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485)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485화(485/537)
< 풍운의 런던 사교계 (3) >
러시아와 오스만의 전쟁은 나름 16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뿌리깊은 전통이다.
처음에는 강대국이었던 오스만이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나 그건 모두 과거의 영광에 불과할 뿐.
이미 한참 전부터 러시아의 샌드백 신세가 된 오스만은 당연히 밀고 내려오는 러시아의 공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단순히 러시아의 군대만 남하한 게 아니다.
세르비아나 루마니아, 불가리아, 몬테네그로에서 들고 일어난 독립군이 러시아와 호응하며 원정의 불리함을 대폭 상쇄해주기까지 했다.
오스만은 각국에 다급히 SOS를 날렸지만 이번 전쟁은 저번 전쟁과는 달랐다.
누가 봐도 러시아의 꿍꿍이가 다른 곳에 있다는 건 확실했지만 일단 전쟁 명분이 너무 확고했다.
민족주의는 동유럽만이 아닌 유럽 전역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최신 유행이었고, 이때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발칸 반도에 독립국이 세워지는 걸 찬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이미 그리스가 떡하니 독립한 선례를 남긴 이상 다른 유럽 국가들의 독립을 승인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과거라면 몰라도 이미 세상의 중심은 유럽으로 옮겨왔는데 언제까지 오스만이 유럽에 자리를 잡게 놔둬야 하는가.
게다가 몇몇 사람들은 현 상황을 오히려 기독교 문명의 승리라는 식으로 포장해서 이용하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야 비로소 세상이 올바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악한 이슬람 이교도들은 나날이 추락하고 있고 우리 기독교 국가들은 명실상부 이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검을 쥔 현대의 성기사들이 불신자들을 단죄하고, 불신자들의 무기는 믿음의 갑주로 무장한 우리에게 닿지 못합니다! 그게 어째서인지 아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끝까지 정복하라 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때가 지금 도래한 것입니다!”
철지난 종교 떡밥이 과연 영향력이 클까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컸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펴냈네 어쨌네 해도 결국 19세기 유럽을 지배하는 건 기독교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도 기독교가 이슬람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걸 내심 뿌듯해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그런 마음을 그대로 표출했다.
물론 그런 여론쯤이야 진짜로 국익이 걸려 있으면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그럴 여유도 없었다.
개전과 동시에 발칸 반도 전역에서 일제히 독립군들이 봉기.
그대로 밀고 내려온 러시아군이 오스만의 방어군을 격퇴하며 폭풍처럼 남하.
불과 수개월만에 산 스테파노 근처까지 진격해버린 관계로 다른 국가들에게 개입할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오스만은 얌전히 패배를 인정하고 러시아와 산 스테파노 조약을 체결했지만, 잠자코 영토를 빼앗기지는 않았다.
협정의 공신력을 위해 오스만은 대영제국과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프랑스의 직접적인 개입을 요구했고, 러시아는 아마도 당초 목표였을 흑해의 완전 장악에는 실패하게 됐다.
하지만 승전은 승전.
러시아는 이 대대적인 성과를 널리 알리며 러시아 제국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널리 뽐내려 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오스만의 휴전 협정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대영제국과 오스트리아의 결혼 동맹 소식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며 러시아의 승전은 놀랍도록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원래 세상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곳 아니던가. 관심을 받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자격을 갖추고 설쳐야겠지?”
* * *
지금까지 대영제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두 황실의 결합이 마침내 공식적으로 공표되자 런던 전역은 축제 분위기에 젖었다.
황자와 황녀가 무려 다섯이나 되고 나이가 스물이 넘은 사람만 셋인데 아직까지 누구도 결혼을 하지 않은 상황.
여기에서 다음대의 황위를 이을 황태자가 드디어 첫 시작을 끊는다고 하니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진심으로 이 결혼을 반겼다.
황태자가 동성애자가 아니냐, 혹은 남성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이들은 싸그리 사라졌고 모두가 하루빨리 결혼식이 당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기념비적인 혼인식을 앞두고 내가 화끈하게 지갑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런던만이 아니라 어지간한 대도시에는 전부 황태자의 결혼을 기념하는 축제를 열어주었고, 맥주와 음식까지 뿌려댔다.
돈이 제법 깨지긴 했지만 에드워드의 새로운 시작과 외국인인 황태자비가 대영제국에서 환영받을 분위기를 조성하려면 이 정도 지출은 감수해야 한다.
일단 이렇게 대대적으로 이벤트를 키우자 연일 연락이 쏟아졌다.
