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511)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511화(511/537)
< 국제 연합 (2) >
킬리언의 환대에 안심한 바쿠닌은 별다른 의심없이 국제 연합에 가입하는 걸 조건으로 대영제국에게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사실 바쿠닌도 킬리언이 아무런 꿍꿍이속이 없이 무조건 잘해주는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남부에서 정치를 하면서 얼마나 못볼 꼴을 많이 봐왔던가.
하지만 바쿠닌은 킬리언에게 이미 빚이 두 번이나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남부에서 엥겔스와 엮어서 그를 끌어내리려는 시도를 한번 했다가 오히려 역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하다.
여기에 그런 시도를 했음에도 엥겔스에게 숙청당할 뻔 할 때 캐나다에서 무사히 망명을 할 수 있게도 해줬다.
이렇게 은혜를 입은 입장에서 킬리언이 하려는 것에 무턱대고 반대를 한다는 건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일방적으로 킬리언의 장단에만 맞춰준 건 아니다.
그는 국제 연합에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보다 강한 영향력을 확보할 생각이었겠지만, 이건 신생 러시아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국제 연합에 들어갔다는 건 어쨌거나 지금 러시아의 체제와 영토, 외교관계를 국제 연합이 보장해주겠다는 의미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상임이사국이라는 지위도 솔직히 탐나긴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크게 지르면 오히려 역효과만 나기 마련.
들어가서 차근차근 아군을 확보해서 투표로 몰고가면 된다.
일단 지금은 잠시 몸을 움츠리고 내실을 다져야 할 때.
이쪽을 이용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저쪽을 이용하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
누가 더 크게 웃을지는 끝까지 가봐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쿠닌은 자신이 있었다.
* * *
미국인들은 본래 고립주의를 사랑했다.
미국의 공식 외교노선 역시 건국한 이래 거의 100년에 가깝게 이 방침을 지켜왔었다.
다만 진짜로 혼자 놀겠다는 게 아니라 아메리카는 우리 땅이니 우리에게 맡기고 느그들 유럽은 유럽 땅에서 놀라는 일종의 선긋기에 가까웠다.
그러나 남북 전쟁 이후 미국은 더 이상 이런 노선을 지킬 수 없게 됐다.
남부가 따로 떨어져 나갔으며, 대영제국령 캐나다는 이제 대영제국령이 아닌 대영제국 본토가 됐다.
여기에 파나마는 프랑스, 독일, 대영제국이 사이좋게 삼분할을 해놓은 상태.
바하마 같은 땅이야 코딱지만한 곳이니 별개로 친다해도 이미 이렇게까지 유럽 세력이 침투한 이상 더 이상의 고립주의를 천명하는 건 무리였다.
심지어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노선이 캐나다와 남부에 틀어막혔기 때문에 미국은 파나마 운하가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영제국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운하 통과에 제약이 생기면 이는 고스란히 미국의 피해로 돌아온다.
이런 상황에서 고립주의 노선을 피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 링컨은 꾸준하게 유럽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웰즐리는 당연히 링컨에게도 국제 연합에 적극 협조해달라는 요청을 보냈다.
킬리언의 생일 축하 연회가 열리기 정확히 한 달 전.
링컨은 코앞까지 다가온 새로운 국제질서에 어떻게 편승해야 할지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각하. 러시아 역시 국제 연합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모종의 거래가 있었나보군.”
“이제 막 들어온 신생 정권이니까요. 그걸 정권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남부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이상한 짓 하는 걸 하도 많이 본 터라 이제 저들의 기행이 별로 놀랍지도 않습니다. 바쿠닌도 어차피 남부에서 놀던 인사들 중 한명이었으니 비슷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겠죠.”
링컨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고 국무장관 해밀턴 피쉬는 그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각하께서도 합중국이 국제 연합에 가입하셔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지 않나? 프랑스나 프로이센은 그렇다 쳐도 러시아까지 저기에 들어간 이상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다 참여할 텐데.”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진짜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덥석 찬성해줄만큼 미국이 급한 건 아니었다.
“각하께서는 본국이 저 흐름에 동참하지 않았을 때 국제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가 다 가입한다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상황이 온다면 중남미쪽 독립국들이 특히 반길 테고.”
