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501)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501화(501/537)
< 평화로의 길 (3) >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세기를 관통하는 명언이다.
하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 또한 틀린 게 없는 말이기는 하다.
비스마르크는 가끔씩 아무것도 몰랐던 젊은 시절이 지금보다 더 마음이 편하고 고민이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대국을 바라보는 안목이 생기면서 현재만이 아닌 미래를 아우를 수 있게 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치는 생물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마물과도 같다.
젊었을 때는 이걸 몰랐기 때문에 모두가 자신감이 넘친다.
분명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저 멍청한 정치인들은 대체 왜 이런 판단을 하지 않지?
내가 저 자리에 들어가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라는 답답함을 느끼는 게 젊은 청년들이 정치에 뛰어드는 가장 일반적인 경로였다.
부끄럽긴 하지만 비스마르크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가 젊었을 때 본 중앙의 융커들은 너무나도 무능해 보이는 밥버러지들 그 자체였다.
정치 그거 그냥 불만 있는 사람들 말 조금 들어주는 척하고, 국가의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제 3자의 시선에서 볼 때는 그 누구보다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했지만 이게 막상 자신이 당사자가 되어보니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총리님, 군부는 총리님이 뭘 말씀하시더라도 무조건 수긍하겠다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대영제국에서 온 귀빈들은?”
“프리드리히 왕태자 전하나 폐하와 자주 담소를 나누신다고 합니다.”
“그래? 그쪽 황태자와 황태자비는 항상 같이 움직이고 있나?”
“예. 그거야 당연히···.”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에드워드와 기젤라는 킬리언의 눈이자 귀나 마찬가지다.
약속을 얼마나 잘 이행하는지 매의 눈으로 주시하며 이쪽을 관찰하고 있을 게 뻔했다.
물론 그건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이 계약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건 프로이센도 아주 많았으니까.
다만 자신의 일처리 방식이 거의 생중계 된다고 생각하면 이건 조금 신경이 쓰였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프로이센 내에서 총리의 권력이 공고해지면 공고해질수록 대영제국의 권력 구도가 얼마나 단단한지 실감이 됐기 때문이다.
여당과 황실, 귀족원이 완전히 한 몸처럼 뭉쳐있으면서도 야당을 적당히 살려놓는 균형.
여기에 어떤 일을 처리할 때 항상 자신은 뒤로 쏙 빠져서 부담을 최소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비스마르크 본인도 어떻게 따라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보았다.
당장 이번 공작도 킬리언의 방식을 충실히 참고해서 활용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바라보는 안목.
이거 하나만큼은 갈고 닦는다고 해서 킬리언처럼 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비스마르크가 완전한 친대영제국파 노선을 타고 있는 이유의 태반은 사실 킬리언의 저 직관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야 그가 가진 권력이나 재력, 정치력을 주목하겠지만 비스마르크는 달랐다.
최소한 킬리언이 살아있는 동안은 대영제국이라는 든든한 동아줄을 무조건 잡고 있는 게 맞다.
그렇게 세계 2인자의 자리만 사수하고 있어도 프로이센이 100년 뒤, 200년 뒤에도 유럽의 지도국으로 남아있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테니까.
“총리님, 그런데 어차피 지금 이대로만 가도 대영제국을 제외하면 본국을 견제할 수 있는 곳은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나?”
“예. 러시아는 우리가 먼저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무엇도 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가고 있고, 프랑스는 인구와 경제 모두 점점 우리에게 뒤질 거라는 게 지배적인 예측 아닙니까.”
“프랑스야 그렇겠지. 솔직히 말할까? 나는 프랑스쪽은 걱정조차 하고 있지 않네.”
프랑스가 얕잡아 볼만큼 약한 나라가 아닌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건 프로이센이 아무리 강해져도 절대 변하지 않을 불변의 진리였고, 비스마르크도 절대 프랑스를 얕잡아 볼 마음은 없었다.
앞으로 유럽 대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국가를 뽑으라고 하면 단연코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맞다.
대영제국도 그걸 잘 알고 있으니까 이 두 나라와 모두 친하게 지내며 대륙을 통제하려는 것이고.
