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337)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337화(337/537)
< 미터의 멋짐을 모르는 너에게 >
전쟁이 끝나고 나니 지금까지 밀려 있던 뒤처리 문제가 한꺼번에 쏟아지며 눈코 뜰 새가 없이 바빠졌다.
그래도 파나마 운하는 대강 결론을 냈고 혼자 대차게 꼴아박은 스페인도 딱 예상대로 나와주고 있으니 이쪽은 이제 신경 쓸 필요는 없어졌다.
스페인이야 자신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고 여기고 있겠지만 전쟁이 터지고 욕심에 눈이 먼 행보를 보일 때부터 저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원래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이득을 보고 있으니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원래 밑천까지 날려버리고 망하는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딱 자기 수준에 걸맞는 욕심만 부렸어야 하는데 스페인이 프랑스나 프로이센이랑 같이 놀려고 하니 저렇게 가랑이가 찢어지는 게 아니겠나.
역시 유서 깊은 자폭의 황제 스페인 다운 행보다.
그래도 딱히 저들을 탓할 마음은 없었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밑천을 이쪽에 계속 헌납해주고 있는데 내가 왜 욕을 하겠는가.
그냥 고맙게 입을 떡 벌리고 떨어지는 꿀을 받아 먹기만 하면 그만이지.
“그런데 전하, 스페인에 받아먹을 게 있긴 합니까?”
“당연히 있지 왜 없습니까.”
“이미 맛이 가도 한참 간 나라라 그다지 탐이 나는 지역은 없는데···필리핀이나 쿠바 정도는 예외지만 그쪽을 내놓으라고 하면 당연히 거절하지 않을까요?”
“거긴 애초에 고려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스페인에 뜯어내려는 건 유형의 이득은 아닙니다.”
내일 바로 코르도바 대사와 면담 일정이 잡힌 웰즐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또 재미있는 계획을 꾸미고 계시나 보군요.”
“재미있어야죠. 엄청난 액수의 이자를 포기하는 건데.”
여러 갈래로 검토를 해봤는데 현재 스페인이 가지고 있는 알짜배기 중 대영제국에 도움이 될 만한 이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진짜로 누구나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요소는 저쪽도 내놓지 않을 테니 진흙 속의 다이아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어디 쉽겠나.
먼 미래를 생각하면 멕시코에 있는 리튬 채굴권을 가져가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니 현실성이 없다.
게다가 지금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지고 있는 권리와 땅 덩어리들을 굳이 돈 주고 살 필요가 있을까?
집 주인이 있는 곳에 들어가려면 돈을 내고 집을 사야 하지만, 주인이 없는 곳에는 그냥 이쪽이 먼저 들어가서 점유해 버리면 끝나는 법.
앞으로의 미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총리님께서는 아메리카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건 또 무슨 뜬금없는 질문입니까?”
“이 문제는 앞으로의 구상을 저와 공유하고 있어야 좀 더 유연한 대처가 가능할 거 같아서요.”
아메리카의 미래라는 게 진짜 장밋빛 미래를 논하라는 게 아닌 건 웰즐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도를 잠시 바라보던 그는 책상을 툭툭 두드리며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아메리카에서 유럽을 전부 쫓아낼 생각이십니까?”
이야, 이 사람 나랑 수십 년을 같이 있더니 눈치가 아주 귀신이 됐네.
내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웰즐리가 기가 막히다는 듯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진짜로 그랬습니까? 그러니까 전하께서는 역시 스페인과 이득을 나눌 마음이 전혀 없으셨군요. 프랑스나 프로이센도 마찬가지고.”
“총리님도 눈치 채셨겠지만 걔넨 그냥 합중국을 약화시켜 놓기 위한 좋은 체스말이었을 뿐입니다. 역할을 다 해줬으니 슬슬 방을 빼줄 준비를 해야죠.”
“그런 거 치고는 파나마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제일 중요한 땅은 우리가 먹었잖아요? 그리고 그쪽이 절반씩 가져가 줘야 나중에 파나마가 진짜로 독립할 때도 우리 영역은 손을 대지 않겠죠.”
파나마를 둘로 나눠 한쪽은 프로이센, 한쪽은 프랑스, 중부는 영국식으로 동화시켜 놓는다면 나중에 독립을 한다고 해도 하나로 합치려고 할까?
분리주의자들은 콜롬비아에 거의 다 쓸려나간 상태라 지금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결국 뭘 해봐야 거의 몇 세대나 시간이 흐른 뒤일 텐데 그때가 되면 동부와 중부, 서부가 하나의 나라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건 힘들다.
그래도 프랑스나 프로이센의 식민지 경영방식을 고려하면 저쪽은 별개의 나라로 독립할 가능성이 높지만, 중부는 예외였다.
“운하가 있는 지역은 돈이 넘쳐 흐를 테니 절대로 착취하지 않고, 차별적인 대우를 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인구도 별로 없으니 동화 작업도 어렵지 않을 거고요.”
