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490)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490화(490/537)
< 권위의 맛 (2) >
1835년 11월 25일 태생.
앤드루 카네기는 스코틀랜드 던펌린에서 태어나 일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넘어왔다.
용광로에 석탄을 붓는 일부터 우체국에서 전보 배달을 하며 전신기사부터 철도회사 직원까지.
온갖 일을 거치며 조금씩 경험을 쌓았고 계속 출세를 거듭해 이내 제임스 스틸의 사장 자리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카네기. 너는 우리 집안의 자랑이다!”
“우리 집안에서 황족과 대면하는 사람이 나오다니!”
제임스 스틸의 사장이 됐을 때도 주변에 엄청난 선망을 받았지만, 가족이나 사촌들은 그가 킬리언과 처음 만났을 때 더욱 더 엄청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건 카네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혹시 자신이 스코틀랜드 출신이라서 과하게 호들갑을 떠는 것인가 싶었지만 런던에 와서 보니 라이벌인 록펠러 역시 별반 다를 건 없어 보였다.
킬리언과 알현을 마치고 난 뒤 숙소로 안내 된 그는 시작부터 합중국에서는 겪어보지 못했던 고풍스러운 환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저택은 16세기부터 지방의 귀족들께서 런던에 오셨을 때 종종 제공되었던 곳입니다. 세월이 오래되긴 했어도 계속 보수를 해서 이용하시기에 불편함은 없으실 겁니다.”
“300년이나 된 전통있는 곳이라는 거군요.”
합중국의 신흥 부자들의 가장 큰 컴플렉스가 바로 역사와 전통의 부재였고 사람은 본디 자신이 갖지 못한 무언가에 끌리게 되어 있다.
카네기는 킬리언이 일부러 자신을 이런 저택에 묵게 했다는 걸 잘 알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기분이 좋았다.
‘외부에서 온 귀족들이 머무는 곳에 나나 록펠러를 머물게 했다는 건 곧 우리도 그 정도의 위치로 대우해주겠다는 말이겠지?’
제임스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공개 선언을 한 뒤로 백작위를 받은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도 훗날 킬리언의 자식의 오른팔이 된다면 그룹의 2인자이자 대영제국의 백작 정도는 충분히 될 수 있다는 뜻일 터.
황족이 그룹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건 위신이 떨어지니 실질적 관리는 2인자가 하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사실상 2인자가 부와 권력, 명예까지 한꺼번에 다 가져가는 셈이 된다.
하지만 카네기는 본질적으로 냉철한 사업가였던지라 허영심에 눈이 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너무 들뜨지 않게 조심해야겠어.”
킬리언이 무얼 노리고 있는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훤히 유추가 된다.
“챙길 거만 챙겨서 빠지자. 그래. 이런 건 너무 깊게 빠지지만 않으면 될 거야.”
저기서 접대를 해준다는데 굳이 뺄 이유는 없지.
주는 건 주는대로 받고 본인의 소신을 지킬 수 있다면 자신은 손해를 볼 게 없다.
그렇게 생각한 때가 있었다.
바로 어제까지는.
“허허, 카네기 경, 록펠러 경. 반갑습니다. 웰링턴 공작 리처드 웰즐리입니다.”
“바, 반갑습니다! 앤드루 카네기입니다! 웰링턴 공작이시라면 혹시 그 웰즐리 총리님의···.”
“예. 제가 웰즐리 총리의 친형 되는 사람입니다. 폐하께서 직접 초대한 귀한 손님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영광이지요!”
웰링턴 공작가라면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격퇴한 아서 웰즐리와 대영제국 역사상 최장기 총리로 군림한 웰즐리 총리가 속한 가문이다.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최고의 귀족 중 한명이라 할 수 있는데 초장부터 이런 거물이 응대를 해줄 줄이야.
공작가의 자택인 앱슬리 하우스에서 초대장이 왔을 때는 혹시나 했지만 직접 와서 보니 이건 너무나도 상상 이상이지 않은가.
그냥 저냥 귀족 분위기만 만끽하게 해주려는 줄 알았는데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고위 귀족이 아닌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폐하의 손님이시라고요? 그러면 우리 대영제국의 귀빈이나 마찬가지죠. 반갑습니다, 샌드위치 백작입니다.”
