불과한 인간을 붙잡고 놀아봐야 딱히 재미를 볼 일은 없으니 이쯤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하다.
과거의 일을 상기시켜주는 건 이하응이 훨씬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간 상태여야 효과가 더 좋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오늘의 일을 경험삼아서 대원군의 위치까지 잘 올라가보라고.
진짜 재미있는 상황은 그때부터 펼쳐질 테니까.
* * *
기리안 과이와 회담을 마치고 반쯤 혼이 빠져나간 상태로 나온 김좌근과 이하응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뭡니까, 저 인간은. 그냥 앉아서 말만 했는데 심력이 거의 바닥을 칠 정도로 깎여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전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속에 구렁이가 백 마리쯤 들어앉은 사람이라고. 그래봐야 양이 혼혈, 이런 개소리를 하는 비변사의 노인네들이 얼마나 현실을 모르는 건지 잘 아셨겠지요?”
“예. 병판께서 그간 얼마나 속이 타셨을지 잘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야기해 보니 어떻습니까? 어렸을 때 만났던 그 혼혈 노비가 맞습니까? 보아하니 처음에는 영 분간을 못하시는 눈치던데.”
사실 김좌근이 생각하기에도 어렸을 때 한번 본 서양인의 외모를 구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는 했다.
그래도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천천히 이야기를 나눠보면 또 부지불식간에 퍼뜩 생각이 나는 법 아니던가.
그래서 약간의 희망을 걸어본 건데 어두워지는 이하응의 표정을 보니 역시나 그런 편의주의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모르겠습니다. 맞는 거 같기도 한데 또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맞다 아니다도 아니고 여전히 모르겠다?”
“중간에 반응을 보려고 기습적으로 옛날 이야기를 던져 봤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아무 반응이 없더군요.”
“···그러면 아닌 거라고 봐야 하지 않나요?”
“그게 또 마냥 아니다라고 보기에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기도 했고. 이쪽을 가지고 놀려는 건가 싶은 느낌도 들고···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거의 농락당한 기분이라며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는 흥선군의 모습에 김좌근은 묘한 친근감을 느꼈다.
“흥선군 대감. 대감께서도 여기 와서 느끼셨겠지만 결국 우리 조선은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결국에는 저 구라파 강대국들의 힘싸움에 말려들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예. 저도 느꼈습니다.”
“청나라가 야금야금 영토를 빼앗기고 왜는 이미 납작 엎드렸죠. 그리고 사실인지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저 남쪽의 월남은 이미 불란서에게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라고 하고요. 그렇다는 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예상보다 얼마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를 동요케 하려는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이라면 확실히 위험한 상황은 맞는 거 같습니다.”
“예. 하지만 지금 조정을 보세요. 이 상태로는 안 됩니다. 지금 이렇게 가서는 도저히 우리를 둘러싼 이 급변하는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이 나라는 변해야 합니다.”
흥선군 역시 느낀 바가 많았는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나라는 변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제부터 변하고 싶다고 해서 변하면 세상에 망하는 나라가 왜 나오겠는가.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세우는 건 새로운 나라를 창업하는 일보다 곱절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지금 조선에서 이 막중한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단 한명.
안동 김씨의 수좌가 될 자신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뿌우우우우!
저 멀리 우렁찬 소리와 함께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출항하는 거대한 흑선을 바라보는 김좌근은 확실하게 생각을 굳혔다.
조선을 안동 김씨, 아니 자신의 발 아래에서 근본부터 철저하게 뜯어고치리라.
이 나라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