“지브롤터처럼 만들자 이 말씀이군요. 이해했습니다.”
그렇지. 지중해와 대서양의 관문인 지브롤터도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스페인이 돌려받고 싶어서 그렇게 난리를 치지만 어림도 없지 않나.
이 방식은 21세기가 되더라도 무조건 먹힌다는 건 지브롤터가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다.
등 따숩고 배부른데 미쳤다고 더 못 사는 나라쪽으로 편입이 되고 싶겠나.
파나마도 딱 운하가 있는 지역으로 한정해 본국과 동화시킨다면 주민투표를 한다고 해도 거의 90% 이상이 파나마에 속하는 걸 거절할 것이다.
세계최강대국 대영제국의 시민으로, 운하가 주는 막대한 혜택을 누리며 살아갈 텐데 소득이 10배는 차이나는 사람들과 그걸 공유하겠다면 그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의 사고겠지.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도 지금 중남미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순순히 떨려나갈 거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스페인 하면 이를 갈고 있는 나라가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활용해야죠.”
“이번에는 남부가 아니라 북부를 활용해 보겠다?”
“지금 당장은 북부도 워낙 피해가 크니 조심하고 있겠지만, 몇 년 지나면 빠르게 회복할 테니 우리는 계기만 주면 됩니다. 스페인도 우리에게 빚을 갚아야 할 테니 얼마나 마음이 급할까요.”
두 나라가 충돌할 수 있는 여건만 마련해주면 북부는 아마 주저없이 스페인을 공격하겠지.
상황을 대강 이해한 웰즐리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이해했습니다. 이 악마적인 책략에 기꺼이 한팔 보태도록 하죠.”
“악마적이라니요. 애국자라고 정정해주시죠.”
“저도 한 애국하는데 전하 같은 계략은 도저히 짤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그건 애국을 하는 마음의 깊이가 차이 나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에 저만큼 큰 이득을 가지고 온 사람 있습니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그러고보니 이 나라의 애국을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가 하나 더 있었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웰즐리를 도로 앉히고 한 가지 더 중대한 화두를 꺼냈다.
“이건 방금 전까지 나누던 문제와는 크게 상관 없는데 혹시 총리님께서는 이 세계를 위한 거국적인 결단을 하실 마음은 없으십니까?”
“이 나라도 아닌 세계를 위한 결단이요? 너무 장황해서 뭐가 뭔지 감도 잡히지 않는데요.”
“바로 중구난방인 도량형을 전부 바꾸는 겁니다. 제국 단위계는 썩었어요.”
21세기에 야드 파운드의 흉악함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내 말에 쌍수를 들고 찬성할 거다.
특히 전국에 있는 공학도들.
공학계에서 적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도량형 때문에 수많은 엘리트 인재들이 의미없는 단위를 변환하느라 얼마나 큰 시간을 낭비했던가.
전생에서도 미국 전문가인 척 행세할 때는 그놈의 피트에 케이블에 마일, 야드에 시달린 것만 생각하면 절로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린다.
“제국 단위계는 현존하는 도량형 중에 가장 완벽한 도량형입니다. 이걸 바꾸겠다니요?”
“아니, 완벽하긴 뭐가 완벽하다는 겁니까. 지금이야 이게 너무 뿌리 깊게 관습으로 박혀서 바꾸는 게 힘들긴 하겠죠.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좀 바꿔둘 필요가 있다니까요? 난 미래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욕먹기 싫다고요.”
나중에 미래의 수많은 사람들이 킬리언이 대영제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키워놓은 탓에 제국 단위계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욕하면 그쪽이 책임져 줄 거야?
사실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지금 영국이 제국 단위계를 버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심지어 실용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지금 당장은 손해가 더 크다.
이미 교육 자료며 제조 공정이며 물류 체계며 근로자들의 교육 사항까지 수많은 양식이 제국 단위계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영제국이 과거로부터 지켜온 전통적인 방식이었기에 이걸 바꾸자고 하면 사회적 저항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도 현실적인 면에서 불가능하다고 했으면 납득했을 거다.
그러나 현존하는 도량형 중에 가장 완벽한 체계라는 웰즐리의 말이 날 사정없이 긁었다.
“그리고 완벽하긴 뭐가 완벽해! 총리님, 1피트가 몇 인치죠?”
“12인치죠.”
“그럼 몇 야드죠?”
“3분의 1야드.”
“야드는 몇 체인이죠?”
“22분의 1체인.”
이것 봐! 단위가 뭐 이따위야. 당장 길이만 해도 통일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데.
여기에 골 때리는 건 같은 이름을 쓰는 대영제국과 미합중국의 단위가 수치조차 다르다는 점이다.
같은 갤런이어도 영국식 갤런과 미국식 갤런이 다르다는 뜻이다.
