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340)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340화(340/537)
< 자본주의 (2) >
반평생을 함께해온 친우와의 사상적 대립.
카를 마르크스의 뇌리를 순간적으로 아주 오랜 옛날처럼 느껴지는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진짜로···제가 원하는 모든 자료를 그냥 열람해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지. 비서를 붙여줄 테니 보고 싶은 책이 있다면 그쪽에 말만 하게. 그리고 이렇게 종종 자네의 성과를 들려주고 토론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군.”
“감사합니다, 전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자네가 이 세상을 보다 이롭게 할 만한 책을 펴내는 게 곧 내게 진 빚을 갚는 길일세. 그것만 잊지 말도록.”
젊은 시절 품었던 공산주의 낙원의 도래라는 철없는 꿈.
그 꿈을 현실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길을 발견한 마르크스는 감동으로 몸을 떨었다.
“이 세상의 모든 건 경제와 연관되어 있고 경제를 통찰해야 체제의 정합성이 훼손되지 않을 수 있어.”
“이보게 마르크스.”
“엥겔스, 공산주의를 향해 가는 건 좋아. 하지만 철저한 이론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결국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라는 건 지난 혁명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지 않나? 지금 전 세계는 자본에 의해 돌아가고 있어. 나는 이 자본이라는 괴물을 완벽히 이해하고 그걸 초월하는 새로운 담론을 제시할 걸세!”
주먹구구식 논리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프랑스와 독일의 혁명은 어째서 실패했나.
전 유럽에 혁명의 불씨가 타올랐을 때 영국에서는 어째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어째서 이 나라에서는 혁명의 혁자라도 나오면 사람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불온분자 취급을 하는 것인가.
이 모든 건 결국 경제 논리와 연결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본디 대영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에 매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인생 최고의 귀인, 킬리언이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있도록 완벽한 여건을 마련해주며 상황이 확 달라졌다.
도서관에는 없는 생생한 통계부터 실증적인 자료들과 이론이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는지 상세한 과정이 담긴 보고서까지.
마르크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론과 실리를 함께 겸비한 학자로 다시 한번 변모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킬리언은 거의 무려 10년 이상을 꾸준히 마르크스를 불러 그의 학문적 성취를 듣고 기꺼워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지식이 쌓일수록 이 국서의 통찰력이 자신의 상상 이상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사람은 아는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자본주의라 이름 붙인 이 사상의 정체가 파악이 될 수록,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공산주의의 길이 선명하게 보일수록.
킬리언과 나누는 대화는 알게 모르게 마르크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설정한 이 가정이 완전히 틀렸다는 거로군요.”
“유럽으로 한정하면 맞을 수도 있겠지만 인류의 보편적 역사를 고려하면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고 봐야겠지. 세계사 전체를 통틀어 봤을 때 자네의 그 이론은 이 유럽의 체계와 인간의 본성을 어거지로 결부시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거 같은데.”
“제가 아시아의 역사를 몰랐기 때문에 고려하지 못한 맹점이군요.”
마르크스는 원시 공산주의에서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대 자본주의를 거쳐 경제 체제가 발전해왔다는 이론을 주장하려 했다.
하지만 킬리언은 그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아시아의 사례를 들려주며 그 이론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사상적 측면에서도 과학적 사회주의를 정립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저는 학자이지 혁명가가 아니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직접 제시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자네의 말에 영감을 얻은 자들은 그렇지 않을 텐데? 자네가 지금 집필한 책들 중 상당수는 유물론에 근간을 둔 사상이지. 그런데 철학과 인문학쪽은 학문의 특성상 꽤나 철학적으로 쓰여 있단 말이야.”
“철학적인 게 나쁜 겁니까?”
“나쁘지 않지. 하지만 해석의 여지를 주는 건 사실이고 자네의 이론이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자네라는 사람이 하나의 상징이 되면 될수록 해석을 빙자한 교조주의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나?”
“그건 제 책임이 아니···.”