비스마르크는 약속대로 본인이 직접 참가하겠다고 편지를 보내왔으며 스페인 왕실과 독일 연방의 귀족들, 심지어 얼마전 전쟁을 마친 러시아와 오스만에서까지 축하를 건넸다.
하지만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가고 모두가 평등하게 나이를 먹는 게 세상의 이치다.
누군가의 시작은 누군가의 끝이 되는 법이며 태어나는 자가 있다면 떠나가는 자가 있다.
그리고 웰즐리와 함께 한창 결혼식에 참석한 귀빈 명단을 추리고 있을 무렵.
나는 뜻밖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폐하, 참석이 예정되어 있던 프랑스의 기조 전 총리님이 오늘 아침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불과 일주일 전에 안부 인사를 했는데.”
“최근 심장이 조금 좋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어제 잠이 드시고 오늘 아침에 그대로 일어나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군. 기조 총리가······.”
이제 그럴 나이가 됐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막상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고 들으니 입맛이 조금···아니지 아주 많이 썼다.
웰즐리 역시 뻑하면 런던으로 쪼르르 달려왔던 기조 총리와의 연이 얕지 않았기에 목소리에서 자연스레 씁쓸함이 묻어 나왔다.
“그래도 고통스럽게 가지 않아서는 다행이네요. 저도 나중에는 그렇게 가야 할 텐데.”
“아직 정정한 분이 재수없게 뭔 소리를 하는 겁니까?”
“정정하다니요. 앞으로 길어도 10년 뒤에는 정계에서 물러날 겁니다.”
에드워드의 결혼식을 앞두고 이런 부고를 전해들으니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심란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웰즐리의 말마따나 건강이 박살나지도 않고, 암 같은 거에 걸려서 내내 고통받다가 죽은 것도 아니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편안하게 잠을 들고 그대로 저 세상으로 떠났다면 일종의 호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지인의 죽음이라는 건 아, 떠났구나 하고 간단하게 넘겨버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게 젊은 나이에 갑자기 떠난 것도 아니고 그만큼 나 역시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빅토리아야 워낙 장수한 사람이니 문제 없겠지만 과연 나는 어떨까?
십중팔구는 내가 먼저 떠날 가능성이 높을텐데 그러면 빅토리아는 잘 지낼 수 있을까?
10년만 있으면 은퇴하네 마네 했던 웰즐리의 말이 예전과는 다르게 코앞으로 바짝 다가온 느낌이다.
생각해 보면 기조 덕분에 프랑스를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었는데 저번 안부 인사가 마지막일 걸 알았다면 조금 더 챙겨줄 걸 그랬다.
같은 나라 사람도 아니고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서 적절히 도움을 주고 받은 사람인데도 마음이 이렇다.
말년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서 존경받는 원로로서 대우 받다가 떠났으니 딱히 불만은 없었겠지?
원역사의 삶과 비교하면 그래도 끝까지 좋은 마무리였겠지만 사람의 마음속은 직접 듣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 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정치나 이해관계를 넘어선 인간적인 교류였기에 더욱 마음에 걸렸다.
-폐하, 소식은 들었습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곧 결혼하신다지요?”
-그렇게 됐습니다. 이 아들놈이 지금까지 속만 썩이더니 이제야 효도를 하려는 모양이네요.
-축하드립니다. 저도 가서 축하를 드릴테니 오랜만에 폐하를 알현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허허허.
-무슨 영광까지야. 런던에 오면 언제라도 시간을 내어드릴 테니 꼭 오세요. 수행원도 보내드릴테니 마음 편하게 쉬다가 가시면 되겠네요
정치에서 은퇴한 사람답게 가타부타 복잡한 말은 하지 않았고 대화는 그냥 거기서 끝났다.
“후우···마음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산 사람을 계속 살아야죠. 다른 사람들은 차질없이 다 오는 겁니까?”
“예. 일단 해외에서 오는 귀빈들은 빈틈없이 맞이하라고 외무부에 몇 번이고 강조를 해두었습니다. 조금 안됐지만 외무부 실무진들은 당분간 집에 들어가지 못할 겁니다.”
“황실 행사 때문에 수고하는 거니 우리쪽에서 야근비 챙겨주겠다고 슬쩍 말해주세요. 다 같이 즐기는 축제인데 그들만 혹사 당하는 건 불쌍하니까요. 돈으로라도 보상해줘야죠.”
“최소한의 위로는 되겠네요. 아, 그리고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폐하의 개인 인맥으로 초대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 적힌 사람들이 틀림없는지 한번만 더 봐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어디보자···이 정도면 괜찮겠네요.”