“그건···맞는 말씀이긴 합니다. 하지만 본국이 계속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대영제국 역시 곤란한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웰즐리 총리는 연합의 창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니까요.”
대영제국 역대 최장기 총리이자 최고의 총리로 칭송받고 있지만 웰즐리 총리의 권력도 영원한 건 아니다.
아마 길어도 10년이 남지 않았을 테니 웰즐리 총리도 슬슬 마무리를 준비하고 해야하지 않겠나.
이 국제 연합은 웰즐리 총리의 길었던 정치 생활을 마무리 해줄 최고의 한조각이다.
최소한 본인이 은퇴를 하기 전에 국제 연합을 깔끔하게 굴러가도록 손을 봐두고 싶지 않을까?
사람이라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쪽이 적극적으로 협력을 해준다면 국제 연합의 창설도 한층 더 탄력을 받겠지. 어쩌면 우리가 그 마지막 한 조각일 수도 있어.”
“저도 각하와 같은 의견입니다.”
“그러니 참가는 하되 최대한 많은 걸 얻어올 수 있도록 물밑에서 협상을 좀 해보게나.”
마침 생일 축하를 위해 국무 장관이 직접 런던에 갈 예정이었으니 의견을 조율하기에 이보다 좋은 때가 없다.
해밀턴 장관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링컨은 킬리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친필 서신을 작성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서.
진짜 국제 연합이라면 유럽만 상임이사국을 독식하지 말고 아메리카에도 최소 한 자리 이상은 줘야하지 않겠나.
그것만 보장해준다면 미국은 이 새로운 질서에 기꺼이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새롭게 만들 국제 연합의 상임이사국은 원역사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이상의 권한을 지니고 있다.
원래의 상임이사국처럼 거부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국제 연합의 의결을 무시할 수도 있다.
다만 이렇게 강대한 권한을 가진 나라가 늘어나면 조직 운영에 혼란이 올 뿐이기에 프랑스도 프로이센도 상임이사국 자리를 더 확대하지 말자는 요청을 해왔다.
일단 나는 뒷말이 더 나오지 않게 대략적인 상임이사국의 조건을 공개적으로 명시해 놓았다.
1. 세계를 선도하는 강대국일 것
2. 모든 상임이사국이 만장일치로 동의
이 1번의 조건이 많이 애매모호하지만 이건 나중에 프랑스나 프로이센과 합의해 구체적인 선을 정해놓을 계획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2번이었기에 사실 1번은 어떻게 조건이 설정되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세 나라 중 하나가 반대표만 던져도 새로운 상임이사국은 생겨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건 표면적인 기준일 뿐 내가 정해놓은 기준은 따로 있었다.
-상임이사국의 비공식 필수 조건
1. 이쪽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이득인 강대국일 것
2. 친영파일 것.
여기서 2번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나라라고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락시킨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공식적인 결격사유도 정해두자고 입을 맞춰 놓았다.
1. 독재정권
2. 전 세계구급의 전쟁범죄 이력
물론 이것 역시 반 대영제국인 자들을 찍어내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대영제국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초강대국의 싹이나 반영파가 득세한 강대국은 무조건 탈락이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안타깝게도 내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해밀턴 장관의 고향, 미국은 상임이사국에 합류하는 게 불가능했다.
원역사보다 많이 약하긴 해도 얘네는 남부를 다시 합병하기라도 하면 언제든지 이쪽을 위협하는 초강대국이 될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폐하. 대통령 각하께서는 새로운 국제 연합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계십니다.”
“그거 참 감사한 말씀이군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국제 연합은 공명정대한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심스러운 말씀이지만 그런 점에서 유럽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조금 불안해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어째서죠?”
“강대국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상임이사국 지위를 부여한 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유럽의 국가들만 가지고 있으니 다른 대륙이 볼 때는 그냥 유럽 국가들만을 위한 잔치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타 국가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대륙별 할당제라도 하자 이 말인가.
이건 뭐 월드컵 출전권 뿌리는 것도 아니고 뭔 소리인가 싶지만, 공정성 측면에서는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했다.
