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534)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534화(534/537)
< 맞선 >
“그래. 너도 이제 진득하게 정착할 때가 됐지. 언제까지 이 여자 저 여자 들쑤시면서 돌아다닐래? 넌 아시아 최대 기업의 후계자이자 황실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어디서 줏어들었는지 에드워드 9세와 헤어지기 무섭게 한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리 대영제국의 문화가 깊숙하게 침투했다고 해도 아시아는 아시아다.
사실 아시아만이 아니더라도 가업을 물려받아야 할 후계자가 마구잡이로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 걸 좋아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그런 기억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억울해 팔짝 뛸 노릇 아닌가.
아니 이 몸뚱아리가 전생의 인연을 다시 찾고 싶다고 자동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나보고 어쩌런 말이야.
“내가 알아보니까 조건이 아주 좋은 사림이다. The AI라면 현재 제임스 킬리언 그룹의 핵심 미래사업으로 떠오르는 계열사 아니냐. 거기 창립자의 딸이면 관계를 맺어둘만 하지.”
“···그래봐야 딸 대에도 잘나간다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그 딸도 우수한 AI 개발자다. 학계에서는 젊은 천재로 명성이 높다고 하니 한번 잘해보는 게 어떠냐?”
얼씨구 연예인 뺨칠 정도로 얼굴도 예쁘다더니 능력도 좋으셔?
“그런데 어차피 저랑 잘된다고 해봐야 제임스 킬리언 그룹의 계열사잖아요? 우리쪽으로 흡수할 수 있을리가 없을 거 같은데요.”
“흡수하지 않더라고 해도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건 가능하지. 어차피 AI산업에서 우리쪽 반도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되는 거 알잖아?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도 저쪽은 앞으로도 계속 초우량 고객이 될 텐데 한 식구가 되면 좋지 않겠냐 이거지.”
“설마 진짜 결혼하라고 하는 건 아니시죠?”
“물론 싫다는 거 강제로 하게 할 마음은 없다. 그래도 일단 긍정적인 자세로 만나보라는 거다. 네가 허구한 날 만나고 다니는 여자들보다 100배는 더 좋은 조건이니까.”
“···저도 이제 좀 바뀌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단 한번 만나보기는 할 테니 그 이후 일은 어떻게 되든 간섭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도 다른 여자들 건드리고 다니는 일은 그만둘 테니 안심하시고요.”
지금까지 내 인식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조용히 살겠다고 하자 스마트폰 너머의 목소리가 잠시 잠잠해졌다.
그리고 뒤늦게,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좀 보라.
‘이 놈이 사고가 났더니 어딘가 망가졌나?’라니 나 저 사람 아들 맞긴 한 거지?
아니 진짜 얼마나 열정적으로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거냐 현석아.
“아~시차 적응이 안 돼서 그런가 저는 이만 자러 가보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통화하죠.”
“뭐? 지금 런던 오후 시간인 거 뻔히 아는데···!”
뚝.
거참 예나 지금이나 결혼 적령기 자식을 둔 부모님들은 다 저러는 건가.
애들레이드야 너는 내가 저렇게 극성이지 않은 걸 진짜 감사했어야 한다.
* * *
전화는 끝났지만, 일정은 끝나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내 아버지인 이장우 회장의 공세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
“부회장님! 여기 이번에 만나보실 분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뭐야. 이런 것도 다 보고 가야 해?”
“물론입니다. 회장님께서 이번에 거시는 기대가 아주 크십니다. 에드워드 9세 폐하께서도 적극 응원하고 계시고요.”
진짜 가지가지하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지금 이쪽만 이렇게 유난을 떠는 건 아닐 것이다.
여자쪽 역시 지금쯤이면 내 신상 정보가 쫙 적힌 자료를 받아서 하나하나 분석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닌가. 무조건 그렇게 하고 있을 거라고 봐야 할 거 같다.
“여기 기업 실적이 장난 아니긴 하네.”
