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322)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322화(322/537)
레콘키스타 (4)
합중국에게 불운한 점이 있다면, 그건 국가의 이름값이 딸린다는 점이리라.
21세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세계 1차 대전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 대한 인식은 명백히 영프 아래였다.
하물며 19세기 중반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스페인 같은 나라가 깝죽대면서 뒷구멍으로 무기를 팔아 넘겼겠는가.
이건 다 합중국이 유럽의 열강들에게 그만한 고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인식이 제대로 된 거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답은 ‘아니오’ 였다.
멕시코 전쟁이 터진 시기도 아니고 지금은 그보다도 시간이 한참 더 지난 1860년대다.
이 시기의 미국 북부의 공업 수준은 유럽에서 따라올 나라가 그리 많지 않았다.
스페인으로는 명함도 내밀 수 없고 프랑스나 되어야 비슷한 수준.
미국보다 확실히 더 낫다고 할 수 있는 나라는 영국 정도밖에 없었다.
방장 사기맵이다 뭐다 하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확실히 내가 당사자가 돼서 보니 저긴 조금 치사할 정도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저런 황금의 땅을 식민지로 빨아먹으려다가 독립하게 만든 멍청한 놈들이 내 선조인 상황이니 나라도 열심히 뒷수습을 할 수밖에.
다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직 나밖에 없다는 게 아주 즐거운 일이다.
대형 사고를 친 스페인은 아직도 자신들이 지나가는 길고양이를 발로 찬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프랑스가 육군을 편성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물론이죠. 진짜로 육군을 파병하려는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말인데 본국도 정식으로 참전을 하는 게 어떨까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스페인도 참전을?”
스페인 입장에서는 자기네가 상황을 다 만들어 놨는데 애먼 프랑스가 꼽사리를 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긴 하다.
하지만 스페인의 현재 상황을 고려해 보면 쿠바나 푸에르토리코의 육군까지 다 끌어모아봐야 꼴랑 몇 만 보내는 것도 힘겨울 텐데.
“뒤로 무기를 찔러주는 수준을 넘어서 군을 보내면 그건 정식으로 북부와 전쟁을 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가 이미 남부를 정식 국가로 승인한 이상 남부를 편드는 건 곧 북부를 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됐습니다.”
‘스페인도 남부를 정식국가로 인정할 예정인가 보군요.”
“물론입니다. 오히려 조금 늦은 감이 있는 거죠. 대영제국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전에 말씀드린 대로 중립입니다.”
코르도바 대사나 오도넬 총리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원래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될 때야말로 주변을 잘 살펴봐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걸 알고도 실천을 하지 못한다.
실제로 모가지가 댕겅 잘리기 전이 돼서야 뼈저리게 깨닫는 법인데 진짜로 죽은 사람은 다시는 조심을 하지 못하게 되니 어절 수 없지.
스페인도 지금 일이 너무 잘 풀리니 점점 현실감을 상실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되도록 유도한 어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지만 대체 누구일까?
선량한 대영제국은 아무것도 모르겠는데요.
스페인이 이럴진대 프랑스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원래 프랑스는 항상 사분오열 돼서 난장판을 벌이는 게 기본 상태였지만, 대부분이 합중국과 한판 해도 상관없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었다.
몇몇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아무리 그래도 노예제를 시행하는 국가의 편에 서서 전쟁을 하는 게 말이 되냐고 했지만, 국가의 이익 앞에 그런 목소리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냥 폭주 기관차가 지나가는 앞을 막아서는 사마귀도 이보다 볼품없지는 않을 정도로 소수 의견은 무자비하게 날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는 남부를 하나의 국가로 선언하는 걸 넘어 아예 정식으로 동맹조약을 체결하는데 이르렀다.
“프랑스 왕국과 아메리카 연합국은 상호방위 조약을 맺고 서로를 보호하는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것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설마설마하니 이제부터 남부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를 정말로 시전할줄은 몰랐지만 공식적인 발표가 난 이상 이제는 무를 수 없다.