“그럴 줄 몰랐다거나 대처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면 변명거리가 되겠지만, 지금은 알지 않나? 그런데도 그냥 놔두는 거라면 글쎄. 누군가는 자네가 공산주의라는 아편을 만들고 싶어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종교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종종 종교를 비판하는 말을 하고는 했는데 자신의 사상이 종교처럼 무기로 휘둘러질 수도 있다는 실감은 거의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킬리언은 비슷한 말을 하긴 했지만, 그때는 그냥 그럴수도 있겠다 수준이었지 진지하게 고려를 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더 통찰력이 깊어질수록, 학문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킬리언의 경고를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교조주의화 된 사회, 누군가의 말을 이리저리 해석하고 자의적으로 적용해서 권력을 잡는 사회. 그리고 반대파를 숙청하고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사회. 이거 완전히 부패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의 종교계 아닌가?”
“저는 종교가 사람을 기만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종교도 분명 서로 화평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는 말이 버젓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있지 않나?”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저의 신념을 바꿀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바꿔서는 안 되지. 하지만 자네의 이론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사회를 좀먹는 건 결국 자네의 이름과 평판을 땅에 떨어트리는 행위가 아닌가. 그런 자들에 대한 경고, 그런 자들에 대한 비판도 함께 첨부하는 게 오히려 자네의 혜안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는 일이 아닐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세상의 진리를 규명하고 탐구하는 학자라고 믿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이론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세상을 오염시키려는 벌레들을 미리 규명하는 것도 하나의 진리를 밝히는 거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자들의 존재까지 미리 내다보고 그 대처법까지 마련한 본인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수직으로 솓구치겠는가.
딱히 후대의 평가에 연연해서라기 보다는 단순히 이론을 정립하는 걸 넘어 그 이론의 남용 가능성까지 차단해두는 건 보다 더 고차원의 작업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세상에 혁신적인 이론을 남긴 이들은 많지만, 카를 마르크스라는 사람의 이름은 그런 이들조차 뛰어넘은 특별한 무언가를 상징하게 될 테니.
“알겠습니다. 전하의 조언을 진지하게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이걸 연구해보면 어떨까?”
“이건 뭡니까? 식민지 경제의 종말?”
“지금 유럽 강대국들의 방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결국 식민지 확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식민지를 경영하고 단순 자원 착취로만 일관하는 게 정말로 지속 가능한 방법일까? 이건 자네가 관심 있어 하는 자본가의 프롤레타리아 착취보다도 더욱 빠른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흥미로운 관점이군요. 전하의 말씀대로 둘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고 식민지 경제가 어떻게 붕괴되게 될지 분석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 세계가 진정한 공산주의로 한걸음 씩 나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터.
마르크스는 사회의 진화를 관조하고 분석하는 이 작업을 자신의 천직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비록 식민지 경제의 붕괴는 극히 일부의 사람에게만 공유 됐으나, 그 이론을 좀 더 간략화 한 경제 이론들은 별 문제 없이 발표 됐다.
그는 그렇게 대영제국에서 끊임없이 명성을 확장해나갔다.
* * *
마르크스는 젊었을 때만 해도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반드시 나타날 숙명적인 과정이라 믿었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혁명적 전환의 시기를 맞아야 하는데 그 중간 단계를 책임져줄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히 이 이론에 대한 많은 비판이 있었다.
당장 킬리언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반드시 과두정 독재로 귀결될 거라 했는데 마르크스도 지금은 이걸 부정하지 않았다.
특히 킬리언이 말한 과두정 독재는 이 공산혁명이 적합한 단계에서 발생하지 않았을 때를 콕 집어 말한 거라 더더욱 반박이 불가능했다.
“권력은 멀쩡한 사람마저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마약과도 같지. 사람의 본성을 보고 싶으면 아주 작은 권력이라도 줘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만큼 권력은 사람의 추악한 면을 그대로 드러나게 한다네. 하물며 나라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이라 한다면 말할 것도 없지.”