“예전에야 프랑스와 대치도 하고 긴장관계도 조성했지만, 이제는 아니야. 프랑스도 우리도 서로 싸워봐야 더 나올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왜 대립하겠나.”
해외 식민지 개척에서도 아직까지는 타협이 잘 되고 있으며 이번에는 역사적인 결혼까지 성립시키지 않았나.
“프랑스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섬나라인 대영제국을 제외하면 자신들이 유럽 대륙 최강국이라고 자부했을 텐데 우리가 더 강해지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거 같은데요.”
“달가워하지 않으면 어쩔 건가. 이미 전쟁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옛날 옛적에 끝났는데. 그리고 단순히 인구만 앞선다고 해서 국력이 강해진다는 건 너무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네.”
당장 인구수로만 따지면 러시아가 대영제국보다 강해야 하는데 지금 그런 소리를 하는 머저리는 아무도 없다.
중요한 건 기술과 산업의 발전, 그리고 그 산업의 발전을 계속 촉진시킬 과학자들의 확보다.
“앞으로의 전쟁도 마찬가지야. 이제 머리수로 싸우는 시대는 서서히 끝나고 있다고 봐야겠지. 물론 머리수가 적어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게 이번 일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건가요?”
“있고 말고. 애초에 나도 융커 출신인데 내가 융커들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런 개혁을 단행할리가 있겠나.”
프로이센은 앞으로 더 강해져야 한다.
프랑스와 실제로 싸울 일은 이제 없겠지만, 실제로 싸운다면 6개월 안에 초전박살 낼 수 있을 정도로···아니.
이건 아무리 프로이센이 더 강해져도 너무 무리한 목표같으니 논외다.
“융커들의 기반은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토지와 대농장이지. 하지만 토지와 농장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힘을 잃어가고 있고 결국에는 끝장나게 되어 있어. 대영제국을 좀 보라고.”
킬리언은 융커들 중심의 사회가 프로이센을 경직시키고, 토지 확장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질 거라는 식으로 말했었다.
비스마르크도 이걸 굳이 부정할 마음은 없었지만, 그가 이 개혁을 통해 얻어내려는 건 단지 그런 추상적인 이념 교정만이 아니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스마르크는 빌헬름과 만난 뒤 이번 사태를 마무리 지을 특단의 조치를 발표했다.
-최근 세간에 도는 흉흉한 소문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프로이센의 귀족들은 모두 빌헬름 국왕 폐하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충성을 바치고 있다.
여기까지는 틀에 박힌 통속적 변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비스마르크의 조언을 받은 빌헬름은 한가지 깜짝 선언을 추가했다.
“더 강하고 웅대한 프로이센의 미래를 위해 국방력을 키워야 한다는 건 왕실의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정되어 있는 국가의 자원을 군에만 투자하면 다른 쪽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걸 짐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전체적인 비율을 유지하면서 군에 들어가는 예산을 증가시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산업의 규모를 한층 더 키울 필요가 있다.”
전체적인 파이가 커지면 똑같이 10분의 1을 잘라도 그 조각의 크기가 커진다는 건 어린 아이도 아는 이치.
안 그래도 억울하게 의심을 받는 처지였던 군부의 융커들은 빌헬름의 결정에 쌍수를 들고 찬성했다.
하지만 국가 주도로 전폭적으로 산업화를 진행하고 신흥 자본가들을 대우해주면 상대적으로 융커들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도식구조를 이해한 융커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군부와 정계가 갈린 상태라 의견은 좀처럼 통합되지 않았다.
“자본가들이 설친다고 우리 융커들의 지배력이 약해진다는 건 그냥 망상입니다. 비스마르크 총리도 융커인데 그런 간단한 사고도 하지 않고 정책을 추진하겠습니까.”
“망상은 아니죠. 당장 저기 대영제국만 봐도 자본가들이 많아지면서 귀족들의 권력이 약해졌는데요.”
“그래도 귀족원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황실을 빼면 가장 큰 힘을 지니고 있는 총리부터 그 귀족인데 힘이 약해졌다는 건 그냥 호들갑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진짜로 그럴까요?”