이런다고 북부가 남부에 대한 공격을 멈출리가 없으니 프랑스는 언제든 조약을 근거로 군을 파병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고, 실제로도 북부측에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래도 대혁명의 나라가 노예제를 옹호할 수는 없으니 별에 별 헛소리를 잔뜩 써놓았지만 요약하자면 이거였다.
-노예제는 폐지되는 게 시대의 흐름이지만 그걸 근거로 타국에 강압적인 조치를 시행해서는 안 된다.
요는 노예제를 하는 남부를 편드는 게 아니라, 노예제 폐지를 빌미로 주변국들을 압박하는 북부를 벌하겠다는 뜻인데 이것도 세세히 뜯어보면 말이 안되는 궤변이었다.
그러나 궤변이든 아니든 결국 역사의 승자의 편.
“북부는 지금 당장 남부와의 전쟁을 멈추고 휴전 협정에 임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게 무슨 미친 개소리냐! 이건 명백한 내정 간섭이다. 유럽은 아메리카의 일에 개입할 자격이 없으며 이런 행위야 말로 타국의 권리를 강제로 침범하는 것이다!”
“유럽은 여러 국가들이 얽혀 다양한 상호작용을 주고 받으며 질서를 정립했습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은 합중국이 본인들의 우월한 국력을 바탕으로 주변국들을 무제한으로 압박하고 있으니 이 사태를 좌시하면 앞으로도 계속 같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나날이 신문을 통해 쏟아지는 두 대륙간의 논쟁과 점점 더 격해지는 언사.
프랑스의 본심은 참전을 하기 위한 명분이었으니 일부러 합중국을 자극하는 것이고, 합중국은 상대의 노림수는 알지만 그렇다고 숙일 수는 없으니 강대강의 대치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프랑스가 남부를 정식 동맹으로 선포한 지 정확히 보름 뒤.
프랑스는 상호 방위 조약에 의거해 미합중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날렸다.
* * *
프랑스의 공식 참전으로 유럽의 정계는 문자 그대로 초비상이 걸렸다.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일이 터진 건 이제 또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까지 빠르게 움직일 줄은 몰랐는데 프랑스는 왜 이렇게 서두르는 겁니까?”
“그만큼 급하시다는 거겠죠.”
“프랑스만이 아니라 스페인도 참전한다고 합니다. 병력 규모는 그리 크지 않겠지만 어쨌든 프랑스는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 될 겁니다.”
“본국의 움직임도 이제 중요해졌습니다. 프랑스가 끼어든 이상 우리는 어느쪽으로든 의견 표명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회의실에는 대영제국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총집합해 있었다.
총리인 웰즐리와 재무장관 디즈레일리, 그리고 명실공히 야당의 대표격 인물이라 할 수 있는 글래드스턴과 캐나다 공작인 나까지.
그만큼 프랑스의 참전이 영국에게 실질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유당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다양합니다. 프랑스를 제지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고 중립선언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죠. 개중에는 아예 중립선언을 포기하고 동맹인 프랑스를 도와 해군을 파견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보수당도 비슷합니다.”
“전쟁부와 외무부도 의견이 나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안이 복잡하다는 뜻이겠죠. 아무래도 이번 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스페인 같은 나라가 깨작거릴 때만 해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더니 프랑스가 나서자마자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가.
확실히 이게 바로 이름값이 지닌 힘이다.
당장 합중국이 대영제국이나 프랑스 같은 강대국으로 인식되고 있었으면 스페인이 어디 저런 불장난을 할 엄두나 낼 수 있었겠는가.
조심스럽게 눈치만 보다가 바로 계획을 접었겠지.
하지만 반대로 이런 이름값 때문에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질 때도 있다.
상대방을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해 뚜껑을 열어보기도 전에 위축된다고 해야할까.
스포츠 대회에서도 세계 탑클래스 선수들과 이제 막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선수들이 싸울 때 의외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게 이런 후광효과라고 한다.
실질적인 실력이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위축돼서 스스로 말려버리는 경우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지금 분석만 해도 마찬가지다.
