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99)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 199화(199/537)
불쏘시개 (2)
나폴레옹 전쟁 이후 수십년간 유럽에 뿌리내려온 빈 체제가 위기에 봉착하는 데에는 불과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사실 빈 체제는 시작부터 그리 굳건한 체제는 아니었다.
이미 내셔널리즘과 자유주의가 한번 전 유럽을 쓸고 지나간 이상 이걸 없던 일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아무리 거꾸로 돌리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법.
그리스 독립전쟁에서 그리스가 독립하는데 성공한 시점부터 빈 체제는 견고함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유럽 최강의 강대국인 영국이 빈 체제에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이미 입헌군주제 시스템을 확립하고 자본주의 체제로 들어온 영국 입장에서는 빈 체제가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의 지인들 중에서는 빈 체제를 역사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조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빈 체제를 따르고 있던 수많은 유럽의 국가가 때 아닌 독립 운동과 반란, 폭동으로 몸살을 앓는 와중에도 대영제국은 유유히 이 난장판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하하하하! 저번에 왔었던 그 프랑스 장관 말입니다. 이번에 총리가 되었다지요? 총리님께 식량 좀 팔아달라고 굽신굽신 거리더니 나름의 성과가 있었나 봅니다.”
“성과가 있었던 정도가 아니라 프랑스가 지금 유럽의 모든 국가들 중에 가장 먼저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그게 다 우리 대영제국이 은혜를 베풀어준 덕분 아니겠습니까. 저들이 저렇게 난리를 치는 사이 우리는 우아하게 차나 마시면서 이득을 챙겨가고 있으니 이보다 편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역시 총리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지네만 잘난 줄 아는 프랑스 놈들이 저렇게 아쉬워 하면서 타국의 도움을 바라는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저희도 저 프랑스 총리가 총리님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을 좀 봤어야 하는데 그걸 놓친 게 한입니다. 하하하!”
사방에서 쏟아지는 아부섞인 칭찬 세례에 웰즐리는 커피잔을 슬쩍 들어올리며 멋쩍게 웃었다.
“공장법을 미리 발의해둔 것도 노동자들이나 차티스트들이 설치지 못하게 억제하는데 큰 도움이 된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점진적으로 완화해주겠다는 약속을 해두지 않았다면 우리쪽도 투표권을 보장해달라, 노동시간을 줄여달라 온갖 소란을 피우며 날뛰는 자들이 제법 많았을 테니까요.”
“프랑스야 조금 진정되는 거 같다지만 독일과 이탈리아쪽은 엄청나게 심하다면서요?”
“예. 이탈리아쪽은 독립을 요구하며 아예 들고 일어났고 독일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나란히 힘든 형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게 사전에 총리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거군요.”
역시! 라는 반응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웰즐리를 향한 칭송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 시대의 흐름을 잘 읽는 위대한 총리는 이 사태조차 예견하고 독일쪽에도 이미 조치를 취해두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 혁명이 끝나 있으면 외교적으로 대영제국에 커다란 빚을 진 유럽의 국가들은 절대로 이쪽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게다가 대영제국의 체제가 다른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안정적이고 선진적이라는 사실도 증명됐다.
이걸로 잔뜩 국뽕을 빨게 하는 기사들도 연일 쏟아지는 중이었다.
<프랑스의 총리 기조, “흔쾌히 식량을 수출해주는데 동의해준 대영제국의 웰즐리 총리님과 캐나다 공작 킬리언 전하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프랑스와 독일의 노동자들, 대영제국의 노동자들보다 일주일에 10시간 이상을 더 일하고 돈은 더 적게 받는다!>
<전 유럽! 대영제국의 굳건한 사회 시스템을 궁금해 하다!>
<대영제국은 어떻게 세계적인 혼란을 대비했는가. 웰즐리 총리의 실천하는 리더십 분석!>
“키야! 이게 바로 보수당이지!”
“웰즐리 총리님 그냥 종신으로 있어주세요!”
다른 나라들이 고통 받으면 고통 받을수록 이 사태에서 유유히 꿀만 빨고 있는 대영제국의 가치는 더 올라간다.