단위계가 이렇게 막장이 되는 건 단위의 절대적 기준, 즉 변치 않는 정확한 원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터나 킬로그램, 초처럼 확실한 기준의 정의가 없으니 물리량이 달라지는 중구난방 사태가 일어나는 거다.
여기에 방금 웰즐리와의 문답에서 나왔 듯 같은 단위계 내에서의 단위들이 10진법으로 통일되지도 않는다.
굳이 10진법이 아니더라도 12진법이든 8진법이든 통일이라도 되면 다행인데 뭐는 12진법, 이건 22진법, 또 저건 16진법이니 답이 없다.
“총리님, 이건 구분을 잘해야 해요. 솔직히 객관적으로 미터법이 훨씬 더 진보 된 단위인 게 맞지 않습니까.우리가 아무리 세계 최강대국이 된다고 하더라도 먼 미래에 가면 다른 나라들은 대다수가 미터법을 쓸 거라는 말입니다. 야드 파운드를 고수하고 있는 거 자체가 손해라니까요? 특히 미래의 정밀 과학은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텐데 이러면 어쩔 수 없이 과학도들은 제국 단위계가 아닌 다른 단위계를 쓸 겁니다. 그런데도 이게 세상에서 제일 완벽한 단위계라고요?”
“···아니, 갑자기 왜 문제에 꽂히신 거지 이해가 잘······.”
“파나마 운하가 몇 마일이냐고 계산하고 있는 걸 보고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더 늦어지기 전에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죠.”
“그러니까 잘못 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야드 파운드의 멋짐을 모르는 전하가 안타깝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나도 내가 어째서 야드 파운드를 쓰고 있어야 하는지 불쌍하긴 하다.
농담이 아니고 이건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라니까?
진짜로 야드 파운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나중에 과학계에서 병신 같은 단위라는 조롱을 듣는다고.
“총리님, 제가 장담하는데 총리님이 제국 단위계를 바꿀 수 있으면 100년 뒤 총리님은 이 업적만으로도 대영제국 최고의 현자였다고 칭송 받게 될 겁니다. 절 믿으세요.”
“100년 뒤 현자라고 칭송 받을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날아오는 짱돌에 맞아서 이마가 깨질지도 모른다니까요?”
“그런 미친 놈이 나오면 그냥 감옥으로 보내버려야죠. 대영제국 최장수 총리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습니까? 밀어붙이세요.”
“아니···그러면 제가 아니라 글래드스턴이나 디즈레일리에게 좀 말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쪽에서 법안을 입안하면 제가 지원을 하는 식으로.”
계속 이렇게 빠져나가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내게 뭘 빚지고 있는 상기시켜줄 수밖에.
“총리님, 이번에 제가 파나마 운하를 파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는 아시죠?”
“예? 그걸 갑자기 왜······.”
“제가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계획을 짜고 대영제국이 파나마 운하 지역을 영구히 소유할 수 있는 판도까지 만들어드렸는데 의회는 제 뒤통수를 치더군요. 제 상심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에드워드는 총리님께서 제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모양이더군요. 애들레이드도 삼촌처럼 생각했던 총리님께 배신을 당했다고 이제는 삼촌과 저녁을 먹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아니, 전하! 언제는 의회에 통 크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화합을 위해 좋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그냥 내 이미지 관리를 위해 한 말이고.
물론 어차피 나중에 의회가 울며불며 좀 도와 달라고 나를 찾아오겠지만 그건 나와 빅토리아, 그리고 에드워드만 알고 있는 비밀이니 왕실 사람들은 진짜로 화가 난 게 맞다.
“그럼 거기서 의회를 상대로 들이받습니까? 물론 그러면 저는 의지를 관철할 수 있겠지만 이 나라 시민들의 대표인 의회의 권위를 인정해주기 위해서 그냥 한번 뜻을 굽혀준 겁니다.”
“으으음······.”
“제가 진짜로 의회와 한판 벌이려 했다면 총리님도 난감하셨을 걸요? 결국 제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러면 내각의 수장인 총리가 의회를 탄압한다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안고 가야 했을 수도 있고 말이죠. 총리님은 제게 빚을 진 겁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네요.”
웰즐리는 잠시 망설이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마구 헝크러뜨렸다.
“아, 이런 제기랄! 알겠습니다. 제가 앞장서서 한번 해보겠습니다. 대신 전통을 파괴하는 총리라는 비판이 쏟아지면 전하께서 막아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죠. 저만 믿으세요.”
먼 미래에 대영제국 과학계의 영웅이라 들을만한 발판을 마련해주려 했는데 그 고마움을 모르다니.
이건 오히려 내가 감사를 받아야 하는 입장 아니냐고.
나는 큰 결심을 한 사람 마냥 끝까지 궁시렁 거리는 웰즐리를 보고 계획을 변경했다.
좋아. 오늘 일은 내 자서전에도 반드시 적어둬야지.
절대로 수정 따위는 해주지 않을 테니 나중에 제발 내용을 지워달라고 사정하지나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