프랑스가 끼어들었으니 이 전쟁은 이제 순식간에 끝날 거라는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지 않나.
스페인이 어버버 하는 사이에 참전을 결정하고 군대를 보내는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 프랑스가. 세계에서 두번째로 강한 열강이 직접 군대를 보낸다고 하니 갑자기 인지부조화가 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분명히 객관적인 데이터만 뽑아보면 북부의 전력은 엄청나게 막강하다.
그러나 대외적인 인식은 열강 호소인 미국과 세계 2위 프랑스의 싸움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양을 건너는 대규모 군사작전은 엄청난 패널티를 동반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약점마저도 현재 북부와 대치중인 남부가 커버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부에서는 단숨에 남부 측으로 추가 기울거라 예상하고 있습니까?”
“예. 남부의 존재가 굉장히 큽니다. 프랑스가 대규모 군대와 보급품을 수송하는 부담을 한층 덜어줄 수 있을 테니까요. 여기에 스페인까지 참전하면 절대적인 전력도 남부 연합이 더 앞서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군요. 잘됐네요. 다른 곳도 아닌 본국에서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면 스페인이나 프랑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게 뻔하다는 뜻이니.”
“···예?”
“최근에 에드워드에게 개인 교습을 해주고 있습니다. 얘가 그래도 제 아들이라 그런지 이해력도 제법 좋아서 가르치는 맛이 나더군요. 응용력은 아직 테스트를 해보지 못했는데 이번 전쟁이 아주 좋은 교재가 되어줄 것 같아서 이런저런 훈련을 시켜보는 중입니다.”
어리둥절해하는 세 사람은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이게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사안이다.
“대영제국은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하지만 너무 중립만 고수하다가 전쟁이 빠르게 결판이 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빠르게 결판이 날리가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합중국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이게 사실 이 사람들이 무능해서라거나 정보에 어두워서가 아니다.
구글에 미합중국 GDP, 프랑스 GDP 두드려 주면 바로 결과물이 나오는 시대가 아니니 어떻게 완벽하게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겠나.
애초에 미합중국도 본인들의 힘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모르고 있는 판국이었으니, 대영제국의 내각과 의회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전하께서는 지금 프랑스와 스페인이 참전을 했는데도 북부가 버텨낼 힘이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유럽 한복판에서 싸우는 거라면 몰라도 프랑스가 뭐 얼마나 많은 군대를 대서양 건너편까지 보내겠습니까. 스페인도 마찬가지고요. 지금까지 북부가 남부를 거세게 압박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북부군의 낮은 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냥 손쉽게 찍어누를 수 있을 줄 알았던 남부가 거세게 반항하며 예상 외로 피해가 생기니 당연히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남부는 본인들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북부 일각에서는 왜 깜둥이들을 위해 우리가 같은 백인들에게 총을 쏴야 하는 거냐는 목소리가 아예 없지는 않은 판국이었다.
“이 상황에서 프랑스나 스페인이 참전한다고 하면 이제 북부는 죽을 힘을 다해 싸우기 시작할 겁니다, 북부의 시민들도 남부처럼 고향을 지키겠다고 자원으로 입대하며 군의 규모가 엄청나게 불어나겠죠. 이러면 남부에서 처음에 계획했던 시간끌기가 의미가 없어지는 겁니다.”
지금까지 유럽은 미합중국의 진짜 저력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프랑스와 스페인 덕분에 저들의 정확한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게 될 것이고.
반신반의하는 세 사람을 향해, 나는 가득 확신을 담고 힘주어 말을 이어나갔다.
“덤으로 북부가 아무리 공업시설이 풍부하다고 해도 삽시간에 병력을 늘리면 자연히 물자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죠. 그리고 저들의 소총은 우리에 비하면 성능이 모자란 게 사실이고요.”
“···설마 북부에도 대규모 수출을 하실 겁니까?”
“제가 분명 예전에 그럴 계획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분명히 그러시긴 했었는데······.”
“했었는데?”
“농담 아니니셨습니까?”
농담은 무슨. 나는 언제나 진지한 사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