표면적으로 이번 사태를 주도하고 있는 걸로 되어있는 웰즐리는 같은 의원들과 대중들의 찬사를 듬뿍 즐기며 자신의 인기를 한껏 다져나갔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있는 동안, 이번 일을 주도한 진짜 흑막이 뒤에서 또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즐겁게 기다리면서.
* * *
웰즐리가 국내에서 정치의 신이라 떠받들어지고 프랑스가 한창 노동자와 자본가들을 갈라치기하고 있을 때.
유럽을 통틀어 가장 크게 난리가 난 곳은 다름 아닌 독일이었다.
프랑스에서 정부가 시민들의 요구를 일부 받아주기로 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에서도 자유주의 체제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빗발쳤다.
황제 페르디난트 1세와 빈 체제를 부르는 또다른 이름인 메테르니히 체제의 주인공 메테르니히는 강경한 진압을 명령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대영제국에서 건너온 특사가 메테르니히 총리에게 접견을 요구하며 진압명령이 잠깐 뒤로 미뤄지게 됐다.
“대영제국에서 특사를 보낸다고는 했지만 그게 디즈레일리 장관님일줄은 몰랐습니다. 시국이 불안정해 성대한 환영을 해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저도 이번 사태에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해서 온 것이니 너무 마음에 두실 필요 없습니다.”
디즈레일리는 느긋하게 회의실 내부를 둘러보며 이제는 초로의 노인이 된 클레메스 폰 메테르니히의 안색을 살폈다.
세계 최고의 외교관으로 꼽히던 사람도 이제 70이 넘은 노인인가.
어렸을 때 외교사나 국제정치학에 대해 공부하면 반드시 피할 수 없는 이름이 바로 저 메테르니히였다.
그런 사람을 이제는 자신이 내려다볼 수도 있는 위치가 되니 만감이 교차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30년 뒤에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감상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이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나.
킬리언이 대영제국의 100년, 200년 패권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가 새삼스레 다시 공감이 된다.
물론 30년 전에도 대영제국은 오스트리아보다 훨씬 강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도 차이가 훨씬 벌어지지 않았는가.
언제가는 대영제국이 다른 신흥국에게 밀려 패권국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금 확실하게 기반을 닦아둬야 한다는 게 킬리언의 지론이었고, 디즈레일리도 거기에 적극 동의하는 편이었다.
“현재 빈의 분위기가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겠더군요.”
“걱정마십시오. 오늘이라도 바로 강경진압을 명령할 테니까요. 그러니 장관님께서는 아무 걱정 마시고 빈에서 머무셔도 됩니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강경진압을 할 생각이었던 건가.
멀리서 힐끔 본 정도였지만 그래도 대중들의 분노가 어떤지 훤히 알 수 있었는데 그걸 무력으로 찍어누르겠다고?
역시 가만히 놔두면 메테르니히는 실각하게 되어 있다는 킬리언의 말이 옳았다.
왕년 신들린 균형감각으로 절묘하게 강대국들의 세력 균형을 이룬 외교의 천재가 눈앞의 이 사람과 동일인물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이가 들면 유니콘도 노새만 못하다고 하더니 결국 세월이 저 빛나는 천재성을 풍화시켜버린 것일까.
사실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조금 서글픈 일이다.
“총리님, 저희가 걱정하는 건 오히려 정부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겁니다. 그랬다가는 반드시 대규모 폭동으로 일이 커질텐데 그러면 본국에서 온 대사들의 안전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테니까요.”
“폭동이 일어날 기미가 보인다면 군을 투입할 겁니다.”
“그건 일을 더 키우는 악수밖에 되지 않을 듯 합니다. 게다가 헝가리 방면도 불안정하다고 하던데 여기에 군을 투입하면 헝가리 쪽을 어떻게 막으려고 그러십니까. 물론 타국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할 마음은 없지만. 이건 본국 외교관들의 안전이 걸린 문제이기도 해서 죄송하게도 주제넘은 참견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헝가리라. 그 점을 생각 못했군요.”