“예. 본격적으로 지금 대형언어모델(LLM)쪽에 관해서는 여길 따라올 수 있는 곳이 아예 없으니까요.”
“···기술발전이 이 정도로 빠르면 사회구조 자체에 변화가 올 수도 있겠는데.”
“회장님께서도 그걸 우려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더더욱 AI계의 선두를 달리는 기업을 품을 필요가 있다고 보시는 것 같고요.”
“하긴. 발전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더 수월하게 대처가 될테니까.”
이 세계는 이미 AI로 인한 대량해고가 현실로 와 있었다.
단순히 그림이나 소설 같은 분야만이 아니라 단순 사무 업무는 이미 완벽하게 대체가 가능한 수준의 AI 모델이 버젓이 출시가 된 것이다.
다만 대영제국이나 미국, 조선제국 같은 강대국들은 급격한 일자리 감소를 우려해 여러 가지 대응책을 마련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세계 시총 독보적 2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AL그룹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제일 큰 당사자는 빅테크 기업을 줄줄이 거느리고 있는 제임스 킬리언 그룹이겠지만, 이쪽 역시 그 빅테크 기업들을 VIP고객으로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느 시대나 머리가 아픈 건 마찬가지구만. 에휴, 그래 까짓거 좋은 마음으로 만나보겠다고 주변에 동네방네 소문 좀 내줘라.”
나는 환하게 웃고 있는 여성의 사진이 떡하니 박혀 있는 종이를 쭉 훑어보았다.
확실히 예쁘긴···하네.
어디보자 이름은 빅토리아 아멜리아 록펠러?
아, 제임스 그룹 사람이라더니 록펠러 가문이었어?
반독점법에 제대로 얻어터진 원역사와는 달리 지금의 록펠러 계열사는 아직도 미국의 정유시장을 주름잡는 거대 에너지 회사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본가쪽 이야기고 이 사람은 가문의 재산을 빵빵하게 물려받기는 했어도 경영권은 별로 없는 분가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본가쪽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분야를 본인들의 능력으로 개척하려고 한 것이고, 그게 AI쪽 관련 일이었다고 하니 나름 대단한 집안이라 할 수 있겠다.
-아멜리아 록펠러: 성격도 사근사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주 평판이 좋지만, 가끔씩 진지해질 때는 나름 강단이 있는 편.
어렸을 때부터 참을성이 많았고 또래 아이들 답지 않게 굉장히 성숙했으며 리더십까지 겸비함.
기업의 후계자로 일찌감치 내정됐음에도 주변에서 불만이 없는 건 그녀가 지닌 탁월한 리더십 덕분이며, 정치를 했다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건 뭐 엄친딸이네.
괜히 한성에 있는 회장이 군침을 흘리며 만나보라고 한게 아니라는 게 프로필만 봐도 느껴진다.
다만 이렇게 잘나가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잘 된다고 해도 절대 내쪽에 맞춰주지는 않을 거 같은데?
조금 걱정이 됐지만 왠지 모를 흥미가 동하는 건 킬리언의 인격 때문일까, 아니면 이현석의 자연스러운 신체반응 때문일까.
무엇이 됐든 일단 만나보면 감을 잡을 수 있겠지.
하···90년만의 소개팅이라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 * *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나는 드디어 운명의 날을 맞이했다.
오늘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려고 수행원들은 물론 운전기사조차 대동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좁아터진 런던 시내 한복판에 리무진을 끌고 가는 바보짓을 할리가 없지 않나.
런던 답지 않게 바람도 별로 불지 않고 하늘은 쾌청 그 자체.
비 소식도 전혀 없었으니 데이트를 하기에는 최상의 날이라 할 수 있겠다.
저쪽에게 맞춰주는 의미로 첫 만남 장소는 그쪽이 보고 싶은 곳에서 보자는 말도 전해주었다.
자 그럼 흔치않은 대기업의 공돌이 영애께서는 어떤 곳을 장소로 점찍었는가 하니.