이미 두 번이나 확인을 해본 명단이니 잘못된 게 있을리가 없고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웰즐리가 종이를 도로 건네줬다.
“그럼 오랜만에 다 같이 만날 수 있겠네요. 당일 날에 좋은 술이라도 한 잔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거야 좋죠. 그날은 와인보다는 위스키가 좀 땡길 거 같은데 한번 달려봅시다.”
“하여간 우리는 이렇게 죽어라고 일하고 있는데 제임스 그 인간은 팔자좋게 휴양지에서 말년을 즐기고 있다니. 부러운 걸 넘어서 요새는 조금 화가 날 지경입니다.”
“안 그래도 저번 주에 어디서 사진기사까지 대동하고 사진을 찍었는지 해변가에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냈더군요. 괜히 은퇴시켜줬나 후회가 된다니까요.”
“쯧쯧, 나이가 들었다고 풀어져서는. 당장 급한 일이 생겼다는 핑계로 호출하죠.”
웰즐리가 진심으로 부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생각해보면 웰즐리 역시 20대 때부터 나와 함께 정계에 몸담은 뒤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쉬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
지금까지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수십년간 계속 달려왔으니 저런 여유로운 은퇴 라이프가 진심으로 부러울만 하다.
사실 나도 배알이 꼴리는데 웰즐리야 오죽하겠나.
“그래도 제임스 그룹의 뒷정리도 다 하고 아름답게 퇴장한 사람이니 당분간은 그대로 내버려 둡시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뒤에서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해준 사람 아닙니까.”
“수고는 제가 더 했죠. 제임스 걔는 폐하 덕분에 세계 최고의 대부호라는 명성을 얻고 떵떵 거리면서 사방에 돈을 뿌리고 살았는데요.”
“대신 그건 진짜 자기의 소유가 아니지 않습니까. 총리님의 총리직은 총리님의 것이고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제임스가 이룩한 건 그가 죽으면 전부 나에게로 귀속되어 있는 일종의 대여물에 가까웠다.
그의 자식들에게도 다 한자리씩 물려줄 예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제임스 그룹은 제임스의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대영제국의 총리직은 누가 뭐래도 웰즐리의 것이었고 역사상 최장기 총리로 역사에 길이 남을테니 웰즐리가 그다지 꿀린 건 없다.
“그나저나 제임스가 많이 기뻐하긴 하겠네요. 그 인간 에드워드 전하를 꽤나 많이 아끼지 않았습니까. 진짜로 친조카처럼 귀여워 했었는데.”
“친조카나 다름없죠. 에드워드도 아마 그렇게 생각할 걸요? 한창 방황할 때 제임스의 덕을 많이 봤다고 입이 닳도록 말을 했으니까요. 이번 결혼식에도 무조건 참석하겠다고 주기적으로 강조를 했으니 아마 누구보다 신나서 날아올 겁니다.”
“하하하! 이거 제 아들내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석 결혼식 보다도 더 기대가 됩니다.”
웰즐리는 확정 명단을 넘겨주고 오겠다며 잠시 방을 나섰고, 나는 잠시 소파에 앉아 옛 추억을 되새겨 보았다.
생각해보면 제임스와의 만남이 내 새로운 인생의 진정한 시작이나 마찬가지였지.
은퇴 라이프를 즐기겠답시고 대영제국을 떠난 뒤에는 진짜로 보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시금 기분이 좋아졌다.
그나저나 웰즐리 이 인간은 명단만 준다더니 무슨 웨스트민스터까지 갔나 왜 돌아오질 않는 거야?
“총리님, 혹시 지금 궁 밖까지 나갔다 오시는 겁니까?”
“······.”
밖에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멀리 간 건 아닌데 이상하게도 웰즐리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온 건 내가 친히 커피를 내려 잔에 따라 테이블 위에 세팅을 다 마쳐둔 뒤였다.
“무엄하게 황실의 국서에게 이런 걸 준비하게 하다니 이거 불경죄입니다.”
“폐하.”
“···음? 혹시 뭐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방금 전보를 받았습니다만···아무래도 커피는 다음 기회에 마셔야겠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침울한 눈으로 터져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입술을 깨물고 내게 전보지를 건넸다.
“제임스가 주님의 곁으로 갔다고 합니다.”
“······.”
뇌가 순간적으로 귀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이해하는 걸 거부했다.
그리고 천천히, 한 박자 늦게.
손에 쥐고 있던 커피를 바닥에 쏟아버린 채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머릿속에 스쳐가는 의문이나 질문은 수도 없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는 어떤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고.
나는 한참동이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검게 물든 카펫의 얼룩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풍운의 런던 사교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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