“아아! 그 샌드위치 백작 님···저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서포크 백작입니다. 카네기 경이라고 하셨지요? 언제 제 자택에도 한번 놀러 오시죠.”
“예. 영광입니다.”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죄다 백작에 황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공작들까지.
부담감으로 어깨가 위축될 지경이었는데 놀랍게도 이들은 자연스럽게 카네기와 록펠러를 파티의 주인공으로 대접해주었다.
아무리 황실의 초대를 받았다고 해도 자신들은 엄연히 미국의 신참 자본가들인데 이런 대우를 받는 게 말이 되는 걸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며 버벅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사람은 본디 적응의 생물이라고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두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들과 어울리며 어느새 자신들도 귀족이 된 것처럼 마음이 풀어졌다.
승마나 사격, 낚시 같은 건 미국의 부자들도 충분히 즐기는 취미였지만 원조 맛집의 맛은 역시 차원이 달랐다.
특히 디너 파티나 고위 귀족들만의 신사 클럽은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평민들이 발을 디디긴 어려운 장소라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시군요. 그러니까 카네기 경은 그 폐하께서 직접 선택한 사업가라는 뜻 아닙니까?”
“하하하, 카네기 경이라니 그렇게 불릴만한 신분은 아닙니다.”
“신분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카네기 경께서는 우리 대영제국 출신이고 저 대서양 건너편에서 조국의 위신을 한층 드높인 애국자가 아니십니까. 그런 애국자라면 폐하께서도 그 공을 기려 새로 작위를 만들어 주실 가능성도 충분하죠. 아마 몇 년 내로 그렇게 될 겁니다.”
“하하하···.”
단순히 돈을 발라서 귀족들의 생활을 흉내내는 게 아니라 진짜로 수백년 전부터 전통을 유지해온 고위 귀족들이 자신을 인정해준다.
합중국에서 대영제국의 귀족들을 동경하며 어거지로 귀족 생활을 흉내내는 졸부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호사라는 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 아니겠나.
그리고 비단 이건 카네기에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록펠러 경의 안목은 정말로 날카롭군요. 확실히 다른 졸부들과는 격이 다른 넓은 시야를 가지고 계신 거 같습니다. 저는 이런 게 바로 귀족적 사고가 아닌가 합니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니요. 귀족이라고 해도 능력이 없는 자들은 도태되는 게 바로 현 시대입니다. 저는 록펠러 경 같은 사람이야말로 신 시대의 귀족이라 불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요.”
“···감사합니다.”
신사 클럽에서 자주 열리는 비즈니스 토론 같은 곳에서 카네기나 록펠러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종횡무진 활약하고 다녔다.
콧대 높다고 알려진 이 대영제국의 귀족들이 자신들의 말에 주목하고 감탄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밤이 되면 귀족원에 속한 귀족들과 함께 만찬을 즐기고 바로 다음날 전통이 깃든 공연장에서 멋들어진 공연을 보기로 약속을 잡는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귀족들은 물론 황실의 인사들까지 참관하는 더비의 특등성을 배정받은 그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섬기게 될 사람을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이름은 많이 들었네. 카네기와 록펠러라고.”
“예! 앞으로 황자님···아니, 대표님을 보좌할 앤드루 카네기라고 합니다.”
“아버님이나 귀족들 모두 자네들이 이 나라의 어떤 귀족들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는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군. 앞으로 잘부탁하네. 여기 앉아서 경기나 같이 보기로 하지.”
대영제국 황실의 차남. 알프레드가 자신의 양 옆자리를 툭툭 두드리자 카네기와 록펠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번 인사를 한 뒤 바로 착석했다.
세계 최강대국 황실의 차남의 바로 옆에 앉아 황제의 말이 활약하는 경마 경기를 지켜본다?
이게 현실성은 저 우주 밖으로 날아가버렸고 두 사람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크게 의식하지 못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돌아가기 싫다.’
‘이런 게 바로 귀족의 삶인가?’
숙소에서 매일 잠에 들 때마다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위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누를 수 없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만의 힘으로 승승장구하며 막대한 부를 이루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 최고의 권력자에 발탁 되어 황실의 심복으로 고위 귀족에 이르기까지.
카네기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연합제국의 공작이 되어 알프레드와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 * *
비슷한 시각.