헝가리만이 아니라 작센, 바덴, 바이에른 등 군소 연방국에서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이걸 총칼로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진짜 감이 다 죽었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진짜 의식해서 억누르지 않으면 자연스레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아 슬프네.
“시민들이 요구하는 자유주의 위주의 개혁은 일단 하는 시늉이라도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들이 원하는 건 저의 퇴임인데 설마하니 그걸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물론 총리님께서는 빈 체제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라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은 무조건 총리님을 끌어내리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총리님께서 굳이 내려오실 필요는 없죠. 그냥 저들이 원하는 걸 상당수 들어주겠다고 하고 적당히 내부 분열을 유도하면 그만입니다.”
“내부 분열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되겠습니까?”
“프랑스에서 어떻게 이번 국면을 안정화시켰는지 듣지 않으셨습니까?”
자유주의 개혁세력이라고 해도 다 같은 마음으로 뭉쳐 있는 게 아니다.
온건적인 사람들부터 극단적인 부류까지 온갖 군상들이 다 섞여 있기 때문에 바로 저런 거대한 인파가 형성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킬리언이 바라는 건 유럽의 국가들이 저중에서 온건한 세력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대영제국은 이미 그렇게 하는 중이었고, 프랑스도 그런 방향으로 가겠다고 약속을 한 상태였다.
구 체제를 수호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회가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휘둘리면 중심을 잃고 폭주할 위험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유럽이 조금씩 새로운 체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안정적인 상태를 만들어 놓는 게 킬린언과 웰즐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빈 체제를 한번에 박살내는 게 아니라 천천히 안락사를 시키겠다는 뜻이다.
물론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일단 큰 피해 없이 목숨을 연명하게 됐으니 안락사를 당하고 있다는 자각도 별로 없겠지만.
“프랑스라면···대영제국과 비슷한 절차를 밟아서 개혁을 하겠다고 약속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쪽은 시민들의 요구가 더 거세니 일단은 통 크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의 의견을 부각시켜서 여기까지는 들어주기 힘들다고 선을 그으면 되겠지요.”
“그렇군요. 그런 식으로 내분을 일으키고 온건주의자들은 품는 식으로 가라는 건데···그러면 결국 자유주의 개혁은 일정부분 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어쩔 수 없죠. 시대가 변하면 결국 제도도 변해야하는 법이니까요.”
“선의의 충고를 해주신 건 정말 고맙긴 합니다. 그런데 런던에서 여기까지 먼 길을 오신 게 설마 이것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왕년에 전 세계를 상대로 줄타기를 하던 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건가.
상대방이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자 도리어 반가운 기분이 느껴지는 건 처음이다.
“예. 본국을 대표해 총리님께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총리님께서 내려오시지 않도록 돕는 것도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제안을 위해서고요.”
“제가 실각하면 다음 총리와 또다시 입을 맞춰야 하니 일을 두번 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군요. 이해했습니다.”
“예. 일단 본국에서 파악한 바로는 헝가리의 준동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겠지만 오스트리아 단독으로 헝가리를 제압하는 건 피해가 크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대영제국측에서 동맹군을 보내주시겠다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설마하니 이렇게 바로 즉답을 할지는 몰랐다는 듯 메테르니히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사실 지원군을 보내는 건 프랑스지만 어쨌거나 이쪽이 보내라고 해서 보내는 거니까 그건 결과적으로는 대영제국의 지원군과 다를 바 없지 않는가.
“···허어. 지원군을 보내주시겠다면 저희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무슨 일이 있어도 헝가리는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면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프랑스가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고 오스트리아 제국이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아량을 베풀어주는 이유는 오직 하나.
“러시아.”
“···러시아요?”
의아해하는 메테르니히를 향해 디즈레일리는 대영제국의 장관인 자신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확실하게 못박았다.
“러시아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대영제국의 손을 잡으시죠. 물론 지금 당장 그렇게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재주는 프랑스가 넘고 돈은 대영제국이 번다.
러시아를 향한 대영제국의 포위망은 이미 조금씩이지만 그 형태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