“그렇다니까요. 어차피 자본가들이 늘어나봐야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어요. 여차하면 그냥 대영제국처럼 서민원 같은 거 만들어서 평민들은 거기서 놀라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프로이센은 대영제국과 다르게 군부를 우리가 완전히 다 틀어쥐고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빌헬름이 본인 입으로 국방력을 키우겠다고 했으니 군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융커들로서는 굳이 부정적 의견을 낼 이유가 없다.
오히려 민족주의를 이용해 군이 권력을 잡으려 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무조건 왕의 의견에 찬동하고 봐야 했다.
여기서 눈치없이 왕실과 대립하는 구도를 세우기라도 하면 무조건 쿠데타 세력으로 몰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융커들이 비스마르크를 찾아갔지만, 철혈재상은 기가막힌 혓바닥 놀림으로 이들의 불안감을 완전히 종식시켜주었다.
“하하하! 자네들도 참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하고 있군.”
“아니, 총리님. 이건 그렇게 가볍게 볼 문제가···.”
“산업화, 과학 발전. 전부 다 좋지. 하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사람은 빵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네.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 될 거라고 생각하나?”
“예? 그건 당연히 아니죠.”
“그러면 뭐가 문제인가. 자네들도 알겠지만 토지에서 나오는 생산력은 결국 한계가 있다네. 아무리 공장을 열심히 돌리고 인구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절대로 식량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어.”
다시 말해 그 식량이 나오는 토지, 대농장을 쥐고 있는 융커들의 힘은 절대 약해질 수 없다는 말이었고, 융커들은 대번에 총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역시 총리님이십니다. 이미 거기까지 다 계산이 되신 거군요.”
“저희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처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총리님께서는 그런 요소까지 다 고려하시고 정책을 입안하시는 거였군요. 역시 이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는 비스마르크 총리님 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웃었지만, 비스마르크는 자신의 주장의 맹점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방금 그의 말은 이미 정설로 간주되고 있는 토마스 맬서스의 주장에 기인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논파하지 못한 세상의 법칙이나 마찬가지였으나 비스마르크는 이미 킬리언에게 귀띔을 들었다.
-맬서스의 주장은 기술 혁신이라는 요인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래봐야 기술이 발전하면 다 해결될 수 있다는 낙관론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되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상상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내가 죽기전에 해결하고 갈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세요. 이건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만 알려준 정보니까 절대 어디 가서 말하지 말고.
농담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이었기에 아직까지도 긴가민가 했지만, 킬리언이 한 말은 충격적일 수록 더 잘맞는 경향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충격적인 말일수록 더욱 더 빠르게 이뤄진다.
만약 정말로 킬리언이 죽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건 다시 말해 인류가 식량의 공포에서 해방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혹시 권력과 부는 충분히 얻었으니 이제는 역사에 남을 성인으로 추앙받고 싶은 건가?’
농담이 아니라 유럽에서 기근이라는 개념을 없애버리면 킬리언을 모시는 종교가 하나쯤 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그렇게 생산력이 늘어난다는 건 곧 군사력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도 그만큼 더 많아진다는 것.
안 그래도 지금 계속 강해지고 있는 강대국들의 국력이 한계 이상으로 팽창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킬리언이 미리 귀띔을 해준 이유도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수 있으니 미리 대비는 해두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래. 대비는 해둬야지.”
비스마르크는 걱정없이 돌아가는 융커들을 배웅해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역시 곱씹어볼수록 저렇게 아무것도 모른채로 살아가는 게 차라리 더 행복한 게 맞다.
“모든 게 바뀌고 재편될 세상. 새로 떠오르는 경쟁자는 확실하게 눌러놔야 하지 않겠나.”
철혈재상이 내심 견제하고 있는 프로이센의 가장 강력한 적수.
그건 프랑스나 러시아가 아닌, 저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무한한 잠재력의 소유국.
그 킬리언이 기를 쓰고 어떻게든 눌러놓으려고 하고 있는 아메리카의 신흥 열강.
미 합중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