“그러니까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시아의 국가도 상임이사국에 넣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어디까지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한 측면에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나로서는 사실 딱히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긴 합니다. 하지만 이미 대다수 국가들은 전부 참가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서명까지 마쳤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국제 연합의 모태는 이미 생겨난 상태라는 뜻이죠.”
“···그렇군요.”
“그러니 새로운 상임이사국을 가입시키기 위해서는 본국만이 아니라 프랑스나 프로이센도 찬성을 해야 합니다.”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한 해밀턴 장관의 얼굴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프랑스와 프로이센은 과거 북부와 신나게 전쟁을 한 판 벌인 사이다.
여기에 프로이센은 최근에는 노골적으로 미국의 성장을 경계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한 정황이 있었다.
이런 나라가 미국이 상임이사국이 되는데에 찬성표를 던질리가 있겠는가.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본국이 합중국을 상임이사국 후보로 추천하고 표결에 들어가는 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부결될 게 확실한데 결말이 뻔히 보이는 일을 해야할지는 조금 의문이 드는군요. 물론 이건 우리에게는 이득이니 원한다면 한번 시도는 해볼 수 있습니다.”
“···예? 대영제국에 이득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이신지···.”
“그거야 국제 연합의 체제를 본국이 마음대로 뒤흔들 수 없다는 아주 좋은 사례로 기록될 테니까요. 본국이 추천한 후보가 반대표로 낙마한다면 아무리 대영제국이라고 해도 국제 연합의 결정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없다고 인식하지 않겠습니까?”
짜고치는 고스톱이기는 해도 그림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니 진짜로 이걸 시도해볼 마음도 살짝 들었다.
“폐하나 총리님께서 프랑스나 프로이센을 설득해주신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까지 할 의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설득을 한다고 말을 들을 거 같지도 않고.”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그보다는 좀 더 건설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이 있을 거 같은데요.”
나는 비정상적으로 쫙쫙 그어진 북부와 남부의 경계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을 이었다.
“진짜로 볼 때마다 화가 치솟는 국경선 아닙니까? 아, 따지고 보면 이것도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작품이었죠.”
“······.”
과거 남북전쟁에서 북부의 잠재력을 맛본 프랑스와 프로이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북부가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을 막아야 한다고 합의를 보았다.
그렇게 탄생한 말도 안 되는 어거지 선긋기로 코르테즈 해로 나가는 길은 남부의 영토가 되었고 졸지에 북부는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훗날 남부가 무너진다고 해도 합중국이 저 지역을 차지할 수 있을까요? 절대 안 될 겁니다. 그때는 국제 연합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때고 프랑스와 프로이센은 상임이사국의 권한을 마음껏 휘두를 테니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본국은 연합을 탈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프랑스와 프로이센은 더 기세등등해질 겁니다. 그러지 마시고 이쪽과 협상을 하죠. 남부가 무너진다면 이쪽이 책임지고 귀국이 그토록 원하는 코르테스 해를 안겨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나는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싶지 않으니 지키지도 못할 저 좁쌀만한 곳은 미국에게 내어줘도 상관없다.
물론 저것만으로도 미국에게는 감지덕지였으니 넙죽 절하며 받아갈 수밖에 없을테고.
“정말이십니까?”
“이쪽도 상임이사국이니 거부권을 행사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죠. 단, 진짜로 남부가 무너진다면 본국도 파나마 운하와 바하마를 보호할 수 있을만한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걸 좀 보장해주시면 좋겠는데요.”
남부가 박살나는 건 사실상 이미 정해진 미래나 다름없고 북부가 남부를 아예 못먹게 만드는 것보다는, 최대한 많은 파이를 이쪽이 가져오는 게 더 중요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현재 남부와 북부는 서로를 극렬히 혐오하는 입장이니 이쪽이 슬쩍 발을 걸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바하마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그걸 지금부터 좀 논의를 해보자는 거죠.”
나는 해밀턴의 말을 받아넘기며 유심히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쿠바와 남부 사이에 껴있는 작은 섬.
이곳을 지키려면 해군기지 하나 정도는 지어놔야 할 거 같은데 마침 그 옆에 딱 좋은 반도가 하나 보였다.
그래, 역시 해군기지 건설은 플로리다가 제격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