런던 말보로 하우스.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결혼식 때는 제가 소란을 일으켜 참으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축복으로 가득했어야 할 두분의 결혼식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아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니에요. 폐하께 이미 총리님께서 너무 감동을 받아 눈물을 보이신 거라고 들었는 걸요. 전하도 저도 아무렇지 않으니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오히려 전하께만 사과하셔도 됐을 텐데 저까지 이렇게 따로 만나 사과를 해주시다니 정말 감동이네요.”
비스마르크는 눈앞에서 환하게 웃는 기젤라 황태자비를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감동이라. 프로이센의 총리가 오스트리아 출신 황녀에게 직접 사과한 걸 이런 식으로 돌려돌려 강조하는 건가.
이렇게까지 우아하게 돌려 먹일 수 있다니 역시 자신의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다.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보여 신문의 1면을 차지한 건 예정에 없던 대굴욕이었으나 진정한 승부사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법이다.
총리의 눈물에 온갖 의미를 부여해 해석해 호들갑을 떠는 건 대영제국만이 아니라 프로이센 본국 역시 마찬가지.
뼈아픈 실책이었으나, 돌아가서 미친 망아지마냥 날뛰는 융커들을 손봐주기 전에 지금까지 계속 신경이 쓰였던 중요한 과제 하나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좋게 봐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신문에서 하도 허튼 소리를 많이 해서 전하께서 오해하실 까봐 내심 걱정했었습니다.”
킬리언과 에드워드에게 부탁해 직접 사과를 하겠다는 핑계로 찾아왔으니 거절은 하지 못할 터.
예상대로 드디어 독대할 수 있게 된 기젤라 황태자비는 과연 듣던 대로 정말로 순수하고 착하게만 보였다.
그렇게나 깊은 심계를 저런 천사같은 가면으로 가릴 수 있다니 어떻게 보면 진짜 강적은 에드워드 황태자가 아니라 황태자비일지도 모르겠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총리님의 뜻은 너무 명확한데 오해를 할리가 없잖아요?”
“허허허, 그렇군요. 역시 제 기우였던 모양입니다.”
네가 진짜로 주의하는 건 뭔지 다 알고 있으니 괜한 연기하지 마라 이 말이로군.
확실히 쉽지 않은 상대다.
하지만 돌려말하기라면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 사람이 바로 비스마르크다.
그는 외교의 대가라는 자신의 명성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은 표정으로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사실 오스트리아의 황녀께서 대영제국의 황태자비로 확정 되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놀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황태자비께서는 마치 태어나셨을 때부터 대영제국의 황족이었던 것처럼 너무나도 이 자리에 잘 어울리십니다.”
-너는 이제 대영제국의 사람이니 네가 있는 위치에 충실해야 하는 건 알고 있겠지?
“정말 그렇게 보이나요? 다행이다. 저 사실 정말로 걱정 많이 했거든요. 제 가문은 뭔가 콧대 높다는 편견도 있어서 여기 와서 잘 융화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라요. 그런데 정말로 제가 대영제국 황태자비로서 손색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죠? 혹시 이 나라의 시민들도 다 그렇게 생각해줄까요? 그렇지 않을까봐 아직도 조금 걱정이 돼서요.”
-아무리 그래도 나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람이고 대영제국의 황태자비라고 해도 대영제국 시민들이 나를 고향의 황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시민들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오스트리아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
기젤라의 말에 함축된 의미를 읽어낸 비스마르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과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나온다 이건가.
“황태자비께서 진심을 보이시면 당연히 시민들도 모두 인정할 겁니다. 미미하겠지만 저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총리님의 건강을 위해 항상 기도드릴게요. 총리님께서 굳건하셔야 프로이센이 언제나 바로 설 수 있지 않겠어요? 저도 대영제국에 속한 몸이지만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평화가 앞으로도 쭉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뭐지 이 말의 의미는?
돌아가서 대독일주의가 더 번지지 않게 융커들을 잘 억누르고 있으라는 뜻인가.
이런 타이밍에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말을 돌려하는 배짱과 정세 파악능력이라니 역시 범상치 않은 사람이다.
자신은 저 나이 때 뭘 하고 있었더라?
순간적으로 엥겔스와 마르크스를 상대로 열심히 주먹질을 하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비스마르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누구도 의도치 않은 혼자만의 공방속에서 비스마르크는 기젤라에게 일종의 벽을 느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