“그 말씀은 전하께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래서 나도 굳이 지금 이상의 권력을 잡으려고 하지 않지. 여기서 더 나아가 봐야 끝이 좋지 않을 걸 훤히 알거든.”
“······.”
“자네도 권력을 한번 쥐어보면 이론적으로 철인 정치가 어떻고 하는 게 얼마나 공허한 이론인지 알게 될 걸세.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이 그만한 위치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속편한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영역.
그러니 사람이 아닌 체제가, 사회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굴러가도록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점점 더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전하께서는 아직 자본이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는 걸 어떻게 보십니까?”
“딱 잘라 말하면 재앙이자 저주라 할 수 있겠지. 아직도 농업국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무슨 수로 공산낙원을 건설해? 흙으로 쌀을 연성할 수 있는 기적의 연금술사라면 모를까.”
“그런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숙청의 도구로 변질 될 수밖에 없다······.”
“무조건이지. 그러니까 재앙이라는 것이고.”
그랬다.
사상적으로 완전히 정립이 됐다고 하더라도 현실적, 경제적으로 자립이 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좋은 이론도 빚 좋은 개살구가 되는 법.
자본주의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고대 노예제 시대로 가서 백날천날 자본주의를 떠들어봐야 씨알이나 먹혀 들어가겠는가.
모든 사회가 똑같은 발전과정을 거친다는 기존의 이론은 폐기했으나,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완성에 이르지 않고는 나오기 힘들다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 진정으로 공산주의 사회의 도래를 보고 싶다면 일단 자본주의를 완벽히 완성하는 게 순리 아니겠는가.
그런 깨달음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낀 뒤부터 마르크스는 또다시 성장했다.
넘쳤던 재능과 노력에 의지는 물론이고 사명감과 책임감까지 더해지자 그를 추앙하는 학생들과 학자들이 날로 불어났다.
그뿐인가.
그의 업적과 성과를 인정하고 학계 각층에서 엄청난 러브콜이 쏟아지며 누가 봐도 사회적으로 대성공을 한 명사의 반열에 앉게 됐다.
여기에 킬리언이 자금까지 펑펑 지원해주고 있으니 생활수준도 여느 귀족 부럽지 않은 수준으로 올라갔다.
본래부터 마르크스는 내 사전에 절약이란 없다고 할 정도로 검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전까지는 친우인 엥겔스의 지원으로 그런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원자가 이 나라 최고의 부자로 바뀌었으니 사치 수준이 얼마나 올라갔겠는가.
와인은 반드시 프랑스 부르고뉴 산 최고급만 고집했고 하루에 한번씩은 고기를 칼로 썰어야만 성이 풀렸다.
가정부도 말이 통하지 않는 이는 재미가 없으니 최소한의 대화가 통하는 지혜로운 사람을 구했고, 여기에 보수적인 성관념과는 별개로 여자 관계 문제까지 더해졌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무슨 저런 생활을 하는 사람이 공산주의, 노동자 착취를 운운하냐 하겠지만 본래 마르크스는 사상과 개인의 사생활은 따로 두는 경향이 강했다.
명성과 지위는 물론 부까지 거머쥐게 된 마르크스는 좋아하는 연구를 하고 사치를 즐기며 나날이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했고.
어느새 사람들은 그를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부르기 시작했다.
마르크스는 그 칭호를 굳이 정정하려 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 두 가지 체제를 전부 아우르는 현대의 진리를 개척할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게 바로 배신이라는 걸 왜 모른다는 말인가!”
진정한 현자는 어느 시대에서든 이해받지 못하는 법이라지만 한때 가장 친했던 친우마저 자신을 비판하는 것인가.
마르크스는 대놓고 혀를 차며 울분에 차서 삿대질까지 하는 엥겔스를 바라보았다.
과거에는 그렇게나 든든해 보였던 이상의 동지가. 지금은 너무나도 한심하고 철없게만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